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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웃겨야 사는 남자

‘무릎팍 도사’ 박정규 PD와 나눈 우문현답

“무릎팍을 거쳐 간 손님, 진행자 강호동에 대한 예의 바른 뒷담화”

글·김명희 기자 사진·지호영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11. 03. 16

‘무릎팍 도사’의 첫 등장은 사실 우스꽝스러웠다. 울긋불긋 점집을 연상시키는 세트, 볼에 연지 찍은 진행자 강호동의 모습에서 토크 프로그램의 생명인 진정성을 담을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보란 듯이 재미와 감동 사이에서 능수능란하게 줄타기를 하며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승승장구해왔다. 연예인 작가 운동선수, 각계각층의 인사를 초대해 성역 없는 질문과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야기로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무릎팍 도사’의 박정규 PD가 제작 뒷얘기를 들려줬다.

인터뷰를 업으로 하는 기자로서 대한민국에서 부러운 사람이 딱 한 명 있다. 바로 MBC ‘황금어장-무릎팍 도사’의 강호동이다. 좀처럼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이들을 바로 앞에 앉혀놓고 시청자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을 콕 짚어가며 술술 이야기를 풀어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살리에르가 모차르트에게 느꼈을 법한 질투가 샘솟는다.
그런 강호동 뒤에는 2006년 7월 이 프로그램의 막을 연 여운혁 PD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아 2008년 9월부터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는 박정규 PD(40)가 있다. 박 PD가 공을 들여 대어급 손님을 낚아주면 강호동이 맛깔스럽게 요리해 밥상을 차린다. 최근에는 ‘남자의 자격’으로 관심을 모은 박칼린, 수영선수 박태환, 작가 공지영 등이 무릎팍 도사를 찾았다.

게스트 섭외의 가장 큰 무기는 신뢰, 꼭 초대하고 싶은 사람 말 못해

‘무릎팍 도사’ 박정규 PD와 나눈 우문현답


‘무릎팍 도사’의 녹화 시간은 보통 5~6시간, 이 가운데 방송 분량은 40분(1회 기준) 정도다. 방송으로 다 풀어놓지 못한 숱한 뒷얘기를 듣기 위해 2월14일 박정규 PD를 만났다. 그가 일하는 일산 MBC ‘황금어장’ 회의실의 한쪽 벽면은 역대 게스트의 명단으로 장식돼 있었다. 인연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알 수 있는 대목. 그는 혹시 자신이 섭외했던 출연자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 섭외에 공을 많이 들인다고 들었다. MBC 한 드라마에 출연했던 연기자는 드라마 녹화 때마다 ‘무릎팍 도사’ PD가 찾아오는 바람에 나중에는 미안해서 거절할 수 없었다고 하더라.
“단번에 섭외에 응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직접 찾아가기도 하고 지인들을 통하기도 하고, 모든 인맥과 방법을 총동원해 여러 루트로 접촉한다. 가장 중요한 건 프로그램을 잘 만들어 ‘적어도 나를 이상하게 다루지는 않겠다’라는 신뢰를 주는 것이다. 시청률은 한 주만 지나면 아무도 기억 못하는데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나 평판은 6개월 뒤에도 남는다. 2월 말 임권택 감독님 편을 녹화할 예정인데 그분 같은 경우에는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편이 출연 결심을 하는 데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저 친구(김동호 위원장)도 나만큼 나이 들었는데 강호동과 어울려서 하는 거 보니 괜찮네’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조영남씨도 이장희씨 편에 어찌어찌 잠깐 나왔다가 방송을 보고 결심한 것 같고. 운동선수로는 양준혁 이종범 선수가 물꼬를 터준 게 추신수 이대호 선수까지 연결이 됐다.”
▼ 손님을 섭외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에서 가장 궁금한 사람, 예를 들어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김연아 선수, 월드컵이 끝난 직후에는 허정무 감독 등. 또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분 가운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잘 알려지지 않은 분, 예를 들어 박칼린 감독의 경우 박동진 명창의 전수자가 될 뻔한 사연, 가족사 등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갖고 있는 분이다. 그런 분들을 초대하려 노력한다.”
▼ 그런 이들 가운데 삼고초려를 해도 섭외가 안 된 경우가 있었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상당히 조심스럽다.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 그럼 질문을 바꿔보자. 꼭 초대하고 싶은 사람이 있나.
“그 역시 답하기 어렵다. 그런 이야기를 했다가 섭외 중에 틀어진 경우가 있다. 손님으로선 우리(제작진)가 언론 플레이를 한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
▼ 섭외가 잘 안 되기 때문인가, 일부에서는 ‘무릎팍 도사’가 예전보다 순해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김 빠진 콜라 같다는 비판도 들었다. 언제까지나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초창기의 독기, 그러니까 시청자가 궁금한 건 우리가 다소 불편하더라도 질문을 해야 한다는 철칙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독기 어린 질문 대신 출연자의 가슴속에 있는 진지한 이야기를 이끌어내자는 쪽으로 방향이 약간 바뀌었다. 그렇게 해야만 출연자의 폭을 넓힐 수 있다. 독한 질문만 고집하면 손님들이 편하게 나오기 힘들다.”



