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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Life in new york

추수감사절 칠면조 요리 & 프랑스식 ‘트루 노르망’의 궁합

푸드칼럼니스트 미령·셰프 로랭 부부 맛을 탐하다

글 | 이미령 사진 | 로랭 달레, 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11. 12. 02

추수감사절 칠면조 요리 & 프랑스식 ‘트루 노르망’의 궁합

1 칠면조는 하룻밤 정도 소스에 재웠다가 구워야 육질이 부드럽고 육즙이 풍부하다. 2 추수감사절에 빼놓을 수 없는 옥수수. 3 옥수수빵, 베이컨, 감자, 양파, 버섯, 소시지 등을 한데 넣어 오븐에서 구운 스터핑 요리. 원래 칠면조나 닭 배 속에 이 재료들을 넣고 굽는데 이처럼 따로 요리하기도 한다.



11월 네 번째 목요일은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이라고 하는 미국 국경일이다. 보통 추수감사절은 목요일부터 주말까지 쉰다. 1621년 플리머스(Plymouth) 플랜테이션에 정착한 청교도들과 왐파노악(Wampanoag) 인디언들이 3일 동안 함께 음식을 나눠 먹으며 신께 감사기도를 올리고 평화롭게 친선을 다진 것이 추수감사절의 기원이라고 많은 미국 사람들이 믿고 있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간단치 않다. 오늘날 아메리칸 추수감사절을 ‘국가적 애도의 날(The National Day of Mourning)’이라 부르며 플리머스에 모여 연례 데모를 하는 이들도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인디언 보호구역에 거주하며 카지노와 마약, 알코올에 찌들어 정부 보조금으로 연명하는 인디언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신세계’ 초기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연방정부를 상대로 아직도 전쟁을 수행 중이다. 만약 이들이 아니었다면 네이티브 아메리칸들의 역사, 민족적 정체성, 풍속, 문화 등은 깨끗이 사라졌을 것이다.

추수감사절 vs 국가적 애도의 날

추수감사절 칠면조 요리 & 프랑스식 ‘트루 노르망’의 궁합


추수감사절의 기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1백여 명의 청교도들이 플리머스에 정착한 지 1년도 안 돼 반 이상이 죽고 남은 사람들끼리 신께 감사드리며 조촐한 잔치상을 마련한 것에서 기원을 삼는 것은 앵글로색슨의 신화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이 잔치에 인디언들을 초청했다는 부분도 많은 역사학자들이 근거가 없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90명의 무장한 인디언들이 몰려든 것은 함께 파티를 즐기려는 게 아니라 수적으로 열세인 영국인들에게 겁을 주고 플리머스를 염탐하기 위해서라는 쪽이 더 설득력 있다. 그 밖에 1621년 플리머스 정착촌이 아닌 1607년 버지니아 제임스타운 정착촌(포카혼타스와 존 스미스 선장의 일화로 알려진 곳)이 최초라는 설, 영국계 청교도가 아닌 1562년 플로리다에 식민지를 건설한 프랑스 위그노(개신교도)나, 콘키스타도르(Conquistador)라 불리는 스페인 정복자들이 추수감사절을 시작했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추수감사절이 국경일이 된 것은 남북전쟁 이후다. 새러 요제파 헤일이라는 작가가 여성 잡지 ‘Godey’s Lady’s Book’에 추수감사절을 열심히 홍보한 것이 큰 힘이 됐다. 이를 링컨 대통령이 지지해 11월26일이 국경일이 됐고, 지금처럼 11월 네 번째 목요일로 지정된 것은 1942년 루스벨트 대통령 때다.



추수감사절 칠면조 요리 & 프랑스식 ‘트루 노르망’의 궁합

1 식탁으로 나가기 전 부엌에 대기 중인 거대한 칠면조. 2 고운 색상 덕분에 그 자체가 장식이 되는 호박. 3 크리스털 잔과 은제 식기.



