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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툰집 ‘꽃봇대’로 돌아온 시인 함민복

지천명에 더 맑아진 눈으로 삶을 관조하다

글 | 임지영 자유기고가 사진 | 조영철 기자 그림 | 황중환 제공

입력 2011.12.15 14:03:00

올 3월, 가난한 문인의 늦깎이 결혼으로 화제를 모은 시인 함민복이 카투니스트 황중환씨와 함께 동화보다 예쁘고 만화보다 사랑스러운 카툰집 ‘꽃봇대’를 펴냈다.
가난해서 행복한 시인, 안빈낙도를 실천하며 사는 은둔자 등 시인답게 시적인 닉네임이 따라붙는 함 시인은 결혼이라는 현실적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기 위해 인삼을 팔면서도 여전히 ‘살고 싶은’ 삶만 골라 섭취하는 이상주의자다.
카툰집 ‘꽃봇대’로 돌아온 시인 함민복


본채, 별채, 화장실을 자금성, 청와대, 백악관이라는 우아하기 이를 데 없는 별명으로 대치해 부르곤 했던 시인 함민복(50)의 집은 그 사이 지붕이 낮고 뜰에 개똥이 정겹게 널부러진 토담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지난밤 숙취가 채 가시지 않은 듯, 카키색 점퍼 안에 받쳐 입은 자주색 피케 셔츠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안색을 한 채 담배를 물고 집 뒤 견사에 매어둔 진돗개를 쓰다듬는 시인의 모습이 토담집과 꽤 그럴듯하게 어울린다. 앞으로는 잔디가 심어진 뜨락을 껴안고 뒤로는 완만한 뒷동산을 살포시 짊어진, ㄱ자 모양의 살구색 토담집이다.
“저 녀석이 우리 길상이. 혼자 살기 팍팍하니 개라도 한 마리 키울까 해서 6년 전에 강화 장터에서 사왔어요. 아주 잘 생겼죠?”
주인을 닮아 눈이 유난히 깊은 ‘길상이’는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강화도를 어머니의 품인 양 외롭게 살아온 시인의 곁을 지킨 유일한 말벗이다. 시인이 지난 3월 결혼을 한 후 길상이는 ‘넘버 2’로 밀려난 터라 그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낯선 이를 보자 경계하기는커녕, 관심을 끌려고 제 키보다 높이 껑충껑충 용수철마냥 튀어 오른다. 이를 본 시인은 “개는 내가 챙겨줘야 하는 존재, 아내는 나를 챙겨주는 존재. 그것이 결혼의 장점!”이라고 농을 한다.
시 공부나 하려고 김포문학관에서 함 시인의 강의를 들었다가 이 남자의 치명적인 ‘매력’에 빠져 덩달아 강화도에 둥지를 틀게 된 아내 박영숙씨에게는 남보다 현실 감각이 무딘 남편, 그리고 그런 남편만 따르며 사는 길상이와의 불편한 동거가 맞춤복을 입은 듯 편안해 보인다.

강화도 개펄에서 희망을 발견한 아웃사이더
내 말을 가장 안 듣는 건 나다
내 말을 가장 잘 들을 수 있는 것도 나다
-‘희망’

함민복 시인은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강화도 토박이가 아닌, 충북 중원 태생이다.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올림픽으로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던 1988년 시 ‘성선설’로 등단해 ‘우울씨의 일일’ ‘자본주의의 약속’ ‘말랑말랑한 힘’ 등의 시집과 ‘눈물은 왜 짠가’와 같은 에세이집, ‘바닷물 에고, 짜다’와 같은 동시집으로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김수영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등을 수상하며 ‘세상을 향한 따뜻한 마음과 날 선 눈초리를 동시에 지닌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한때 지방의 원자력발전소에서 근무하기도 한 색다른 이력을 갖고 있는 그는, 이때의 쓰디쓴 자본주의적 체험을 여러 편의 시로 녹이며 개인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시스템과 조금씩 거리두기를 해왔다.
“발전소에 근무할 당시, 출근만 했다 하면 골이 아파오는 노이로제에 시달렸어요. 생계 때문에 원치 않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책에서 나온 노이로제였지요. 그때 동료가 1백 명쯤 됐는데, 제가 남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성격이다 보니 고민을 상담해오는 동료들이 많았어요. 저만 하는 고민인 줄 알았는데, 동료들도 만족스럽지 않은 삶에 대한 고민을 다들 안고 살더라고요. 그걸 보고 결심했어요. 이제부터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되겠다고.”

