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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COOKING SPECIAL

햇곡식으로 차린 종가 밥상

서계 박세당 종가 12대 종부 김인순 여사의 손맛 공개

진행 조윤희 사진 현일수 기자

2010. 10. 20

햇곡식으로 차린 종가 밥상


경기도 구리시 초입 수락산 끝자락, 도봉산이 한눈에 들어와 시야가 탁 트인 그 곳에 반남(潘南) 박(朴)씨 서계 박세당 선생 종가가 있다. 박세당은 조선 후기 학자이자 문신이며 실학 선구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당쟁과 유학자들의 정치 논란에 염증을 느낀 그는 39세에 수락산 아래 정착해 책을 쓰고 제자를 가르치며 나머지 생을 보냈고, 그의 종손들이 대대로 종가를 지키며 살아왔다. 그 종가가 바로 서계 종택이다. 서계 당대에는 집터만 1천여 평으로 안채와 안사랑, 바깥사랑, 행랑채로 이뤄진 조선 후기 사대부가의 전통적 구조를 갖추고 있었지만, 6.25전쟁을 겪으며 상당수 건물이 소실돼 지금은 사당이 있는 영각과 고풍스런 사랑채만 남아 있다. 1999년 박세당 고택은 경기도 전통종가 1호로 지정됐고, 지금은 서계 선생의 12대 종손 박용우 서계문화재단 이사장(58)과 종부 김인순 여사(56)가 고택을 지키고 있다.
“사랑채는 지은 지 3백 년 정도 됐다고 합니다. 기와에 물이 새면서 지난 2000년 지붕을 다시 올린 것을 제외하고는 옛날 모습 그대로지요. 사랑채 앞마당의 4백20년 된 은행나무가 우리 집안의 내력을 모두 지켜보았을 겁니다.”
여느 고택들과 달리 종택의 대청마루와 문지방은 반질반질 윤이 나고 사람이 살고 있는 듯 온기가 남아 있다. 돌아가신 11대 종손 박찬호 옹이 지난해까지 기거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종친들이 오면 머물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장소가 바로 이 사랑채다. 고택 왼편에는 손님맞이를 위해 음식을 하고, 쉬어갈 수 있게 만든 작은 별채가있고, 큰 마당 건너에 종손과 종부가 기거하는 안채가 있다. 종부 김인순씨가 이곳 살림집과 별채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가며 손님을 맞는다.
“제사가 일 년이면 열두 번, 10월에 시제를 지내고, 추석과 설 명절까지 있으니 제사상 차리는 것만으로도 1년이 빠르게 지나가요. 종부로서 일도 많고 힘이 들 때도 있지만 집을 잘 보존한 덕에 다른 종가에서 다들 부러워하지요. 집과 전통을 잘 지켰다고 주위에서 인정받을 때 종부로서 보람을 느껴요.”

햇곡식으로 차린 종가 밥상

1 3 4 5 경기도 전통종가 1호로 지정된 서계 종택의 고풍스러운 모습. 2 음식을 뚝딱 만들어 내는 손맛 좋은 종부 김인순 여사.



