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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여자로 태어난‘조금’다른 남자 다큐 영화 ‘3×FTM’주인공

“성전환 과정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스스로를 사랑하기 위한 선택”

글 이설 기자 | 사진 연분홍치마 제공

2009. 07. 21

트랜스젠더는 타고난 성(性)의 반대 성을 지향한다. 이들에 대한 사회의 관심은 미약하고 배려는 각박하다. 특히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을 한 자에 대한 이해는 극히 부족하다.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 영화 ‘3×FTM’ 세 주인공의 애환과 고민, 그리고 꿈.

여자로 태어난‘조금’다른 남자 다큐 영화 ‘3×FTM’주인공


‘쓰리 엑스 FTM?’ ‘쓰리 곱하기 FTM?’
6월4일 개봉한 김일란 감독의 영화 ‘3×FTM’. 적지 않은 이들이 제목 해독에 곤란을 겪었을 것이다. FTM이란 ‘Female Toward Male Transgender’의 줄임말. 여성으로 태어나 성전환수술을 통해 남성의 삶을 지향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용어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MTF) 방송인 하리수의 반대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영화는 FTM 3명의 고민과 일상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았다.
고종우, 김명진, 한무지. 세 주인공은 남자처럼 짧은 헤어스타일에 남자처럼 물을 튀겨가며 세수하고 남자처럼 껄렁하게 친구들과 ‘이놈’이라 호칭한다. 하지만 ‘남자처럼’으로 통하는 외모와 행동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남자가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으로 태어나 ‘남자가 되어가는 중’이다.
6월13일 서울 광화문 미로스페이스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주인공 가운데 두 명인 김명진, 한무지씨를 만났다. 이 자리와 영화에서 털어놓은 속내를 토대로 FTM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이들은 영화를 통해 커밍아웃했으나 다른 자리에서는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밝혔다.
여자로 태어난‘조금’다른 남자 다큐 영화 ‘3×FTM’주인공

#한여름 방안에서도 셔츠와 조끼를 벗지 않는 이유
“덥지 않아요? 우리끼리인데 어때요, 조끼랑 셔츠 좀 벗어요.”
열기 가득한 방에서도 고집스레 옷을 껴입고 있는 종우씨. 그는 아무리 불편해도 절대 옷을 벗는 법이 없다.
이따금 겉모습으로 성별을 판단하기 힘든 사람들을 만난다. 그럴 때 우리의 시선이 맨 먼저 향하는 곳은 가슴이다. 가슴이 봉긋하면 여자, 밋밋하면 남자. 생물학적 표식과 성 정체성을 동일시하는 것이 상식이니 어찌 보면 이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그래서 남자로 보이기 원하는 FTM들의 가장 큰 숙제는 가슴을 가리는 일이다.
“가슴에 늘 압박붕대를 감는데, 그 조임의 세기는 여자의 코르셋보다 훨씬 강할 거예요. 답답하고 힘들죠. 땀 뻘뻘 흘리며 압박붕대를 감다보면 수치심 같은 감정도 느껴져요. ‘이렇게까지 하면서 가려야 하는가. 정말 이 가슴만 없어지면 소원이 없겠다’ 하는…. 가슴제거수술을 받던 날 눈물이 줄줄 흘렀어요. 간절하게 염원하던 것을 이루고 난 뒤의 허탈감과 해방감. 그런 감정이었던 것 같아요.”(무지)
모르는 이들은 가슴 숨기는 일이 대수냐고 반문할는지 모른다. 하지만 다른 성별로 산다는 것은 긴장과 불편함 사이의 줄타기다. 한 주인공은 “세상의 문 밖으로 나가는 순간 긴장과 불안에 쫓겼다. 집에 혼자 있을 때만 온전히 편안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남자들도 친구끼리는 툭툭 장난도 치고 스킨십이 있어요. 한데 가슴 쪽으로 손이 오거나 압박붕대를 만지거나 하면 초긴장 상태가 되죠. 혹시 눈치를 채진 않았나, 나를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 하는 그런 걱정. 이런저런 노력을 통해 외모를 바꾼 뒤에도 여전히 시선을 신경 써야 하니 참 피곤해요.”(명진)
가슴이 들키지 않기 위해 가려야 할 무언가라면 생리는 잊고 싶은 상처다. 종우씨는 세 주인공 중 특히 강한 남성성을 꿈꾼다. 과격한 운동이나 무술, 그리고 근육질을 좋아한다.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괄괄한 사내아이 행세를 하던 그는 그러나 그날 이후 얌전해졌다.
“친구들은 장난꾸러기인 저를 남자로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열세 살 무렵 흰 바지를 입은 어느 날 사달이 났어요. 교실에서 단체로 벌을 받던 중 생리가 터진 거죠. 그날 이후 성격이 조용해질 정도로 큰 상처가 됐죠. 저는 생리라는 단어 자체를 입에 올리고 싶지 않아요. 생리를 하는 여자였던 시절은 제가 아닌 다른 누군가로 살았던 시절이라고, 그 시절을 부정하고 싶은 거죠. 자신과 불일치하는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은 겪지 않으면 모를 고통이에요.”(종우)

