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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인생 사용설명서 다섯 번째 |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미?

가정위탁으로 늦둥이 두 딸 키우는 이한주 사은숙 부부

“함께 밥 먹는 정은 피보다 진해요”

글 | 김유림 기자 사진 | 지호영 기자

2012. 03. 16

경기도 파주에 사는 이한주·사은숙 부부에게는 늦둥이 딸이 둘 있다. 가정위탁으로 만났지만 부부에게는 배 아파 낳은 자식과 다를 바 없는 애틋한 아이들이다. 애교 많은 셋째 경은이와 씩씩하고 붙임성 좋은 막내 희아는 이들 부부에게 삶의 활력소다.

가정위탁으로 늦둥이 두 딸 키우는 이한주 사은숙 부부


지난해 공직 생활을 마감한 이한주씨(61)는 퇴직 후에도 무료할 틈이 없다.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3학년이 된 두 딸의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2003년, 2008년 가정위탁으로 만난 두 딸 희아(가명)와 경은(가명)이 덕분에 집안에는 웃음이 끊일 날이 없다. 처음 가정위탁을 제안한 사람은 그의 아내 사은숙씨(55). 24년간 남편과 함께 경기도 파주시청에서 근무한 사씨는 1999년 금융위기 때 사표를 낸 뒤 봉사 활동으로 눈을 돌렸다.
“당시 사회가 매우 혼란스러웠어요. 가장의 실직으로 가정마저 해체되는 경우가 많았죠. 부모의 이혼으로 버려지는 아이들도 많이 생겨났고요. 날마다 뉴스를 통해 그런 소식들을 접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를 고민하게 됐어요. 그러던 중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가정위탁 제도를 알게 됐죠.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을 부모 대신 돌봐준 뒤 친부모에게 돌려보낸다는 취지가 마음에 와 닿아서 경기북부가정위탁지원센터에 무작정 가정위탁 신청서를 냈죠. 당시 큰딸은 대학생이어서 학교에서 기숙 생활을 하고 있었고, 둘째 아들도 군대에 있어서 집에 시어머니와 저, 남편 이렇게 세 식구밖에 없으니까 적적하기도 했고요. 저희나 아이들이나 가족이 필요하긴 마찬가지였어요.”
처음 그의 가슴을 파고든 아이는 생후 9개월인 희아였다. 적막했던 집에 갓난쟁이가 들어오자 식구들 얼굴엔 생기가 돌고, 집안 곳곳에 온기가 퍼지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사씨는 “나보다 시어머니가 더 좋아하셨다. 지금은 큰댁으로 가셔서 안 계시지만 시어머니를 비롯해 식구들 모두 꼬물꼬물한 갓난쟁이를 보면서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몰랐다”며 환하게 웃었다.
희아의 친모는 열일곱 살에 아이를 낳아 가정위탁 시설에 맡겼다. 몇 년 전 새로 가정을 꾸려 아이도 둘 낳았지만 여전히 희아를 데려갈 형편은 못 된다. 하지만 희아는 어려서부터 친엄마의 존재를 잘 알고 있다. 희아가 사씨의 집에 처음 왔을 때부터 지속적으로 왕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씨는 “아이들의 친부모에게 언제나 집을 개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희아가 두 돌 지났을 때쯤 또 한 명의 남자아이를 데려와 3년 동안 돌본 경험이 있는데, 그때도 아이와 친부가 수시로 만나도록 배려했다.
뽀얀 피부에 이목구비가 예쁜 경은이는 열 살 때 사씨 가족의 일원이 됐다. 희아가 다섯 살 됐을 무렵 희아에게 예쁜 여동생을 만들어주고 싶었던 사씨는 마침 집 근처에 있는 한 보육원에서 가정위탁을 실시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세 번째 위탁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 보육원은 영아들을 전담으로 하는 곳이었어요. 아이를 열 살 때까지 돌보는데 그때까지 입양이나 가정위탁이 되지 않은 아이는 또 다른 시설로 보낸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원장님이 경은이를 맡아보라고 제안하셨어요. 처음에는 희아보다 어린 아이를 맡을 생각이었는데, 경은이를 보니까 마음이 확 바뀌더라고요. 경은이는 희아와 달리 엄마의 존재를 전혀 몰라요. 그래도 참 씩씩한 것이, 친엄마 얘기를 서슴없이 꺼내요. 인터뷰하기 전에도 엄마가 잡지에 실린 자기 사진을 보고 찾으러 오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럴 때면 마음 한편이 아리면서도 아이가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주눅 들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이 대견스러워요.”