30파운드짜리 거대한 칠면조 등장
우리 부부는 해마다 추수감사절 파티에 초청 받는다. 고객으로부터 파티 준비 의뢰가 들어온 경우가 아니면 우리는 친구들의 초청에 흔쾌히 응해 모처럼의 휴가를 즐긴다. 그런데 추수감사절은 저녁 식사임에도 초대 시간이 오후 3~4시로 매우 이르다. 작년에는 절친한 파멜라와 스티브의 초대를 받았는데 초대 시간은 오후 3시. 그날 우리는 점심 식사를 거르기로 했다. 통상적으로 엄청난 양의 음식이 준비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친구의 집에 도착하니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거대한 칠면조가 도마 위에 놓여 있었다. “한 달 전에 주문했어. 30파운드(약 13.6kg) 조금 안 돼. 20명 정도 먹기에 충분할 거야.” 우리는 눈앞에 있는 산 같은 칠면조를 믿을 수 없어 보고 또 보았다. 그렇게 커다란 괴물은 처음 보았다. 갑자기 15kg짜리 여행가방을 들고 쩔쩔매던 일이 생각났다. “잘 구워졌는지 모르겠어. 스티브가 도와주기는 했는데 정말 고생했어. 한번 맛봐. 상당히 잘 됐지? 드라이하지 않아?” 하며 살점을 조금 떼어 주었다. 파멜라가 고생하며 구운 고기는 육즙이 풍부해 아주 맛있었다.
이제 식사 준비가 돼 있는 타원형 테이블로 갔다. 깨끗하게 다린 식탁보에 반짝거리는 은제 식기, 크리스털 잔, 고급 세라믹 장식, 화려한 꽃다발 등 소유하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물건들로 정성껏 장식한 파멜라의 테이블에 감탄했다. 매일 온 가족이 식탁에 앉아 식사하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우리는, 평소 이렇게 함께 앉아 식사하는 즐거움을 누릴 기회가 많지 않은 미국 사람들에게 추수감사절 식사가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고 있다.

온도계와 주사기까지 동원한 칠면조 굽기
초대 손님 모두 도착하자 각자의 이름이 놓인 자리로 안내됐다. 이어 파멜라와 스티브가 직접 음식들을 내왔다. 코스별로 멋지게 담아서 서빙을 하는 게 아니라 테이블 가운데에 음식이 담긴 그릇을 놓으면 각자 덜어다 먹는 것이다. 한국 식탁이라면 큰 찌개 그릇이 놓일 테고, 프랑스 식탁이라면 뵈프 부르기뇽(Boeuf Bourguignon: 부르고뉴식 쇠고기라는 뜻)이 담긴 무거운 냄비가 올라 있을 것이다.
파멜라의 웅장한 칠면조가 나타나자 식탁에 모인 사람들이 일제히 감탄사를 내질렀다. 늘 느끼는 일이지만 미국 사람들은 확실히 거대한 것을 좋아한다. 미적으로 부족해도 우선 크고 양이 많으면 좋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커다란 칠면조 요리가 준비된 것만으로도 그날 추수감사절은 대성공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미국의 상징으로 터키를 지목했다. 독수리가 국조가 된 것은 그 후의 일이라고 한다. 1621년 축제 때 4마리의 야생 칠면조를 구웠다는 설도 있다. 그만큼 칠면조는 추수감사절의 불가촉 상징이다.
셰프 로랭도 추수감사절 파티를 준비할 때는 모든 신경을 칠면조 요리에 집중한다. “왜 미국 사람들이 좀 멍청한 사람을 일컬을 때나 실패한 연극·영화를 표현할 때 터키라는 말을 쓰는지 알겠어.”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칠면조는 자기에게 좀 지루한 식재료라고 말했다. 사실 프랑스 사람들에게 칠면조는 인기 있는 식재료가 아니다. 맛이 특별한 것도 아닌데 칠면조는 굽기가 만만치 않다. 잘못 조리하면 너무 뻣뻣하거나 퍼석해서 맛이 없다. 조리 온도도 매우 중요하다. 로랭이 칠면조를 구울 때 늘 온도계와 주사기를 들고 있는 이유다. 하룻밤 정도 소뮈르(Saumure: 각종 허브, 레몬즙, 후춧가루, 마늘 등이 들어간 소금물)에 재워서 육질이 부드러워진 칠면조(15파운드, 6.8kg 기준)를 250℃ 이상의 고열에 30분 정도 굽는다. 고기의 육즙이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너무 빨리 익어 타버릴 위험이 있는 가슴 부위는 알루미늄 포일로 미리 보호해준다. 그 후 오븐 온도를 160℃ 정도로 줄여 2시간에서 2시간 반 이상 더 굽는다. 그동안 규칙적으로 주사기를 이용해 소뮈르를 계속 칠면조에 주입한다. 이렇게 정성을 들여야 제대로 된 칠면조구이가 탄생하는 것이다.

