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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인생 사용설명서 세 번째 | 내 나이가 어때서...

예순여덟에 1000m 거벽 오른 암벽 등반가 이충호

“마음 비우면 오랫동안 즐길 수 있어요”

글 | 권이지 객원기자 사진 | 조영철 기자, 윤정호 제공

2012. 01. 17

암벽 등반가들의 로망인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거벽 ‘엘 캐피탄’. 1000m 높이로 치솟은 이 바위산의 정상에 올라 노익장을 과시한 이가 있다. 퇴직 후 암벽 등반을 배우기 시작한 이충호씨가 그 주인공이다.

예순여덟에 1000m 거벽 오른 암벽 등반가 이충호


서울의 한 실내 암벽장. 인공 암벽을 가뿐히 오르내리는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었다. 유심히 살펴보니 백발의 노인이다. 작은 체구지만 단단해 보이는 몸이 꽤 오랫동안 운동을 했음을 알려준다. 2011년 6월 암벽 등반가들의 로망인 엘 캐피탄 정상에 오르는 데 성공한 이충호씨(69)다.
엘 캐피탄은 스페인어로 ‘대장’이라는 뜻. 요세미티의 수많은 바위산 중에서도 가장 높고 험하기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산에 오르려면 각종 산악 장비와 식량, 암벽 등반 기술이 필요하다. 그만큼 험하고, 등반 도중 숙식을 해결해야 할 정도로 정상에 이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의 등반가들이 쉴 새 없이 이곳 도전에 나서지만 성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이충호씨는 2011년 여름 익스트림라이더 등산학교 동문들과 함께 엘 캐피탄 원정대를 꾸렸다. 대원은 5명. 모두 양띠로 구성됐다고 한다. 이씨는 막내 대원과 스물네 살이나 차이가 났고, 나머지 세 대원은 그와 열두 살 아래 띠동갑. 세 사람이 번갈아가며 앞장서 올랐고, 그 뒤를 이충호씨가, 마지막은 막내 대원이 따라 올랐다.
“엘 캐피탄의 암벽은 하루 만에 올라갔다 내려올 수 있는 데가 아니에요. 정상까지 오르는 4박5일 동안 매달린 채로 식사를 해결하고 잠까지 자야 하죠. 이 암벽은 제가 아닌 젊은 사람들이 도전해야 하는 대상이었어요. 체력적으로도 많이 버거웠죠. 그래도 오를 수 있었던 건 같이 간 후배들이 무척 뛰어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에요.”
암벽을 오르던 중 캠프에서 만난 요세미티 사진작가 톰 에반스가 사흘 전 암벽을 오르던 등반가가 낙석에 맞아 로프가 끊어지는 바람에 추락했다는 소식을 전해주기도 했다. 그 말을 듣자 로프가 암벽에 쓸려 끊어지는 것은 아닐까 새로운 걱정이 추가됐다고 한다.
“하도 매달려 있다 보니 빨리 올라가서 땅을 밟고 싶어질 지경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정상에 오르니 별의별 힘들었던 생각이 다 날 것 같았는데 오히려 멍하기만 하더군요. 얼마나 지났을까 ‘정상에 오르신 것을 축하합니다’라고 무전이 왔어요. 그제야 내가 해냈구나 하는 생각에 짜릿함이 느껴졌죠.”
한 번 더 도전을 하겠냐는 물음에 “같이 올라간 후배들이 정상 직전까지는 ‘70세 기념 등반을 하셔야죠’라고 말했지만 올라선 뒤에는 그들 또한 ‘앞으로는 이런 등반 다시 안 한다, 트레킹이나 다니겠다’고 말했다”며 요세미티 암벽 등반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말했다. 나이가 많은 만큼 등산 경력도 오래됐을 것 같은데, 정작 암벽 등반을 시작한 지는 이제 10년 정도 됐단다.

나이까지 속이고 등산학교 입학

예순여덟에 1000m 거벽 오른 암벽 등반가 이충호

엘 캐피탄 암벽에 매달려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이충호씨.



이충호씨는 스무 살 무렵부터 산을 탔다. 처음에는 산에 올라가 삼겹살을 구워 먹고 내려오는 가벼운 산행에 불과했다. 하지만 북한산 인수봉을 오르다 암벽 등반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이왕 등산을 하려면 체계적으로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수소문 끝에 대한산악연맹에서 운영하는 한국등산학교의 문을 두드렸지만 나이 제한에 걸려 입학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때가 1986년이었으니 제 나이 43세 때였어요. 지금은 등산학교에 나이 제한이 없어졌지만 당시에는 만 40세로 나이를 제한했습니다. 꼭 하고 싶다고 사정해서 ‘만 39세 몇 개월’로 나이를 줄여 입학했죠. 그때 전문적인 등반 지식과 암벽, 빙벽 등반을 배웠습니다.”
보통 사람들보다는 늦게 시작했지만, 그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1991년 증권회사 지점장을 끝으로 퇴직한 후 거의 등산에만 매달렸다. 2001년 신광섭씨를 만나 빙벽 등반을 배웠고, 2006년에는 인공 빙벽 등반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익스트림라이더 등산학교에 들어갔다. 2007년에는 에베레스트 실버원정대에 선발돼 히말라야에도 다녀왔다.
“에베레스트 캠프 3의 높이가 해발 7200m 정도 돼요. 해발 6500m의 캠프 2에서 캠프 3까지 올라가는 중에 갑자기 체력적인 한계가 느껴졌어요. 자주 갈 수 있는 곳도 아니어서 무리해서라도 끝까지 가볼까 했지만 마음을 접었어요. 큰 산은 아무리 대단한 등반가라 해도 쉽게 자신을 허락하지 않거든요. ‘내가 오를 곳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위대한 자연 속에서 인간은 한낱 종이와도 같은 약한 존재임을 느끼고 내려왔죠.”
히말라야 원정에서 돌아온 그는 고산 등반 대신에 암벽 등반에 더욱 매진했다. 요세미티를 다녀온 지금도 어김없이 주 중 3일은 서울 성동구 옥수동 실내 암벽장에서 연습을 하고, 주말에는 서울 도봉구 우이동에 있는 인공 빙벽장을 다니며 훈련한다. 그 덕에 그의 몸은 20대 부럽지 않을 만큼 탄탄한 근육을 자랑한다.
“암벽 등반은 부상 위험이 큰 운동입니다. 손과 어깨의 힘으로 온몸의 체중을 지탱해야 하기 때문이죠. 하루 운동하면 다음 날엔 쉬어야 해요. 운동량을 조절해야 다치지 않고 즐길 수 있습니다. 그날그날 몸 상태를 보고 가뿐하면 강도를 높이고, 무겁다 싶으면 몸 푸는 정도로 조절해가며 운동합니다.”
그는 체력의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했다. 젊은 사람들은 쉬면 금방 풀릴 근육통도 회복이 늦으며, 예전에 비해 지구력이 많이 떨어졌단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그만둘 생각은 없다고 했다. 그에게 언제까지 암벽 등반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요세미티의 엘 캐피탄 같은 고난도 등반은 어렵겠죠. 하지만 할 수 있는 동안은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하려 합니다. 목표를 높게 잡을 수는 없지만 오래오래 즐겁게 암벽을 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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