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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GREEN LIFE

독일인 아내와 한국인 남편의 산골 일기

텃밭 일구고, 장작으로 불 지피고…

기획·한여진 기자 사진·문형일 기자

2011. 06. 03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겠습니까?’란 질문에 망설임없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독일인 아내. 그런 아내를 위해 도시 생활을 접고 산골에 터전을 잡은 한국인 남편. 그들의 사랑은 어디에서 나올까?

독일인 아내와 한국인 남편의 산골 일기


툇마루에 앉아 손을 뻗으면 뭉게구름이 닿을 것 같고 방문을 열면 백두대간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산 위의 집. 내비게이션에도 표시되지 않는 강원도 삼척 산골에는 한국인 남편 이희원씨(50)와 독일인 아내 유디트씨(40)가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노란 민들레가 잔디처럼 마당을 수놓은 5월의 어느 날, 부부를 만나러 그곳에 갔다.
젊은 부부가 강원도 두메산골에 산다는 것도 예사롭지 않은데, 아내는 파란 눈의 독일인이다. 이희원씨가 독일 유학 시절에 만나 결혼한 부부는 처음에는 서울과 안산에서 생활했다. 하지만 나무와 꽃이 마당 가득한 독일에서 자란 아내는 각박한 도시 생활에 힘들어 했다.
“독일은 어느 동네에나 나무가 울창한 공원이 있고, 집 마당에서도 꽃이나 나무를 키워 초록빛이 가득한데, 서울에선 높은 회색빛 빌딩만 보여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남편과 참 많이 싸웠는데, 콘크리트 벽에 갇혀 사는 도시 생활이 힘들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부부는 서울 생활을 접고 강원도 삼척으로 이사했다. 부부는 이곳에서 생활한 4년 동안 부부 싸움을 거의 하지 않았고 오히려 애정은 더욱 각별해졌다. 집 뒤 언덕의 평상, 산자락 끝의 부부 의자, 집 툇마루, 마당의 해먹, 산책로 등 부부만의 공간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화가 늘고 마음의 여유가 생겨 싸울 일이 없어졌다. 부부는 아침에 일어나 커피와 빵으로 브런치를 먹고 집 주변을 산책하고 텃밭을 가꾸고 집안일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봄에는 텃밭에 모종을 심고, 여름에는 텃밭과 포도밭을 가꾸고, 가을에는 채소와 과일을 수확하다 보면 일 년이 훌쩍 지나간다. 봄여름가을겨울뿐 아니라 하루하루, 아침저녁, 시간마다 시시각각 모습이 변하는 자연을 보는 재미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고.
“자연이 주는 행복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대단해요. 어제 피었던 꽃과 오늘 피는 꽃이 다르고 아침과 저녁의 모습이 또 다르죠. 요즘은 민들레가 한창인데, 민들레는 아침에는 활짝 만발했다가 오후 서너시가 지나면 꽃망울이 오므라들어요. 아침에 활짝 피었을 때도 예쁘지만 석양과 어우러진 굳게 닫힌 꽃망울도 멋있답니다.”
민들레 한 송이에서도 다양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부부를 보면서 자연도 즐길 수 있는 이에게만 선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는 얼마 전 구입한 외발자전거와 한창 씨름 중이다. 페달에 발을 올리고 몸을 똑바로 세운 다음 허리를 조금씩 움직여 균형을 잡아야하는데 잘 되지 않는다. 구입한 지 한 달 정도 지났지만 아직도 물 펌프를 지지대 삼아 서 있을 정도 실력밖에 안 된다.
“물 펌프에 기대 외발자전거에 올라타 몸을 세워 온전히 섰을 때 어린 시절 처음 자전거를 혼자 탔을 때처럼 기뻐 환호성을 질렀어요. 아직 서툴지만 천천히 익히다 보면 언젠가 민들레 밭에서 외발자전거를 씽씽 탈 날이 오겠죠. 그날을 생각하면 벌써 즐거워요.”
마당의 대추나무와 돌배나무에 묶어 만든 해먹도 부부가 좋아하는 공간이다. 나뭇잎이 햇살을 적당히 가려주는 해먹에 누워 책을 읽거나 고양이와 시간을 보낸다. 요즘은 해먹에 앉아 마당 가득 핀 민들레를 감상하는 재미에 빠져 지낸다. 여름에는 하얀 마들렌이 마당 가득 피어 또 다른 아름다움을 뽐낸다.

