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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불의 재발견

‘보컬 레전드’ 박완규의 사노라면…

독설과 눈물 사이 보이는 진심

글·김명희 기자 사진·지호영 기자, KBS 제공

입력 2011.08.17 09:34:00

박완규가 보컬로 참여한 부활 5집 앨범(1997년) 제목은 ‘불의 발견’이다. 여기서 불은 박완규를 지칭한다.
파워풀하고 호소력 짙은 목소리를 지닌 박완규는 10년 동안 소속사 문제 등으로 활동을 거의 하지 못한 채 사그라지는가 싶더니 올 초 부활 콜래보레이션 음반으로 다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가 자신을 발탁하고 일으켜 세워준 김태원과의 뜨거운 우정, 그리고 가슴 아픈 시간을 딛고 다시 서기까지 과정을 털어놓았다.
‘보컬 레전드’ 박완규의 사노라면…


서른여덟, 뒤로 질끈 묶은 머리 가운데 흰머리가 반이었다. 고단했던 지난날의 흔적이다. 97년 그룹 부활 보컬로 데뷔, 시원한 창법과 끝없이 올라가는 고음으로 ‘보컬 레전드’라는 찬사를 받았던 박완규. 90년대 말 노래방에선 그의 노래 ‘천년의 사랑’을 부르다가 목이 나가는 사람이 하루에도 여러 명씩 나왔다는 소문이 돌곤 했다. 그러나 재능이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부활을 박차고 나와 솔로로 독립했지만 ‘천년의 사랑’ 외엔 대중적으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고, 심지어 활동다운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
그런 그가 지난 1월, 10년 세월을 건너뛰어 부활과의 컬래버레이션 음반 ‘비밀’로 컴백했다. 이어서 ‘스타오디션- 위대한 탄생’ ‘놀러와’ 등 예능 프로그램에서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그가 대중에게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시킨 건 KBS‘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 청춘합창단을 통해서다. 합창단 보컬트레이너를 맡은 그는 인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도전에 나선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프로그램에 생명력을 더하고 있다.

타인의 삶 앞에서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청춘합창단
▼ ‘청춘합창단’에서 보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인가.
“방송에서 보인 건 아주 작은 부분이다. 어르신들이 주는 감동에 심사위원들이 숨쉬기조차 버거워 녹화가 중단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분들이 나와서 하시는 말씀이 거의 같다. ‘내 인생의 마지막’이라는 거다. 부모의 몸을 빌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말이 갖는 무게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방송을 보면 자녀를 먼저 떠나보내거나 투병 중이거나 목소리를 잃는 등 아픈 사연을 지닌 분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래서 더욱 가슴 아프다.
“그렇다. 그분들은 아프다 힘들다 말씀하시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하다. 그런데 보는 우리는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린다. 그분들은 말이 아니라 삶 자체로 가족에 대한 사랑, 인생에 대한 예의를 가르쳐주는 것 같다. 그 자리에 있다 보면 누구든 타인의 삶 앞에 절로 겸손해진다. 그래서 지금 시대에 꼭 필요한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든다. 청춘합창단 덕에 예능에 대한 편견도 완전히 버릴 수 있게 됐다.”
▼ 예능 프로그램에 대해 어떤 편견을 갖고 있었던 건가?
“나쁘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다만 음악을 하는 사람은 음악에 충실하고 음악으로 평가받아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태원이 형이 예능 프로그램에 처음 출연할 때도 ‘변했다’며 여러 차례 독한 말을 했다. 그런데 최근에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몇 차례에 걸쳐 형에게 장문의 사과 편지를 썼다. ‘형님이 아프실 때는 곁에 없었으면서 형님이 살고자 아픈 몸을 이끌고 이 방송 저 방송을 다닐 때 철없는 말을 했다. 형이 힘들 때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건 예능을 하던 동료들이다. 그분들이 옳았고 내가 틀렸다. 용서해달라’는 내용이었다.”
▼ ‘위대한 탄생’에서는 김태원 제자들에게 독설을 쏟아냈다. ‘청춘합창단’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당황스럽기도 하다.
“나는 똑같다. 본 대로 느낀 대로 말할 뿐이다. ‘노래에 겉멋이 들었다’ ‘원곡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정도가 무슨 독설인가? 때로는 요즘 사람들이 너무 순하게 길들여지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방송도 조금 과격하다 싶은 말은 컴퓨터그래픽이나 자막으로 우스꽝스럽게 처리하고….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점점 진실을 받아들이기 버거워하는 것 같다.”
▼ 백청강을 비롯한 김태원 제자들은 다른 도전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힘든 환경에 놓여 있었다. 시청자에겐 그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시청자들이 그 친구들 성장해가는 모습 보면서 ‘각자의 펫(애완동물)이라고 생각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친구들도 얼마 전 강화도 총기 난사 사건 나서 사망한 해병대원들과 똑같은 남자고 성인이다. 그 친구들이 조금 심한 이야기 들으면 가엽고 해병대원들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그냥 그렇게 넘어가는 건가. 물론 그 친구들 모두 내 스승의 제자고, 모두 친형제 같다. 하지만 그들이 잘되고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듣기 좋은 말뿐 아니라 진심 어린 충고도 공감해주면 좋겠다.”
▼ 위대한 탄생 이야기에서 해병대 총기 난사 사건을 연결시키다니, 사회적인 이슈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로커로서의 의무 같은 건가? 개인적인 호기심인가?
“시사 이슈를 좇지는 않지만 꼭 알아야 할 건 알고 싶다. 테크노마트가 왜 흔들렸는지, 총기를 난사한 상병이 왜 그랬는지. 스타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많이 사랑해주세요’라는 것이다. 대중이 어디가 아픈지, 무슨 걱정을 하는지 모르면서 어떻게 사랑한다 말할 수 있나. 입에 발린 말을 쏟아내고 음원 장사에만 혈안이 돼서는 오래 사랑받을 수도 없거니와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보컬 레전드’ 박완규의 사노라면…


