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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지성과 감성의 두 아이콘 조국·공지영 청춘이 묻고 그들이 답하다

글 | 구희언 기자 사진 | 문형일 기자

2012. 04. 17

미중년 조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도가니’의 작가 공지영은 온라인, 오프라인을 활발하게 넘나들며 활동하는 화제의 인물이다. 이들이 청춘에게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다고 해서 부산에서 열린 토크 콘서트 현장을 찾았다.

지성과 감성의 두 아이콘 조국·공지영 청춘이 묻고 그들이 답하다


정희준 동아대학교 교수의 사회로 2월 말 부산에서 열린 ‘시사토크 정희준의 어퍼컷’. 이번 게스트는 ‘도가니’의 작가 공지영(49)과 조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47)였다. 와인색 폴라티에 검은 재킷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무대에 선 조 교수는 “이전에도 사회 활동을 했지만 지난해부터 사회 분위기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에 시쳇말로 설레발을 치고 있다”는 말로 토크의 문을 열었다. 최근에는 트위터도 다시 시작했다.
“원래 트위터보다 페이스북을 오래 했습니다. 트위터는 모든 사람에게 공개돼서 안 하려고 했는데 막상 해보니 약간의 중독성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스님들이 하안거, 동안거 하듯이 저도 쉬어가며 하고 있습니다.”
서울대 법과대학을 만 16세에 들어간 조국 교수의 20대는 어땠을까.
“지금의 20대와는 아주 다른 삶이었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때 머리를 밀었기에 대학교 가서는 신나서 어깨를 덮을 정도의 장발로 돌아다녔죠. 낭만적인 대학 생활을 상상하고 들어와 보니 캠퍼스에 항상 경찰이 있더라고요. 학생회 만들고 무기정학, 그런 일이 허다해서 낭만적인 대학 생활은 못했습니다. 친구들하고 술은 많이 먹었죠. 고등학교 때까진 장남이라 부모님이 기대하는 바에 잘 따르는 착한 아들이었어요. 머리가 크면서부터 밖에서 요구하는 것보다 내가 행복한 것은 뭔지, 사회가 내게 요구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반항은 해본 적 없느냐는 물음에 그는 “고등학교 전까지는 (집을) 나간 적이 없고, 대학교 입학 후에는 주로 학교 근처(서울)에서 활동했기에 따로 가출할 필요가 없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학생회 간부로 활동하다 보니 방학 때 저를 담당하던 정보과 형사가 저보다 먼저 집에 와 있어 그런 점에서 불효한 셈이죠”라고 덧붙였다.
조 교수의 멘토는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 교수는 그가 감옥에 가거나 안 좋은 상황에 닥쳤을 때마다 조언을 해주는 형님 같은 멘토였다고 한다. 그에게 요즘 정치권의 영입 제의도 많았을 법한데, 이에 대해 그는 “정치 결벽증은 없다”며 운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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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정치적으로 활동하고 있고 시민도 정치에 관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을 만들고 바꾸는 사람이 정치인이죠. 제 전공이 법인데 어떤 사람이 정치할지 관심이 없다면 학자로서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중요한 역을 하려면 그에 걸맞은 능력이 필요합니다. 제가 겸양을 떠는 게 아니라, 직업으로 정치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하고는 맞지 않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겠지만 제가 정치에 뛰어드는 건 문자 그대로 맨 마지막 선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화가 무르익을 즈음 공지영 작가가 등장했다. 반짝이는 카디건에 소녀풍 치마를 입은 공 작가는 “올해 뛸 일이 많을 것 같아서 무대의상 한 벌 마련했다”라며 화사하게 웃었다. 그는 일전에 노무현재단에서 진행한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 설문조사에서 명진 스님, 김제동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의 발언은 정치인 이상의 영향력을 지닌다. 실제로 지난해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자로부터 대변인직을 제안받았으나 고사했다. 그는 “제가 달변이긴 한데 별로 메시지는 없다”며 웃었다. 고등학생 시절 성당에 다니며 봉사 활동을 했던 공 작가는 서울 근교의 빈민촌, 교도소, 정신병원 등을 방문했던 경험이 큰 자극이 됐다고 했다.
“운동권 가면 치마도 못 입게 해서 일찌감치 나와서 놀았어요. 명목상 졸업은 영문학과지만 주로 모이던 신촌의 술집에서 일종의 학파를 형성한 것 같아요. 학교 밖의 술집이 제 학교였어요. 거기서 금지된 루카치, 브레히트 이야기 듣고, 집에 가는 길에 그들의 책을 사서 읽고 그랬죠. 조국 교수님은 낮술 안 하고 학교 열심히 다녔죠?”(공지영)
“많이 마셨죠.”(조국)
“왜 못 봤죠?”(공지영)
“신촌은 멀어서 거기에선 안 먹었습니다(웃음).”(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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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작가는 파워 트위터러다. 멘션뿐만 아니라 리트윗도 많이 한다. 이야기가 오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의 계정이 온라인 복덕방처럼 느껴진다.
“제가 할 일이 별로 없잖아요. 우선 직업 자체가 종일 앉아 있는 거거든요. 취재도 ‘트위터로 이런 거 아시는 분’ 하면 멘션이 오니까 얼마나 편해요. 저는 트위터를 작은 언론, 민중의 소리를 듣는 언론이라고 생각해요.”
그들은 악플이나 비방성 멘션에 대한 대응은 어떻게 할까.
“저는 그 사람들 심리를 분석하고, 제가 신자이기 때문에 기도해줍니다. 앞으로 기도가 필요한 분 악플 달아주세요.” (공지영)
“저는 맞받아서 쏴줄까 하다가 한편으로 측은해서 기도는 못하고, 저보고 ‘개 껌 씹는 소리 하네’ 그러면 ‘개 껌이나 사주고 그러시죠’ 이런 식으로, ‘종북좌파 김일성대 교수다’ 그러면 ‘통일되면 국립평양대에서 강의할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고,‘입만 나불댄다, 강남좌파다’ 하면 ‘입이라도 진보라고 해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감사 모드로 나가고 있습니다.”(조국)
사회를 맡은 정희준 교수는 공 작가에게 이메일을 보냈다가 ‘장편 집필 중’이라는 자동 회신을 받았다며 지금은 ‘초단편’인 트윗을 주로 하는 공 작가에게 작품 활동을 접었느냐고 물었다.
“제가 담배를 끊은 지 3년 넘었는데, 하루에 3갑 정도 피웠어요. 사람들이 담배 그렇게 피우면서 소설 언제 쓰느냐고 그러진 않아요. 저는 늘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직업을 가졌고 오라는 데도 없어서 그러는 것뿐이고, ‘도가니’ 다음에 사랑 소설을 쓰려고 다 구성해놨어요. 제가 생각해도 재밌고 가슴이 저릿저릿한 내용이죠. 저는 소설을 쓰기 전에 영화처럼 그려보거든요. 뼈대는 다 구성됐고 살을 붙이기 제일 좋은 방법은 제가 사랑하는 거지만, 아시다시피 여의치가 않잖아요. 그래서 사랑에 관한 노래 같은 것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듣고, 그런 감정을 일으켜야 소설에 살이 붙어요. 아침부터 리시버를 끼고 있다가 트위터를 딱 보면 김진숙 씨가 크레인에 올라가 있고, 쌍용차 노조원이 자살했고 이러는데 어떻게 내가 사랑 이야기를 쓸 수가 있나, 이제 정치가 형이상학적인 부분까지 지배하고 상상을 방해하는구나 싶더라고요.”
공 작가는 젊은 여성들에게도 메시지를 전했다.
“제가 여자이고 집에서 막내다 보니까 (가족들이) 많은 걸 허용해주셨다고 생각해요. 이런 말씀 처음 드리는데 먹는 거, 입는 거, 세상이 말하는 권력 말고 그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가져보고 싶었어요. 지금도 뭔지 잘 모르지만 저의 가치관은 그렇습니다. 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다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더군다나 노동 소설로 데뷔했기에 이런 자리에 있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물론 굶거나 하지는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소설을 썼죠. 하지만 처음부터 성공한 소설가는 아니었고 고생을 오래 했어요. 요즘도 책이 계속 안 팔렸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는데, 아마 국수 가게나 커피 집을 차렸을 것 같아요.”
이어지는 질의응답 시간. 다음은 몇 가지 질문에 대한 그들의 대답이다.