독일인 아내와 한국인 남편의 산골 일기


독일인 아내와 한국인 남편의 산골 일기




01 물 펌프에 의지해 외발자전거를 타는 아내. 그런 아내를 카메라에 담는 남편. 부부의 행복은 이런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02 03 부부의 동반자이자 친구인 고양이 루이와 야옹이. 노란 빛의 루이는 눈이 허리까지 내리는 한겨울에 부부가 한두 달 집을 비워도 혼자 늠름하게 집을 지키는 든든한 고양이다. 이희원씨는 고양이 루이와 야옹이의 이야기를 책으로 낼 예정이다.
04 유디트씨가 빨간색으로 색칠한 의자를 백두대간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나란히 두고 이곳에 앉아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나눈다. 나란히 앉아 무언가를 본다는 것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05 햇살 좋은 날에는 해먹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잔다. 해먹에 누워 파란 하늘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절로 편안해진다.

‘집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휘황찬란한 값비싼 소품으로 치장한 집, 딱딱한 가구만 가득한 집, 직접 만든 소품으로 정감 있게 꾸민 집, 마당에 꽃과 나무를 정성스럽게 가꾼 집…. 백 년 넘은 화전민의 집을 단장해 만든 부부의 집에도 그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처음 집을 봤을 때 집 모양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묵은 때가 끼어 새까맸어요.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서 집 구실을 할 수 있을까 걱정될 정도였죠. 나무 기둥, 흙벽, 툇마루, 문, 창문 등 집 전체를 쓸고 닦았더니 흙 속에 묻힌 진주처럼 멋진 흙집이 나왔어요.”
백 년이란 세월을 거치면서 서까래와 문 등 나무의 빛깔이 깊어져 한층 운치를 더한다. 주방 겸 거실의 나무 바닥은 이희원씨의 작품이다. 원래 외양간이 있던 공간에 각목을 연결해 마룻바닥을 만들어 거실로 꾸민 것. 남편이 각목 옆에 못을 박아 연결하고, 아내가 매끈하게 샌딩한 뒤 투명 바니시를 발랐다. 각목이 촘촘히 연결돼 건조한 한겨울에도 뒤틀리지 않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방 입구에도 아궁이를 새로 만들어 겨울에는 군불을 지펴 난방을 한다. 주방 수납장과 거실의 좌식 테이블도 부부가 나무로 만들었다. 집 구석구석 부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백 년이 넘은 오래된 집이지만 집을 사랑하고 아끼는 부부의 마음이 담겨 반짝반짝 윤이 나고 아늑함이 풍긴다.

독일인 아내와 한국인 남편의 산골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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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지난해 7월의 집 모습. 질경이, 민들레 등이 마당 가득 자라서 잔디처럼 보인다. 마당 중앙에 위치한, 가장 늦게 잎이 나온다는 대추나무도 울창하게 잎이 올라왔다.
02 집 밖에 만든 수세식 화장실. 용변을 보면 텃밭으로 물이 흘러가 자연 비료가 된다. 자연을 생각하는 부부의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03 민들레 사이에 돌판을 올려 만든 마당에서 집 안으로 들어가는 길.
04 05 마당은 각을 맞춰 꾸민 ‘정원’이란 느낌보다 자연스런 들판의 느낌이 들도록 돌 옆, 길가 등에 자연스럽게 꽃을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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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산에서 주워온 돌과 구슬로 페치카 주변을 장식해 색다른 멋을 냈다. 페치카에 불을 지펴 감자나 고구마를 구워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02 방 두 개를 확장해 만든 안방. 중간의 나무틀 너머 보이는 액자는 지인들에게 선물 받은 것.
03 보자기를 활용해 만든 커튼. 꽃 수가 놓인 부분을 한 단 접은 뒤 빨래집게로 집어 커튼을 완성했다. 내추럴한 광목이 집 안 분위기에도 잘 어울린다.
04 작은 창을 통해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주방. 벽에는 독일 지도를 붙여 장식했다.
05 거실 중앙에 있는 벽에 작은 나무판을 달아 미니 테이블을 만들었다. 사용할 때는 실을 못에 걸어 올리고 평소에는 실을 풀면 된다.
06 외양간이었던 자리에 각목으로 마루를 만들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툇마루와 서까래, 창호문이 소나무를 깎아 만든 좌탁과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낸다.

