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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유인경의 Happy Talk

살며 깨닫는 말의 무게

2008. 04. 17

살며 깨닫는 말의 무게

이순형, 구스타프 말러에의 연상, 목조에 아크릴릭, 80×102×15cm


모임에서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재미있는 일이 있을까. 유명 연예인들의 스캔들과 시시콜콜한 가십은 물론 요즘 같은 선거철에는 온갖 정치인을 도마에 올려놓은 마늘처럼 다지거나, 오징어 다리처럼 자근자근 씹으며 쾌감을 느낀다.
“그 여자는 주름제거술로 얼굴을 당긴 건지 요즘 유행하는 자가지방 이식을 한 건지 얼굴이 랩 씌워 레인지에 넣었다 꺼낸 것처럼 팽팽하더라. 근데, 그러면 뭐해. 드라마에선 아무개 엄마로 자기 나이보다 훨씬 나이 든 역할을 맡았던걸.”
“그 사람 뇌를 촬영하면 그야말로 깨끗할 거야. 무공해 청정지역이 따로 없어. 세상에 박사란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에 알맹이가 없을 수 있나? 박사학위도 가짜 아닌지 의심스럽더라니까.”
사람들과 이렇게 남의 흉을 잔뜩 보고도 별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했다. 그들은 일거수일투족이 매스컴에 공개되는 공인이고, 유명인으로서 부와 권력을 누리기 때문에 그 정도 뒷담화로 안주거리가 되는 것은 그들이 치러야 할 유명세 정도라고 생각했다. 대부분은 나와 친분이 없는 관계여서 더 자유로웠고(?), 삼자대면 걱정 없이 알고 있는 정보에 상상력까지 가미해 칭찬이나 덕담보다는 주로 험담을 늘어놓았다. 인터넷에 악성 댓글을 달아놓은 이들을 흉보면서도 내가 뱉어놓은 말의 영향은 고려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누군가 나에 대해 비방성 댓글을 달거나 저주를 퍼부은 메일을 보내거나 비난의 전화를 걸어와도 그다지 상처받지 않았다. 내가 유명한 공인이어서 감당할 자세가 돼 있어서가 아니라 그건 그들의 자유라고 생각했고, 때로 몹시 억울한 오해를 받았어도 일일이 해명할 시간도 없고 방법도 잘 몰라 그냥 무시해버렸다. 장관후보가 돼 인사청문회에서 공격당할 걱정 없는 것만도 복이라고 생각해왔다.

남을 평가하는 일의 무서움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누군가에 대해 평가를 한다는 것, 무심코 한마디 언급하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일인지 알게 된다.
얼마 전 몇몇이 모인 자리에서 한 커리어우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똑똑하고 미모(물론 성형수술이란 현대의학의 도움을 받긴 했다)에 유능한 남편을 둔 여성이 고위직에 올랐으니 화제의 주인공이 될 만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던 한 남성이 “그 여자, 전문대 출신이라서 그래”라고 했다. “아녜요. 명문대 졸업하고 유학도 다녀왔어요”라고 내가 정정해주자 그 남자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전문대가 아니라 젖문대라고. 누굴 만나면 바싹 다가가서 팔짱끼며 가슴을 문댄다던데? 그래서 아저씨들이 끔뻑 죽는대….”
평소 말투가 거칠거나 여성비하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이 그랬다면 별로 충격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젠틀맨이라고 소문난 남성의 입에서 그런 표현이 나오다니…. 만약 주인공 여성이나 그 여성의 남편, 가족이 그런 이야기를 들었으면 어떤 심정이었을까. 성희롱을 당하면 마구 두들겨 패줄 것처럼 용감해 보이는 여성도 그런 의혹(?)과 비하를 당하다니 어이가 없다.
곰곰 생각해보면 “그 사람, 어때요?”라고 물었을 때 흔쾌히 찬사를 늘어놓는 이들이 드문 것 같다. “변태야” “이기적이야” “무진장 잘난척하지, 공주병이야” “오버의 왕이야” 등 악평을 들을 때가 많다. 조금 신중한 이들은 “일이야 잘하지, 성격이 좀 까칠해서 그렇지” “능력에 비해 과대 포장된 면이 있어, 그것도 재주지만” 등 이중적 평가를 한다. 간혹 자기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준 이들이나 혹은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에 대해선 “참 괜찮아요” “다들 좋은 사람이라고 하던데요” 등 호의적인 말을 전하기도 한다.

