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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불황시대, 내 남편 지키기①

IMF 사업 실패 딛고 인생역전~ 이동수 주서영 부부

글 김명희 기자 | 사진 조영철 기자

2009. 04. 21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한다. 이 격언에 딱 맞는 관계는 바로 부부다. 97년 외환위기 때 사업 실패로 나락에 떨어졌다가 청소 사업으로 재기한 이동수·주서영 부부는 위기를 함께 헤쳐나왔기에 성공의 기쁨도 공유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IMF 사업 실패 딛고 인생역전~ 이동수 주서영 부부

한국경제가 급속히 붕괴되기 시작하던 97년 말. 연매출 10억원을 올리던 이동수씨(44)의 회사도 맥없이 무너졌다. 공사대금으로 받았던 어음이 부도가 났던 것.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손을 쓸 겨를도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이씨는 허리디스크로 수술까지 받았다. 병상에 누워 있노라니 앞이 캄캄했다.
위기에 강했던 것은 아내 주서영씨(42)였다. 남편의 책임감 강한 모습에 반해 연애 1년 만인 90년 결혼, 전업주부로 살아온 그는 주저앉고 싶었지만 어린아이들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그때 마침 큰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어요. 둘째는 겨우 세 살이었고요. 이것저것 해주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케이크를 사들고 집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럽던지….”
주씨는 그때 일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부부는 삶의 터전이던 광주광역시를 떠나 경기도 안산 친척집에서 더부살이를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주변 도움에 의지할 수만은 없었다. 보증금 없는 월세방으로 살림을 옮기고 주씨는 식당보조부터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생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이면 뭐든 했어요. 아이들을 친척 손에 맡기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아 자기들끼리 집에 둘 땐 가슴이 아팠지만 남편을 원망한 적은 없었어요. 다시 일어설 수 있으리란 믿음이 있었거든요.”
이 시기 두 사람은 수백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편지에는 서로에 대한 걱정과 사랑, 믿음이 절절하게 배어나 있다. ‘큰아이가 그림을 무척 잘 그렸다. 아빠가 칭찬을 해주면 좋겠다’는 편지 대목에선 경제적으로 힘든 와중에도 아이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이 읽혔다.
병상에서 일어난 이씨는 여러 일에 손을 댔지만 뜻대로 풀리지 않았고 점점 자신감을 잃었다. 절박한 마음에 복권에 희망을 걸어보기도 했지만, 행운은 언제나 그를 비켜갔다.
이 무렵 주씨는 주방 일을 그만두고 이웃 부동산의 소개로 청소 일을 시작했다. ‘젊은 새댁이 야무지게 일을 잘한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꽤 많은 일거리가 들어왔다. 월 2백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벌던 주씨는 두 달쯤 지나자 남편에게 함께 청소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의했다. 당시 이씨는 월급 1백20만원을 받고 청소용품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처음엔 청소해서 얼마나 벌겠나 싶었는데 한번 일을 나가면 5만~6만원 정도 받더라고요. 단순히 계산해도 제 월급보다 많았어요. 게다가 제가 청소용품에 대해 잘 아니까 아내 혼자 하는 것보다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IMF 사업 실패 딛고 인생역전~ 이동수 주서영 부부

사랑으로 시련을 극복하고 청소전문업체 청소꾼 청돌이를 운영하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이동수·주서영씨 부부.


위기 때 절망하지 않고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부딪쳐보자’는 아내의 마음자세가 큰 힘 돼
그는 아내를 따라 청소를 시작했다. 번듯한 회사를 운영하다가 청소 일을 하려니 남들 이목에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아내는 오히려 당당했고, 아이들도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엄마 아빠가 청소도구 가득 실은 차를 몰고 다니는 게 친구들한테 창피하냐고 물었더니, ‘나쁜 일 하는 것도 아니고, 전혀 창피하지 않으니 걱정하시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아이들의 응원에 힘이 난 이씨는 ‘이왕 하는 것 내 집처럼 깨끗이 청소하자’고 마음먹었다. 대학에서 건축 관련 학과를 전공하고 10년 이상 건축 분야에서 일했던 그에게는 건물 구석구석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청소를 하다보니 보수공사를 해야 할 곳도 눈에 들어왔다. 간단한 수리는 직접 하고, 규모가 큰 건 주인에게 알렸다. 그러자 청소 요청이 쇄도했다. 새벽 5시에 일을 나와 하루 15시간 이상 손이 부르트도록 일해도 다 못할 만큼 주문이 몰려들자 따로 팀을 꾸려 일감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사업이 18개월 만에 15개 팀까지 늘어났고 총 6백 개 건물을 관리할 정도로 성장했다.
두 사람은 사업을 시작한 지 9년째 접어든 지금도 함께 일을 하고 있다. 남편은 사업의 큰 방향을 정하고, 아내는 남편이 놓치기 쉬운 작은 부분을 챙긴다. 남편이 일을 크게 벌인다 싶으면 이를 제어하는 것도 아내의 역할이다. 남편은 업계 1위를 목표로 사업 확장을 꿈꾸는 반면, 두 번 다시 실패를 겪고 싶지 않은 아내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사업을 이끌어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티격태격하는 일도 있지만, 서로의 감정을 건드리는 일은 없다.
이씨는 주변에서 ‘처복’이 있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동안 살면서 아내의 어떤 점이 가장 고마웠냐고 묻자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나를 믿어준 점, 그리고 항상 한 가지 모습에 머무르지 않고 상황에 맞게 내조를 해준 점”이라고 답했다.
“제가 가장 노릇을 못할 땐 그 일을 대신 해냈고 청소 일을 시작한 후로는 든든한 조력자가 돼주었죠.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부딪쳐보자는 아내의 마음자세가 저한테는 무엇보다 든든한 힘이 됩니다. 예전보다 형편이 나아졌음에도 자만하거나 사치하는 법 없이 항상 한결같은 모습으로 제 곁에 있어주는 것도 고맙고요.”
주씨 역시 “바깥일 하느라고 집안일에는 크게 신경을 못 썼는데 단 한번도 그런 일로 불평하지 않은 남편이 고맙다”고 말했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 보니 청소니 빨래, 음식 장만 같은 집안일은 시간 여유가 있는 사람이 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배려가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 같았다.
어려운 시기를 슬기롭게 헤쳐나온 이 부부는 항상 초심을 잃지 말자고 다짐한다. 한동안 가맹점 확장에 몰두하다가 최근 다시 청소도구를 들고 직접 현장에 나서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처음 남편 사업이 실패했을 때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나 싶어 세상이 원망스러웠어요.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좋은 경험이고 추억이에요. 그때 그 일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뿌듯함도 없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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