▼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면 세상살이가 편해질 것 아닌가.
“아니다. 나 같은 사람은 쉽게 풀릴 인생이 아닌 거 같다. 이제 한 절반 살았나? 건강 챙기며 사는 스타일이 아니라 얼마나 더 살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게 좋은 거다 타협하면서 살고 싶지 않다. 물론 일부러 비딱하게 살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나다움을 잃지 않고 싶은 거다. 물론 지금 예전보다 조금 상황이 좋아졌다고 해서 잘난 척하지도 않을 것이다.”



전교 1등 모범생이 부활 멤버 되기까지
중학생 박완규의 꿈은 검사가 돼 사회 정의를 바로잡는 것이었다. 공부를 좋아해서 친구들과 ‘누가 영어책 더 빨리 외우나’ 내기하는 모범생이었고 성적도 늘 1, 2등을 다퉜다. 그런데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아버지가 그를 불러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우니 실업계 고등학교에 가라는 것이었다. 그가 다니던 중학교에서는 ‘절대 안 된다’며 난리가 났지만 말 잘 듣는 막내아들 박완규는 순순히 “그러겠다”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돌아보니 자신에게 적잖은 상처가 됐던 것 같다고 한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생전 처음 보는 주산·부기·타자·펜글씨를 배웠다. 공부가 재미있을 리 없었다. 여러 동아리를 기웃거리다가 밴드부에 ‘꽂혔다’. 사실 그의 집안 식구들은 좋은 목소리를 타고났다. 고모·형·누나 할 것 없이 모두 음악에 재능이 있었고, 하다못해 가장 노래를 못한다는 어머니도 동네 노래자랑에 나가면 입상을 해 부상으로 살림살이를 받아왔다. 식구 중에선 음치로 통하던 그가 노래를 하고 있는 줄은 아무도 몰랐다고 한다. 그의 고향은 당시 인구가 6만에 불과한 경기도 송탄. 문화적으론 서울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낙후돼 있었지만 음악을 하기엔 좋았다. 그는 밴드부 형들과 어울려 미군이 드나드는 클럽에서 음악을 익혔고, 군대에 다녀온 후 96년 부활 멤버로 발탁돼 활동을 시작했다.

