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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룡 감독 가족을 만나다

프로야구 전설도 손자 앞에선 순한 양!

글 | 김유림 기자 사진 | 박해윤 이기욱 기자

입력 2012.04.17 10:50:00

우리나라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은 누구일까. 한국시리즈 10회 우승의 주역, 삼성 라이온즈 사장을 지낸 김응룡 감독이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우승 청부사’란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화려한 야구 인생을 산 그는 남편, 아버지로서도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산다. 두 딸 모두 예술가로 훌륭하게 키워낸 김응룡 감독과 가족을 함께 만났다.
김응룡 감독 가족을 만나다


프로야구 통산 1천4백63승, 한국시리즈 10승.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이 기록의 보유자는 바로 김응룡(71) 감독이다. 프로야구 출범 다음 해인 1983년부터 18년간 해태 타이거즈 감독으로 9회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그는 2002년 삼성 라이온즈로 자리를 옮긴 뒤 한 번의 우승을 추가해 통산 한국시리즈 10승을 달성했다. 2004년에는 야구인 출신 최초로 구단(삼성라이온즈) 사장직까지 올라 화제를 모았다. 그야말로 야구로 점철된 인생이다. 하지만 시작이 있으면 마무리도 있어야 하는 법. 2년 전 사장직에서 물러난 김응룡 감독은 ‘우승 청부사’ ‘야신(野神)’ ‘코끼리’ 등의 화려한 수식어를 떼어내고 요즘은 ‘행복한 실업자’로 살고 있다.
평소 인터뷰 안 하기로 유명한 그를 제대로 만날 수 있었던 건 야구와는 상관없는 두 딸 덕분이다. 미술가인 큰딸 김혜성(39) 씨와 플루티스트 김인성(37) 씨가 3월 12일 ‘이원적 차이(Dualistic Difference)’란 제목으로 같은 공간에서 전시·연주회를 연 것. 혜성 씨는 건축과 인테리어 디자인으로 유명한 미국 미술대학 프랫(Pratt) 인스티튜트에서 순수미술과 컴퓨터그래픽을 전공하고, 귀국해 홍익대학교 영상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는 평택대학교 영상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둘째 딸 인성 씨는 명문 음대 줄리아드를 나온 플루티스트. 2007년 귀국해 계명대학교 초빙교수를 역임했고 현재는 뤼미에르 앙상블 멤버로 활동하며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두 딸 응원 차 행사장을 찾은 김 감독은 세 살배기 외손자 박선호 군을 안고 큰딸의 미술 전시부터 둘러봤다. 혜성 씨는 이번 개인전에서 18점의 드로잉 작품을 선보였다.
“음… 그림이 좀 어려운데 그래도 계속 보니까 느낌이 좀 오네. 허허.”
그라운드에서는 무표정으로 일관해온 김 감독이지만 외손자를 안고 있는 모습은 인자한 할아버지 그 자체다. 전시회 개막 후 이내 둘째 딸의 플루트 연주회가 시작됐다. 김 감독은 객석 맨 끝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음악을 감상했다. 이날 김인성 씨는 필리프 고베르, 니노 로타, 카밀 생상스, 올리비에 메시앙 등의 곡을 차례로 연주했는데, 마지막 곡을 연주할 때는 무대 뒤편 스크린에서 혜성 씨의 작품 ‘Black Bird’ 영상물이 상영됐다. 그야말로 ‘예술가 자매’의 위력을 과시하는 순간이었다.

김응룡 감독 가족을 만나다

3월 12일 두 딸이 함께한 전시·연주회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김응룡 감독 가족. 오른쪽이 큰딸 혜성 씨, 왼쪽이 둘째딸 인성 씨. 김응룡 감독은 요즘 손자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낸다.



공기놀이, 고무줄놀이 해주던 따뜻한 아버지
본격적인 가족 인터뷰는 그로부터 3일 뒤 경기도 용인에 있는 김응룡 감독의 자택에서 진행됐다. 김 감독과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김인성 씨는 아들 선호와 함께 일찌감치 부모님 댁에 와 있었고, 분당에 사는 혜성 씨는 전시회 철수를 돕고 부랴부랴 집에 들어서는 길이라고 했다. 김 감독의 아내 최은원(70) 여사는 한눈에 봐도 상당한 미모의 소유자였다.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을 진행하려는 순간 다소 난감한 상황이 연출됐다. 네 사람이 약속이라도 한 듯 쑥스럽다며 사진 촬영에 거부감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할아버지 품에 안겨 있던 선호가 카메라에 관심을 보이며 귀여운 표정을 지어 보였고, 아이의 행동에 가족들의 얼굴에도 금세 미소가 번졌다. 덕분에 촬영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마칠 수 있었다.
가족과의 대화는 호랑이처럼 무섭고, 냉철하기로 소문난 김응룡 감독의 ‘그라운드 밖 모습’에 대한 얘기로 시작했다. 마침 김응룡 감독은 얼마 전 KBS ‘김승우의 승승장구’에 출연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감독 생활의 비화를 털어놓은 터였다.

