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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브라보 음악 인생

지휘자 금난새에게 길을 묻다

우리 아이 감수성 풍부하게 키우려면?

글·김유림 기자 사진·조영철 기자

2011. 06. 16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예술은 ‘영양보충제’와도 같다. 감수성을 길러주고, 상상의 나래를 펴게 도와준다. 요즘 부모들이 아이가 어릴 때부터 연주회며 미술관에 자주 데리고 다니는 것도 이러한 이유일 터. 올해로 7년째 청소년을 위한 음악회를 열고 있는 지휘자 금난새에게 쉽고 재미있게 클래식 음악을 접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들었다.

지휘자 금난새에게 길을 묻다


3백 석이 채 안 되는 아담한 연주 홀. 둥글게 앉아 있는 현악기 연주자 사이로 지휘자가 경쾌하게 걸어들어온다. 깔끔하게 빗어 넘긴 은발, 화사한 빨간색 넥타이로 멋을 낸 금난새(64)가 그 주인공. 무대 맨 앞까지 걸어 나와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청중을 맞이하는 그에게서 부드러운 음악의 선율이 느껴졌다.
올해로 7년째 ‘해설이 있는 음악회’를 열고 있는 금난새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지휘자이자, 클래식 대중화의 선구자로 불린다. 그는 어렵고 지루하다고 생각되는 클래식 음악에 해설을 곁들임으로써 음악 전문가이든 문외한이든 누구나 쉽게 귀를 열게 만든다. 이날 공연은 서울꿈의숲아트센터에서 2개월마다 열리는 ‘금난새 티타임 콘서트’로 그가 상임 지휘자로 있는 ‘유라시안 챔버 오케스트라’ 단원 중 10여 명의 현악기 연주자로 구성된 ‘유라시안 스트링스’의 무대로 꾸며졌다. 퍼스트 바이올린, 세컨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연주에 오보에 협연이 더해졌다.

한 편의 동화가 펼쳐지는 음악회
금난새 연주회의 가장 큰 매력은 ‘재미있다’는 것이다. 이날도 공연 내내 객석에서 웃음과 환호가 터져 나왔다. 특히 어린이들의 호응도가 높았는데, 금난새는 아이들 수준에 맞게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그가 첫 번째로 들려준 음악은 비발디의 ‘사계’ 중 ‘봄’. 금난새는 2악장 설명을 위해 비올라 연주를 따로 주문하며 “양치기 개가 외로운 목동을 위로해주며 ‘멍~멍~’ 하는 것 같지 않나요?” 하면서 음 하나 하나를 짚어줬다. 또 치마로사의 오보에 협주곡 C장조 연주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을 때 심정을 예로 들며, 3악장의 로맨틱하면서도 장난스러운 멜로디에서는 “‘갈 테면 가라지, 메~롱’하는 것 같다”며 직접 혀를 내밀어 보이기도 했다.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장난스러운 해설이었지만 청중의 웃음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컸다. 그 역시 관객의 반응이 만족스러운 듯 “4악장이지만 그리 길지 않답니다. 10분 안에 끝나니 참고 들어보세요” 하며 찡끗 눈웃음을 지은 뒤 지휘에 들어갔다.
금난새 음악회가 매번 매진을 기록하는 진짜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처럼 클래식을 쉽고 편안하게 일상으로 끌어들이는 그는 “음악은 일부 아는 척 하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과 공유될 때 가치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1시간 반가량 혼신의 힘을 다해 지휘를 하고 무대에서 내려온 그를 대기실에서 만났다.

▼ 청중의 호응이 이렇게 뜨거울지 몰랐습니다. 오늘 공연은 만족하시나요?
“하하. 매번 만족할 수는 없지만 청중들과 함께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죠. 문화라는 건 일부 특정인의 소유가 아님에도 그동안 우리나라는 ‘마니아’ 위주로 문화가 발전해온 게 사실이에요. 음악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이제는 모두가 클래식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저변 확대가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오랜 세월 클래식 음악 대중화에 힘쓴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고요. 제 공연을 보면서 아이들은 음악의 순수함을 느끼고, 어른들은 유년 시절 미처 경험하지 못했던 문화적 감수성을 뒤늦게 경험하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는 것 같아요.”
▼ 곡을 해석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연주회의 레퍼토리를 만드는 데 공이 많이 들 것 같아요.
“음악은 음악가만이 해석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누구나 책을 읽고 감상문을 쓸 수 있는 것처럼, 음악을 듣고 끊임없이 창의적인 생각을 해낼 수 있어요. 음악을 듣는 건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것과 같아요. 보물이 어디 있는지는 작곡가가 말해주지 않죠. 듣는 사람이 ‘어디쯤 보물이 있는 것 같다’라는 생각으로 각자 나름의 ‘판타지’를 만들어가는 거죠. 그 작업이 어렵다고만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작곡가의 메시지를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다 보면 음악이 얼마나 즐겁고 재미있는 것인지 깨닫게 될 거예요.”

