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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궁금한 사람

화가로 제2의 인생 사는 강리나

글·최숙영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2008. 11. 18

평범한 미대생에서 ‘서울무지개’라는 영화 한 편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스타덤에 올랐던 강리나. 데뷔 10년 만인 지난 96년 돌연 영화계를 떠나 화가로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그가 남다른 인생 스토리를 공개했다.

화가로 제2의 인생 사는 강리나

영화배우 출신 화가 강리나(44)는 요즘 핑크색에 빠져 있다. ‘낙(樂)서’를 주제로 서울 낙원동 갤러리아이와 청담동 오픈옥션갤러리, 미국 LA 모던아트갤러리 등에서 18번째 개인전을 열면서 핑크빛 파스텔 색조에 암호 같은 숫자와 문구 등을 낙서처럼 써넣은 작품 1백여 점을 선보이고 있기 때문.
“순수한 사랑을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우리는 흔히 사랑을 빨간색으로 표현하는데 빨간색은 정열적이고 무모하며 욕정적이잖아요. 현대인들은 점점 빨간색의 사랑에 지쳐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진정한 사랑은 핑크색’이라고 생각해요. 말초적이고 충동적인 빨간색에 순결한 흰색을 섞은 핑크색은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색이죠.”
색에 관해 열변을 토하는 그의 모습에서 과거 ‘섹시 스타’로 유명했던 영화배우 강리나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우연히 배우 된 후 돈과 인기 얻었지만 나 자신을 잃었어요”
강리나는 지난 86년 CF 모델로 데뷔했다. 이후 김호선 감독의 눈에 띄어 영화 ‘서울무지개’에 출연, 대종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10년 동안 ‘클라이막스 원’ ‘러브러브’ ‘변금련’ ‘빠담풍’ 등 2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보여줬던 그는 96년 화가로 변신, 홀연히 영화계를 떠났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그를 영화배우로 기억하고 있다. 서구적인 외모와 도발적인 이미지가 당시로선 파격적이었기 때문이다.
화가로 제2의 인생 사는 강리나

“우연히 영화배우가 됐어요. 대학교(홍익대학교 동양화과) 4학년 때 패션쇼를 구경갔는데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저를 보더니 ‘모델 할 생각이 없냐?’고 묻더라고요. 당시 제 한 달 용돈이 1만원이었는데 30만원을 준다기에 무조건 하겠다고 했죠. 나중에 알고 보니 패션회사 간부시더라고요.”
청바지 모델을 시작으로 연예계에 첫발을 내디딘 날부터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CF를 찍고 영화에도 진출하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스타’가 된 것. 그는 배우가 되는 게 꿈은 아니었지만 부와 인기를 동시에 얻은 게 싫진 않았다고 한다.
“돈을 벌자마자 제일 먼저 화구함을 샀어요. 붓·컴퍼스·펜치·망치 등 미술도구를 넣는 통이었는데 당시 3만원 정도 했어요. 평소 갖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 못 샀던 터라 그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요. 제 방에 걸어두고 한 달 내내 흐뭇하게 쳐다봤던 기억이 나요(웃음).”
강리나는 영화배우로 성공한 뒤에도 미술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촬영을 끝내고 밤 늦게 집에 들어가서도 그림을 그렸고 바빠서 한 달에 한두 번밖에 들르지 못하면서도 작업실을 처분하지 않고 계속 갖고 있었다고. 사람들이 “배우가 무슨 그림이냐. 작업실은 왜 처분을 안 하고 그대로 두는 거냐”고 의아해할 때마다 미술에 대한 열정을 몰라주는 것 같아 섭섭했다”고 털어놓았다.
“미대 출신이다 보니 감독들의 제안으로 연기를 하면서 영화미술도 담당했어요. 그때만 해도 영화계에서는 주먹구구로 진행되는 게 많았거든요. 하지만 저는 좋았어요. 혼자 동대문에서 원단을 사다가 소품을 만드는 일이 연기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거든요.”
영화미술로 상을 받을 뻔하기도 했는데 당시 감독이 “너는 어차피 연기상을 받을 테니까 미술상은 다른 사람을 주자”고 해서 놓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는 비록 상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미술을 할 수 있어 행복했다고.
하지만 그는 점점 지쳐갔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의 직업은 무대감독이 아닌 영화배우였기에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고 또 “연기나 잘하지, 영화배우가 웬 영화미술까지 하냐”는 비아냥 섞인 말을 들을 때면 일할 의욕이 떨어진 것.
“영화배우로서 제 이미지가 도발적이고 섹시한 쪽으로 굳어지는 것도 부담스러웠어요. 요즘에는 섹시한 이미지를 스타 마케팅의 첫 번째 조건으로 내세우지만 당시에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분위기였거든요. 연기자는 여러 가지 이미지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저를 자꾸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니까 연기가 싫어졌어요.”
그는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자신이 오랫동안 꿈꿔오고 좋아하는 일은 연기가 아니라 그림 그리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영화계를 떠날 결심을 했다고.
“어릴 적부터 배우를 꿈꾸며 연기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연기를 끝까지 했겠지만 저는 우연한 기회에 영화배우가 됐잖아요. 솔직히 말하면 물감 살 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일인데 돈도 벌고 인기도 얻으니까 계속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결국 꿈을 이루기 위해 일을 하는 것과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지금도 영화배우를 그만둔 걸 후회하지 않아요. 다시 하고 싶지도 않고요.”

