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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뜨거운 형제들

쌍둥이 여호원·호용 서울대 입성기

사교육 제로, 철저한 시간 관리로 꿈 이루다

글·이혜민 기자 사진·조영철 기자

2011. 03. 04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쌍둥이 여호원·호용 형제는 사교육의 도움 없이도 올해 나란히 서울대에 합격했다. 이들보다 세 살 많은 큰형 여호섭도 서울대에 들어가 이들 형제의 ‘공부 비결’을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쌍둥이 여호원·호용 서울대 입성기

쌍둥이 호용·호원 형제(왼쪽부터).



“저희 아이들이 아홉 달 만에 2.6kg, 2.7kg으로 약하게 태어났거든요. 그래서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잘 커줘서 고맙죠(웃음).”
텔레비전 없는 아담한 자택에서 만난 어머니 윤인숙씨(48)는 특별한 교육법이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2011학년도 서울대 수시모집으로 여호원·호용(19) 쌍둥이 형제가 각각 자유전공학부, 경영학과에 입학했으니 뒷바라지한 어머니로서 자랑스러울 만도 한데 해준 게 없다며 뒤로 물러섰다. 그는 충남 서산시 석유화학공단에서 일하는 남편 여재웅씨(48)와 함께 사택에서 세 아들을 낳고 기른 평범한 주부. 하지만 큰아들 여호섭(경영학 전공)과 쌍둥이 형제를 거푸 서울대에 입학시키면서 어느새 스타가 됐다.
아이들도 평범하긴 마찬가지. 호용군이 여덟 살 때 충남 성경고사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아 똑똑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윤씨는 “아무리 똑똑해도 잘못 크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바른 심성을 길러주는 데 주력했다”고 한다.
사실 큰아이에 대한 기대치가 더 높았다. 현재 군복무 중인 큰아들은 쌍둥이와 3년 터울로, 어려서부터 클래식 음악과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라선지 20개월 때부터 엄마가 책 제목을 말하면 찾아올 정도로 영특했다고 한다.
더욱이 세 아들에게 사교육을 시키자니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어린이집에만 보냈고, 입학 후에는 주로 학습지를 시켰다. 어머니가 아이들을 교육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 학습지 교사를 통해 공부 습관을 길러준 것이다.
“아이들에게 ‘학습지 풀고 놀자’고 그러면 대부분 약속을 지켰어요. 자신과의 약속은 물론이고, 상대방과의 약속을 잘 지키는 게 우리 집 문화였던 것 같아요. 아무리 사소한 약속이라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부모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레 닮아갔을 거예요.”
사택에서 직원 복지 차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인 바둑, 피아노, 미술을 가르치기도 했다. 피아노와 미술을 재미있어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이들은 바둑을 더 좋아했다. ‘드래곤볼’ ‘만화 고구려’ 등 만화책을 반복해서 읽던 아이들에게 바둑은 또 하나의 장난감이었다.

쌍둥이 여호원·호용 서울대 입성기

세 아이가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한 교과서와 문제집을 방 한켠에 모두 정리해둔 윤인숙씨.



학습지로 계산력 키우고, 바둑으로 사고력 길러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전략을 쓰는 거잖아요.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느니까 재미있어서 3,4년 정도 배웠어요.”(호용)
“수학 못하는 친구들은 생각하는 것 자체를 싫어해요. 그런데 저는 바둑을 하면서 생각하는 힘을 길렀던 것 같아요. 이 지역에서는 제가 1등이었거든요(웃음). 다른 사택에 사는 아이들과 시합할 때마다 이기려고 고심을 많이 하긴 했지만 재미있었어요. 시험기간에도 바둑 둘 때만큼은 엄마가 뭐라고 안 하셔서 좋았고요(웃음).”(호원)
그러던 어느 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서산시교육청 영재교육원에서 선발된 영재 20명 중 초등학교 6학년생인 쌍둥이가 포함된 것이다. 이후 매년 선발된 쌍둥이는 일주일에 두 차례씩 수학영재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했고, 중학교 3학년 때는 충남도교육청 부설 과학고영재교육원에서 영재로 뽑혔는데 어머니는 “큰아이가 거친 영재교육원 과정을 쌍둥이들이 그대로 밟아 기뻤다”고 했다. 호용군도 “선행학습을 한 게 아니라 ‘사고력’을 키우면서 역량을 강화할 수 있어 좋았다”라고 말했다.