▼ 추구하는 바가 웃음에서 메시지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나.
“그건 아니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메시지가 강조되면 다큐지 예능이 아니다. 일부에서는 더 진지한 얘기를 뽑아낼 수 있는데 왜 거기까지밖에 못 가느냐고 안타까워하는 분들도 있다. 기대치가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우리는 예능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재미를 추구한다. 예를 들어 공지영 선생님 같은 경우에도 녹화할 때 여러 좋은 말씀을 많이 하셨지만, 예능이라는 틀 안에서 그 이야기들을 다 풀어낼 수는 없었다. 손님의 인생, 성공과 실패를 웃음을 섞어 시청자들에게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시청자들이 그 이야기를 통해 뭔가를 느낄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는 게 우리가 할 일이다.”

강호동은 최고의 바람잡이

‘무릎팍 도사’ 박정규 PD와 나눈 우문현답


‘무릎팍 도사’의 미덕은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을 가식 없이 일반인의 눈높이에서 파헤친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첼리스트 장한나에게 ‘첼로 줄은 몇 개인가’ ‘첼로는 한 대에 얼마나 하나’ 같은 질문을 스스럼없이 던지고, 이홍렬에게는 세간에 떠돌던 ‘이경규 폭행설’에 대해 묻고, 심혜진에게는 ‘남편과 결혼 전 동거를 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이냐’고 확인하는 식이다. 손님이 자칫 곤란해할 수 있는 질문을 밉지 않게 던지고 답을 이끌어내는 데는 진행자 강호동의 몫이 크다. 박 PD는 강호동을 ‘저렇게 잘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훌륭한 진행자’라고 칭찬했다.

▼ 속 깊은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비결은 무엇인가.
“손님이 우리 프로그램에 나올 때는 한번쯤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어서인 경우가 많다. 그분들이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고 녹화는 철저히 비공개로 한다. 보통 예능 프로그램은 방청객도 있고, 제작진도 수시로 녹화장에 드나드는 데 반해 우리 팀은 관계자 외에는 아무도 녹화장에 들어올 수 없다. 또 스튜디오에서 녹화하면 사장실, 국장실을 비롯한 사내 모든 곳에서 모니터링을 할 수 있는데 우리 프로그램은 그게 안 된다.”
▼ 녹화 후 ‘이런 부분은 빼달라’고 편집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나.
“5시간 넘게 이야기를 하고 나면 지쳐서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웃음). 대부분은 알아서 편집해달라고 하지만, 이야기의 대상이 있는 경우 녹화 후 ‘그 부분은 상대에게 실례가 될 수 있을 거 같으니 편집해달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손님이 우리를 믿고 이야기해준 부분이기 때문에 우리도 손님의 의사를 존중한다.”
▼ 손님과 어느 정도 수위로 이야기할지 미리 조율하나.
“케이스 바이 케이스. 사전 인터뷰를 통해 전체적인 맥락을 조율하지만 구체적인 부분은 녹화장에서 결정된다. 강호동씨 재량에 따라 제작진이 의도했던 것보다 더 나갈 수도 있고 덜 나갈 수도 있다.”
▼ 방송을 보면 강호동이 쪽지를 들고 있다. 제작진이 준비해준 질문지인가.
“질문지를 따로 주지 않는다. 강호동씨는 우리가 손님을 사전 조사, 인터뷰한 자료를 읽고 녹화에 들어간다. 구체적인 질문은 그가 직접 하는 것이다.”
▼ 예능인인 강호동이 각계 명사들을 상대하기 버거운 면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주는 기본 자료 외에도 스스로 준비를 많이 하는 것 같다. 겉보기에는 남성적이고 우락부락하고 거칠게 대충 할 것 같지만 녹화할 때만큼은 예민하고 섬세하다. 긴장도 많이 하고. 녹화장에 들어가기 전 꼭 한 번씩 심호흡을 한다. 손님들에게 ‘왜 이렇게 긴장하나’라고 놀리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본인이 더 긴장하고 또 그 긴장감을 즐기기도 한다.”
▼ PD로서 진행자 강호동을 평가한다면.
“그만큼 잘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잘한다. 명사가 나올 경우 자칫 경력과 관련된 딱딱한 이야기로 흐르기 쉬운데 그분들이 신나서 스스로 이야기하게끔 분위기를 띄운다. 말하자면 바람잡이 노릇을 잘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재밌게 들어주고 눈을 맞추면서 깊이 공감해주면 자연스럽게 속 깊은 이야기를 한다. 강호동씨는 그런 능력이 있다. 또 강호동씨 자신이 유명인이어서 유명한 사람이 겪는 어려움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고 이 때문에 역으로 게스트들이 마음을 터놓게 된다. 너무 ‘오버’하는 게 아니냐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내가 봤을 때 치밀한 계산에 의한 것이다.”
▼ 제작진이 부여한 치밀함 아닌가.
“강호동씨 본인이 인터뷰어가 돼 손님에게서 뭔가 이야기를 끌어내고 싶어 한다. 또 프로그램이 성장하면서 강호동이라는 진행자도 더 어른스러워진 것 같다. 예전 스타일의 거칠고 독한 질문 대신 손님이 갖고 있는 깊은 이야기를 더 집요하게 끌어내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 가끔 강호동이 내뱉는 어록이 참 명대사다.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가져오는지 모르겠다(웃음). 우리가 준비해주는 건 아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키워드 ‘꿈은 이루어진다’