시골 사는 즐거움 중 하나는 산과 들에 가득한 먹을거리다. 시골 생활 4년째인 유디트씨는 요즘 산나물 알아가는 재미에 푹 빠졌다. 식물이 살기 가장 좋다는 해발 700m에 위치해 지천에 달래, 취나물, 개두릅, 오가피가 널려 있고 텃밭을 일구다 보면 더덕도 종종 나온다.
“제 마당에 이렇게 많은 먹을거리가 있는 줄 몰랐어요. 몇 년 동안 뒷마당에 자라고 있는 나무가 예쁘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웃에 사는 지인이 개두릅, 오가피, 머위라고 알려줬어요. 농약을 치지 않고 방치해둔 완전 유기농 산나물이죠. 요즘 이 나물 덕에 식탁이 한층 푸짐해졌답니다.”
텃밭에는 상추, 가지, 호박, 오이, 토마토 등을 키워 먹는다. 먹을거리를 이렇게 해결하다 보니 생활비가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강릉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유디트씨의 수입과 이희원씨의 책 저작권료가 부부의 총 수입이지만 부족함 없이 생활하고 있다.
“도시에서 계속 살았다면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처럼 돈의 노예로 살았을 테죠. 아파트 평수를 늘리기 위해 대출을 받고 그 돈을 갚기 위해 맞벌이를 했을 거예요. 자연히 음식은 모두 마트에서 사먹었을 거고요. 부부가 따로 떨어져 아침부터 저녁까지 번 돈은 대출상환금과 생활비로 고스란히 들어갔겠죠. 시골에서 산다는 건 적게 벌어 여유롭게 사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 같아요.”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밭일을 해본 적 없는 부부지만 호미를 들고 텃밭을 일구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다. 돈을 벌기 위한 일이 아니라 욕심 내지 않고 부부가 일 년 동안 먹을 만큼만 심는다. “호박이나 가지, 상추 등은 따서 먹으면 잎이 다시 올라오고 열매가 계속 열려요. 욕심 내지 않고 3~4 이랑만 심어도 충분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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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수다를 떨면서 산나물을 씻고 있는 유디트씨의 모습에서 한국 아낙네의 분위기가 난다.
02 텃밭에 상추, 가지, 오이, 호박 등 모종을 심고 있는 부부. 고랑과 이랑을 다른 밭의 두 배 정도로 넓게 만들어 이랑에는 모종을 두 줄로 심었다. 이희원씨가 아내와 마주앉아 밭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는데,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의 마음이 잘 담겨 있다.
03 뒷마당에서 딴 머위는 살짝 데쳐서 쌈 싸 먹으면 쌉싸래한 맛이 일품이다.
04 요즘 달래 캐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내는 이희원씨. 집에 놀러 오는 지인들에게 한 봉지씩 캐서 주었는데도 마당 곳곳에 아직도 달래가 가득하다. 달래를 손질해 뿌리째 송송 잘라 양념간장을 만들어 밥에 쓱쓱 비벼 먹으면 향긋한 달래 향이 입맛을 확 살린다.