▼ 만약 고집을 부려 인문계 고교에 진학했더라면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었겠다.
“부활로 데뷔한 후에도 꿈이 검사였다. 영화도 ‘필라델피아’ ‘데블스 에드버킷’ 같은 법정 영화를 좋아했다. 너무 힘들게 살면서 2000년대 초반 그 꿈도 접었다.”
▼ 밴드부에는 어떻게 들어가게 됐나.
“속된 말로 한 방에 가서 푹 빠졌고, 이왕 하는 거 잘하고 싶었다(웃음). 그 당시 내 목소리는 예쁘고 한도 끝도 없이 올라갔지만 개성이 없었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아파트 뒤편 산에 올라 소리를 질렀다. 영화 ‘서편제’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웃음). 그때는 등산하는 사람도 없어서 사실 좀 무서웠다. 그 짓을 아침에 4시간 동안 하고, 학교 갔다가 오면 다시 산에 올라가 소리를 질렀다. 방학 때는 온종일 산에서 살았다. 하도 소리를 질렀더니 한번은 경찰이 출동했다. 산 밑에 절이 있는데 스님이 ‘산에서 귀신 나온다’고 신고를 했다고 하더라. 9개월 정도 그렇게 했더니 목소리가 안 나오더라. 그때 내가 목소리를 타고났다는 걸 알았다. 사람이 목소리를 잃어버리면 겁이 나기 마련인데 당시 나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어떻게 힘을 더 주면 목소리가 나오겠다’는 걸 몸이 알았다. 온몸에 발성기관이 열리는 듯한 기분으로 소리를 질렀더니 영화 ‘에일리언’에서 새끼 에일리언이 숙주의 몸을 뚫고 나오는 것처럼, 뭔가가 몸에서 쑥 빠져나오는 느낌이 들었고 그렇게 목소리가 트였다.”
▼ 너무 무모한 방법이 아닌가.
“사실 다른 사람에게 권할 만한 방법은 아니다.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그렇게 하면 성대가 파열될 수 있다.”
▼ 그래서 지금 목 상태는 어떤가.
“지난 1월 태원이 형과 활동을 다시 시작한 후로, 목 관리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서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내 성대 내시경을 보고는 한동안 말씀을 못하시더라. 노래 부르는 게 문제가 아니라 말을 하는 게 신기할 정도라고 했다. 부활에서 나와 너무 힘들게 살면서 목을 방치했다. 아파도 치료 안 하고 기관지염 걸려도 병원 안 갔다. 의사 선생님 말씀으론 찢기고 파인 성대에 염증이 그대로 눌러앉아 있다고 하더라. 수술 시기는 이미 놓쳤고, 염증부터 가라앉히자고 해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다행히 회복 속도가 아주 빠르다.”

