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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이 남자의 야망

세계적인 요리사 에드워드 권 ‘내 인생의 레시피’

“‘독종’으로 불리며 일궈낸 성공, 호텔리어 출신 아내와 두 아들 이야기”

글 김유림 기자 사진 지호영 기자 || ■장소협찬 에디스 카페

2009. 11. 24

그가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에게 “미쳤다”고 말했다. 세계가 올려다보는 아랍의 탑, 버즈알아랍 호텔 수석총괄조리장은 아무나 오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그는 더 큰 도전을 위해 고국으로 돌아왔다. 강원도 산골 소년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스타 셰프로 자리매김한 에드워드 권. 그의 삶은 열정과 도전으로 버무려져 있기에 더욱 맛깔스럽다.

세계적인 요리사 에드워드 권 ‘내 인생의 레시피’

자신을 뛰어넘는 세계적인 스타 셰프 발굴을 목표로 앞으로 더욱 바쁘게 살겠다는 에드워드 권.



2006년 KBS ‘지구촌 한국인 젊은 그대’를 통해 국내에서도 유명세를 얻은 스타 셰프 에드워드 권(본명 권영민·38). 당시 두바이 최고급 7성급 호텔, 버즈알아랍에서 2백여 명의 셰프를 이끄는 그의 모습은 열정과 카리스마 그 자체였다. 이후 TV 광고에까지 출연하며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요리사로 명성을 떨친 그가 얼마 전 고국으로 돌아왔다. 반가운 마음과 함께 ‘도대체 왜?’란 의문이 들었다.
이른 아침, 서울 반포동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영업 준비로 분주한 그를 만났다. 스타 셰프가 오픈한 식당이라 규모부터 다를 거라 생각했지만, 그곳은 백화점 푸드코트 옆 자그마한 카페식 레스토랑이었다. 그의 옷차림도 식당 분위기에 맞게 가벼웠다. 환한 미소로 인사를 건넨 그는 인터뷰가 시작되자 하나를 물으면 열을 답하는 열정을 보였다.
지난 6월 그가 버즈알아랍 호텔 수석총괄조리장 자리를 버리고 서울행을 택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한식의 세계화. 에드워드 권은 “이제는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시작해야 할 때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자 주위 사람들 대부분이 ‘미쳤다’고 했어요(웃음). 버즈알아랍 호텔과 종신계약을 했기에 정년까지 있을 수 있었거든요. 아내 역시 두바이를 떠나는 걸 무척 아쉬워했죠. 7성급 호텔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건 꽤나 큰 특권이니까요. 하지만 인생 자체가 도전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그는 많은 일을 시작했다. 레스토랑을 세 곳에 오픈했고, TV 요리 프로그램 진행을 두 개 맡았다. 그중 케이블채널 QTV ‘에드워드 권의 예스 셰프’는 요리사 양성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최종 미션을 통과한 우승자는 그의 수제자가 돼 그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일할 기회를 얻는다. 방송에서 도전자들에게 거침없이 독설을 퍼붓는 그의 모습이 사뭇 인상적이다.
“첫 방송 나가자마자 게시판에 항의 글이 많이 올라왔어요. 제가 출연자들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불손하다는 거죠. 하지만 실제로 주방은 전쟁터나 마찬가지예요. 온갖 위험한 요소가 다 있기 때문에 잠시라도 정신을 놓으면 대형사고가 터지거든요. 뜨거운 물과 기름, 불, 날카로운 칼을 다루는 직업인 만큼 훌륭한 요리사는 카리스마와 통솔력을 갖춰야 해요.”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요리 사관학교’ 설립이다. 일본만 하더라도 전 세계 요리지망생들을 불러모으는 유수의 요리학교가 넘쳐난다. 권 셰프는 “한식 세계화를 위해서는 외국인들이 직접 한국에 와서 한국을 이해하고 한식을 다양한 요리에 접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요리를 공부할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어요. 그러면 외국인도 요리를 배우러 한국에 올 것이고, 이는 한식 세계화로 연결될 수 있죠. 물론 세계적인 한국인 셰프를 배출하는 게 급선무예요. 10년 넘게 해외에서 생활을 하면서 우리나라 사람만큼 음식솜씨가 좋고 열정적인 사람이 없다는 걸 느꼈어요. 미국에서 두바이로 갈 때 제 밑으로 12명의 한국인 셰프를 데리고 갔는데, 처음에는 ‘한국인 마피아 조직이라도 만들 작정이냐’며 비아냥대던 사람들이 금세 한국인의 솜씨에 감탄하더라고요. 덕분에 최근 두바이에서는 한국인 셰프에 대한 인식이 아주 좋아지고 있어요.”
그가 처음 버즈알아랍 호텔 총주방장으로 갔을 때 그의 요리를 맛본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의 국적이 논쟁거리였다고 한다. 한국인일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중국인이다, 일본인이다” 하며 갑론을박을 벌였던 것. 심지어 호텔 총지배인에게 ‘총주방장이 한국인이 맞냐’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낸 사람도 있다고 한다.
세계 각국의 유명 인사들이 쏟아낸 그의 요리에 대한 칭송 또한 대단하다. 팝스타 마돈나는 “This food is better than sex”라 말했고, 바버라 스트라이샌드는 그에게 자신의 개인 요리사가 돼달라고 청한 바 있다. 그 밖에 베컴 부부, 영화배우 피어스 브로스넌, 아놀드 슈워제너거, 샤론 스톤, 조지 클루니, 레어나르도 디캐프리오와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등도 그의 요리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VIP들은 입맛이 까다롭다. 국가원수급의 메뉴는 비서관이 몇 달 전부터 예약을 한다고. 선호하는 와인, 우유의 지방 함유량까지 꼼꼼하게 따져 식탁에 올려야 한다.
강원도 영월 출신인 그의 어린 시절 꿈은 사제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장손으로서 대를 끊어서는 안 된다는 할머니의 반대로 꿈을 이루지 못한 그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집을 뛰쳐나와 서울 화양동 한 경양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주방일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다.
“접시도 닦고 양파 껍질도 벗기면서 주방장 보조 노릇을 했죠. 처음에는 재수를 할 생각으로 서울에 왔는데, 아르바이트 해서 번 돈으로 친구들과 술 마시고 놀면서 시간을 흘려보냈어요(웃음). 그러던 어느 날 고향 친구한테 전화가 왔는데, 저에게 입영통지서가 날아왔다며 군대에 안 가면 영창을 간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가출한 지 8개월 만에 고향으로 내려갔어요.”
한창 놀기 좋아했던 그는 대학생이 되면 군 입대를 연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부랴부랴 대입시험을 준비, 이듬해 영동전문대학 호텔조리학과에 입학했다. 군대에 다녀와서는 졸업을 앞두고 서울 리츠칼튼 호텔에서 수습할 기회를 얻었다. 그때부터 그의 악바리 근성이 발동했다. 밤잠을 줄여가며 성실하게 일한 덕분에 총주방장의 눈에 띄어 수습을 마친 뒤 정직원으로 발탁된 것.