김응룡 감독 가족을 만나다




방송에서 그는 “사람들이 유니폼을 입으면 호랑이, 사복을 입으면 부처님이라고 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먼저 호랑이 감독의 모습은 ‘몰래 온 손님’으로 출연한 야구선수 이종범, 양준혁의 증언으로 낱낱이 밝혀졌다. 이날 이종범은 과거 김 감독의 불같은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일화를 폭로하며 “감독님이 해태 타이거즈(기아 타이거즈 전신)에 있을 때는 10년 가까이 말을 안 해본 선수들이 있을 정도로 포스가 대단했다. 경기에서 지면 선수들 훈계 차원에서 말 대신 야구 방망이로 벽을 ‘쾅쾅’ 때리고 의자를 발로 차는 행동을 보였다”고 밝혔다.
그러자 양준혁도 김 감독이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덩치 큰 외국인 용병 선수를 헤드록으로 단번에 제압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사연인즉 과거 삼성 라이온즈 투수 케빈 호지스가 SK 와이번스 타자 틸슨 브리토의 머리 위로 공을 던진 것이 발단이 돼 양 팀이 뒤엉켜 난투극을 벌인 것. 이때 삼성의 김응룡 감독이 상대편 선수에게 헤드록을 걸었다고 한다. 이에 김 감독은 “그때 그놈이 ‘잘못했다’고 해서 내가 풀어줬지”라고 말해 스튜디오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젊은 시절 김 감독은 가정에서는 어떤 남편, 어떤 아빠였을까. 두 딸은 뜻밖에도 “순한 양”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부분 사람들이 밖에서와 안에서의 모습이 다르잖아요. 아빠도 겉으로는 굉장히 무서워 보일지 모르지만 집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저희한테는 화를 내신 적이 거의 없어요. 워낙 말씀이 없으셔서 그렇지 어릴 때는 공기놀이, 고무줄놀이도 해주시고, 목욕하고 나면 선풍기 앞에 저희를 앉히고 머리도 말려주셨어요.”(김인성)
“그러다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되던 해 해태 타이거즈 감독이 되시면서 아빠 얼굴 보기가 힘들어졌어요. 특히 저희와 휴일이 달라서 같이 놀러 다닌 기억이 많지 않아요. 아빠는 주말에는 늘 구장에 계시고 여름방학 때도 야구 시즌이라 또 바쁘고, 동생보다 제가 투정을 많이 부렸대요(웃음).”(김혜성)

공부하는 딸들 몰래 혼자 유방암 수술 받은 아내
1년에 집에 있는 날이 열흘도 안 될 정도로 젊은 시절을 바쁘게 보낸 김 감독은 자녀 교육은 전적으로 아내에게 위임했다. 김 감독은 “뭐, 아이들과 함께 있을 시간이 있어야 야단도 치지. 우리 집은 내가 아니라 집사람이 가장이야” 하며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그럼에도 두 딸을 엄친딸로 키운 비법을 묻자 결국 그의 아내 최은원 여사가 나섰다.
“처음부터 아이들 교육은 부부 중 한 사람이 맡아서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집을 봐도 같이 하면 꼭 싸움이 나더라고요. 그런데 우리 집은 남편이 늘 바쁘니 당연히 제가 해야 하는 일이거니 했죠. 다행히 남편은 제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조금도 토를 달지 않았어요.”
김 감독은 우리나라 원조 ‘기러기 아빠’라는 타이틀도 보유하고 있다. 최 여사가 1990년 두 딸과 함께 미국 유학길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때도 김 감독은 아내의 의사에 전적으로 따랐다. 이후 김 감독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가족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매일 전화를 걸긴 하셨는데, 통화 시간은 딱 3초밖에 안 됐어요. ‘지금 뭐하냐’ ‘영어 공부해’ ‘그래 영어 공부 열심히 해라’ ‘뚜 뚜…(전화 끊어진 소리)’ 그게 다였어요. 전화를 끊고 나면 주위 사람들이 도대체 누구랑 통화한 거냐고 물어봤어요(웃음).”(김인성)
자매는 어려서부터 미술과 음악에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특히 큰딸의 미적 재능은 서울대 미대 출신인 최 여사의 눈에 수시로 포착됐다. 둘째 딸 역시 어릴 때부터 음악의 박자를 정확하게 맞추는 등 남다른 감각을 보였다고 한다. 일찌감치 두 딸의 진로를 예능으로 정한 최 여사는 인성 씨가 예원학교 2학년에 올라가던 해 평소 레슨을 받던 선생님으로부터 “음악을 계속할 거면 하루라도 빨리 유학을 가라”는 얘기를 듣고 미국행을 결심했다.
“둘째가 예원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플루트로 1등을 했기 때문에 남다른 기대가 있었어요. 유학을 결정할 때 큰딸이 고3이었지만 같이 가자고 했죠. 처음에는 적응하느라 힘들어하더니 그래도 아이들이 참 잘 따라줬어요. 연습하라는 잔소리를 지금도 하는데, 그때는 오죽했겠어요. 몇 번 슬럼프는 있었지만 그때마다 잘 이겨내주더라고요.”