★ 마당에서 딴 향긋한 산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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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릅 소금을 넣은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초고추장을 찍어 먹는다.
오가피 잎이 부드러워 고기를 구워 먹을 때 쌈채소로 먹으면 딱!
머위 쌈채소로 먹거나 데처서 초고추장을 찍어 먹어도 맛있고, 된장국에 넣어도 향긋하다.
달래 흐르는 물에 비벼가며 씻어 뿌리까지 송송 썬 뒤 간장에 넣어 달래양념간장을 만든다. 밥에 쓱쓱 비벼 먹으면 맛이 일품이다.
개두릅 두릅보다 향이 진해 강원도에서는 밥에 넣고 산나물밥을 지어 달래양념간장에 비벼 먹는다.
민들레 멸치액젓을 조금 넣어 민들레 김치를 담그거나 햇볕에 말려서 민들레차를 만든다.

지인을 초대해 마당 한켠에 설치한 바비큐용 난로에 삼겹살을 구워 먹거나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백숙을 만들어 파티를 여는 부부. 상은 텃밭에서 딴 채소와 유디트씨가 끓인 된장국, 지인이 만들어준 장아찌, 강원도 막걸리로 푸짐하게 차린다.
“제가 가장 좋아하고 잘 만드는 요리는 된장국이에요. 남편도 제가 끓인 된장국을 좋아하고요. 남편은 따뜻한 밥에 된장국과 장아찌, 김치만으로 상을 차려도 맛있게 먹어요.”
초대받은 지인이 집 뒷산에서 따온 취나물과 당귀잎, 돌미나리, 부추 등으로 전을 부쳤다. 향이 진한 산나물은 다른 양념을 하지 않고 밀가루 옷을 살짝 입혀 부쳐도 맛이 일품이다. 지글지글 전 부치는 기름 냄새가 진동하고, 막걸리 잔이 오가는 것이 꼭 동네 잔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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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지인이 지난해 만든 고추장아찌와 집 마당에서 따온 돌나물. 향이 진한 돌나물은 초고추장을 곁들이면 맛있다. 이런 것이 바로 시골 인심!
02 지인들을 초대해 종종 삼겹살 파티를 여는 부부. 다음에는 가마솥에 백숙을 끓여 파티를 열 예정이다.
03 취나물과 당귀 잎은 밀가루 옷을 살짝 입혀 기름에 부쳐 먹으면 맛있다.
04 돌미나리, 깻잎, 부추, 양파를 매실청과 간장으로 살살 버무려 만든 산나물 샐러드.

독일인 아내와 한국인 남편의 산골 일기


유디트씨는 산골 생활과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점을 글로 써 책을 낼 예정이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참 신기한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곳보다 아파트만 빼곡한 서울의 아파트 값이 수백 배 이상 비싼 것도, 그런 곳에서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이상했어요.”
강원도로 오지 않았다면 도시 생활에 지쳐 독일로 돌아갔을 거라는 그. 남편이 강원도를 떠나자고 농담을 해도 “나는 평생 이곳에서 살겠노라” 말하는 모습에서 강원도, 아니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그는 책에서 한국인들도 모르는 한국의 아름다움에 대해 알려주고, 외국인의 눈으로 본 한국의 모습을 따끔한 목소리로 이야기할 예정이다.
“한국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책을 쓸 생각도 하지 않았을 거예요. 아름다움이 가득한 곳에 살면서 한국 사람들은 그것을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에 책을 쓰기로 했죠.”
남편 이희원씨는 아내 유디트씨의 산골 생활 모습과 두 고양이의 사랑 이야기를 블로그(http:// blog.naver.com/heewonlee61)에 올리고 있는데, 그만의 날카롭고 유머러스한 글솜씨에 빠져 ‘희원빠’가 생길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는 독일인 아내와 그런 아내를 위해 도시 생활을 접고 산골 생활을 시작한 남편. 남들은 그냥 지나치는 것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부부의 집에는 오늘도 행복한 향기가 솔솔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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