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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직후 베스트셀러, 영화화 결정된 ‘7년의 밤’ 정유정 작가

샌드백 치고 야간산행 하며 겁나는 스릴러 구상

글·정혜연 기자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11.06.16 10:27:00

‘7년의 밤’은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남자를 중심으로 얽혀 들어가는 주변 인물들의 운명을 그린 소설이다. 5백 쪽이 넘는 분량이지만 탄탄한 구성과 치밀한 묘사 덕분에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다. 이미 범인이 드러났는데도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드는 이 소설의 흡인력, 놀랍다.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 영화화 결정된 ‘7년의 밤’ 정유정 작가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 집행인이었다.”
첫 장을 열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이 한 문장에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한시도 책을 내려놓을 수 없다. 소설 ‘7년의 밤’은 한 남자의 우발적 살인과 그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운명을 이야기하며 강한 흡인력으로 독자를 빨아들인다. 도대체 이야기를 이토록 힘차게 몰아가는 작가는 누구일까.
작가로서 정유정(45)의 이력은 2007년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으로 시작됐다. 당시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수상을 했는데 이미 그의 나이 마흔을 넘겼을 때였다. 2009년에는 ‘내 심장을 쏴라’로 제5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고 문단은 상복 많은 이 늦깎이 작가에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여의 칩거 끝에 지난 3월 ‘7년의 밤’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소설은 독자들로부터 “오랜만에 무게감 있는 장르소설이 나왔다”며 호평을 받았고, 출간 한 달 만에 초판 2만 부와 추가 인쇄분 2만 부를 모두 소진하며 현재 국내소설 순위 상위권에 올라 있다.
소설은 살인자의 아들 시각에서 시작된다. ‘살인마의 아들’이라는 굴레를 쓰고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던 서원은 어느 날 아버지의 사형이 집행됐다는 소식을 듣곤 7년 전 그날 밤을 회상한다. 특별할 것 없는 밤, 음주를 한 채 차를 몰고 새 부임지로 가던 아버지 최현수는 어두운 산길에서 소녀를 치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시체를 저수지에 던진다. 그리고 그 죄책감 때문에 서서히 미쳐간다. 딸을 죽인 범인을 쫓던 소녀의 아버지 오영제는 살인자와 그 아들에게 복수하려고 끈질기게 두 사람의 삶을 옥죈다. 소녀의 아버지가 벌이는 복수극? 작가의 의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 이상은 스포일러다. 소설은 직접 읽어봐야 맛이다.
이런 소설을 쓴 작가의 뇌 구조가 궁금했다. 5월 중순 정 작가를 만나자 다짜고짜 청소년 소설을 쓰던 작가에게서 어떻게 이런 스릴러가 나올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런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일찌감치 쓰려고 마음먹었던 소설”이라며 빙긋 웃는다.
“전 이미 첫 소설 ‘작가의 말’에서 ‘신나는 모험담’과 ‘겁나는 스릴러’를 쓰겠다고 예고했어요. ‘신나는 모험담’은 ‘내 심장을 쏴라’를 통해 이야기했고, ‘겁나는 스릴러’를 쓰고 싶었기에 ‘7년의 밤’이 나오게 된 거죠. 작가들은 보통 한두 가지 테마를 변주로 작품을 쓰는데 저의 경우는 그것이 ‘자유의지’였어요.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는 자유의지의 발현기를 그렸고, ‘내 심장을 쏴라’는 자유의지가 구현되는 이야기죠. 잘못하면 성장소설 전문작가가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자유의지 시리즈에 마침표를 찍어야겠다 싶었어요(웃음). 삶의 가치이자 존재의 징표인 자유의지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이의 이야기를 쓰고자 했고 ‘7년의 밤’이 탄생했죠.”