쌍둥이 여호원·호용 서울대 입성기


쌍둥이 형제는 “학습지로 다져진 ‘계산력’과 바둑으로 길러진 ‘사고력’으로 올림피아드 문제를 많이 풀었는데 그 덕에 영재로 뽑혔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옆집 친구에게 올림피아드 문제집이 있다는 걸 알고 그 집에 찾아가 새벽 1,2시까지 문제를 풀었을 만큼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했다.
어머니는 아이들의 환경에 신경을 썼다. 텔레비전을 치우고 시험기간에는 전화도 안방에서만 받았다. 그리고 늘 아이들 옆에서 어머니도 공부를 했다. 중간고사든 쪽지시험이든 시험을 치는 날이면 무조건 아침 식탁에 새로 지은 밥과 소화가 잘되는 국을 올려 아이들의 속을 달랬다.
“저희 집이 아파트 1층인 데다 놀이터가 바로 앞에 있어서 낮에는 무척 시끄럽거든요. 그래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5시쯤 돌아오면 2시간 정도 재운 뒤 공부하게 했어요. 학습량이 많거나 친구 관계가 좋지 않으면 대화를 해서 기분을 달래줬고요. 부모와 자식 간의 신뢰가 있다 보니까 아이들이 잘 따라주었죠. 아빠도 열심히 일하고 엄마도 틈틈이 공부하고 아르바이트하면서 사니까 그런 모습을 보면서 삶의 자극을 받았던 것 같아요.”

‘너희처럼 합체해 공부하면 좋겠다’고 부러워해
하지만 큰아이가 다니던 충남 공주한일고에 쌍둥이가 합격 통지서를 받자 위기가 왔다. 호용군이 “입학 전형에 3학년 2학기 성적이 들어가지 않으니 이때가 아니면 놀 기회가 없다”면서 공부를 손에서 놓은 것이다. 어머니는 “아이들 키우면서 그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
“아이들의 마음이 달라지는 건 한순간이에요. 놀다 보면 계속 그런 쪽으로 빠지기 쉬운 거죠. 그래서 5시에 나가면 8시에 돌아오라는 식으로 놀 시간을 정해줬어요. 한번은 (호)용이가 약속시간을 넘겨 친구 집에서 라면만 먹고 들어오겠다고 했는데 안 된다고 했죠. 한 번 봐줄 수도 있지만 일단 한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다행히 호용군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큰형이 입학한 대학에 가고 싶다는 목표를 세우면서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호용군과 호원군은 각각 문과와 이과를 선택했지만 그때부터 “네가 잘돼야 내가 잘된다”면서 서로를 의지하며 공부했다.
“다음 날이 도덕시험인데도 얘가 하나도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2시간 동안 중요한 포인트를 알려줬는데, 정작 호원이 성적이 더 잘 나왔죠(웃음). 한번은 수학시험이 프린트물에서 나온다는데도 풀어놓지 않아서 중요한 문제를 체크해주고 이 문제만큼은 꼭 풀어보라고 했죠. 같은 걸 배워도 노트 필기 한 것이 다르니까 서로 바꿔보기도 했고요. 친구들이 알려달라고 하면 가르쳐주긴 해도 제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알려주진 않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서로에게 헌신적이니까 친구들이 ‘너희처럼 합체해 공부하고 싶다’면서 부러워하더라고요.”(호용)