주류가 되고자 안간힘을 쓰는 비주류로 사느니 스스로 아웃사이더가 돼 기꺼이 주류 사회를 밀어내는 삶을 택한 그를, 발전소에서 함께 근무한 동료들은 ‘내 몫까지 열심히 살아달라’고 격려했다. 1996년 월세가 싸다는 이유로 강화도의 농가에 안착한 그는 뼛속까지 섬사람으로 체질을 바꾸며 시 쓰기에 몰두했다. 자본과 욕망의 시대에 저만치 동떨어져 살아가는 빈자(貧者)의 하루 일과는 단순했다. 일어나고 싶은 때 일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시를 쓰고 싶으면 시를 쓰고 이제 그만 눕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잠을 청하는 것. 그러고도 남는 시간에는 마니산에 오르고, 동네 도서관에 가고,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공부했다. 섬 안의 모든 하찮은 미물들이, 이름을 불린 김춘수의 ‘꽃’처럼 하나의 의미로 그의 마음속에 들어와 앉기 시작했다. 달빛으로 물든 강에 배와 술만 띄워놓으면 시상이 저절로 떠오르곤 했다던 이태백처럼 시가 술술 써졌다. 아니, 시가 그를 술술 써내려 나갔다. 글만 써서 벌어들이는 수입으로는 인생에 유일한 사치인 술안주 값 대기도 벅찼지만 무려 십수 년의 세월을 그는 ‘대한민국에서 보기 드물게 시 쓰는 것 말고 다른 직업이 없는 전업시인’으로 살았다. 생활인으로서 살림살이에 쪼들렸지만 시인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순도 백 퍼센트 안빈낙도의 삶이었다.



뜨거운 눈물이 못 박힌 시인의 사랑
눈물 못 박히지 않은 사랑은 없다
사이가 있어 다리가 있고
눈물은 뜨겁다
-‘다리의 사랑 9’

마흔아홉이던 작년, ‘9’자에 ‘재(災)’가 끼어 있었던지 함 시인은 교통사고를 당했다. 목이 완전히 꺾일 뻔했던 대형 사고였다. 목숨을 건진 것으로 위안을 삼았지만, 이럴 때 의지할 만한 사람 하나가 없다는 사실은 오십을 눈앞에 둔 노총각의 가슴에 새삼 외로움이 사무치게 했다. 사고 소식을 듣고 병문안을 온 제자이자 고향 친구인 박영숙씨의 눈에도 공허한 눈빛으로 힘없이 누워 있는 함 시인이 너무나 고독해 보였다. 전화위복이라고, 함 시인의 교통사고는 친구와 연인 사이에 모호하게 발을 걸치고 있던 둘을 하나로 묶어준 계기가 됐다.
페이소스에 유머를 버무린 시어로 욕망으로 가득 찬 도시에서 이리저리 부딪히며 생채기를 입은 사람들을 위무해온 시인에게 2011년은 뜻 깊은 해다. 하늘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는 지천명을 맞았을 뿐 아니라 동갑내기 제자와의 늦깎이 결혼으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은 것. 등산으로 인연을 맺은 김훈 작가가 주례를 서고 내로라하는 문인들이 총출동해 늦게나마 백년해로하려는 시인의 결혼을 축하해주었다.
때가 되면 알아서 오겠지…. 오랫동안 마음을 비우고 기다렸던 배필과 백년가약을 맺은 후, 시인은 이럴 줄 알았더라면 어머니 살아생전에 식을 올릴 것을 하고 후회했다.
“기회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어요.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 중이셨을 때 아내를 소개시켜드렸거든요. 그랬더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번 쭉 훑어보시더니 ‘잘 골랐다’ 하셨어요. 아내가 마음에 들었던 거죠.”
“그래도 우리 아들이 더 예쁘다”던 시인의 어머니는 2년 전, 그토록 소원하던 막내아들의 결혼식을 끝내 못 본 채 눈을 감았다. 슬픔으로 남은 사랑이야말로 시를 쓰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믿는 시인에게 자식을 위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차곡차곡 내준 그의 어머니는 가장 매혹적인 테마이자 뮤즈다. 남들보다 일찍 잠자리에 드는 까닭에 새벽 3시면 절로 눈이 뜨인다는 시인은 어릴 적 들었던 새벽녘 어머니의 다듬이질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 같아 가슴 한구석이 아려오곤 한다.
그 어머니가 거쳤던 나이 오십을 이제 그가 지나고 있다. 하늘의 이치를 비로소 알게 된다는 지천명이지만, 그가 발견한 것이라곤 지금까지 걸어온 길보다 앞으로 남은 길이 짧다는 허한 사실뿐이다. 오랫동안 이야기할 상대가 없어 집을 지키는 길상이를, 길가에 핀 민들레를, 들판에 선 나무를 보며 혼잣말을 내뱉던 그에게 오십 줄에 누워서 이야기할 수 있는 아내가 생긴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카툰집 ‘꽃봇대’로 돌아온 시인 함민복

함민복 시인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개 길상이는 시인이 지난 3월 결혼하면서 아내 박영숙씨에게 밀려나 ‘넘버 2’가 됐다.