디테일을 간과하는 건 작가의 직무유기
정 작가는 취재를 열심히 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내 심장을 쏴라’에 등장하는 정신병자 주인공을 그리기 위해 정신병동에 들어가 한 달간 생활했을 정도. ‘7년의 밤’에서는 인공호수 ‘세령호’를 중심으로 세령댐과 수목원, 댐과 저지대 마을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했다. 또 극중 인물의 스쿠버다이빙 실력과 야구 선수 시절 이야기는 전문가 수준. 스스로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정작 정 작가는 “수영도 전혀 못한다”며 모두 취재한 내용이라고 했다.
“소설 하나를 쓸 때 2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데 보통 자료조사만 3개월쯤 해요. 창의성도 지식에서 출발해야 창의성이지 어설픈 지식으로는 망상밖에 나오질 않거든요. 잠수 관련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119 구조대원인 남편에게 수중 구조작업을 하는 교관님을 소개해달라고 했죠. 그런데 뭘 알아야 질문하겠다 싶어 잠수 관련 책 7권을 사서 한 달 동안 공부하고 만났어요. 또 마지막 장면에 주인공이 댐 수문을 열어 한 마을을 수몰시키는 장면이 있는데 토목기사인 동생에게 부탁해 토목시공기술사를 소개받아 설명을 들었죠.”
여성 작가의 부탁이어서 그런지 댐 직원들이 성심성의껏 설명해줬다고 한다. 한참 설명하던 운영관리팀장이 소설 결말에 대해 물었고 그가 ‘댐이 열려 마을을 쓸어버린다’고 하자 깜짝 놀라며 자신이 도와줬다는 사실을 비밀로 해달라며 신신당부했다고. 이 밖에도 살인을 저지른 주인공이 경찰의 수사망에 걸려드는 부분에 대해서는 검찰 수사관을 소개받아 탈고 전 전체적으로 감수를 받았다.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 영화화 결정된 ‘7년의 밤’ 정유정 작가


3개월 동안의 취재를 마친 뒤 그는 구축된 자료를 토대로 또다시 3개월 동안 뒤돌아보지 않고 소설을 써내려갔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모두 들어낼 작정을 하고 상상이 달리는 대로 내질렀다. 초고가 완성된 후 1년 동안 초고를 벗기는 작업에 들어갔는데 그는 “3개월 만에 쓴 소설이 제대로 된 것일 리 없다”며 조각조각 잘라내 디테일을 더하고 연결 구조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고 한다. 2천 매가 넘는 원고를 여덟 번 퇴고하자 나중에는 원고만 보면 구토가 날 지경에 이르러 그는 탈고하기로 결심했다.
“막연하게 써놓고 독자들에게 상상으로 메우라고 하는 것은 작가의 직무유기라고 생각해요. 언어가 영상화돼 독자들의 눈앞에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디테일에 상당한 공을 들였죠. ‘저놈은 나쁜 놈이야’라고 정의하지 않고 그런 장면을 보여주면서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돌리는 걸 추구했어요. 어떤 분들은 ‘뭐 이렇게까지 자세히 쓸 필요 있었냐’고도 하지만 그렇게 써야 이야기를 밀고 나가는 힘이 생겨요.”
그 덕분에 ‘7년의 밤’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생명력이 있다. 무의미하게 살아가다가 우발적으로 소녀를 죽이는 전직 야구 선수인 최현수, 가족을 비뚤어진 방식으로 사랑하는 치과의사 오영제, 대한민국 중산층이 꾸는 꿈을 대변하는 억척 아내 강은주, 말없이 주변인들을 바라보는 안승환까지 저마다의 행동에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 모두에게 연민이 생긴다. 그들 중 정 작가가 가장 애착을 가진 인물은 ‘최현수’였다.
“소설이 현수의 아들인 서원과 룸메이트 아저씨 승환의 입을 통해 전개되지만 소설의 시발이자 결말은 현수예요. 한순간 어리석었지만 사형집행일을 기다리며 감옥에서 승부구를 준비하죠.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9회말 2아웃 상황에서도 판을 짜고 아들이 자신의 사인을 알아채길 기대해요. 죽음 앞에서 그가 ‘고맙다’라는 말을 남긴 것도 파멸한 인생이었지만 자기 삶에 대해 ‘예스’라는 확신을 가지고 떠날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현수가 이렇게 막판 역전을 시킬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했기에 야구 선수 중에서도 ‘포수’로 등장시킨 거죠.”
의외인 점은 빡빡하고 힘 있게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서도 간간이 웃음 터지는 개그 코드가 등장한다는 것. 그는 “평소 농담을 즐기는 편인데 이번 소설에서는 많이 절제했다. ‘내 심장을 쏴라’에선 대량 방출했더니 ‘작가가 개그맨 아니냐’라는 소리도 들었다”며 웃음 지었다.