가출 후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주방일
그가 세계적인 요리사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건 미국으로 건너가면서다. 입사 5년 만인 2000년 리츠칼튼 샌프란시스코 호텔로 옮겨간 그는 3년 만에 한국인 최초로 미국요리사협회가 선정한 ‘젊은 요리사 10’에 뽑혔다. 하루 18시간 일하며 앞만 보고 달려온 결과였다.
“미국 가기 2년 전부터 새벽에 학원을 다니며 영어공부를 했지만 출근 첫날부터 언어 장벽에 부딪혔어요. 말이 안 되니까 몸으로라도 때우자(?)는 심정으로 열심히 일했죠. 동료가 단칼에 해고되는 모습을 보니까 더욱 불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더군다나 아내가 임신 중이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별 보고 출근해서 별 보고 퇴근하는 생활을 당연하게 여겼죠.”
하지만 그의 동료들은 시간외수당을 받지도 않고, 휴일을 반납하면서까지 일에 몰두하는 그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주먹이 오가며 싸우기도 많이 했다고.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동료들을 집으로 초대해 술을 마시며 자신이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 뒤 도와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동료들은 직접 그의 노트에 영어로 레시피를 적어주는 등 친절을 베풀었다.
회사 역시 그에게 열심히 일한 대가로 4단계를 뛰어넘은 초고속 승진을 선물했다. 보통 한 단계 승진하는 데 2~3년이 걸리는 걸 생각하면 파격인사가 아닐 수 없다. 이후 그는 리츠칼튼 하프문베이 호텔조리과장을 거치며 세계적인 셰프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2004년 서울 W호텔 오픈과 동시에 부총주방장으로 스카우트됐고 1년 뒤에는 중국 톈진 셰라톤그랜드 호텔 총주방장으로, 이듬해에는 두바이 페이몬트 호텔 수석총괄주방장으로, 그리고 버즈알아랍 호텔 수석총괄조리장으로 활동무대를 옮겼다.

