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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아름다운 동행

세계 일주 첫 한국인 이해욱 김성심 부부 여행예찬

“여행은 진정한 나를 찾는 여정, 죽을 고비 여러 번 넘겼어도 좋고 행복했던 일만 기억 나”

글·김명희 기자 사진·조영철 기자

2010. 12. 16

여행은 설렘과 동의어다. 낯선 곳에서 만나는 새로움과 자유는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이해욱 전 KT 사장은 그 기분 좋은 떨림이 좋아 지구 구석구석을 누빈 끝에 전 세계 모든 독립국가의 땅을 밟았다. 이해욱씨와 그의 평생 동반자이자 여행 파트너인 아내 김성심씨의 세계 일주 여행기.

세계 일주 첫 한국인 이해욱 김성심 부부 여행예찬


“지구 어디까지 가 봤니?”라는 질문에 “다 가봤지”라고 당당히 대답할 수 있는 첫 한국인이 탄생했다. 이해욱 전 KT 사장(72)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지난 3월 남미 가이아나를 끝으로 40년 지구 대장정에 마무리를 지었다. 그가 다녀온 국가는 유엔 가입국에 바티칸 · 코소보 · 팔레스타인을 더한 1백95개국 가운데 우리 정부가 여행을 금지한 아프가니스탄 · 소말리아 ·이라크를 뺀 1백92개국. 지난 10월19일 한국기록원으로부터 국내 최초 세계 일주 기록 인증을 받은 그와, 대부분의 여행에 동행한 아내 김성심씨(71)를 지난 11월 초 만났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자리 잡은 그의 개인 사무실은 여행 관련 서적과 자료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이씨는 여행을 하지 않을 때는 오전 10시 사무실에 출근해 밤 9, 10시까지 이곳에서 여행 자료를 정리하고 또 새로운 여행 계획을 세운다고 한다. 어린시절 우연히 접했던 아우구스티누스의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단지 그 책의 한 페이지만 읽는 것이다’라는 명언 덕분에 여행에 대한 동경을 갖게 됐다는 그에게 ‘지구’라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들춰 본 소감을 물었다.

언젠가는 꼭 한번 부부 동반 여행해 보자는 꿈이 은퇴 후 세계 여행으로 이끌어
“마지막 여행지였던 가이아나에서 돌아오면서 그간 여행지에서 겪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더군요. 죽을 뻔한 고비도 몇 번 겪었고, 스케줄이 꼬여 낭패를 당한 적도 있고, 말이 통하지 않아 애를 먹은 적도 많았지만 이상하게도 고생한 기억은 다 잊어버리고 아름다웠던 풍경, 즐거웠던 일만 생각이 납니다. 그게 여행지에서 돌아와서 또 짐을 꾸리는 원동력이 됐죠.”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흔히 보헤미안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씨는 서울대 상대 졸업 후 행정고시 1회 합격, 체신부 우정국장과 차관 등을 거쳐 4년간 KT 사장을 지낸 전형적인 엘리트다. 성격도 치밀하고 꼼꼼해 지난 71년 첫 여행지부터 올해 마지막 여행지까지 출입국 기록이며 비행기 편, 숙소까지 정확하게 기록해 두었는데 이는 이번에 여행 기록을 인증 받을 때 중요한 자료가 됐다. 김씨 역시 35년간 산부인과 전문의로 일했다. 여느 맞벌이 부부처럼 하루하루 바쁘고 치열하게 살면서 ‘언젠가는 꼭 세계여행을 해보자’고 다짐하던 부부는 이씨가 KT에서 은퇴한 직후인 1993년 6월, 배낭을 메고 유럽 여행에 나섰다.
“사실 저는 출장이다, 연수다 해서 해외에 나갈 기회가 종종 있었습니다. 아내 역시 해외에서 열리는 세미나가 많았지만, 공직 생활을 하는 동안 괜히 남들 입에 오르내릴까 싶어 늘 부부가 함께하는 걸 포기했죠. 그런 고마운 아내와 함께 젊은 시절 늘 얘기하던 그런 여행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부부는 비행기표와 유레일패스만 들고 최대한 가볍게 길을 나섰다. 숙소도 에어컨 나오고 샤워 시설이 갖춰진 곳이라면 더 따지지 않았다. 숙소에 짐을 맡기고,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도시 곳곳을 살피고 박물관 미술관을 둘러봤다. 로마의 트레비 광장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파리의 샹젤리제를 손잡고 걸으며 두 사람은 한국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자유로움과 이국적 풍경에 매료됐고 이는 다음 여행지인 남미로 두 사람을 이끌었다. 중남미는 워낙 먼 곳이라 여러 번 가기 힘들 거라는 생각에 지도를 펴놓고 구역을 세 개로 나눈 뒤 그 선 안에 포함된 나라와 도시는 모두 가보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보기 좋은 곳, 편리한 곳, 유명한 곳만 선별하는 것이 아니라 어렵고 힘들더라도 모든 곳을 정복하는 게 목표였다.
“그때 저희 나이가 50대 중반이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젊을 때 멀고 험한 곳을 먼저 둘러보자는 마음가짐으로 남미를 택했죠. 당시만 해도 동서 냉전의 잔재가 남아 있어 세계여행은 꿈도 꿀 수 없었지만 제 잠재의식 속에는 막연하게나마 그런 열망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곳에선 아르헨티나의 탱고, 갈라파고스의 때 묻지 않은 자연, 과테말라의 마야 유적지와 인디언 민속시장이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부부는 세 번의 배낭여행과 한 차례의 패키지여행으로 중남미를 훑었다. 그러고도 가지 못했던 아이티는 지진이 나서 폐허가 되기 두 달 전인 2009년 11월 극적으로 다녀왔고, 마지막 여행지가 된 가이아나는 지난 3월 다녀왔다.
“아이티는 아프리카에서 강제 이주한 흑인 노예들의 후손이 세운, 슬픈 역사가 깃든 곳입니다. 포르토프랭스의 아름다운 대통령궁도 지진으로 붕괴돼 더 이상 볼 수 없게 돼 아쉬울 뿐이죠.”