‘무릎팍 도사’ 박정규 PD와 나눈 우문현답

‘황금어장’ 회의실 벽면은 역대 출연자와 시청률이 빼곡하게 장식돼 있다.



박정규 PD는 시사 교양 PD로 입사했다가 얼마 안 돼 “즐겁게 일하고 남을 웃기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예능으로 방향을 바꿨다. 이후 ‘쇼 음악중심’ ‘일요일 일요일 밤에-동안클럽’ ‘느낌표-눈을 떠요!’ 등을 연출했다. 남을 웃기는 게 자신에게는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지 뒤늦게 깨닫고 머리를 쥐어뜯은 적도 있지만 여전히 이 일을 사랑한다고 한다. 예능 PD도 여러 스타일이 있다. 코미디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버라이어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박 PD는 이야기를 좋아하고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그래서 그는 MC와 게스트의 대화를 통해 하나의 인생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그 끝이 궁금해 시청자들이 마지막까지 채널을 돌리지 않는 프로그램을 계속 만들 작정이다.

▼ 프로그램을 통해 PD도 많이 배우고 성장할 거 같다.
“좋은 분들께 인생의 지혜를 배울 수 있으니 고마운 일이다. 자신감도 많이 생겼다. 프로그램을 맡은 초반에는 내가 이분께 이런 질문을 해도 되나 긴장하고 당황하기도 했다. 그때 도움을 주신 분이 조수미 선생님이다. 어떤 질문을 해도 잘 받아주시고, 내 눈을 쳐다보고 진솔하게 말씀해주셨다.”
▼ 주로 성공한 인물이 출연하는데, 그들의 삶을 관통하는 성공 키워드가 있다면.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은 교과서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분들 삶을 들여다보면 항상 머릿속으로 미래에 관한 그림을 그리고 행동으로 옮기더라. 이장희 선생의 경우도 운이 좋아 어떤 일을 해도 일이 잘 풀렸다고 볼 수도 있지만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가수를 그만둘 때, 미국으로 갈 때, 라디오 방송국을 일구고 은퇴할 때, 울릉도로 들어갔을 때 모두 머릿속으로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그림을 그리고 그대로 실천을 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 마지막으로 ‘무릎팍 도사’에 대한 바람이 있다면.
“오래가면 좋겠다. 내 방송 철학 중 하나가 오래가는 프로그램이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방송은 시간이 지나도 남는 지면 매체와 달리 시간 속에 묻힌다. ‘전국노래자랑’처럼 오랫동안 사랑받는 장수 프로그램이 되면 좋겠다.”

오늘의 의뢰인, ‘무릎팍 도사’ 건방진 프로필

★2006년 7월7일생(2월19일까지 219회)

★1회 최민수를 시작으로 최진실 윤여정 조수미 김연아 안철수 공지영 등 게스트 총 1백73명 출연

★황석영 허구연 조영남 등 대한민국 내로라하는 ‘입담’들이 거쳐 간 프로그램

★윤여정 고현정 이미연 공지영이 방송에서 사생활(이혼)에 관해 언급한 전무후무한 프로그램

★조수미 강수진 안철수 박경철 한비야 등 멋진 인생을 산 사람들이 깨알 같은 삶의 지혜를 풀어놓은 살아 있는 교과서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추구하는 당신은 진정한 욕심쟁이 우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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