쌍둥이 여호원·호용 서울대 입성기


쌍둥이 여호원·호용 서울대 입성기


힘들 때면 함께 미래를 꿈꾸기도 했다. 호용은 사업가가 되고 싶은 호원을 응원했고, 호원은 교육장학사업가가 되고 싶은 호용을 격려했다. 그리고 목표의식이 뚜렷해질수록 쌍둥이 형제는 일과 시간표를 꼼꼼하게 짜기 시작했다. 자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오후 7시 반부터 자정까지로 제한적이라 ‘시간 활용을 효율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이한 것은 쌍둥이가 공부하는 시간의 10%를 계획 짜는 데 썼다는 점. 중학교 때 어머니의 지도로 계획을 세운 이들은 공부할 과목을 적고, 그 과목을 어느 교재로 어느 분량까지 할지 자세하게 정리했다. 이들을 보며 친구들은 “차라리 그 시간에 공부를 더 하라”고 했지만 쌍둥이는 “이렇게 해야 공부할 부분도 놓치지 않고 마음도 안정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공부시간의 10% 할애해 계획표 만들어
“계획을 짤 때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가 강해서 많은 걸 적어놓잖아요. 그러다 보면 계획대로 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한 플래너는 계획 ‘원본’으로, 다른 플래너는 계획 ‘수정본’으로 만들었죠. 못한 게 쌓이면 아예 새로 계획을 짠 거예요. 그리고 전체 과목이 아닌 취약 과목만을 위한 플래너도 만들었어요. 1학년 때는 수학이 부족해서 수학 플래너, 3학년 때는 사회탐구·과학탐구 플래너가 있었죠.”(호용)
호원군 역시 플래너 한 권에는 호용군과 같은 방식으로 세부 계획표를 만들고, 플래너를 따로 만들어 매 시간에 뭘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그는 “수능 40일 전에도 계획을 짜면서 해야 할 일을 적어두고, 공부한 부분을 체크하면서 수능에 대한 불안감을 잠재웠다”고 한다.
학습 동기를 만들기 위해 플래너에 ‘1급 장학생 여호용’과 같은 문구를 적는가 하면, 입학하고 싶은 대학 사진을 붙여 그 캠퍼스를 누릴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플래너를 자꾸 보고 싶도록 소녀시대 사진을 붙여놓는 센스도 발휘했다. 또한 성취감을 높이기 위해 이행한 것을 표시해 학습 정도를 백분율로 환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우등생들의 필수품이라는 오답노트를 만들면서 놓친 부분을 총정리 했다. 쌍둥이는 “어느 정도 공부하고 난 뒤에야 모르는 부분을 정리하는 것이 의미 있다”고 여겼다.
“수능을 두 달 앞두고 헷갈리는 부분이 특히 많은 과학탐구영역의 오답노트를 만들었어요. 풀었던 문제집 중에서 틀린 문제가 있으면 오려서 붙여놓고, 모르는 개념이나 중요하다 싶은 내용이 있으면 암기장에 따로 정리했고요.”(호원)
“저도 수능이 임박했을 때 과목별 오답노트를 만들었어요. 문제집에서 틀린 것만이 아니라 문제를 맞혔지만 잘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따로 정리했고, 교과서에서 관련 사진과 설명을 오려붙였어요. 시간이 많이 걸리기는 했지만 그 덕에 몰랐던 내용을 확실히 알게 됐죠.”(호용)
대입이란 지난한 과정이 힘겹기는 했지만 쌍둥이 형제는 서로에게 도움을 받으며 그 시기를 넘겼다고 한다. 호원군이 “호용이가 없었으면 슬럼프를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하자 호용군도 “미치도록 힘들 때도 호원이가 정신 차리라고 해서 공부할 수 있었다”며 10분 차로 형인 그에게 에둘러 고마움을 표현했다. 때로는 복도에 나와 공부하는 친구들 틈에 나란히 앉아 공부했다는 쌍둥이 형제. 서로를 버티게 해준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족’인 이들이 함께 꾸려갈 내일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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