살며 깨닫는 말의 무게

이순형, 구스타프 말러에의 연상, 목조에 아크릴릭, 150×102×15cm


굳이 누굴 흉보거나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말할 때만이 아니다. 때론 무심코 던진 말, 혹은 진심으로 걱정해서 한 말조차 상대에겐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요즘 새삼 느끼고 있다.
며칠 전엔 한 모임에서 수다를 떨다가 재혼한 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전남편과의 불화로 이혼한 뒤 재혼한 그는 정말 사랑스럽고 사랑받기에 충분한 성품을 지닌 여성이었다. 난 그가 신중하게 재혼을 결정하길 기대했고 정말 훌륭한 남편과 아름다운 새 가정을 꾸리길 바랐다. 그래서 재혼한 남편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나도 모르게 “아유, 이번엔 정말 잘 살아야 할 텐데…. 워낙 착해서 말이야. 꼭 착한 여자들이 나쁜 남자 만나서 고생하더라니까”라고 말했다. 그러자 한 선배가 이렇게 조언했다.
“인경씨, 그 사람 걱정하지 말고 그냥 축복만 해줘. 자기는 정말 그 사람 아끼는 마음에 그렇게 말했다 해도 누군가 여기서 한 말을 앞뒤 다 자르고 유인경 기자가 그러는데 그 여자, 또 나쁜 남자 만나서 못살면 어쩌느냐고 하더라고 전하면 어떡해? 자기는 기자라서 농담을 해도 남들은 진담으로 받아들이고 헛소문을 전해도 확실한 정보로 믿는단 말이야. 그렇다고 아무나 칭찬하거나 부풀려 덕담을 해주는 것도 곤란해. 인경씨 말을 믿고 그 사람과 금전거래나 일을 함께 하다 낭패를 볼 수도 있을 테니 말이야. 남에 대해 평가할 때는 한 번 더 생각해서 말하는 게 필요해.”
그 순간엔 순수하게 걱정한 내 마음을 몰라준 것 같아 속상했는데 지금은 그 선배의 말에 공감한다.

좋은 말 가려 하기, 칭찬이라는 선물에 감사하기
우리가 남에 대해 안다는 것은 뭘 의미하는 걸까. 그 사람의 겉모습, 직장, 드러나는 성격만으로 그 사람을 파악해 남들에게 몇 마디 말로 전할 수 있을까. 때론 인터뷰를 하면서도 그런 고민을 한다. 생전 처음 보는 내게 그들이 한두 시간 동안 전해주는 이야기가 얼마나 진실한지, 또 그 이야기를 해석해서 독자에게 전해주는 기사는 얼마나 옳은지…. 물론 묵언수행하는 스님들처럼 입을 다물고 살거나, 한 줄 글도 쓰지 않고 살 수는 없지만….
올봄부터는 내 입에서 가시나 바늘이 아니라 꽃과 솜사탕이 쏟아지도록 덕담과 긍정적인 말만 해야겠다. 남들에게 선행은 못 베풀더라도 구업(말을 잘못해 짓는 업)을 쌓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새삼, 이 자리를 빌려 내게 칭찬이나 덕담을 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내가 쓴 글을 읽고 감동받았다는 분, 내가 방송에서 한 말이 속 시원해서 좋더란 분, 같은 아줌마로서 볼 때마다 흐뭇하다고 용기와 위안을 주신 분들은 내게 엄청난 선물을 하신 분들이다. 분명히 복 받으실 거다. 여전히 여기저기에서 욕을 먹겠지만,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 내 흉을 볼지 모르지만 ×표를 치는 분들보다 ○표를 쳐주는 분이 한 분이라도 더 많다면 난 남는 장사를 한 거고 세상을 살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살며 깨닫는 말의 무게

유인경씨는…
경향신문사에서 선임 기자로 일하며 인터뷰 섹션을 맡아 흥미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직장 여성에 관한 책을 준비 중인데 성공이나 행복을 위한 가이드북이 아니라 웃으며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는 실수담이나 실패담을 담을 예정이다. 그의 홈페이지 (www.soodasooda.com)에 가면 그가 쓴 칼럼과 기사를 읽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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