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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이 남자가 사는 법

개그맨 김병만

“연기의 달인 되는 그날까지 무한도전 할 겁니다”

글·김민지 기자 사진제공·BM엔터플랜

2011. 02. 17

160cm도 안 되는 작은 키, 왜소한 체구지만 무대 앞에 선 남자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다. 그가 온몸으로 캐릭터를 소화해내면 객석에선 웃음이 터져나온다. 3년 넘게 ‘달인’ 하나로 수백 가지의 무한도전을 펼치는 개그맨 김병만 얘기다. 이제 사람들은 달인과 김병만을 이음동의어처럼 여긴다.

개그맨 김병만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코미디를 대신한 지 오래다. 말로 웃기지 않으면 웃지 않는 세상이다 보니 ‘미친 예능감’을 보이는 가수나 배우가 개그맨보다 더 돋보인다. 유행처럼 생겨났던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 하나 둘 사라졌고 유일하게 KBS ‘개그콘서트’(이하 개콘)만 남았다.
“MBC·SBS 사장님! 코미디에 투자해주십시오. 개그맨들이 설 자리를 만들어주세요.”
지난 연말 ‘KBS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김병만(36)의 뼈 있는 수상 소감이 화제가 됐다. 그는 버라이어티 진행자도 아니고 ‘개콘’의 한 코너인 ‘달인’으로 3년 연속 대상 후보자에 오른 유일한 개그맨이다. 지난해 강력한 대상 후보자였던 터라 최우수상 호명에 그치자 유난히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팬들의 마음에 보답하듯 신년 첫 방송된 ‘달인’은 김병만 표 개그의 정점을 찍었다. 16년 된 ‘낙상 김병만 선생’으로 분해 줄타기 달인에 도전한 것. 부채를 잡고 허공에 떠 있는 줄을 한 발자국씩 아슬아슬하게 내딛는 모습은 진짜 달인이었다.
그가 ‘달인’으로 나오는 시간은 고작 5~6분. 그사이 관객들이 반응하고 웃는 시간은 10초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달인이 되기 위해 하루, 이틀 아니 한 달 넘게 꾸준히 준비한다. 인터뷰가 잡힌 ‘개콘’ 녹화방송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앉아 있는 바로 옆에 외발자전거가 눈에 띄었다.
“처음 ‘달인’을 시작할 땐 ‘개콘’의 브리지 코너에 불과했어요. 잠깐 쉬어가는 코너처럼 ‘가볍게 웃음만 던지자’는 콘셉트였죠. 그런데 점점 인기가 많아지면서 제대로 된 아이템을 선보여야겠더라고요. 벌써 2백20가지 정도의 달인 캐릭터를 했는데 처음부터 잘하는 것만 시도한 건 아니에요. ‘한번 해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게 많았죠. 한번 해서 안 되면 또 다른 걸 하면 되니까요.”

달인 캐릭터의 핵심은 볼거리 아닌 개그

개그맨 김병만

김병만은 ‘달인’ 개그는 “완벽한 달인이 되는 것보다 자연스런 웃음을 유발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준비해서 최근 선보인 것이 줄타기였다. 인터넷으로 우연히 줄 타는 장인들의 모습을 보고 ‘해보자’란 생각을 했다. 곧바로 경기도 과천에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8호 줄타기 예능보유자인 김대균 선생(44)을 찾아갔다. 처음에는 허공에 걸린 줄을 보고 가슴이 떨렸지만 처음 배운 날 1시간 반 만에 왕복 세 번을 마쳤다.
“김대균 선생님도 이렇게 빨리 배우는 사람은 못 봤다면서 놀라시더군요. 한 달간 딱 네 번, 2시간씩 배웠어요. 지난해 못 받은 상에 연연하지 않고 열심히 했을 뿐인데 줄타기 달인이 화제가 되는 걸 보면서 정말 감사했어요. 그만큼 ‘많은 분들이 절 기다려주시는구나, 그 기대를 절대 저버려선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개콘’의 최장수 코너로 기록되고 있는 ‘달인’은 2007년 12월9일 첫 방송을 탔다. 평소 친하던 후배 류담, 노우진과 트리오로 시작했다. 처음엔 매운 고추나 버터 한 통을 입에 넣는 가학적인 개그나 우기기를 소재로 한 허무 개그에 불과했지만 2년 전부터는 고난도 묘기 위주의 개그로 바뀌었다.
이런 ‘달인’ 개그의 핵심은 다양한 달인 캐릭터를 표현해내는 그의 맨몸이다. 그가 추구하는 개그는 몸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슬랩스틱 코미디. 언제부턴가 개그계는 콩트, 만담, 개인기 등에 묻혀 슬랩스틱 코미디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김병만은 10년 넘도록 몸 개그만을 향해 달려왔다.
지난해 추석 특집 프로그램으로 마련된 ‘달인쇼’는 그런 노력의 산물이었다. 잠수의 달인, 흡입의 달인 등 혹독한 미션 7가지를 연속으로 보여주자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때 기억을 떠올리며 “코너가 아닌 고정 프로그램으로 가는 건 어떻겠느냐”고 묻자 그는 손사래를 쳤다.
“그렇게 하다가 사람들이 ‘쟤 죽겠구나’ 하고 심각해져요. 한번 봤을 때 같이 긴장하면서 재미있게 봐주는 게 최고죠.”



