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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한국인 최초 미국 아이비리그 다트머스대 총장 된 김용 박사

글 이영래 기자 | 사진 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09. 04. 22

아이비리그 역사상 아시아인이 대학을 대표하는 총장에 선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5세 때 미국으로 이민, 인종차별을 이기고 미국 사회에 우뚝 선 김용 총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의 성공 비결로 ‘어머니의 훌륭한 가르침’을 꼽곤 했다. 과연 그가 받은 교육은 어떤 것이었을까?

한국인 최초 미국 아이비리그 다트머스대 총장 된 김용 박사

아버지에게 ‘근면’을, 어머니에게 ‘존중’을 배운 것이 내 성공의 비결입니다
지난 3월2일(현지 시각) 다트머스대 재단이사회는 김용(50·미국명 Jim Yong Kim) 하버드 의대 국제보건·사회의학과장을 제 17대 총장으로 선출했다고 발표했다. 다트머스대학은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브라운, 코넬, 펜실베니아, 컬럼비아와 더불어 미국 동부 8개 명문 사립대를 일컫는 아이비리그 대학이다. 2백4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미국 최초로 공과대학과 비즈니스 스쿨을 세운 명문. 지난해 2월 짐 라이트 총장의 사임계획 발표 이후, 후임 물색에 들어가 4백여 명의 후보자를 놓고 총장 선임작업을 진행해온 다트머스대학 측은 1년여에 걸친 심사 끝에 “다트머스대의 사명 중 핵심인 배움과 혁신, 봉사와 관련해 가장 이상적인 인물”이라며 김용 박사를 선출했다.
하버드 의대 교수, 2006년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백인, 2005년 ‘뉴스 앤 월드 리포트’가 선정한 미국의 최고 지도자 25명 중 한 명으로 선출될 정도로 엘리트 코스를 걸어온 김용 박사는 놀랍게도 미국에서 태어난 이민 2세대가 아니다. 그는 한국 세브란스 병원에서 태어나 5세 때 미국으로 이민 간 이민 1.5세대로 인터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 말에도 능숙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을 어떻게 할것인가’ 생각하라는 아버지 충고에 의대 진학
흔히 이민 1.5세대와 2세대는 확연히 다르다는 말을 한다. 이민 1.5세대는 1세대보다는 낫지만 역시 미국 주류 사회에는 편입되지 못하고 한국과 미국 사회의 접경에서 평생을 살게 된다고들 한다. 때문에 서구 사회에서 성공했다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보통 이민 2세대인 경우가 많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에이즈 담당 국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제네바에 한국 식품점이 없어서 김치를 직접 담가야 하는 게 불편했다”고 투덜대던 1.5세대 김용 총장 내정자(이하 총장)가 어떻게 미국 사회에서 이토록 승승장구, 엘리트 코스를 밟아올 수 있었을까? 그는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 중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부모님의 가르침’을 언급했다.
“미국 속담에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를 잘 고르는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내가 성공한 것은 좋은 부모님을 만난 덕분이다”라거나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퇴계 이황과 마틴 루터 킹 목사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시며 ‘사회 정의를 위해 일하라’고 하셨다. 어머니의 말씀을 평생 명심하고 살았다. 어머니가 나를 교육시킨 방식으로 두 아들을 가르치고 싶다”며 모든 공을 부모의 교육 덕으로 돌렸다.
김 총장의 부친 고 김낙희씨는 6·25전쟁 당시 17세 나이로 혈혈단신 북한에서 남한으로 피란 내려와 서울대 의대를 졸업, 미국으로 이민 가 아이오와주에서 치과의사로 일했으며, 모친 전옥숙씨는 경기여고 수석졸업생으로 역시 아이오와대학에서 한국 철학 퇴계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땄다.
김용 총장은 다트머스대 연설을 통해 “가장 실질적인 직업인 치과의사로 일하신 아버지는 내게 근면의 미덕을, 철학을 공부하신 어머니는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을 가르쳤다”고 말하기도 했다.
64년, 5세 때 아시아계가 두 가족밖에 없는 아이오와주 머스커틴으로 이민 간 그는 백인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거나 무시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때 어머니 전 여사는 “인간은 평등하며 서로 존중해야 한다”고 가르쳤고, 68년 흑인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되는 것을 목격한 9세 소년 김용은 이미 그때부터 “사회 정의를 위해 일하자”고 결심했다. 그런 결심은 섰지만 문제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 방법을 일러준 이는 바로 그의 아버지 김낙희씨였다.

