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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행복한 만화가

강풀의 ‘착한 만화’ 열풍 웹에서 영화로 번져가는 감동

“만화는 흥행이 되는데 왜 영화는 안 되냐고 물으면 그건 정말 답을 모르겠더라고요”

글·정혜연 기자 사진·이기욱 기자

2011. 06. 16

노년의 사랑을 아름답게 그린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지난 2월 개봉 후 지금까지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스토리가 이슈화되면서 원작 만화가 강풀은 한동안 유명세를 치렀다. 지금껏 선보인 9편의 장편만화를 모두 영화화시키며 만화 좀 그릴 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상이 된 강풀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강풀의 ‘착한 만화’ 열풍 웹에서 영화로 번져가는 감동


60년 넘게 이름도 없이 살아온 폐지팔이 할머니, 부인과 사별 후 홀로 우유배달을 하며 살아온 할아버지. 두 사람의 생애 마지막 사랑을 그린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처음엔 주목받지 못했지만 입소문을 타고 지금까지 관객 1백50만 명을 불러들이며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와 더불어 화제가 된 사람은 원작 만화가인 강풀(37·본명 강도영). 2002년 강풀닷컴이라는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만화를 처음으로 세상에 선보인 뒤 9년 동안 8편의 장편만화를 그렸고 현재 아홉 번째 만화 ‘통증’을 준비하고 있는 웹툰 만화가 1세대다. 여기까지는 시시해 보일지도 모르는 프로필이지만 아직 그리기도 전인 아홉 번째 만화까지 영화제작사에 판권을 팔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웹툰 만화가는 물론 기성 만화가들 중 그 누구도 이러한 이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그의 작품 중 ‘순정만화’ ‘바보’ 등은 연극으로 제작됐고, ‘타이밍’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드라마로 제작 중이며, ‘타이밍’은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져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그림체가 두드러지게 멋지진 않지만(강풀 스스로 인정한 부분) 그의 만화는 작품마다 특유의 분위기를 풍긴다. 덕분에 강풀의 만화를 추종하는 마니아층이 두텁게 형성돼 있다. 그의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궁금한 그를 지난 4월 여덟 번째 만화 ‘당신의 모든 순간’의 출간기념회에서 만났다. 가장 먼저 9편의 만화가 모두 영화로 만들어진 이유를 강풀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하다 보니까 모조리 영화화된 상황이라 저도 이유를 모르겠어요.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일단 만화가 재미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고요(웃음). 다른 한편으로 영화 사업을 하시는 분들이 검증된 콘텐츠를 찾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제 만화는 인터넷에 발표했을 때 댓글로 사람들의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오는 편인데 그러면서 자연히 검증받기 때문에 영화 쪽에서 관심을 갖는 거겠죠. 만화가 잘됐다고 영화까지 잘되는 건 아니어서 이번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제외하고는 전부 흥행에 실패했어요. 사람들이 ‘만화는 되는데 왜 영화는 안 되냐’고 물으면 그건 정말 답을 모르겠더라고요.”

시작은 미미했으나 10년 뒤 창대해진 웹툰 만화가 1세대

강풀의 ‘착한 만화’ 열풍 웹에서 영화로 번져가는 감동


지금은 영화계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강풀이지만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만화와 전혀 관련이 없는 상지대 국문과를 졸업한 그는 습작으로 만화를 그리던 실력을 살려 나이 스물여덟에 만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미흡한 그림 실력과 만화계 인맥이 전혀 없는 그를 만화잡지사에서 쉽게 써줄 리 만무했다.
“지금은 한국 만화판이 확 달라졌는데 아시겠지만 예전에는 (도제식으로) 아래에서부터 올라가야 하는 구조였어요. 그 때문에 데뷔하려면 만화잡지 편집장의 선택을 받아야 했죠. 오프라인 만화판에 끝까지 들어가지 못했던 당시 좌절감은 꽤 컸지만 한편으로 길이 보이더라고요. 온라인이 활성화되면서 누구나 쉽게 만화를 선보일 수 있게 된 거죠.”
수많은 만화잡지사에 이력서를 냈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던 그는 혼자서 해보기로 결심한 뒤 2002년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개설, 자신의 만화를 올렸다. 도메인은 대학 때 풀색 옷만 입고 다닌다고 후배들이 ‘강풀’이란 별명으로 부른 것이 떠올라 ‘강풀닷컴’이라고 지었다.
초창기에 그가 올린 만화들은 주로 일상에서 일어날 만한 사람들의 실수담을 각색한 것이었는데 호응을 얻자 그는 ‘일상다반사’란 제목으로 연재했다. 주로 구토, 오줌, 변 등을 소재로 한 만화들이라 그조차도 인기를 얻을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지만 친근하고 서민적인 이 만화에 젊은이들은 열광했다. 연재를 하는 동안 자신의 에피소드를 만화로 그려달라는 사람들의 메일을 하루에도 수십 통씩 받았을 정도였고, 소재로 채택된 사람에게는 만화 말미에 감사의 인사까지 덧붙여 친근한 만화가라는 인식도 얻게 됐다.