개그맨 김병만

김병만과 3년 넘게 ‘달인’ 코너를 지키고 있는 후배 노우진(맨 왼쪽)과 류담. 워낙 그와 친한 후배들이라 즉흥 연기를 해도 뭐든 손발이 잘 맞는다고 한다.



그 말대로 그의 개그는 몸을 마구 꺾거나 던지고, 몹쓸 것을 먹는 등 평소 해선 안 될 일들이 많아 걱정스런 시선을 거두기 힘들다. 몸을 쓰다 보니 준비할 때 고된 것도 사실이지만 김병만은 “핵심은 볼거리가 아니라 개그”라며 “완벽한 달인이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웃음 코드를 이끌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요즘은 수타면 만들기에 도전하고 있어요. 여기서 중요한 건 제가 수타면을 완성하는 게 아니라 개그와 접목했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웃느냐는 거죠. 완벽한 달인이 돼버리면 사람들은 진지해져요. 웃음이 나올 수 있는 코드와 달인을 접목시키는 게 중요하죠.”
위험한 것을 즐기고 남들과 다른 것을 해야 하는 달인 캐릭터. 3년여 간 무한변신을 거듭하느라 지칠 법도 한데 그는 “원래 달인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다”고 운을 뗐다.
“초등학교 때 만화책을 보다가 냇가에서 생선을 구워 먹는 장면이 나왔어요. ‘아, 어떤 맛일까’ 너무 궁금한 거예요. 그때 시골에 살았으니까 바로 가까운 개울로 가서 생선을 잡아 나뭇가지로 불을 때 구워 먹었죠. 근데 맛은 진짜 없더라고요.”
그는 어릴 때부터 엉뚱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엔 관심 갖지 않았다. 남들이 할 수 없는 일에만 자꾸 끌렸다. 세 손가락으로 물구나무를 서거나, 아무것도 기대지 않고 물구나무를 선 채 팔굽혀펴기를 여섯 번까지 해낸 적도 있었다. 반에서는 늘 키 번호가 1번이었지만 그의 곁에는 친구들이 끊이지 않았다. 이미 그때부터 될성부른 ‘달인 김병만’이었다.
“가끔 동네 친구들을 만나면 다들 그래요. ‘병만이 너 그렇게 우리 앞에서 별의별 짓 다 해보더니 달인 될 줄 알았다. TV 보니까 우리한테 보여준 거 다 다시 하더라’고 말이죠(웃음).”
숫기는 없었지만 끼는 충만했던 어린 시절, 사람들이 자신을 보며 웃는 것이 좋았고, 웃기는 게 좋아지자 자연스레 꿈이 생겼다. 개그맨이었다.
“어느 날 TV를 보는데 아는 친구가 나왔어요. 학창 시절 판소리 좀 하던 친구였는데 개그를 하고 있었죠. 나보다 웃기지도 않은 친구가 개그맨이 됐는데 ‘난 지금 뭐 하나’ 싶더라고요. 무작정 서울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땐 아무것도 없어서 어머니께 30만원을 빌렸죠.”
그 길로 스물한 살의 김병만은 고향 전북 완주를 떠나 서울로 상경했다. 그러나 꿈을 키우기는커녕 먹고사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건물 파쇄, 신문 배달, 통신업체 일 등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보증금도 없는 월세방을 전전했다. 그러다 개그를 하려면 ‘연기는 기본’이란 생각이 들어 연극판에 뛰어들었다.

남들이 할 수 없다는 일만 골라 하던 유년기
그사이 개그맨 시험에 도전했다가 떨어지길 수차례. ‘꿈을 포기해버릴까’ 하던 찰나 2000년 그에게 선물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이정재·이영애 주연의 영화 ‘선물’에 개그맨 지망생 역으로 오디션을 보게 된 것. 여기서 그의 개그 동지 이수근(36)과 인연을 맺었다.
“오디션에 발탁되고 보니 이수근이란 친구도 뽑혔더군요. 그때부터 수근이랑 친해지면서 개그 아이템을 짰는데 한 영화 관계자가 재밌게 보고서 ‘개콘’ 제작진에 추천해주셨어요. 정말 행운이었어요. 비록 사이드 멤버였지만 개그 무대에 서고, 동지까지 얻었으니까요.”
김병만이 이수근과 친구로 지낸 지 10여 년이 흘렀다. 그러나 단 한 번도 그와 싸운 적이 없다. 가난하고 힘든 시절 서로 의지하며 개그맨의 꿈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둘 다 ‘개콘’ 무대에 올라간 경험은 있었지만 개그맨 시험을 통과하는 건 쉽지 않았어요. 전 2002년에 비로소 7전8기로 붙었지만, 수근이는 ‘더 이상 못하겠다’며 개그맨의 꿈을 포기했죠. 그래서 류담이랑 삼겹살을 사들고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활동하는 수근이를 찾아가 한참을 얘기했어요. 수근이는 기타 치고, 전 옆에서 개그 아이템을 얘기하고…. 밤새도록 무대에 선 우리 모습을 상상했어요. 돌이켜보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죠.”