한국인 최초 미국 아이비리그 다트머스대 총장 된 김용 박사

“브라운대 2학년 재학 중 아이오와 집으로 올 때였습니다. 공항에 마중나온 아버지가 집으로 가는 길에 물었습니다. ‘짐, 그래 앞으로 무슨 공부를 할 참이냐?’ ‘아버지, 저는 철학과 정치학을 공부하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천천히 차를 갓길에 세우며 이야기했습니다. ‘짐, 네가 레지던트를 마친 뒤라면 무슨 공부를 해도 좋다. 너는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다. 철학과 정치학적 식견만으로는 안 된다. 실용적인 지식도 배워야 한다. 세상에 나갈 때는 단지 ‘어떻게 할 것인가’만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아버지의 말은 나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나는 먼저 의사가 되었고, 그 때문에 보다 실제적인 입장을 갖게 됐습니다. 사람들이 부딪히는 실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죠. 나는 여전히 철학과 정치학에 대한 열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문제를 철학과 정치학적 시각으로 보려고 했고 그 때문에 의사가 된 뒤에 인류학을 다시 공부했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김용 총장은 당시 자신이 왜 의대를 마친 뒤 인류학을 공부했는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런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그는 브라운대를 졸업한 뒤 하버드대에 진학해 의학 박사와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가 본격적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은 하버드 의대에 다니던 지난 87년, 동료와 비영리기구인 ‘파트너스 인 헬스(PIH)’를 공동 설립, 전 세계 빈민을 위한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페루와 러시아 등 해외 결핵환자에게 치료약을 보급하는 활동을 주로 했는데, 한 건설업자가 이들의 활동에 감동해 전 재산 3천만 달러를 PIH에 기부하기도 했다. 당시 이들이 보낸 약으로 빈국의 결핵 환자 80%가 나았으며, 이에 감동한 하버드 의대는 김용 박사를 교수로 임명하고 봉사를 강조하는 사회의학 과목을 개설해 학과장에 임용하기도 했다. 더불어 브림검 여성병원 사회의학부장, 공공보건대학원 공공보건·인권센터장 자리도 맡겼는데, 하버드 의대가 한 사람에게 주요 보직 세 자리를 모두 맡긴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세계보건기구 에이즈 국장으로 활동하며 에이즈 치료자를 30만 명에서 1백50만명으로 끌어올리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을 밀고 나가야 성공합니다”
명문대 의대를 나왔지만 개인적 치부를 위해 일하기보다는 주로 가난한 사람을 위한 의료봉사의 길을 걸어온 그는 한 인터뷰에서 “한국 동포 부모들은 대부분 자녀들이 의사나 변호사가 돼서 ‘잘먹고 잘살기’만을 바라지만 ‘세계의 문제는 너희의 문제다(The world’s trouble is your trouble)’라는 생각을 품으면 좋겠다. 하버드대에서 만나는 한국 학생들을 보면 봉사활동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런데 부모들이 반대를 많이 한다. 결국 부모가 문제다. 반면 우리 부모님은 봉사를 더 강조하셨다. 외조부와 어머니는 항상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봉사하라고 가르치셨다. 나 또한 내 두 아이를 그렇게 가르칠 것”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그의 외조부는 시인 전병택씨(97), 외삼촌은 현재 성균관대 교수로 있는 전헌 교수(67)며, 그는 37세에 보스턴 아동병원 소아과 의사인 부인 임연숙씨와 결혼해 슬하에 8세와 생후 2개월인 두 아들을 두고 있다.
그의 어머니 전옥숙 여사와 교육법에 대해 전화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전 여사는 “그저 사람을 키우는 엄마의 일을 여느 엄마들과 다름없이 했을 뿐인데, 아들의 직장을 가지고 다른 엄마들과는 다르다는 착각을 퍼뜨리고 싶지 않다”며 인터뷰를 한사코 고사했다.
한편, 김용 총장은 ‘만약 부모가 평범하지만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한 인터뷰에서 “먼저 공부를 매우 열심히 해야 하며, 자기가 옳다고 믿는 바를 밀고 나가야 한다”고 충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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