추수감사절 칠면조 요리 & 프랑스식 ‘트루 노르망’의 궁합


추수감사절에 딱 맞는 프랑스 음식 트루 노르망!
파멜라는 테이블 한가운데 거대한 칠면조를 놓고 그 주위에 여러 가지 곁들임 요리를 준비했다. 오븐에 굽거나 삶은 각종 채소(당근, 감자, 시금치, 브뤼셀 양배추, 양가지, 깍지강낭콩, 아스파라거스, 푸성귀, 옥수수 등), 감자와 고구마 퓌레가 위풍당당한 칠면조를 둘러쌌다. 크랜베리 소스, 버터와 밀가루를 볶은 후 구운 칠면조에서 나온 육즙을 섞어 만든 그레이비도 빼놓을 수 없다. 한 사람이 먹기에 엄청난 양이다. 그럼에도 미국 사람들은 두세 번 연거푸 자신들의 접시를 채우지만 우리 부부는 딱 한 번 산더미같이 채운 접시를 비울 수 있었다. 그렇게 많은 양의 식사를 마친 후에는 디저트 차례. 보통 호박파이, 크럼블을 듬뿍 얹은 사과파이, 당근 케이크, 과일 케이크 등 두세 가지 디저트가 한꺼번에 서빙된다. 대체로 모양은 투박하고 엄청 달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로랭이 불룩 나온 배를 두들기며 “미국 사람들은 정말 많이 먹는 것 같아!”라며 놀랍다는 듯 휘파람을 불었다. “다 그렇게 많이 먹는 건 아냐. 조금 먹는 사람도 있었어.” 너무 많이 먹어 숨차 하며 내가 항의했다. “30파운드짜리 칠면조를 완벽하게 굽기는 어려울 것 같아. 중간에 덜 익은 부분들이 있었잖아?” 로랭의 지적대로 파멜라의 칠면조는 어떤 부분은 탔고 어떤 부분은 덜 익었다. 30파운드짜리 대신 차라리 15파운드짜리를 두 마리 굽는 게 더 낫다고 로랭이 말했다. “그리고 나 같으면 식사 중간에 트루 노르망(Le Trou Normand)을 서빙하겠어.” 작년에는 그 말을 흘려들었다.
올해는 추수감사절 파티를 준비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참석 인원은 15명. 전통적인 미국식 추수감사절 메뉴에 프렌치식을 가미해 자유롭게 준비해달라는 주문을 받자, 로랭과 나는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트루 노르망!!”이라고 말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미국 전통은 아니지만 프랑스식 트루 노르망을 서비스하겠다고 고객에게 말했다. “트루 노르망이 뭐죠?” 고객의 질문에 “아 그것은 식사 중에 소화가 잘 되도록 도와주는 특별 코스인데요. 노르망디 전통이랍니다.” 로랭이 신이 나서 설명했다. “프랑스 전통대로 하면 알코올 도수 45도가 넘는 칼바도스(칼바도스산 사과로 만든 브랜디)를 작은 잔에 서빙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사과맛 셔벗을 미니 컵에 담고 그 위에 소량의 칼바도스를 부어 서빙할 생각입니다.” 로랭의 말에 고객도 아주 좋아했다. 배 두들기며 먹어야 하는 추수감사절 파티에 딱 맞는 메뉴가 아닌가.

푸드칼럼니스트 이미령, 셰프 로랭 달레는…

추수감사절 칠면조 요리 & 프랑스식 ‘트루 노르망’의 궁합


로랭 달레는 프랑스 노르망디 루앙 출신으로 파리 에콜 데 카드르, 시티 오브 런던 폴리테크닉을 졸업하고 뉴욕에 오기 전까지 프랑스 르노 사와 브이그 텔레콤에서 일했다. 마흔 살이 되기 전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꿈을 실현하러 2007년 2월 말 뉴욕으로 와 맨해튼 소재 프렌치 컬리너리 인스티튜트에서 조리를 배우고 지금은 뉴욕 주재 프랑스 영사관 수 셰프로 근무하고 있다. 이미령은 연세대 음대, 런던대 골드스미스 칼리지, 파리 에콜 노르말 드 뮤직에서 피아노를 전공했고, 브이그 사에서 국제로밍 및 마케팅 지역 담당 매니저로 일했다. 현재 뉴욕에서 Le Chef Bleu Catering을 경영하며 각종 매체에 음식문화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두 사람은 런던 유학 중 만나 결혼했다. 저서로는 ‘파리의 사랑 뉴욕의 열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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