김병만의 설득으로 이수근은 2003년 KBS 공채 개그맨이 됐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하고 싶어했던 이수근은 ‘1박2일’에 참여하면서 그 꿈을 이뤘다. 김병만은 그런 친구가 마냥 자랑스럽다.
“주변으로부터 ‘왜 수근이처럼 버라이어티는 안 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수근이는 원래 말재주가 좋아 진행자 하는 게 꿈이었어요. 전 무대에서 연기하는 게 좋고요. 지금 서로 가야 할 길을 제대로 걷고 있는 거예요.”

희극 배우의 꿈 이루고 싶어

개그맨 김병만


‘달인’으로 뜨기 전부터 지금까지 그는 쉬어본 적이 없다. 하루 3~4시간만 자고도 ‘달인’ 소품 준비며 프로그램 녹화, 행사 등 해야 할 일들을 모두 마친다. 지난해엔 못다한 학업의 열정을 품어보겠다며 건국대학교 일반대학원 건축공학과에 입학했다.
“학창 시절엔 그렇게 공부가 싫었는데 막상 나이가 들고 보니 공부의 소중함을 느껴요. 늦깎이 대학생으로 학교를 다니다 졸업하면서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개그 무대를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단기간에 빨리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대학원에 들어간 건 아니고 앞으로 5년이든 10년이든 꾸준히 공부해서 해보려고요.”
주변에서 “달인만 하더니 도전 정신만 커졌다”며 만류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다. 방학 중임에도 일주일에 한두 번 학교를 찾아 교수에게 개인 교습을 받고 있다. 그는 “계산하는 게 너무 어렵다고 교수님께 하소연했더니 ‘계산기가 다 해주는데 무슨 걱정이냐’며 다독여주셨다”며 “교수님이나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 덕분에 어떻게든 졸업은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토끼띠인 김병만에게 올 신묘년은 더욱 특별한 한 해가 될 것 같다. 만년 조연이나 카메오 연기만 하던 그가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영화 ‘서유기 리턴즈’가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드라마 ‘종합병원 2’ ‘닥터챔프’ ‘아테나’ 등 여러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하면서 그는 배우로서의 기본기를 착실히 닦아왔다.
“앞으로 개그맨을 넘어 희극 배우로 인정받고 싶어요. 영화 ‘웰컴 투 동막골’로 청룡영화상 남자조연상을 수상하신 임하룡 선배님이 롤 모델입니다. 비중 있는 주연보다 감초 같은 조연으로 활약하는 게 바람이에요. 그래서 카메오 출연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어요. ‘김병만은 뭘 시켜도 잘하는구나’ 할 정도로 연기의 달인이 되고 싶은 게, 지금 제 꿈입니다.”
김병만은 그동안 구상해왔던 슬랩스틱 코미디 단편영화 촬영도 시작할 계획이다. 찰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처럼 단순한 몸 개그를 넘어서 김병만 표 개그를 전하고 싶다는 것. 대사는 최대한 줄이고 몸으로 웃기는 상황을 연출해 “언어와 상관없이 모두가 공감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어떤 목표가 생기면 다른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김병만. 그래서 그는 아직 솔로다. 어느새 30대 후반으로 접어드는 나이, 4남매 중 유일한 아들이기에 부모님이 그의 결혼 소식을 기다릴 법도 한데 그의 어머니는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하고 해도 늦지 않다”고 하셨다고.
“그렇게 살가운 아들은 못 되는데 어머니께선 늘 응원해주시죠. 바쁘다 보니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해요. 가족 때문에 평생 식당일 하며 고생하신 어머니와 병환으로 요양 중인 아버지를 꼭 서울로 모시고 와서 함께 살고 싶어요.”
어느덧 약속한 인터뷰 시간이 지나고 ‘달인’ 리허설 순서가 다가왔다. 이날 그가 보여준 달인은 16년 동안 신문지에서 살아온 ‘노숙의 달인’. 조그마한 신문지 위에서 텀블링을 하고 옷을 갈아입는 몸 개그로 좌중을 사로잡았다.
“무대에 오를 때마다 ‘오늘이 마지막일지 모른다’고 생각해요. 그럴수록 더 열심히 하게 돼요. 달인 김병만이 계속되는 그날까지 노력할 테니 다들 끝까지 지켜봐주시면 좋겠어요.”
리허설을 마친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굳은살투성이의 그의 손은 작지만 따뜻했다. “오늘 진짜 재미있다”고 하자 “정말요? 괜찮았어요?”를 몇 번이고 되물었던 김병만. 덩치 큰 후배 류담과 녹화 준비를 위해 서둘러 대기실로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은 결코 작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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