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

뷰티풀 라이프

‘아이들과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 도전한 전은주

눈 뜨면 도서관, 해 뜨면 바다로

글·구희언 기자 사진·조영철 기자

2011. 08. 02

여름방학, 다른 집 같으면 학원 방학특강 등록하고 캠프 보내고 학기 중에 못한 예체능 과외까지 빡빡한 일정표를 짜느라 여념이 없을 시기다. 일분 일초가 아까운 이때 제주도에 월세방을 얻어 아이들과 훌쩍 떠난 ‘용감한’ 엄마가 있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아이들과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라는 책을 펴내 화제다.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없었지만 지루할 틈 없던 제주도에서의 꿈같은 한 달 이야기.

‘아이들과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 도전한 전은주


“처음부터 책 낼 생각은 아니었죠. 그런데 제주도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은 이들이 책으로 내기를 권하더라고요. 저도 제주도에서 살면서 감동받은 부분이 있어 뒤늦게 책을 쓰기 시작했죠. 사람들이 다들 좋은 생각이라며 너도나도 가겠다고 하더라고요. 올해 저처럼 제주도로 나갈 집이 열 가족 정도 돼요. 제주도로 떠난다고 확정한 가족은 네 가족 정도고 대여섯 가족은 계속 제주도에 방이 나길 기다리고 있어요.”
방학을 ‘시골’에서 보내는 건 전은주씨(40)의 오랜 꿈이었다. 남편은 목포, 그는 대구 출신이지만 사는 곳은 시골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이들에게만큼은 시골의 추억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그러다 생각해낸 시골이 제주도였다. 처음에는 바닷가 바로 앞에 검은 돌담이 있는 제주도다운 시골집을 찾았지만 쉽지 않았다. ‘시골집의 로망’은 접기로 했다. 대신 제주 시내 오피스텔로 눈을 돌렸다. 아는 이의 소개로 약 66㎡(20평)짜리 오피스텔을 구했다. 사는 기간은 한 달. 학원과 유치원에 전화해서 한 달만 쉬겠다고 했다. 대망의 2010년 7월25일, 목포 선착장에서 그는 제주도행 배에 올랐다. 당시 아홉 살인 딸, 다섯 살이 된 아들과 함께였다.
그는 제주도에 가기 전 시중에 나온 제주도 여행서의 대부분을 섭렵했다.
“제주도 여행서라고 나온 책은 거의 다 봤어요. 읽다 보니 다 비슷비슷해서 실제로 들고 간 건 2권이었고요. 소개하는 지역도 맛집도 코스도 비슷하더라고요. 그래서 모든 정보가 확대 재생산되는구나 생각했죠. 다른 사람들이 블로그에 쓴 리뷰도 많이 봤어요.”
그는 직접 두 아이와 몸으로 부딪혀 얻은 정보를 자신의 책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책에는 제주도에서 변화한 딸의 모습도 담겨 있다.
“꽃님이(본명 박여원)가 묘하게 낯가림을 하고 긴장도 많이 하는 성격이에요. 피아노 레슨에 지각하면 엄마를 들들 볶았죠. 그런 아이가 제주도에 다녀와서 느긋해지고 순해졌어요. 성격이 확 달라진 거죠. 딸과 아들 꽃봉이(본명 박여준)가 예쁘게 변화하는 걸 보고 감동했어요. 제주도가 이 정도야, 싶었죠.”
그가 쓴 ‘아이들과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읽다 보면 작가의 수다스러운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실제로 만나본 전 작가는 책 속 그대로였다. 아이들의 작은 변화에도 신이 나고 때로는 하늘만 봐도 가슴이 떨리는 소녀 같은 엄마였다. 쉽게 읽히는 책이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초간단 생활놀이 150’ 저자에 전직 방송작가. 블로그 방문자 수만 50만 명, 온라인에서는 ‘꽃님에미’로 통한다.
“1993년부터 2005년까지 방송작가로 활동했어요. EBS ‘문단열의 잉글리시 카페’, SBS ‘하하 몽의 영스트리트’, KBS MBC 등에서 음악 프로그램과 청소년 프로그램을 주로 맡았죠. 꽃님이가 네 살 때 아이에게 충실하고 싶어 일을 그만뒀어요.”