“가족이 많을수록 행복도 커져요”

가정위탁으로 늦둥이 두 딸 키우는 이한주 사은숙 부부

이한주·사은숙 부부는 가정위탁을 시작함과 동시에 아이들 자립을 위한 통장을 개설해 꾸준히 돈을 모으고 있다.



희아와 경은이는 사씨 부부를 엄마, 아빠라고 부른다. 갓난아기 때부터 키운 희아는 엄마에 대한 애착이 크고, 시설에서 생활하면서 아빠의 존재를 잘 모르고 지낸 경은이는 아빠를 유난히 좋아한다. 요즘도 아빠와 함께 자겠다면서 베개를 안고 안방에 들어오는 날이 많다. 이한주씨도 딸들에게 자상하기 그지없었다. 인터뷰를 하던 날도 막내 희아가 감기에 걸려 심하게 기침하자 주방에서 따뜻한 차를 끓여 내와 직접 아이에게 먹이는가 하면, 사진 촬영 중 아빠 옆에 꼭 붙어 있으려는 경은이에게 수시로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이들은 저희 부부를 친엄마, 친아빠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요. 사실 경은이는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어요. 자기가 갖고 싶은 건 뭐든지 해달라고 하는 희아와 달리, 어느 정도 커서 온 경은이는 뭐든 괜찮다고만 했어요. 하지만 1년 정도 지나니까 경은이도 이것저것 원하는 걸 얘기하더군요. 제가 나이가 많아서 요즘 젊은 엄마들처럼 극성을 부리진 못해도 아이들이 하고 싶다는 건 다 해주려고 해요.”
두 아이는 영어, 피아노, 태권도 학원에 다니고 있고 지난해에는 필리핀 어학연수도 다녀왔다. 10년 가까이 두 아이를 키우느라 중년을 바쁘게 보낸 부부는 지난해 이씨의 퇴직을 기념해 호주 여행을 준비하면서 아이들에게도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선물했다고 한다. 사은숙씨는 “아이들이 어학연수를 다녀온 뒤 영어 실력이 몰라보게 향상됐다”며 뿌듯해했다.
요즘 경은이는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는 등 서서히 사춘기에 접어들고 있다. 사씨는 가끔 아이가 예민하게 굴 때면 “너는 사춘기니? 나는 갱년기야” 하면서 유쾌하게 맞받아친다고 한다.
사은숙씨는 가정위탁을 시작함과 동시에 아이들의 독립도 꾸준히 고민해왔다고 한다. 강제 사항은 아니지만 아이가 만 18세가 되면 가정에서 독립하는 게 원칙이기 때문이다. 현재 가정위탁 아이들의 자립을 도와주는 ‘디딤씨앗통장’이 시행 중인데, 위탁부모가 불입하는 금액에 따라 매달 국가에서 최대 3만원까지 보조해주는 제도다. 사씨는 희아를 맡던 날부터 디딤씨앗통장을 만들어 현재 두 아이 이름으로 각각 매달 8만원씩 저축하고 있다.
비록 혈연이 아닌 사랑으로 맺어진 가족이지만, 희아와 경은이는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행복하게 자라고 있는 듯했다. 사은숙씨 역시 자신이 낳은 아이와 비교해 두 아이에게 갖는 감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사씨는 “피는 물보다 진하지만,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고 한 식탁에서 밥을 먹으며 쌓은 정은 피로 맺은 관계와는 또 다른 끈끈함이 있다”고 말했다.
“처음 희아를 데려 올 때는 ‘1년만 해야지’ 했어요. 갓난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으니 ‘1년 동안 죽어라 업어주기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런데 1년이 2년이 되고, 어느덧 10년이 됐어요. 나중에 아이들이 커서 독립할 걸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아파요. 가정위탁을 생각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눈 딱 감고 한번 시작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물론 아이를 키운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니죠. 하지만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행복이 있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면 좋겠어요. 누가 뭐래도 우리는 가족이고, 가족이 많을수록 행복도 커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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