Q. 다독이 좋을까, 정독이 좋을까.
공지영 저 같은 경우는 굉장히 다독하거든요. 집에 촬영 오면 책장에 부동산 전략, 주식 전략 이런 게 꽂혀 있죠. 취재가 될까 해서, 이런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해서 보는 편이고 하루에 4~5권씩 동시에 진행해요. 화장실에 한 권, 책상 옆에 한 권…, 그중에 읽다가 탁 걸리면 그건 정독하죠.
조국 저도 섞어 읽는 편인데요. 일단 제가 봐야 할 책과 제가 선택하지 않은 책을 섞어두고 장소든 시간이든 구애받지 않고 늘 두 권 정도 들고 다닙니다. 하나는 재밌는 책, 하나는 재미없을 가능성이 큰 책이죠. 속독을 먼저 합니다. 휘리릭 보고 감을 잡고 나서 다시 한 번 꼼꼼히 보는 식이죠.

Q. 잘하는 것을 할까, 좋아하는 것을 할까.
조국 진짜 어려운 질문이네요. 좋아하는 것 해라, 맘대로 살아라라고 답하는 건 쉬운데 이런 질문을 던지는 마음은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저자는 나름대로 자리 잡고 기득권 가진 상태에서 멋진 얘기 하면서 훈계한다고 생각하실 것 같아서 이 말씀부터 드립니다. 그렇게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그걸 전제로 해서 말하고 싶은 건, 제가 처음부터 교수가 된 건 아니잖아요. 대학원 다닐 때만 해도 교수 생각을 안 했거든요. 판사 검사 해야지, 이런 생각으로 살았다면 지금의 제 모습이 아닐 것 같습니다. 제가 일을 택할 때의 기준은 ‘그 일을 생각했을 때 가슴이 뛰는지’ 여부였습니다. 연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할 때도 약간의 흥분이 느껴져야 합니다. 머릿속에서 사회 규범, 가족이 요구하는 게 있을 거예요. 생물로서 어떤 걸 생각했을 때 짜릿하고 흥분되고 긴장되는 걸 선택하세요. 그러면 오래갑니다.
공지영 정말 동감하는 건 저도 이 자리에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고, 다른 걸 향해 가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어요. 전 늘 오늘이 행복해야 한다는 말을 하곤 해요. 무언가를 위해 오늘을 희생한다면, 그것만을 위해 살다가 내일 지구가 멸망하면 억울해서 어쩌려고요. 아마 구천을 떠돌 거예요. 오늘 하고 싶은 연애를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행복을 상상하며 책상 앞에 앉아도 보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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