강풀의 ‘착한 만화’ 열풍 웹에서 영화로 번져가는 감동

책으로 출간된 ‘당신의 모든 순간’ 일부. 지구 멸망 이후 살아남은 인간들의 소중한 기억에 대해 이야기한 이 작품은 곧 영화로 만나볼 수 있다.



이듬해 강풀은 오랜 염원이었던 장편만화를 포털 사이트에 올리며 정식 만화가 대열에 합류했다. 그의 첫 작품 ‘순정만화’는 서른 살 직장인 연우와 열여덟 살 여고생 수영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로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이 작품은 5년 뒤 유지태와 이연희 주연의 영화로 재탄생됐다. 연우와 수영이 그렇듯 그의 작품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착하디착하다. 작가 자신이 목사 아버지 아래에서 컸기 때문일까. 강풀은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착하다는 성선설을 믿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작업을 하고 나서 돌아보니 제 작품에는 악인이 없더라고요. 어느 날 문득 ‘내가 너무 일관되게 하나의 이야기만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죠. 바꿔보려고도 했는데 전 아무래도 계속 이런 만화를 하게 될 것 같아요. 성선설을 믿기 때문이기도 하고 전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들이 나와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만화가 좋거든요.”
가슴 따뜻한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인지 강풀의 만화는 웹툰에선 선보였다 하면 대박이다. 올해로 데뷔 10년째인 그는 어느새 후배 만화가들이 동경하는 만화가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는 현재의 만화계를 생각하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고 한다.
“정확하게 수치로 수입을 밝힐 수는 없지만 제 나이에 비해 잘 벌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직장인이 아닌 직업군들 대부분은 상위 10%가 그 분야의 수입 중 대부분을 차지하거든요. 그러니 인기를 얻지 못한 만화가들의 수입은 상상도 못할 만큼 적다고 봐야죠. 후배들에게 ‘내가 잘 먹고 잘 살게 됐으니까 너희들도 만화 그려봐’라는 말은 못하겠어요. 지금보다 처우가 나아져야만 한국의 만화산업도 발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나의 모든 순간? 아마도 아내일 듯해요”

강풀의 ‘착한 만화’ 열풍 웹에서 영화로 번져가는 감동


강풀은 ‘순정만화’를 1탄으로 꾸준히 시리즈를 그렸는데 두 번째 작품이 바보 승룡이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그린 ‘바보’(하지원·차태현 주연의 영화로 탄생)였고, 세 번째 작품이 강풀에게 모처럼 영화 흥행 성공이라는 선물을 안겨준 ‘그대를 사랑합니다’였다. 네 번째 작품은 지구 멸망의 시대에 좀비로 변한 사람과 살아남은 자들의 소중한 기억을 이야기하는 ‘당신의 모든 순간’이라는 작품이다. 좀비가 등장하는 순정만화 시리즈라니 아이러니하다.
“좀비를 소재로 그렸다고 하면 많은 사람이 호러물이라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초반에만 실감나게 등장할 뿐 후반부로 갈수록 살아남은 주인공들의 사랑을 이야기하거든요. 좀비를 등장시킨 건 제가 중학교 때 ‘좀비호’라는 영화를 보고 반해 한동안 좀비 영화에 푹 빠져 살았던 시절이 생각났기 때문이에요. 거기 보면 좀비로 변한 가족이나 연인을 주인공들이 공포에 사로잡혀 가차 없이 죽이는데 어린 나이였지만 ‘저게 가능할까’ 싶었어요. 만화가가 된 뒤 ‘내가 좀비가 된다면?’이란 상상을 줄곧 했고, 4년 정도의 구상작업 끝에 ‘당신의 모든 순간’이란 만화가 탄생하게 된 거죠.”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은 지구 멸망 전부터 짝사랑했던 여자를 위해 좀비로 변한 그의 남자친구를 찾아주려다 자신마저 좀비로 변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기억은 온통 짝사랑했던 여자로 가득해 죽음 직전에 이르렀을 때조차 미소를 짓는다. 이 작품은 영화로 제작되기 전 먼저 4권의 단행본으로 출간됐고 현재 소장을 원하는 만화 팬들 사이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 작품을 보며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한 가지 질문을 받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당신의 인생에는 과연 소중한 사람과 함께한 추억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이다. 이에 강풀은 주저 없이 “아내”라고 말했다.
“작업을 시작하면 아내는 어시스트 2명을 포함한 3인분의 점심과 저녁을 매일 싸서 날랐어요. 물론 집과 작업실의 거리가 5분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보통 일이 아니라고 봐요. 하루에도 12시간 넘게 작업하는 제 건강을 위해 조미료 들어간 배달음식은 절대 못 먹게 하고 도시락을 싸주죠. 고기를 좋아하는데 살찐다고 채소 위주로 싸줘서 아쉽긴 해도 아내의 정성을 생각해 주는 대로 먹어요. 지구가 멸망해서 제가 좀비가 된다고 해도 전 이런 아내와 함께한 소중한 순간이 있어 행복할 거예요.”

자료제공·재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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