화가로 제2의 인생 사는 강리나

18번째 개인전을 연 강리나는 앞으로 미술을 통한 심리치료도 공부해보고 싶다고 한다.


“꿈을 이루기 위해 화가로 전업한 뒤 경제적 어려움 겪었죠”
이후 화가로 전업한 강리나는 평면작품(서양화·동양화·판화 등 액자에 끼울 수 있는 작품) 뿐만 아니라 설치작업으로까지 활동 영역을 넓혔다. 지난 2005년에는 포스코미술관에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미사일과 폭탄 설치작품을 선보여 화제가 됐는데 그는 작품을 완성할 때마다 짜릿한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화가로 사는 것도 쉽지는 않아요. 영화배우를 그만두고 미술작업에 전념한 후 한동안 수입이 없어서 경제적으로 힘들었죠.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활비는 많이 들지 않았지만 제가 영화배우로 활동할 때 매니저 일을 도와주던 오빠는 무척 힘들어했어요. 심근경색으로 수술을 세 번이나 받았는데…. 내가 하고 싶은 미술만 하겠다고 했던 게 사치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너무 이기적이었던 게 아닌가 자책도 많이 했어요.”
그는 오빠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작품에 담았다. 사람들이 작품 속에 담긴 그의 속마음까지 알 리 없겠지만 작품을 만들 때마다 그는 마음속으로 오빠가 빨리 건강을 되찾기를 빌고 또 빈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받으면서 살아온 것 같아요. 배우를 할 때는 좋은 옷을 입어보고 좋은 집에서도 살아보고 제가 번 돈으로 책이며 물감도 맘껏 살 수 있었거든요. 화가로 살면서부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지만 그로 인해 삶의 애환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고맙게 생각해요.”
영화배우로 살 때는 돈을 쉽게 썼다. 기분이 나쁘면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거스름돈도 잘 받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마트에 가면 쇼핑 카트에 넣는 동전 1백원까지 소중하게 생각하고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품질이나 가격을 꼼꼼이 따져보고 산다면서 웃었다.
화가로 제2의 인생 사는 강리나

“어머니께서 제가 그림을 그리면서부터 얼굴이 달라졌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피부도 좋아지고, 순수했던 학창시절의 얼굴로 돌아왔대요(웃음). 영화배우로 활동할 때에는 혼자 술도 많이 마셨어요. 일년에 두 편씩 영화를 찍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거든요.”
그는 현재 술도 끊은 상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없다 보니 술 마실 일도 없다면서 “비로소 제자리를 찾은 듯한 느낌”이라고 한다.

“혼자 사는 것도 특권, 결혼에 연연하고 싶지 않아요”
강리나는 독신주의는 아니지만 당분간 결혼할 생각도 없다고 한다. 몇 번 결혼하려고 노력했으나 뜻대로 안됐는데 그때마다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고 털어놓았다.
“솔직히 이 나이 되도록 연애 한 번 못해봤겠어요? 한때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지만 그것도 맘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연애를 하면 적당히 밀고 당겨야 하는데 그런 걸 잘 못해요.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재고 서로를 구속하고 잘 보이려고 노력하고 하는 일련의 행위들이 피곤하게 느껴지거든요. 그럴 바에야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혼자 사는 것도 특권이라 여기고 즐겁게 살려고 해요.”
“외롭지는 않냐?”고 묻자 그는 신앙 덕분에 외롭지 않다고 답했다. 유아세례를 받을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데다 최근에 강아지 8마리를 키우며 살다 보니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다는 것.
“인생을 살면서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느끼는 행복도 다른 것 같아요. 사람들은 유능한 화가가 되려면 돈이 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말하는데 저는 돈에는 관심이 없어요. 제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예요. 앞으로도 저 자신과 끊임없는 싸움을 하면서 화가로서 열심히 살 생각이에요.”
그는 그림을 그리면서 심리치료에 대한 공부도 할 계획이라고 한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곁에 함께 있어주고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나눔의 삶을 살고 싶어서라고.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강리나는 유쾌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역시 행복은 마음속에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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