쉽지 않지만 즐거운 종부의 일
김씨는 당시로는 늦은 나이인 27세에 시집을 왔다. 제사도 많고, 끊이지 않는 손님들로 인해 첫아이 낳을 때까지 대문 밖 출입도 못 했을 정도다. 그렇게 30년이 흐르고 시어머니에게 종가 살림을 물려받았다. 매일 북적대는 손님을 대접하느라 다과상을 내고 밥상 차리는 일이 쉽지 않을 법하지만, 그는 ‘우리 먹는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놓으면 된다. 내 식구 먹일 음식 만드는 일이니 즐겁게 해야 한다’며 웃는다. 하루에 해야 할 일도 많고, 손님도 끊이지 않다 보니 할 일을 순서를 정해 하나씩 착착 해나가는 게 이제는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다.
김인순 종부는 손이 참 빠르다. 촬영 당일 이른 아침임에도 도착해보니 어느새 전도 떡도 밥도 다 준비돼 있다. 손이 많이 가는 녹두편조차 순식간에 찌고 순두부도 콩나물국보다 쉽게 만든다.
그는 종가 음식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다고 한다. 여느 가정과 같은 보통의 경기도 음식이다. 다른 점은 제사 음식으로 제사상에 잡채와 식혜, 생간과 천엽을 올린다는 것.
워낙 많은 상을 차리다 보니 음식 솜씨는 절로 생겼다. 손맛 좋은 친정어머니의 음식 솜씨를 물려받은 것도 한몫했다. 젊어서는 끼니마다 시어머니가 내주시는 재료를 받아 음식을 만들어 올렸다.
“종부의 가장 큰 일은 부모님을 섬기는 거예요. 돌아가신 조상의 뜻을 기리고 잇는 것이지요. 제가 잘해야 자손들 모두 잘되는 것이고요. 반대로 자손은 부모님께 효도해야 해요. 우리 종가에서는 자손이 돈을 벌기 시작하면 자기 생일에 부모님께 선물하는 가풍이 있어요.”
그는 부모가 잘하는 것을 보여줘야 자손도 부모에게 효도한다고 강조한다. “하루 한 번 얼굴 보여주는 것도 효도라며 떨어져 살더라도 자주 부모님을 찾아뵈라”고 말한다.
“종부는 무엇보다 손님 맞는 것을 즐겨야 해요. 사람을 좋아해야 일은 힘들어도 웃음이 나온답니다. 제가 이제 할 일은 심성 고운 며느리에게 종부의 일을 잘 물려주는 것이지요”

“가을에 나오는 햇밤, 대추, 은행, 검은콩을 듬뿍 넣고 가마솥에 밥을 지으면 달고 맛있어요. 특히 입맛 없을 때 입맛을 돌게 하는 우리 집 보양식이지요. 즐겨 내는 음식이라 콩과 견과류는 항상 냉장고에 넣어 둔답니다.”



가마솥영양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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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재료
쌀·물 2컵씩, 밤·검은콩·은행·대추 한 줌씩
만들기
1 쌀은 씻어서 1시간 정도 불린다.
2 밤은 반으로 썰고, 검은콩은 물에 불리고, 은행은 껍질을 벗긴다. 대추는 씻어 씨를 빼고 4등분한다.
3 가마솥에 쌀과 밤, 검은콩, 은행, 대추를 넣고 쌀과 동량의 물을 부어 불에 올린다.
4 한 번 끓어오르면 뚜껑을 열고 주걱으로 섞은 뒤 불을 약하게 줄여 뜸을 들인다. 뚜껑은 살짝 비껴놓아야 밥물이 넘치지 않는다.
5 10분 정도 충분히 뜸을 들인 후 다시 한 번 밥을 섞은 뒤 뚜껑을 완전히 덮고 잠시 더 불에 올려두었다가 불을 끈다.

“종가다 보니 손님이 끊이지 않아 술상 차릴 일도 많죠. 가을에는 햇녹두를 갈아 김치와 돼지고기 넣고 전을 부치는데, 팬에 잘게 썬 삼겹살을 함께 구우며 부치면 돼지기름이 배어 맛이 더 고소하답니다.”

녹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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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재료
녹두 500g, 쌀 한 줌, 돼지고기 300g, 묵은 배추김치 ½포기, 대파 3대, 양파 2개, 다진 마늘 1큰술, 깨소금·소금 약간씩, 식용유 적당량, 삼겹살 100g
만들기
1 녹두는 씻어서 2~3시간 정도 물에 담가 불렸다가 쌀과 함께 믹서기에 넣고 물을 부어 곱게 간다.
2 돼지고기는 손톱 크기로 납작하게 썬다.
3 김치는 물에 헹궈 양념을 훑어내고 꼭 짠 뒤 송송 썬다.
4 대파는 어슷하게 썰고, 양파는 채썬다.
5 돼지고기, 김치, 대파, 양파를 한데 담고 다진 마늘, 깨소금, 소금을 넣고 충분히 주물러 섞는다.
6 ①에 ⑤를 넣어 섞는다. 전을 부치기 직전에 섞어야 녹두가 삭지 않는다.
7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달군 뒤 녹두반죽을 한두 국자를 떠놓고 넓적하고 도톰하게 전을 부친다. 삼겹살을 잘게 썰어 팬 가장자리에서 함께 구우면 삼겹살 기름이 섞여 녹두전이 더 고소하고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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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직접 꺾은 고사리를 말려서 사용해요. 불려서 볶으면 달고 아삭하게 씹는 맛이 좋지요. 국물이 바짝 졸아들 때까지 은근한 불에 오래 볶아야 해요.”