여자로 태어난‘조금’다른 남자 다큐 영화 ‘3×FTM’주인공

# “연봉 2천7백만원에 제 성별을 팔았어요”
“사우나 갈래? 참, 너 여자지?”
무지씨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친구가 사우나 가자고 권한 일을 꼽는다. 자신이 온전히 남자로 인식됐다는 기분, 그리고 남자들만의 진한 우정을 경험했다는 기쁨 때문이다. 방황의 시간을 거쳐 이제 가정에서 사회에서 남자로 생활하게 된 그.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FTM으로 사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주민등록번호 때문에 구직사이트에는 제가 여성으로 등록돼 있어요. 통신기술 일을 하는데, 한 회사에서 연락이 와 면접을 보러 갔어요. 면접관이 저를 보더니 ‘사진 보고 남자인 줄 알았는데 여성이네요’라고 하더군요. 저도 얼떨결에 ‘제가 남자 못지않게 일해요’라고 답했어요. 연봉 2천7백만원에 저를 판 기분이었죠.”(무지)
여자로 태어난‘조금’다른 남자 다큐 영화 ‘3×FTM’주인공

명진씨는 2006년 주민등록상 성별 정정 판결을 받아 법적 남성이 됐다. 하지만 그가 여자고등학교를 나온 사실을 안 회사는 그에게 사기죄를 물었다.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이 일은 그에게 충격이었다. 그는 경찰 조사를 받으며 그는 이렇게 자신의 변을 밝혔다.
“저는 여자고등학교를 나왔지만 현재는 남성으로 성을 바꿨습니다. 당시 고등학교를 선택할 여지는 크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현재 남자인 제가 이력서에 여고를 나왔다고 쓸 수도 없었습니다. 제가 ‘여자’라는 글자를 뺀 것은 취업을 하고 사회에서 살아나가기 위해서였지 누군가를 속이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이에 경찰은 나지막하게 내뱉는다. “거 참 애매하네.”
사회생활보다 더 힘든 것은 가족과의 갈등. 제 속으로 낳은 딸이 아들이 됐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부모님을 볼 때면 가슴 한구석이 저려온다. 성소수자 가족모임에 참석한 여동생이 ‘언니’에서 ‘오빠’로 호칭을 바꿔 부르며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무지씨도 함께 울었다. 명진씨는 “저희 어머니는 진심으로 저를 ‘더럽다’고 생각하신다”며 말끝을 흐렸다.
“전화해서 ‘엄마 아들이 오늘~’이라고 말을 꺼내면 ‘미친년~’이라고 말씀하세요. 그리고 집에 올 때는 꼭 저녁에 오라고 하시고. 그러면 저는 그때마다 ‘왜 밤에 가야 하느냐’고 되묻죠. 어머니도 저를 아직 인정하시지 못하는데 타인은 더 할 거라 생각해요. 성을 바꿨지만 저희도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명진)