가장 힘들었던 아프리카, 그래서 더 많이 기억에 남아
남미까지 돌아보고 나자 치안이 확보된 곳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그 다음엔 남태평양에 있는 작은 섬나라 도전에 나섰다. 이곳은 한국 교민이 거의 살지 않는데다가 여행 정보도 구하기 힘든 곳이라 우여곡절이 많았다. 무비자국가인 줄 알고 찾아갔던 퉁가에서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추방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난관도 부부의 여행 의지를 꺾지 못했다. 부부는 그럴 때마다 ‘다음엔 더 철저하게 준비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곤 한다고. 사실 해외여행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요소는 불확실성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 혼자 떨어진다는 불안감, 언제 어떤 어려움과 맞닥뜨리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는 여행을 망설이게 만든다. 이씨의 경우에는 1979년 출장차 떠났다가 우연찮게 기회가 닿은 남미여행에서 여행 중 겪을 수 있는 모든 불행한 일을 다 겪었고, 그 덕분에 톡톡히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출장지인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출발해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거쳐 산티아고를 둘러보고 LA를 경유해 돌아오는 일정이었어요.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는 순탄했는데, 그만 산티아고에서 짐을 잃어버리고 브라질 여행사 직원의 실수로 운행되지 않는 비행기표(산티아고-LA 노선)를 발급 받은 데다 현지 사람들과 말도 통하지 않아 애를 많이 먹었죠. 바디랭귀지로 산티아고 인터폴에게 ‘한국에서 온 여행자인데 숙소 구하는 걸 도와 달라’고 요청했더니, ‘피융’ 총 쏘는 시늉을 하는 겁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다음날 현지 신문 1면에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 보도됐더라고요. 힘들었지만 교훈도 많이 얻은 여행이었죠.”
그런 그도 아프리카 여행만큼은 쉽지 않았다. 일단 한국에선 남아프리카공화국, 나이지리아 등 몇몇 큰 나라를 제외하고는 아프리카 여행을 갈 수 있는 경로가 거의 없다. 여행 중 만난 외국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미국이나 유럽을 통해 가는 방법도 모색했지만 그래도 모든 국가를 돌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묘수가 일본 여행사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일본에는 아프리카 오지 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소규모 여행사가 제법 있었던 것. 다만 위험한 곳이라 이씨만 다녀오기로 했다. 그렇게 일본 여행객들과 함께 4년간에 걸쳐 중서부 아프리카까지 돌아볼 수 있었다.
“가장 힘들었던 곳이 아프리카입니다. 여행 경로를 찾는 것부터 쉽지 않았고, 케냐 접경국인 베냉에서는 치한에게 납치된 적도 있습니다. 또 2006년 수단에 다녀온 뒤에는 패혈증에 걸려 생사의 갈림길에 선 적도 있죠. 그럼에도 여러 여행지 중에 아프리카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자연과 사람들 모두 본연의 순수한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또 서아프리카 해안에는 노예 수출을 위한 요새들이 여럿 있는데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끔찍한 일을 되새겨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패키지여행으로도 커버할 수 없는 아프리카까지 몇 번씩이나 다녀왔다니, 이쯤에서 여행경비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은퇴 후에는 더군다나 목돈 마련이 쉽지 않았을 텐데, 부부는 어떻게 경비를 마련했을까.
“그동안 모아놓은 돈과 연금, 아내가 병원을 그만두면서 건물을 임대해서 생긴 비용을 여행에 투자했죠. 계산해 보지는 않았지만, 다른 분들이 생각하시는 만큼 돈이 많이 들지는 않았어요. 되도록이면 배낭여행을 했고 현지에서도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했어요. 또 찾아보면 지역마다 교통비, 숙박비를 절약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어서 그런 것들을 최대한 활용했죠.”(이해욱)
“그 돈을 아꼈더라면 아마 생활비에 보탰겠죠? 골프도 치고 좋은 차도 타고 다니고…, 그런데 그랬더라면 지금처럼 큰 즐거움은 누리지 못했을 것 같아요.”(김성심)