지휘자 금난새에게 길을 묻다

금난새가 대표로 있는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과 함께.





지휘자 금난새에게 길을 묻다


▼ ‘해설이 있는 음악회’를 감상한 부모라면 자신의 자녀들에게도 비슷한 방법으로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집에서 할 수 있는 클래식 음악 교육법으로는 어떤 게 있을까요.
“‘하우스 콘서트’를 자주 열라는 말을 해주고 싶군요.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피아노나 바이올린 등 악기 한 가지씩은 다 가르치죠. 하지만 그 또한 교육의 일환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아이가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지 않고 오로지 콩쿠르 입상이나 입시 교육에 혈안이 돼 있는 것 같아요. 그보다는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가정에서 음악회를 여는 거예요. 아이들은 자신의 악기 연주 실력을 선보이고 부모는 그런 아이를 격려해줌과 동시에 함께 음악을 즐기는 거죠. 엄마 아빠도 악기를 연주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고요.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소규모로 이뤄진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인기가 없어요. 크고 거창한 음악회를 좋아하죠. 마치 수백 명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는 뷔페만 좋아하는 것 같아요. 작고 허름하지만 정말 맛있는 식당도 많은데 말이죠(웃음). 가정에서부터 음악회를 여는 습관을 갖고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음악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마련해줘야 해요.”

청소년 음악회 고집하는 이유

실제로 그는 몇 년 전부터 규모는 작지만 알찬 음악회를 끊임없이 열고 있다. 1994년부터 6년 동안 개최해온 ‘해설이 있는 청소년 음악회’는 전회 전석 매진의 기록을 세웠고, 그 밖에도 ‘도서관 음악회’ ‘해설이 있는 오페라’ ‘포스코 로비 콘서트’ ‘캠퍼스 심포니 페스티벌’ ‘뮤직 인 잉글리쉬’ 등 관객 눈높이에 맞춘 신선한 프로젝트를 끊임없이 선보였다. 또한 산업현장과 학교, 군부대와 정부기관, 도서 벽지 등을 직접 방문하는 ‘찾아가는 음악회’도 꾸준히 펼치며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에 아름다운 선율을 선물했다.
▼ 그동안 많은 곳을 방문하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뭔가요.

지휘자 금난새에게 길을 묻다

금난새 공연의 가장 큰 장점은 재미와 감동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는 것이다.



“2007년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울릉도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어요. 언젠가 공군 참모총장과 식사를 했는데 제게 “안 가본 데가 없겠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단원들 뱃멀미 때문에 울릉도 공연을 계속 미루게 됐다”고 했더니 그 장군이 30명이 탑승할 수 있는 헬리콥터를 지원해주겠다는 거예요(웃음). 3대의 헬리콥터로 단원들 모두 울릉도로 날아갔고, 5백 석 홀에 1천 명이 넘는 청중들이 몰려와 성황리에 음악회를 마칠 수 있었어요.
또 지난해 2월에는 법무부 요청으로 소년원에서 강의를 했는데, 말보다는 음악으로 닫혀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현악4중주 단원과 함께 소년원을 찾았어요. 제 예상대로 아이들은 음악에 푹 빠져들었고, 공연 시간이 30분밖에 안 돼 무척 아쉬워하는 눈치였어요. 그래서 다음에는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오겠다고 약속했고, 3개월 뒤 그 약속을 지켰어요. 어려운 현실에 있는 아이들이 다른 또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도전과 꿈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연주했던 기억이 납니다.”
▼ 청소년, 아이들을 위한 음악회를 고집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어린 시절 우연히 AFKN 방송을 통해 레너드 번스타인이 이끄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를 보게 됐어요. 그 공연을 보고 지휘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어요. 그런데 그때 연주 테마가 바로 ‘청소년을 위한 음악회’였어요. 그때 감동을 전하고 싶어 저도 청소년을 위한 음악회를 열기 시작했습니다. 청소년은 미래의 리더이자 미래의 희망이잖아요. 문화적 풍요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신들의 혜택을 후세에 대물림해주고, 이는 곧 문화 발전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비전공자도 즐길 수 있는 음악, 그게 곧 문화