#왜 남자가 되려 하느냐고 묻는다면…
남자가 되는 것은 소망을 넘어선 생존의 문제였다. 남자로만 살 수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어깨를 젖히고 당당한 인생을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성별을 바꾸는 고난의 길을 택한 이유는 아직 아리송하다. 태어날 때부터 남자였던가, 언제부터 남자로 살고 있었나, 여자일 때와 남자로 사는 지금 바뀐 점은 무엇인가. 이런저런 물음표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묻는 질문은 난감해요. 저는 분명 여자로 태어났지만 남자가 되고 싶었어요. 그건 제가 하고자 하는 것들 대부분이 남자가 해야 마땅한 것이었기 때문이에요. 여자일 때는 남자 같은 외모와 여자친구 등이 문제가 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죠. 이런 점에서 남자로 살아가는 편이 여자로 사는 것보다 훨씬 편한 것은 확실해요. 바람직한 삶은 원하는 것을 먹고 입고 행하는 것이겠지만, 세상에는 지적 사항들이 있어요. 거기에 부응해야 스스로도, 다른 이들도 편하기에 남자가 되고자 노력하는 것 같아요.”(명진)
무지씨도 남자와 여자를 구분 짓는 기준을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한다. 흔히 남성성은 보통 남자에게서, 여성성은 여자에게서 주로 발견되는 기질을 뜻한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기에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모호하고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굳이 남자가 되려 하는 것일까. 정의할 수 없는 성별로 살아가면 되는 것 아닌가. 세상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는 일이 오히려 비겁하지 않은가. 한 관객의 이런 질문에 무지씨는 이렇게 답했다.
“여자인데 남자처럼 살다보면 차별이 있게 마련이에요. 트랜스젠더나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언어폭력과 차별이 따라오죠. 그렇지 않다면 있는 그대로 살아도 문제가 없겠죠. 그런 편견을 설득해서 바꾸고 싶어서 이번에 영화도 찍은 거고요. 언제부터 왜 자신을 남자로 여겼는지는 정말 모르겠어요. 이런 제 정체성을 고민하다 보니 여성스러운 것과 남성스러운 것의 차이도 모르겠고요.”
FTM들은 공통적으로 남성을 지향하지만 이들이 생각하는 FTM의 정의는 제각각이다. 종우씨는 “여자로 살았던 과거는 없다”고 단호히 말하지만 무지씨는 “여자였던 과거도 내 일부”라고 말한다. 단순히 ‘남자가 되기를 원하는 이들’로 FTM을 묶어버리기엔 생각의 차이가 너무도 분명하다.
“얼굴선과 몸매, 큰 엉덩이…. 지금도 저에겐 여자의 흔적이 남아 있어요. 완전한 자신이 되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들이죠. 하지만 남자로 사는 현재 제 모습만 봐줬으면 해요. 저는 ‘이놈’ 소리를 들으면 무조건 좋아요. 터프하고 경쟁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누군가 여자였던 제 과거를 묻는다면 그건 실례라기보다 상처예요. 남자인 과거와 남자로 살아갈 미래만 생각하고 싶어요.”(종우)

#‘용기’가 필요한 순간!
“성전환에 대한 질문을 받다 보면 가끔 말문을 닫고 싶을 때도 있어요. 비행기 타고 떠나고 싶을 때도 있고요.”
무지씨는 자신을 드러내는 이번 영화작업에 대한 부담을 이렇게 표현했다. 막상 영화가 호평을 받고 공식 개봉하자 두려워서 잠을 설치기도 했다. 시사회에서는 “여기 과장의 자제분이 있을까 걱정된다”는 말을 농담반 진담반처럼 한다. 부담은 다른 두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모두 회사나 사회에서 불이익을 받은 경험이 있기에 더 조심스럽다. 종우씨가 시사회에 오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아우팅을 감행한 것은 소통의 필요성을 느껴서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잘봤다’ ‘느낀 게 많다’고 얘기를 많이 건네요. 그럴 때마다 뿌듯하죠. 내가 영화를 안 찍었다면 제 이야기를 누구도 몰랐을 테니까요. 사실 영화를 찍다가 중간에 그만뒀었어요. 카메라 앞에서 스스로 원하는 부분만 보여준다는 자괴감이 들었기 때문이죠. 좋은 부분 나쁜 부분 모두 솔직하게 보이자고 마음을 고쳐먹은 뒤 다시 촬영에 임했어요. 그래서 관객들에게 진짜 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성전환 수술은 심적 물적으로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든 과정이다.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하는 것은 고통이 더하다. 가슴을 절제하고 자궁과 난소를 덜어내는 1차수술과 성기를 성형하는 2차수술을 거쳐야 생물학적으로 남성의 몸이 될 수 있다. 주인공 중 두 사람은 가슴 제거수술을 했고, 한 명은 아직 수술 전이다. 이들은 원하는 삶을 가로막는 벽에 당당히 맞서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었다. 김일란 감독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맞은 분들에게 이 영화가 힘이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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