카툰집 ‘꽃봇대’로 돌아온 시인 함민복


언어로 그린 그림, 그림으로 쓴 시 ‘꽃봇대’
전등 밝히는 전깃줄은 땅속으로 묻고
저 전봇대와 전깃줄에
나팔꽃, 메꽃, 등꽃, 박꽃… 올렸으면
꽃향기, 꽃빛, 나비 날갯짓, 벌 소리
집집으로 이어지며 피어나는
꽃봇대, 꽃줄을 만들었으면
-‘꽃봇대’

낡은 농가를 허물고 펜션을 짓겠다는 집주인의 계획 때문에 오랫동안 등허리를 붙인 ‘자금성, 청와대, 백악관’에서 밀려나온 시인은 아내를 만나 지금의 키 낮은 토담집으로 이사했다. 10년 전업시인이었던 그가 이제는 딸린 식솔을 먹여 살리겠다는 책임감에 강화도 초지대교 부근에서 인삼 장사를 하고 있지만 그의 하루 일과는 여전히 ‘도인적(!)인 스케줄’로 채워져 있다. 새벽 3시에 일어나는 게 보통이지만 잠이 안 올 때는 1시 반이나 2시에도 일어나 책을 읽고 인터넷을 뒤지곤 한다. 그러다 갑자기 시상이 떠오르면 점퍼 안에 들어 있는 수첩과 볼펜으로 벼락치기 시를 쓰기도 한다. 섬 밖의 세상사가 궁금할 때도 있지만 뉴스는 일부러 피한다고 했다. 오래전 그로 하여금 자본주의와 작별하게 만들었던 노이로제가 강화도 맑은 갯벌 바람에 깨끗이 씻은 마음을 다시 습격할까 두려워서다.
자신의 마음이 시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탁해지는 것을 경계하는 남편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기에, 아내 박영숙씨는 같은 공간에 살면서도 시인의 개인적 체험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매사 배려와 주의를 잊지 않는다. 건강을 생각해 좀 줄이라는 권유에도 담배와 술을 좀체 입에서 떼지 못하는 남편이지만 그래도 자상하고 천성이 따뜻한 사람이라 좋단다. 한때는 이 작은 섬에 너무 오래 틀어박혀 산 남편이 안쓰러워 함께 도시 생활을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시인이 뿌리를 내린 곳은 결국 강화도라는 생각에 박씨는 이 섬을, 그리고 이 토담집을 삶의 근착지로 받아들이게 됐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핀 꽃 한 송이도 생명이 귀해 꺾지 않는다는 시인은 그의 품성을 쏙 빼닮은 이 집에 살면서 ‘꽃봇대’라는 재미난 이름의 카툰집을 펴냈다. ‘꽃봇대’는 언어로 그림을 그리는 함 시인과 그림으로 시를 쓰는 카투니스트 황중환씨가 함께 엮어낸 예쁜 카툰집으로, 시인은 전깃줄처럼 ‘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은 땅속으로 묻고 대신 집집으로 이어지며 향기를 피워내는 향기로운 꽃으로 된 꽃봇대(‘꽃으로 만든 전봇대’라는 의미로 함 시인이 만든 조어)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짧고 긴 이 시들을 썼다. 카툰집에는 페이지를 넘기기 아까울 만큼 예쁜 그림들이 꽃향기 그윽한 시들과 함께 담겨 있다. 지천명의 시인이 쓴 시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맑고 고운 언어들이다. 강화도라는 은둔의 공간에서 그만의 초월적 삶을 살아온 시인은 적자생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냉혹한 세계에서 밀려난 자신을 따스하게 품어준 땅 강화도에 언젠가 오마주를 바치는 시를 쓸 생각이다. 수삼보다 가느다란 아내의 손가락에, 귀를 미혹하는 어머니의 다듬이질 소리가 들리는 듯해 잠 못 드는 새벽이면 시인은 자신보다 앞서 강화도에 궤적을 남긴 인물들의 흔적을 더듬으며 앞으로 걸어갈 길을 조심스레 그려본다. 버렸기에 더 풍족한 삶을 살았다면 남들은 믿어줄까? 술 한잔 걸쳐 발그레한 볼이 옆으로 배시시 벌어진다. ‘왜 사냐건 웃는’, 이 시구 같은 삶이 그에겐 더없이 행복한 까닭이다.

여성동아 2011년 12월 5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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