‘아이들과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 도전한 전은주

1 2 4 제주 애월 한담소공원 아래 바닷가에서.



‘아이들과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 도전한 전은주

3 애월 바닷가에서 꽃님이, 꽃봉이와 한 컷.5 산굼부리에서 신난 꽃님이.6 올레길 6코스 보목항구로 가는 길.



제주도 다녀온 뒤 느긋하고 순해진 아이들
현직에서는 떠났지만 작가의 혼은 숨길 수 없었던 모양이다. 제주도에서 그는 노트에 매일 일기를 썼다. 일기장에는 그날 갔던 곳의 입장권이나 명함 등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이 책은 일기를 바탕으로 쓰였다. 그는 블로그에도 서로이웃 공개로 아이들의 성장일기를 쓰고 있다. 육아일기를 쓴 지는 10년째. 딸아이 꽃님이 나이와 꼭 같다.
“책은 두 달 동안 썼어요. 따로 책 쓸 시간을 낼 수 없으니까 아이들이 학교랑 어린이집 간 사이에 틈틈이 썼죠. 일기는 키워드 위주로 썼어요. 영수증이랑 티켓은 다 수첩에 붙였고요. 책을 낼 줄 알았으면 자료 사진도 좀 더 찍는 건데 후회했어요. 사진도 죄다 아이들 사진뿐이고. DSLR을 가져가서 4GB 메모리 가득 8백 장가량의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 많이 찍는 사람들은 하루에도 찍는 양이라면서요?”
인터뷰 도중 학교 수업을 마친 꽃님이가 동생 꽃봉이를 데리고 돌아왔다. 여섯 살 꽃봉이의 손에는 달팽이가 들려 있었다. 전 작가는 “저렇게 꽃님이가 동생을 데리러 가는 것도 제주도 갔다 와서 생긴 변화”라고 귀띔했다. 닉네임의 유래를 묻자 그는 “꽃님이는 태명이고, 꽃봉이는 꽃님이가 직접 지었다”고 했다.
“처음엔 꽃님이가 동생 이름을 꽃봉이라고 짓기에 좀 북한 톤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엄마, 새싹이랑 씨앗이는 언제 낳을 거야’ 묻더라고요. ‘아, 얘가 꽃, 꽃봉오리, 새싹, 씨앗 이런 식으로 정해놓은 게 있구나’ 하고 알았죠.”
기자 옆에서 “와 타자 빠르다~”라며 감탄하던 꽃님이는 “엄마는 떡잎이라고 하자는데 촌스러워요”라고 말했다. 꽃을 좋아하느냐고 묻자 “민들레랑 튤립 같은 단순한 꽃을 좋아해요”라고 야무지게 말한다. 다른 시골도 많은데 왜 제주도였느냐는 물음에 전 작가는 “관광객이 한 달 머물기에 인프라가 가장 좋은 곳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비용은 얼마나 들었느냐는 질문에 “많이들 물어보는데 생각보다 안 들었다”라며 “4인 가족이 3박 4일 사이판 갔다 왔을 때 드는 금액보단 적었다”며 웃었다.
“도서관과 바닷가를 주로 가서 돈 쓸 일이 별로 없었어요. 아이들은 예측이 어려워요. 한 5분 보면 끝나겠지 싶은 곳에서 한 시간을 있기도 하고, 야심 차게 찾아간 곳에선 흥미를 못 느끼기도 하더라고요. 생활비는 별로 안 들었어요. 원래대로라면 집에 있으면서 다녀야 했을 아이들 학원비와 레슨비가 안 들었으니까요. 집을 비워두니까 아파트 관리비도 많이 안 나왔어요. 아침은 집에서 해먹고 점심에는 도시락을 쌌어요. 저녁에는 외식하거나 해먹었어요.”



