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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사람

오랜 잠적 끝에 활동 재개한 트로트 가수 김지애

글·김유림 기자 / 사진·홍중식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08. 11. 20

90년대 초 ‘몰래한 사랑’ ‘얄미운 사람’ 등으로 높은 인기를 누린 트로트 가수 김지애. 지난 94년 결혼하면서 활동을 중단한 후 남편과의 불화설, 하와이에서의 추락사고 등으로 힘들게 살아온 그가 활동을 재개했다. 그는 아직 몸이 불편하고 경제적으로도 힘든 상황이지만 언제나 자신의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딸이 있어 다시 노래 부를 용기를 냈다고 한다.

오랜 잠적 끝에 활동 재개한 트로트 가수 김지애

얼마 전 KBS ‘가요무대’에 반가운 얼굴이 등장했다. 깔끔한 커트머리에 연분홍 드레스를 입고 구슬픈 목소리로 ‘물레야’를 부른 가수 김지애(53)가 그 주인공. 90년대 초 ‘몰래한 사랑’ ‘얄미운 사람’ 등으로 많은 인기를 누린 그는 지난 94년 결혼과 동시에 활동을 중단해 오랜 세월 대중의 기억 속에서 잊혀 있었다.
그는 지난 97년 남편과 하와이에 머물던 중 호텔 객실에서 추락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이 알려져 안타까움을 산 적이 있는데, 사고 당시 콘크리트 바닥에 머리와 오른쪽 다리가 꺾인 채 떨어져 큰 부상을 입었고, 사고 후유증으로 턱관절에도 이상이 생겼다고 한다. 사고 후 그가 남편과의 불화로 투신했다는 소문이 도는가 하면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하지만 그는 이와 관련해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나 조심스럽게 활동을 재개한 그를 만나기 위해 수소문한 결과 지난 10월 중순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다민족·다문화 한마당 축제’에 참석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오랜 잠적 끝에 활동 재개한 트로트 가수 김지애

추락사고 후 고통 심했지만 딸 키우며 삶의 이유 찾아
바람이 자못 쌀쌀하던 토요일 오후, 무대 뒤 의자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김지애의 얼굴에서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났다. 볼은 갸름해져 있었고 전체적으로 살이 많이 빠진 모습이었다. 오랜만에 무대에 서는 소감을 묻자 그는 “좋은 취지로 열리는 행사에 초청돼 기분이 좋다”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김지애는 이날 첫 곡으로 ‘몰래한 사랑’을 불렀다. 노래 전주에 맞춰 그가 무대 가운데로 걸어 들어가자 많은 관객이 박수를 치며 그를 반겼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추억의 노래를 선보인 그는 노래를 따라 부르는 관객들에게 마이크를 넘기기도 하고, 손을 흔드는 등 변치 않은 무대 매너를 선보였다.
첫 곡을 마친 뒤 무대 위에서 사회자와 인사를 나누던 중 한 관객이 무대를 향해 “예뻐요~” 하고 함성을 지르자 “예뻐졌다고요? 얼굴이 좀 길어졌죠?” 하면서 밝게 웃었다. 이어 그는 “오랜만에 인사를 드리게 돼 영광이다. 앞으로 좋은 모습으로 자주 찾아뵙겠다”고 약속했다. 마지막 곡으로 ‘얄미운 사람’을 부른 뒤 조심스럽게 무대 계단을 내려오는 김지애. 한발 한발 천천히 계단을 내딛는 모습에서 다리가 불편하다는 걸 감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평지에서는 정상적으로 걸음을 걸을 수 있어 일상생활에는 큰 지장은 없다고 한다. 97년 추락사고 후유증이라고.

오랜 잠적 끝에 활동 재개한 트로트 가수 김지애

김지애는 가수로 활동하던 시절 히트곡 ‘물레야’ ‘몰래한 사랑’ ‘얄미운 사람’ 등으로 많은 인기를 누렸다.