고사리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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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재료
고사리 300g, 쇠고기 50g, 다진 파 2큰술, 다진 마늘 1작은술, 국간장 1큰술, 후춧가루 약간, 들기름 적당량
만들기
1 고사리는 물에 불려 씻은 뒤 물기를 대충 짜고 손가락 길이로 썬다. 쇠고기는 채썬다.
2 고사리와 쇠고기를 한데 담고 다진 파, 다진 마늘, 국간장, 후춧가루를 넣고 조물조물 무친다.
3 오목한 팬에 들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②를 넣어 볶는다. 처음에는 국물이 생기지만 약한 불에 계속 볶으면 고사리와 쇠고기가 익으면서 국물이 졸아든다.

“친정아버님이 좋아하셨던 음식인데, 종가에 시집 와서 손님을 치르며 제가 즐겨 하는 음식이 됐어요. 햇콩을 갈아서 만들면 더 고소하지요. 순두부가 엉기면 바로 먹어야 맛있답니다.”

순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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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재료
흰콩 500g, 간수 1큰술, 양념장(국간장·간장·물 ⅓컵씩, 다진 파·다진 마늘·고춧가루 적당량씩, 참기름·깨소금 1큰술씩)
만들기
1 콩은 씻어서 3~4시간 불린 뒤 믹서기에 넣고 물을 약간 부어 걸쭉하게 간다.
2 ①에 2배 정도 분량의 끓는 물을 부어 섞는다.
3 체에 면보를 깔고 ②를 부어 콩물만 밭는다. 면보에 남은 것도 꼭 짠다.
4 ③을 냄비에 붓고 한소끔 끓인다. 콩 비린내가 가실 정도로 끓이면 된다.
5 콩물 끓인 것을 그대로 두어 한김 나가면 간수를 섞는다. 콩물이 엉기면서 순두부가 된다.
6 분량의 재료를 섞어 양념장을 만들고 뜨거운 순두부와 함께 낸다.

“제 동서가 ‘형님은 밥보다 떡을 빨리 한다’고 할 정도로 저는 떡을 자주 하고 빨리 하죠. 보통은 시루떡을 하는데, 요즘은 녹두가 좋아서 녹두편을 했어요. 떡은 충분히 뜸을 들여야 쫄깃하고 촉촉하답니다.”
녹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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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재료
쌀 1.6kg, 녹두 500g, 소금 1~1½큰술, 밀가루 2~3컵
만들기
1 쌀은 씻어 2시간 정도 불렸다가 방앗간에서 가루를 내온다.
2 녹두는 물에 3~4시간 불린다. 찜기에 면보를 깔고 불린 녹두를 넣어 20~30분 정도 찐다.
3 찐 녹두에 소금을 넣어 간을 한 뒤 고운 체에 내려 녹두가루를 낸다.
4 시루에 한지와 시루밑을 깔고 녹두가루를 한 줌 살살 펴넣고 쌀가루를 3~4cm 정도 올리고, 다시 녹두와 쌀가루 순으로 켜켜이 안친다. 맨 위에는 다시 녹두가루를 뿌려 얇게 한 켜를 덮는다.
5 밀가루에 물을 조금 붓고 반죽한 뒤 시루를 한 번 두를 정도로 길고 납작하게 시루번을 빚는다.
6 냄비에 물을 ⅓높이로 붓고 시루를 올린 뒤 시루와 냄비 사이에 시루번을 붙인다.
7 ⑥을 불에 올려 떡을 찐다. 김이 올라오면 면보로 시루를 덮고 떡이 익을 때까지 불을 줄여 뜸을 들인다.
8 충분히 뜸이 들면 불을 끄고 잠시 그대로 두었다가 시루를 뒤집는다. 시루 윗면에 큰 접시를 대고 시루를 뒤집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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