‘아이들과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 도전한 전은주


24시간 아이와 함께했다니! 엄마들 궁금증 폭발
아이들이 귀가하자 차분했던 인터뷰 분위기는 활기차게 바뀌었다. 사진기자는 꽃봉이와 놀아주느라 카메라를 던져둔 채 총 쏘기 놀이를 했다. 한 아이를 제지하면 다른 쪽에서 건반을 쳤고 그걸 제지하면 훌라후프를 돌렸다. “얘들아~ 네 방에 가서 앉아 계시고요~ 꽃님이는 동생이랑 다투면서 힘 빼지 마시고요~”라고 하자 꽃봉이가 “누나는 나의 대장님!”이라고 장난스럽게 외쳤다. 엄마 혼자 이렇게 자유분방한 아이들과 타지에서 한 달을 보내다니, 가능한 일일까.
“엄마들이 아이와 24시간 같이 있는데 어떻게 버티느냐고 제일 많이 물어보더라고요. 저희 아이들은 워낙 순한 편이긴 해요. 제주도에서 온종일 신나게 놀고 나면 엄마에게 치대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같이 지내기 좋았죠. 보통 아이들이 ‘엄마 이거 해줘~ 저거 해줘~’ 하니까 힘든 건데, 공부 안 시키고 숙제 안 시키니까 싸울 일이 없어서 같이 지내기 수월했어요. 그전에는 아이들만 놔둔 적이 없었는데 한 달을 확 붙어 지내니까 꽃봉이도 징징대는 일 없이 훨씬 독립적이 됐어요. 하늘이나 구름, 바람 같은 것에도 민감해졌고요. 다섯 살밖에 안 된 녀석이 노을 보며 ‘아름답다, 휴’라며 한숨을 쉬기에 웃기기도 하고 한편으론 대견했어요. 아이 눈에도 이게 멋있구나 신기하네, 하고요.”
그는 “제주도에서 밥은 안 해도 될 줄 알았는데 이것들이 하도 밥을 찾아서…”라며 웃었다.
“제주도에서 돌아온 뒤 밥도 많이 먹게 됐죠. 아이들이 편식을 했는데 바닷가에서 먹는 데다 배고프면 뭐든지 다 맛있잖아요. 제주도에서 한 달 머무는 동안 꽃님이 몸무게가 3kg이나 늘었어요. 24kg에서 27kg이 된 거죠. 꽃님이 꽃봉이 모두 키도 컸고, 무엇보다 갔다 와서 1년 동안 감기에 안 걸리더라고요.”
그들이 제주도의 풍광을 만끽하는 동안 소외된 한 남자가 있었으니 꽃님이 아빠였다.
“주변에서는 아내랑 아이들은 놀러 가는데 뭐 하는 거냐, 바보 아니냐고 놀렸죠. 그러나 남편은 주말마다 제주도에 와서 29일 중 12일을 같이 있었어요. 오히려 이번 기회에 아이들과 더 오래 붙어 있었어요. 평소에는 일 때문에 12시 넘어서 귀가하고 아침 일찍 나가니까 아이들과 볼 기회가 적었거든요. ‘마음은 있으나 시간은 없는 아빠’였죠. 워낙 바빠요. 하지만 시간 날 때는 몸으로 놀아주죠. 야구도 같이 하고 목말도 태워주고요.”