한창 인기를 끌던 지난 94년 방송국 PD와 결혼한 김지애는 이듬해 딸을 낳았지만 결혼생활은 그리 평탄치 못했다. 미국 시민권자였던 남편이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LA로 건너가 케이블방송 관련 사업을 하면서 신혼 때부터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던 것. 한동안 김지애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결혼생활을 유지했지만 하와이에서의 사고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완전히 끊기다시피 했다고 한다.
결혼 이후 활동을 하지 않았기에 김지애는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한다. 데뷔 초부터 지금까지 그의 일을 돕고 있는 둘째 오빠는 “가수는 방송을 많이 한다고 돈도 많이 버는 게 아니다. 지애는 잘나가던 시절 방송 스케줄 맞추느라 바빠 실제 돈이 되는 일은 얼마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잘나가던 시절에는 가까운 사람한테 어려운 일이 생기면 자신의 출연료를 몽땅 줄 정도로 마음 씀씀이가 좋았는데, 정작 자신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남한테 아쉬운 소리를 조금도 못했다”고 말했다.
현재 경기도 한 도시에서 딸과 단둘이 살고 있는 김지애는 힘든 생활 속에서도 언제나 자신의 곁을 지키는 딸을 보며 삶의 이유를 찾았다고 한다. 현재 중학교 2학년인 딸은 동네에서 소문난 효녀라고. 몸이 불편한 엄마를 대신해 집안일도 능숙하게 하고, 날마다 그와 함께 공원을 산책하면서 재활치료를 돕는다고 한다. 그의 한 측근은 “김지애씨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오로지 딸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이가 착할 뿐 아니라 공부도 잘해요. 아직 휴대전화 하나 없을 정도로 순진하고요. 아이가 올곧게 자란 데는 엄마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하나밖에 없는 귀한 자식이지만 엄하게 키웠거든요. 손님이 아이한테 용돈이라도 주려고 하면 ‘아이 버릇없어진다’고 못 받게 했어요.”

노래연습 시작하고 헤어·메이크업 직접 하며 강한 재기 의지 보여
김지애는 비록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지만 대중의 관심에서 한 발 물러나 있는 지금이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한다. 최근 들어 조금씩 활동을 시작했지만 화장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해 생활하기에 편하다는 것. 사실 몇몇 지인들이 그를 다시 무대에 서게 하기 위해 오랫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으로 살기 원하는 김지애의 고집을 꺾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그는 한동안 노래 부르는 것은 물론 음악 소리에도 거부감을 보였다고. 김지애의 한 측근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래 소리만 들리면 머리 아프다면서 소리를 줄여달라 했다”고 말했다. 그가 몇 년 전 한 번 재기를 시도했으나 금방 활동을 접었던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요즘 김지애는 다시 일어서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고 한다. 얼마 전 지방공연을 다녀와서는 주위 사람들에게 “노래 연습을 해야겠다”고 말하는가 하면 자신이 출연하는 방송을 직접 모니터링하기도 한다고. 지인에 따르면 그는 비록 늦었지만 딸에게 당당한 엄마가 되기 위해, 그리고 여전히 그의 노래를 좋아해주는 많은 팬을 위해 다시 한번 무대에 설 용기를 냈다고 한다.
과거 무대의상 준비는 물론 헤어, 메이크업도 직접 했던 그는 요즘도 일절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지 않고 있다. 무대의상은 과거 활동할 때 입었던 옷 그대로를 입고 있다고 한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깔끔하게 빗어넘긴 커트 머리 역시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김지애는 오랜 공백기를 깨고 활동을 재개했지만 서두를 생각은 없다고 한다. 방송보다는 관객과 좀 더 인간적인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공연이나 행사 무대에 주로 오를 계획이라고. 그의 활동을 누구보다 반기는 한 측근은 “지금이라도 다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뜻밖의 풍랑을 만나 오랜 세월 힘든 시기를 보낸 그가 예전의 힘찬 목소리를 되찾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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