20대를 휩쓴 역경 이기고 펜 잡기까지
소설가가 천직인 듯한 정유정 작가는 의외로 대학에서 간호학을 전공하고 병원에서 일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는 어려서부터 장녀를 의대에 보내고 싶어 한 어머니의 강력한 의지의 결과였다.
“당시 의대가 6년 과정이었는데 남들과 같이 졸업하라고 초등학교도 여섯 살에 보냈을 정도로 어머니는 저를 의대에 보내고 싶어 하셨죠. 그에 반해 저는 한글을 익힐 무렵부터 소설가를 꿈꿨어요. 글짓기 대회에 나가서도 곧잘 상을 받아왔지만 어머니의 의지가 워낙 강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죠. 수학 성적이 받쳐주질 않아 결국 간호대에 갔고 졸업하면 일하면서 야간대 국문과를 반드시 가리라 마음먹었죠. 그런데 어머니가 간경화로 쓰러지시면서 상황이 달라졌어요.”
어머니는 그가 근무하던 병원에 입원했는데 간경화가 간암으로 악화되면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공무원이던 아버지는 워낙 애처가여서 아내가 병에 걸리자 덩달아 쓰러지셨고 정 작가는 실질적인 가장이 됐다. 동생 셋의 학비와 어머니의 병원비까지 감당하다 보니 어느새 그의 20대는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집안이 무너져 내려앉았다고 표현해야 맞을 거예요. 어찌어찌해서 여동생은 유학을 보냈고 두 남동생도 졸업을 시켰죠. 그렇게 간호사 생활을 5년 했더니 어머니 생각도 나고 더는 병원에 있기 싫더라고요. 사표를 내고 나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들어갔고 30대를 그렇게 맞았어요.”
생에서 20대는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다. 절정의 시기가 예상치도 못했던 고난으로 점철된 것이 억울하고 원망스럽지 않을까.
“그때는 고통스러웠죠.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을 건너온 정유정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요. 밑바닥을 스스로의 힘으로 지나온 사람은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거든요. 배짱이 생겼다는 점에서 오히려 글 쓰는 데 도움이 됐죠. 또 원래 성격이 낙천적이라 방에서 울다가도 거실에서 남편이 재미난 이야기를 하면 깔깔거리며 웃어요. 눈물 자국도 안 말랐는데 웃음이 나는 거 보면 참 단세포적이에요(웃음).”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 영화화 결정된 ‘7년의 밤’ 정유정 작가