‘아이들과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 도전한 전은주


책에는 아이들과의 행복한 시간이 고스란히 담겼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제주도에서 아이와 함께 가면 좋은 카페, 월세방 구하는 팁, 가져가서 유용했던 물건과 쓸모없었던 물건 등 살아 있는 정보를 담았다. 꽃님이에게 “네 사진이 실린 책이 나오니 기분이 어땠냐”고 묻자 “와우~ 굿!”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꽃님이와 꽃봉이가 제주도에서 바다보다 즐겨 찾은 장소는 도서관이었다. 물놀이도 하루 이틀이고 매일 놀 수는 없으니 쉬기는 해야겠지만, 묵었던 원룸 안에서 매일 놀기도 지겨웠을 터. 아이들이 먼저 도서관에 가자고 했단다. 제주의 아담한 도서관에서 이들은 책에 흠뻑 빠졌다. 글자를 하나도 모르던 꽃봉이도 금방 좋아하는 책을 꺼내올 정도였다. 한라도서관, 탐라도서관, 서귀포 기적의도서관, 제주 기적의도서관, 바람도서관까지 올레길 투어 대신 도서관 투어에 나섰다. 꽃님이에게 기억에 남는 책을 물었더니 “너무 많이 읽어서 없다”며 배시시 웃는다.
“제주도 정말 재밌었어요. 다 좋아요. 미로공원도 좋았고 월정리도 좋았고요. 주변 친구 중에는 제주도를 5번 갔다 온 아이도 있더라고요. 여행이 한 달이나 되는 건 신기해하던데요.”
전 작가는 “꽃님이는 책을 보는 아이가 아니었는데 제주도 여행 뒤 완전히 책에 재미를 들였다”며 “바다보다 도서관을 많이 갔다”고 했다. “그전에는 육아 사이트에 ‘우리 아이가 책을 안 읽어요, 어떡하면 좋아요’ 이런 상담도 했다니까요. 책에 재미 붙일 수 있는 방법은 다 시도해봤지만 다 잘 안 됐거든요. 그런데 제주도에서는 아이들이 자진해서 도서관에 15번이나 갔어요.”

제주도 효과? 1년 이상 보장!
원래는 ‘물놀이 20번’을 계획했다. 그러나 계획대로만 흘러가는 여행은 재미없지 않던가.
“아이들이 하루 종일 노니까 피곤해하더라고요. 그리고 물놀이를 안 해도 제주도가 워낙 좋았거든요. 구경거리나 맛집, 카페를 찾아다니고 이곳저곳 많이 걸어 다녔어요.”
제주도에서 그는 “구름이 제일 좋았다”고 했다. 책 중간에도 구름 예찬이 나온다. ‘이런 하늘과 구름, 숲을 보고 자란 사람은 영혼 자체가 달라질 거다’라며 지인에게 전화해 제주도를 권하기도 했다.
“육지랑 구름이 굉장히 다르구나 싶더라고요. 서울에서는 숲으로 가면 산이 있고 도시에서는 건물이 있으니까 시야가 가리잖아요. 제주도는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면 온통 새파란 하늘이었죠.”
제주도 ‘약발’이 얼마나 가는지 묻자 “1년이 지났지만 아직 유효하다”고 했다.
“일단 어디 놀러 가고픈 마음이 안 들어요. 그만큼 지난여름 제주도에서 충분히 놀다 왔으니까요. 아이들도 즐거워하고요. 사람들이 아이가 어릴 때 여행 가면 나중에 기억도 못할 텐데 왜 가느냐고 묻더라고요. 여행은 기억하는 문제가 아니라 시각을 바꾸는 경험인 것 같아요. 그 지역에 대해 무언가 배워 와서 좋은 게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 자체가 바뀌는 거죠. 여행지에서의 좋은 경험과 기억, 가족과의 추억이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끼쳐요. 꼭 제주도가 아니더라도요. ‘어디’로 가는 건 상관없어요. 아마 다른 시골로 갔어도 가족끼리 부대끼며 잘 놀았겠죠.”
그는 육지로 돌아갈 때 꽃님이가 배 안에서 쓴 일기를 기억한다. 꽃님이의 일기에는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날이 아쉽다’는 내용은 한 줄도 없었다. 그저 도서관에서의 일상과 동생 꽃봉이와 놀았던 이야기만 가득했다. ‘쿨한 딸’처럼 그는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살겠다고 돌아오는 배 안에서 다짐했다. 내후년에는 온 가족이 세계여행을 떠날 예정이라고 한다. 그는 꽃님이와 꽃봉이가 “자기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아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사람까지는 바라지 않아요. 비록 다른 일을 하더라도 내가 뭘 바라는지, 뭘 하고 싶어 하는지는 제대로 아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요.”

‘아이들과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 도전한 전은주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