‘보컬 레전드’ 박완규의 사노라면…


▼ 김태원이 얼마 전 공개석상에서 가장 아끼는 후배로 신해철과 박완규를 꼽았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예전에 태원이 형이 ‘너는 투명해서 좋다. 성질이 나빠서 그렇지 너만큼 투명한 놈은 본 적이 없다’고 한 적이 있다. 한마디로 머리를 안 굴린다는 거다(웃음). 이쪽 세계는 그런 게 상당히 중요하다. 형들 앞에서 머리 굴리다가는 맞거나 퇴출당하거나, 라인에 끼워주지 않는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 잔머리 굴리고 있으면 그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 김태원이 그렇게 아꼈음에도 솔로로 나왔다. 그 과정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93년 ‘사랑할수록’이 수록된 부활 3집이 1백만 장 이상 팔렸는데 그다음에 나온 4집이 2만 장밖에 안 팔렸다. 말도 안 되게 망한 거다. 96년 내가 합류했고 이듬해 5집이 나왔는데 그 역시 돈이 안 됐다. 멤버들이 행사를 뛰어도 생활을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당시 내가 태원이 형한테 ‘나는 부활이 돈이면 돈, 음악이면 음악 둘 중 하나로 가면 좋겠다. 지금 당장 돈이 필요하지만 형이 음악으로 가자고 하면 굶어도 따라갈 자신이 있고, 돈으로 가자고 해도 갈 것이다. 하지만 음악과 돈 사이에서 어설프게 양다리를 걸친다면 나는 그룹에서 나가겠다’고 했다. 그때 태원이 형이 ‘돈과 음악은 구별할 수 없다. 구별하겠다고 해도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고, 나는 ‘예, 알겠습니다’ 그러고 나온 거다.”
▼ 지금도 자신이 옳았다고 생각하나.
“6월18일 태원이 형과 강원도 강릉 공연을 갔다가 형이 먼저 올라오고 나는 재발매된 부활 5집을 들으면서 조금 늦게 올라왔는데 오다가 차 안에서 태원이 형한테 ‘잘못했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우리나라 최고 명반을 하나만 낼 수 있다면 굶어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들어보니 부활 5집이 그런 음반이었다.”
▼ 그랬더니 김태원씨가 뭐라고 하던가?
“‘그걸 이제 알았니?’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더라(웃음). 5집은 부활이 당시 어려운 상황에서도 굉장히 공을 들여 제작했고, 독일에 있는 음반 엔지니어 스쿨에는 한국 대표 음반으로 들어가 있다고 한다. 당시 다른 사람은 이미 다 그 음반이 좋다고 했는데 나만 그 가치를 몰랐던 것 같다.”
▼ 부활에서 나와 발표한 ‘천년의 사랑’이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그럼에도 생활이 계속 힘들었던 이유는?
“지금이 음악을 하면서 가장 행복하고 부유한 시기다. ‘천년의 사랑’이 인기를 끌었다고는 하는데 정작 가수였던 나는 너무 괴롭고 비참했다. 아이가 둘 있는 가장인데 월급이 1백만원 남짓밖에 안 됐다. 콘서트에서, 방송에서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고 노래 부르면서 머릿속으로는 카드 값 계산을 해야 했다.”
▼ 노래가 히트하지 못했다면 모를까, 노래는 히트하는데 그 혜택을 누리지 못했으니 더 속상했을 것 같다.
“98년 부활에서 나올 때 태원이 형이 나를 한 번 더 잡았는데 내가 뿌리쳤다. 그때 형 심정이 어땠을까 싶다. 자신이 키우다시피 한 까마득한 후배가 그룹을 박차고 나간다고 하니 기분이 좋지는 않았을 거다. 형이 마지막으로 내 손을 놓으면서 ‘걱정이다. 지금까지 형들이 바람막이가 됐지만 밖에 나가면 분명히 네가 당할 것이다. 당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영혼은 다치지 마라, 그러면 노래를 못한다’고 했다. 형 얘기가 불과 1년 만에 현실이 됐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내 선택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구구절절하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10년 간 월급 1백만원으로 생활
박완규는 얼마 전 아내와 이혼했다. 두 사람은 스무 살에 만나 스물여섯에 결혼해 중학교 2학년인 아들, 1학년인 딸을 두었지만 사랑은 불운했던 음악 인생을 극복하지 못했다. 결혼 생활 중에도 몇 차례 위기가 있었고, 한 번은 김태원이 부부 갈등으로 고민하는 그에게 ‘사랑해서 사랑해서’라는 곡을 주며 후회할 선택을 하지 말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박완규 부부는 함께 살며 미워하기보다는 떨어져서 친구로 지내는 길을 택했다.
▼ 아이들 엄마와는 어떻게 지내나.
“아이들 엄마는 의리도 있고 참 괜찮은 사람이다. 다만 그동안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웠다. 비참한 얘기지만 이혼 얘기를 먼저 꺼낸 게 아이들 엄마다. 이혼하면 아이들 급식비는 줄일 수 있겠다고 했다. 그 정도로 어려웠다. 물론 그게 전부가 아니라 다른 여러 문제들이 얽혀 이혼하게 됐는데 지금 오히려 이혼 전보다 관계가 더 좋아졌다. 아이들 엄마는 지금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얼마를 버는지도 다 알고 이사 시기 같은 소소한 문제도 함께 의논한다.”

‘보컬 레전드’ 박완규의 사노라면…

박완규는 자신을 언더그라운드에서 끌어 올린 것도, 다시 음악을 할 수 있게 해준 것도 모두 김태원 덕분이라고 말했다. 부활 김태원, 정동하 등과 한 무대에 선 박완규.