세계적인 요리사 에드워드 권 ‘내 인생의 레시피’

세계적인 요리사라고 해서 비싼 음식만 만드는 건 아니다. 비록 8천원 하는 스프와 샐러드지만 그 안에는 에드워드 권의 자존심이 버무려져 있다.


시골 할머니의 구수한 손맛 배우고 싶어
스스로를 ‘워커홀릭’이라 부르는 에드워드 권. 그의 곁에는 언제나 묵묵히 그를 응원해주는 가족이 있다. 올해로 결혼 9년째인 그는 첫 직장에서 아내를 만났다. 당시 아내는 호텔세일즈 마케팅팀을 담당하는 상사였다. 나이도 그보다 한 살 연상이다. 두 사람은 연애를 시작한 지 90일 만에 결혼식을 올리고, 1백일이 되는 날 미국으로 떠났다. 그는 외국 생활에 적응할 틈도 없이 곧장 일터로 나갔고, 아내는 새벽이 다 돼야 집에 들어오는 남편을 그저 믿고 응원해줬다고 한다. 그는 “늘 아내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신혼여행을 못 갔어요. 외국에서 오래 생활하긴 했지만 일만 하느라 여행다운 여행을 못했거든요. 아내가 이해를 해줬기 때문에 일도 마음 놓고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내는 누구보다 제 꿈을 잘 알고 용기를 주는 사람이에요.”
그는 그동안 남편 노릇뿐 아니라 아빠 노릇도 제대로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아이들의 노는 모습보다 잠자는 모습을 볼 때가 더 많았다고. 아홉 살, 네 살배기인 두 아들은 못 말리는 개구쟁이라고 한다.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은데, 앞으로 몇 년 동안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정해진 출퇴근 시간은 없지만 해야 할 일이 꽤 많거든요. 식당 세 곳을 관리해야 하고, 방송 스케줄에, 강의 등 한국에 오니까 더 바빠요. 무엇보다도 집에 있으면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어디라도 나가려고 해요. 얼마 전에도 모처럼 쉬는 날이었는데 아내한테 ‘딱 한 시간만 나갔다 오겠다’고 하고는 레스토랑 문 닫을 때까지 일했어요(웃음).”
스타 셰프 발굴을 위해 앞장서고 있는 그는 아들이 자신의 뒤를 이어 요리사가 되겠다고 하면 흔쾌히 도와줄 생각이라고 한다. 그는 “아이가 자부심을 갖고 요리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외식문화를 바꿔놓겠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고급 레스토랑이 아닌 캐주얼한 카페식 레스토랑을 오픈한다고 하니까 다들 놀라더라고요. 에드워드 권이 그 정도에 만족하냐는 거죠. 하지만 비싼 게 최고는 아니에요. 지금 팔고 있는 샐러드와 수프가 8천원인데, 질이나 맛에 있어서 조금도 뒤처지지 않는다고 자부해요. 대중적인 음식부터 시작해서 점차 고급스러운 음식으로 발전시킬 생각이에요. 그래야만 우리나라 음식문화도 발전할 거라 생각하고요.”
그의 창작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적어도 일주일에 세 번 서점에 들러 다양한 책을 본다는 그는 요리 정보가 가득한 여성지 마니아다. 평범한 주부들의 톡톡 튀는 레시피를 보고 무릎을 칠 때가 많다는 것. 그는 “프랑스 요리가 전문이다 보니 우리나라 식재료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 신세대 주부들의 비밀 레시피, 시골 할머니의 구수한 손맛 등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두려움을 안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 에드워드 권. 그는 자신을 동경하는 많은 젊은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한다. “꿈을 이루고 싶다면 준비하는 사람이 되라.” 이는 에드워드 권, 그 자신의 성공 비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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