남편은 정 작가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다. 자료조사를 위해 각종 서적을 구입하는 만만치 않은 비용도 아낌없이 지원해주고,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장보기와 살림도 마다하지 않는다. 외조 잘하는 남편이야말로 여성 작가로서는 최고의 복이다. 게다가 정 작가의 남편은 그보다 세 살 젊기까지 하다.
“서른 넘은 여자는 끝이란 생각에 결혼도 포기하고 살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놀러 온 남동생 친구 중 한 명이 연애를 걸어오더라고요. 그런데 ‘난 지금 연애가 아닌 결혼을 해야 하니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오면 만나주겠다’고 했죠. 남편은 그때 가장 가까운 시일 내 잡혀 있던 소방공무원 시험을 봤고 합격했다며 달려왔어요. 결혼은 먼 나라 이야기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야 ‘땡큐’였죠(웃음).”
결혼 후 맞벌이하며 6년 만에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정 작가는 그길로 사표를 던지고 소설을 쓰기 위해 집 안에 들어앉았다. 남편 역시 결혼 초부터 정 작가의 꿈을 익히 들어온 터라 그의 결정을 적극 지지했다. 일단 쓰기만 하면 유명 작가가 되리라 상상했던 정 작가는 기대와 달리 각종 공모전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며 6년의 시간을 보냈다.
“마흔 줄에 들어가는데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집에만 앉아 있다가 세월 다 가는 것 같았고 최종에서 자꾸 떨어지니 죽을 맛이었죠. 맞벌이를 하다가 남편에게 제 몫까지 모조리 떠넘긴 것도 너무 미안했고요. 벼랑 끝에 선 심정이었을 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도전한 ‘세계청소년문학상’에서 상을 받아 천만다행이었어요. 그런데 등단하고 보니까 원하지도 않던 ‘청소년 소설가’라는 딱지가 붙은 거예요. 그걸 떼어내려면 한 번 더 공모전에 붙어야겠다 싶어 ‘세계문학상’에 출전했어요. 심사위원들이 저인 줄 알까봐 아들 이름으로 몰래 냈는데 당선됐죠.”
그러자 이번에는 정 작가 이름 앞에 ‘상금 사냥꾼’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는 “2년 동안 상금만 1억5천만원을 받아 ‘문학판의 타짜’라 불렸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해명했고 “대부분의 소설가들이 문예창작과나 국문과를 나오는 데 반해 저는 그쪽에 적이 없으니 더욱 공모전 타이틀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두 번의 공모전을 치르고 난 정 작가에게 자유로이 쓸 수 있는 심적 여유가 생겼고, 이후 ‘7년의 밤’이 탄생했다.
40대 여성 소설가라면 고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교수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정 작가는 큰 키에 다부진 몸매, 시원한 웃음이 매력적인 커리어우먼 스타일이다. 집에서 글만 쓴 사람에게서 풍기는 분위기가 아닌 것 같아 비결이 뭐냐고 묻자 ‘야간산행’이라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글 쓸 때는 마트도 안 나갈 정도로 외부 접촉을 끊고 사는데 샌드백 치고 야간산행 나가는 건 즐기고 있죠. 스트레스가 쌓일 때 어떻게든 풀고 싶어 남편한테 샌드백을 사달라고 했어요. 처음엔 기분대로 마구 쳐서 붕대를 감아도 손등이 다 까질 정도였는데 7년 쳤더니 안 까져요. 그러다가 ‘내 심장을 쏴라’에서 시력을 잃어가는 주인공을 쓰려면 눈 나쁜 사람의 세계를 알아야겠다 싶어 야간산행을 시작했어요. 해질 무렵 동네 뒷산에 올라 4km 되는 코스를 오르고 돌아오면 딱 밤 10시쯤 돼요. 첫날에는 무턱대고 랜턴도 없이 올라갔다가 너무 무서워서 절반도 못 가고 돌아왔는데 하다 보니 랜턴 없이도 익숙해지더라고요. 저 같은 사람들 없을 것 같죠? 그 시간에 의외로 등산객이 많아 서로 인사하며 지나가요(웃음).”
한밤중에 산을 오르며 주로 스토리에서 꽉 막힌 부분을 머릿속으로 정리한다고. 집에 돌아와 자고 일어나서 작업을 시작하면 거짓말같이 술술 풀린다고 한다. 지금은 차기작을 구상하며 산을 오른다.
“재난 스릴러를 생각하고 있어요. 인수공통전염병에 대한 이야기인데 개가 감염체로 등장할 예정이고 주인공 설정도 다 정해놨죠. 메인 플롯이 찾아져야 엔진이 돌아가니까 지금은 개 심리학, 해부학, 수의학 책 등을 보면서 자료조사를 하고 있어요. 늦어도 6월부터는 쓰기 시작할 거예요.”
소설 ‘7년의 밤’은 영화인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다. 인터뷰가 있던 날 은행나무 출판사의 화이트보드에 영화배우 사진이 붙어 있고 직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가 진행 중이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TV를 없앴다는 정 작가는 몇몇 배우의 얼굴은 알아보지 못했으나 “송강호씨를 좋아하는데 캐스팅이 될까요?” 하며 사진을 만지작거렸다. 어떤 배우가 등장하든 탄탄한 원작 소설 속 등장인물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선 발군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여성동아 2011년 6월 5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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