지휘자 금난새에게 길을 묻다


금난새는 바이올리니스트 홍정희씨와 결혼해 두 아들을 뒀다. 그를 따라 영국과 프랑스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두 아들 또한 피아노 실력이 출중하다. 자신처럼 음악인으로 키우고 싶은 바람도 컸을 것 같지만 금난새는 “음악은 아이들 스스로 좋아서 했을 뿐, 진로는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정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두 아들 모두 경영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두 아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 특히 둘째 아들은 전공자 못지않은 실력을 갖췄다고 한다. 금난새는 가끔 아들의 연주가 듣고 싶을 때면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 식사 디저트로 연주 한 곡만 해줄래” 하고 부탁을 한다.
▼ 두 아들에게 어떤 음악 교육을 시켰는지 궁금합니다. 피아노를 배우게 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제가 집에서 피아노를 자주 치긴 했지만 아이들에게 한 번도 강요한 적은 없어요. 두 아이가 처음 피아노를 접한 게 큰아이가 열네 살 되던 해였어요. 당시 외국에서 생활했는데, 갑자기 두 놈이 피아노를 배우러 가겠다고 하더군요. 전공자를 위한 학원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취미로 배울 수 있는 음악 스쿨이었는데, 처음에는 자그마한 전자 피아노를 치던 아이들이 2년 후에는 큰 피아노를 치더군요(웃음). 특히 둘째 아들에게 재능이 보였어요. 어느 날 아이가 치는 피아노 소리가 정말 아름답게 들리는 거예요. 피아노 건반을 때리면서 치는 게 아니라, 정말 음악을 사랑해서 보듬는 그런 소리였어요. 아이들이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집안에서 연주회가 자주 열렸죠(웃음).”
▼ 비전공자도 음악을 연주하고 즐기는 풍경이 부럽습니다. 현재 음악 전공자는 아니지만 25개 대학에서 오케스트라 동아리로 활동 중인 학생들이 모여 ‘쿠코’를 결성해 지휘를 맡고 계신데, 이런 활동도 젊은이들의 음악 활동을 격려해주는 행보라 생각됩니다.
“네, 맞습니다. 지난해 여름, 동아리 오케스트라 대표들이 저를 찾아왔어요. 25개 대학에서 동아리로 활동하고 있는 오케스트라들을 한데 모아 전국 대학 연합으로 활동하려고 하는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서 제게 지휘를 부탁한 거죠. 과거 민주화 운동에 목숨 걸던 대학생들이 이제는 시대가 변해 오케스트라를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하려는 모습을 보고 그들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죠. 결국 오디션을 통해 1백 명의 학생을 선발했고, 틈틈이 연습하며 음악회를 준비했어요. 다들 얼마나 열심히 연습하는지, 내 아들딸처럼 정말 사랑스럽더군요(웃음). 학생들도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실력이 느는 걸 느끼니까 무척이나 신나했죠. 결국 올 1월 예술의전당에서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과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을 훌륭히 해냈어요. 그 공연을 계기로 우리는 ‘쿠코(KUKO, Korea United College Orchestra:대학생 연합 오케스트라)’를 결성했고, 3주 전 두 번째 오디션을 했죠. 기존 멤버 40명에 새 멤버 40명을 뽑았는데, 저는 방학 때만 연습을 시킬 생각이었는데, 이 친구들은 매주 연습을 하자는 거예요. 다행히 5월에는 스케줄이 괜찮아서 여러 번 연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학생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정말 행복해요. 음악은 전공자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이 학생들처럼 어려서부터 음악을 몸에 익혀온 아이들은 커서도 음악을 사랑하게 되고, 또 이들이 중년이 됐을 때 우리나라 음악 문화는 한층 발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 클래식 음악 대중화를 위한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앞으로는 교육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싶어요. ‘쿠코’ 단원들처럼 음악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싶어요. 우리나라 음악은 입시 위주의 솔리스트만 양성하려 하는데, 독주자만 많아지면 뭐합니까.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음악, 일상으로 파고드는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요. 훗날 우리나라에서 음악 관련 노벨상이 나올 수 있도록 말이죠(웃음).”

tip 금난새가 들려주는 음악회 관람 에티켓
“만국 공통어 ‘브라보’로 연주자 격려”

금난새는 매번 공연에서 청중들로부터 ‘브라보’를 유도한다. 자신의 연주를 칭찬받기 위함이 아니라, 음악회 자체를 부담스럽게 여기는 일반인들에게 작은 에티켓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이탈리아어 ‘브라보’는 만국 공통어로 어느 나라에서든 음악회에 참석했다면 ‘브라보’를 외쳐보자. 금난새는 “우리나라에서는 ‘브라보’를 외치면 힐끔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건 예의가 아니니 자제해달라”며 위트 있게 말했다.
박수를 푸짐하게 치는 것도 연주자를 격려하는 좋은 방법이다. 금난새는 “음악회에 온 사람 중 간혹 클래식 마니아들이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는 식으로 날을 세우고 음악을 듣고는 자신의 마음에 들면 박수를 많이 치고, 그렇지 않으면 몇 번 치고는 팔짱을 껴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예의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소리 내 호응하지 못한다면 박수를 많이 쳐 연주자들이 ‘앙코르’ 무대에 설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이날 금난새는 마지막 연주 후 퇴장했다가 세 번이나 다시 무대에 섰을 정도로 큰 박수를 받았다.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은 뒤 그는 앙코르 연주를 들려줬고, 지휘 중간에는 시계를 힐끗 바라보는 포즈를 취하며 캐주얼하면서도 유쾌한 분위기를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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