▼ 아이들에게는 어떤 아빠인가.
“이혼했으니 50점은 빼야겠고, 같이 놀아주지 못하니 40점은 더 빼야겠고, 나머지 10점에서는 최고가 되려고 노력하는데 그래도 미안하다.”
▼ 아이들 생각하면 마음이 아플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이 나이에 비해 철이 많이 들었다. 이혼 얘기 할 때 아이들과도 터놓고 이야기했는데 큰아이가 ‘아버지 어머니가 헤어지는 건 싫어요, 많이 생각해보시면 좋겠어요. 저도 저지만 동생이 상처를 많이 받을 것 같아요. 하지만 엄마 아빠가 그렇게 결정하시면 이해는 할 수 있어요’라고 하더라. 동생이 한 살 어린데 제 눈에는 아기처럼 보였나 보더라. 이혼하던 날 아이들 엄마와 함께 학교에 갔다. 아이들도 그날 이혼한 걸 알고 있었다. ‘위대한 탄생’에 출연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인데 아이 친구들은 ‘연예인이 왔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었던 게 친구들의 부러운 시선, 고작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게 너무 가슴 아팠다. 며칠 전 아이들 엄마 생일에 만났을 땐 아이들에게 좀 더 희망과 안정감을 안겨주고 왔다.”
▼ 재결합 여지가 있다는 말인가.
“지금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재결합은 지금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 요즘 방송에 아빠가 많이 나오는 것에 대해선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하나.
“좋아하는 것 같다. 고마우면서도 속상한 일인데, 방송에 나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도 아이들이 특별히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친구들이 너희 부모 이혼했느냐고 물어볼 텐데도 ‘우리 신경 쓰지 말고 그냥 편안하게 말씀하세요’라고 하더라.”
▼ 아빠를 닮았다면 아이들도 음악에 재능이 있을 것 같은데.
“겉보기엔 딸이 집안의 성대 닮아 노래를 잘한다. 그런데 문제는 아들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겉으로는 공부도 잘하고 모범생이다. 그런데 그 아이 눈빛에서 뭔가 뜨거운 게 있어 보인다. 모르겠다. 그 녀석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몰래 어디서 노래 부르다가 나중에 음악 한다고 할지.”
▼ 아들이 노래를 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
“아마 아이들 엄마는 거품 물고 쓰러질 거다. 나는 아들 생각이 나와 같다면 ‘그까짓 고생 좀 하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지원해주겠다. 다만 한 가지 다짐을 받을 것이다. 결혼은 일찍 하지 않겠다는. 음악 하는 사람에게 결혼은 너무 힘들고 아프다.”
▼ 그렇게 힘들고 아픈 가운데 결국 음악을 택했다. 본인에게 음악은 어떤 의미인가.
“이젠 음악이 없으면 못 살 것 같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헤어지고 싶었던 적도 있고 한때는 너무 푹 빠져서 앞뒤 분간할 수 없었던 적도 있다. 이렇게 수십 년 음악을 붙들고 살면서 보일 거 다 보이고, 버릴 거 다 버렸다. 그러니까 편안해지더라. 이제 음악과 손잡고 함께 걸어갈 수 있을 거 같다.”
▼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하고 싶나.
“그동안 많이 무뎌졌던 음악적 감각이 살아나고 있는 걸 느낀다. 지난 10년 동안은 감정이 메말라 있었다. 가족과 떨어져 살면서 아이들이 보고 싶고, 아이들에게 미안해 몰래 숨어서 운 것을 제외하고는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엔 슬픈 일에 눈물이 난다. 온몸의 감각 세포들이 살아나는 것 같다. 지금 작업을 하고 있는데 디지털 싱글보다는 스토리가 있는 앨범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내 목소리가 건재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태원이 형과는 음악적 교류를 계속할 것이다. 언더에서 올라올 수 있었던 발판이 됐던 게 부활이며 또다시 살아날 기회를 준 것도 태원이 형이다. 나와 부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고 그 결과물도 나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중을 즐겁게 하고 싶으면 우선은 네가 즐거워야 한다’는 태원이 형의 말씀도 마음에 새기겠다.”

여성동아 2011년 8월 5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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