“연습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음악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두 번 정도 들었어요. 엄마한테 솔직하게 말씀드렸더니 그럼 일주일 동안 네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보라고 하셨죠. 그런데 아무리 고민해봐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음악밖에 없더라고요(웃음). 엄마 덕분에 언니나 저나 마음 편하게 끝까지 공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낯선 땅에서 홀로 두 딸을 뒷바라지하는 게 보통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최 여사는 한 번도 자식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16년 전 유방암에 걸렸을 때도 식구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혼자 귀국해 절제수술을 받았다.
“엄마는 진짜 대단하세요. 동생이 대학 들어가던 해 유방암 판정을 받으셨는데 물론 초기이긴 했지만 저희한테는 말씀도 안 하고 수술을 받으셨어요. 아빠도 시합 때문에 바빠서 병원에 못 가보셨대요. 수술 후 이모 집에 머물면서 항암 치료를 받으셨는데 미국으로 다시 오셨을 때는 머리카락이 다 빠진 뒤 새로 나기 시작하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김혜성)

30년 가꾼 텃밭 리틀야구단에 내준 사연

김응룡 감독 가족을 만나다

김응룡 감독은 현역 시절 훈장을 세 개나 탔다. 김 감독은 “이 정도면 출세한 것 아니겠냐”며 웃었다.



최 여사는 인성 씨가 대학원에 들어가던 2004년 귀국했다. 그때부터 여가 시간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수채화를 주로 그리는데, 해마다 서울대 미대 출신 여성 작가들로 구성된 한울회 전시회에 작품을 한 점씩 출품하고 있다. 내년에는 생애 첫 개인전을 열 계획이라고 한다.
혜성 씨는 유학 10년 만인 1999년 한국으로 돌아와 애니메이션 회사에 취업했다. 그때 만든 작품이 온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뽀롱뽀롱 뽀로로’. 초창기 콘셉트 디자이너로 활동했다는 그는 “저 다닐 때만 해도 회사 형편이 그리 좋지 않았는데 점점 회사가 커지는 걸 보고 마음이 뿌듯했다”며 웃었다.
2007년 귀국한 인성 씨는 그해 가을 대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재직 중인 연구원과 결혼해 대전에 살았다. 그러다 지난해 다시 연주 활동을 시작하면서 아이를 맡길 데가 마땅치 않아 친정 근처로 이사했다. 현재는 주말 부부로 지내고 있다.
아직 미혼인 혜성 씨는 “한때 선도 몇 번 보긴 했는데 인연을 못 만났다.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며 웃었다.
“다행히 부모님도 크게 잔소리하지 않으세요. 한때 엄마가 ‘아무나’와 결혼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지만, 저희 어릴 때부터 결혼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혼자 살아도 될 능력만 있으면 결혼 생활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면서요(웃음). 그래도 동생이 결혼해서 부모님께 예쁜 손자를 안겨줘서 고맙게 생각해요.”
실제로 요즘 김 감독은 손자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이날도 김 감독은 인터뷰에는 별 관심을 안 보이고 연신 “빠삐야, 빠삐야(선호의 태명 ‘똘이’를 잘못 부른 것)” 하며 손자 뒤꽁무니만 쫓아다녔다. 요즘 김 감독의 하루는 집 인근 도서관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아침 먹고 도서관에 가요. 매일 같은 데만 가면 남들 보기에 창피하니까 세 군데를 나눠서 다니지(웃음). 이 책 저 책 읽고 싶은 거 다 보다가 아는 사람 만나서 점심식사 하고 뒷산을 올라요. 두세 시간 걸리는 코스인데 그거라도 하니까 살지 안 그럼 답답해서 못 살아. 평생 밖으로 나돌던 사람이 집에만 있으려면 그야말로 감옥 없는 창살이지.”
“다시 사회 활동을 시작할 계획은 없느냐”고 묻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왜 없어. 시켜만 주면 하지. 지금 감독 하면 예전보다 훨씬 잘할 수 있을 텐데”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최 여사가 “옆에 있는 안경도 못 찾고 깜빡깜빡하는 양반이 무슨 욕심이냐”며 핀잔을 주자 그는 “아니야. 요즘 다시 공부하고 있어” 하며 물러서지 않는다. 기자 역시 농담인가 싶었지만 알고 보니 괜한 말이 아니었다. 얼마 전 김 감독은 30년 동안 일궈온 텃밭의 일부를 용인시 처인구에 리틀야구팀 구장으로 내줬다고 한다. 최근 시청 허가가 떨어져 조만간 야구장 조성 공사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김 감독은 “주말에 야구를 못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마음 놓고 야구를 즐기게 돼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가 리틀야구팀 유니폼을 입고 다시 감독으로 활동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무심한 듯 툭툭 내뱉는 말끝에서 왠지 모를 정감이 느껴지는 김응룡 감독. 분명 호랑이 탈을 쓴 양이다.

여성동아 2012년 4월 5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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