세계 일주 첫 한국인 이해욱 김성심 부부 여행예찬

1 인도 북부 라다크에 있는 티베트 불교 사원. 2 서아프리카 말리공화국 니젤강가에서 박을 파는 여인. 3 말리 젠네 그랜드 모스크. 진흙으로 만든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4 아프리카 아이들과 함께한 부부.





여행 통해 빈 곳 채우고 몰입의 즐거움 알게 돼

세계 일주 첫 한국인 이해욱 김성심 부부 여행예찬


아무리 친한 친구 사이도 함께 여행을 하다 보면 우정에 금이 가기 십상이다. 둘 중 한사람이 어깃장을 놓거나 까탈을 부리면 여행의 재미는커녕 짜증만 쌓이게 된다. 하지만 이씨 부부는 여행지에서 단 한번도 싸운 적이 없다고 한다. 금슬도 좋지만, 두 사람의 유전자에는 여행 DNA가 깊이 각인돼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씨의 어머니는 고교시절 꿈을 적어내라는 숙제에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할 ‘세계여행’을 적어 교사를 깜짝 놀라게 했다고 한다. 이씨는 지난 10월 인증서를 받은 직후 어머니의 묘소를 찾았다. 자신의 세계 일주 여행을 가장 기뻐하실 분이 어머니일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김씨 역시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여행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 김준섭 전 서울대 문리대 학장은 국비유학생으로 미국 콜럼비아대에서 공부를 했는데, 학업을 마쳤을 때 마침 6·25 전쟁이 발발해 귀국이 어렵게 됐다고 한다.
“그때 아버지가 어머니께 편지를 보내셨대요. ‘아껴 쓰고 남은 장학금이 있는데, 생활비로 보태 쓰겠소? 아니면 내가 그 돈으로 유럽 여행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소만…’(웃음). 아버지 마음을 헤아린 어머니가 여행을 하고 오라고 하셨대요. 돌아가실 무렵엔 혈압이 높아 거동이 불편하신데도 자신이 공부하셨던 콜럼비아대 강의실에 꼭 한번 다시 가 보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가시면 더 건강이 악화될 것 같고, 안 가시면 마음에 응어리가 남을 것 같아 고민 끝에 모시고 갔는데 강의실이며 책상까지 아버지 공부할 때와 하나도 변함없이 그대로 남아 있더라고요. 그걸 보시고 흐뭇해하시는 아버지를 뵙고는 ‘오기를 잘했구나’ 생각하는데, 아버지가 내친 김에 ‘남미까지 둘러보고 가자’고 하셔서 당황했었죠(웃음).”
일상생활에서도 여행지에서와 마찬가지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소박하고 소탈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이씨 부부는 돈이 없어서, 혹은 시간이 없어서 여행을 망설이는 인생 후배들에게 일단 떠나 보라고 권한다. 젊은이들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중장년층은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부부의 조언이다.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순간순간 몰입하며 행복을 느끼고 하루하루 새롭게 살 수 있다는 점입니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은 호기심과 열정이 생기고 그런 것들이 모이면 삶의 활력이 되죠.”
직장에서건 학교에서건 나날이 경쟁이 치열해지고 사람들 사이에서 여유라곤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마당에 외국에까지 눈 돌리기 벅차다는 하소연에 이씨 부부는 “한 곳에 머물기를 고집할수록 사는 게 오히려 더 힘들어진다”고 말한다.

세계 일주 첫 한국인 이해욱 김성심 부부 여행예찬


“세상은 당신이 걷고 있는 길이 전부가 아닙니다. 경쟁에서 지면 낙오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찾아보면 어디엔가 또 다른 길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요즘 같이 평균 수명이 길어지는 때에는 인생을 효율적으로 배분해서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앞으로 갈 길을 다시금 점검하는 데는 여행만큼 좋은 게 없는 것 같아요. 제 경우엔 늘 대접만 받는 생활에 익숙해 있었는데 여행을 통해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낮게 사는 법’을 배우게 됐죠.”
여행서 집필을 위해 잠시 여행을 쉬고 있는 이씨 부부는 그 일이 마무리되면 다시금 신발 끈을 묶고 여행에 나설 계획이다. 부부의 마음속엔 아직도 닿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꿈틀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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