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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진성훈 기자의 아이와 함께하는 놀이 9

알록달록~ 신나는 물감놀이

상상력과 색감 발달에 효과적!

기획·한정은 기자 / 글·진성훈‘한국일보 기자’ / 사진·현일수 기자 || ■ 도움말·현득규(한국유아놀이체육협회장)

2008. 03. 11

“TV를 가까이에서 보지 마라, 나쁜 친구 사귀지 마라, 군것질하지 마라, 울지 마라, 그리고… 제발, 집 안 좀 지저분하게 하지 마라.”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하지 마라’는 말을 많이 하게 된다. 깨끗이 치워도 고개 한번 돌리고 나면 사방에 늘어져 있는 장난감과 여기저기 그려놓은 낙서 때문에 못하게 하는 것도 많다. 물감도 그중 하나로, 크레파스나 색연필까지는 몰라도 물감이라면 아이들에게 먼저 권하고 싶지 않다. 집 안이 지저분해지는 것은 물론, 아이들의 손이며 얼굴, 옷에 온통 물감 범벅이 될 생각을 하면 빨래 걱정에, 목욕시킬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오늘의 놀이 도구는 이런 이유로 평소 금기시했던 물감이다. 매일 물감만 보면 신기해했던 아이들이 오늘 제대로 물감을 만져보는 ‘역사적인(?)’ 날인 것이다.

알록달록~ 신나는 물감놀이

입김으로 그림 그리기 “바람아 불어라”
맨 처음 시작한 놀이는 물감을 입김으로 불어서 그림을 그리는 ‘입김으로 그림 그리기’였다. 크레파스나 색연필로만 그림을 그려본 아이들에게 ‘물감이란 과연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를 한눈에 알 수 있게 해주는 놀이였다.
우선 도화지에 평소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이 크레파스로 나무 한 그루를 그렸다. 아이가 직접 그려도 되는데, 오늘의 첫 놀이인 만큼 내가 나서서 그려줬다. “아빠가 나무를 그려볼게.” 잎사귀는 빼고, 기둥과 줄기 정도만 그렸다. “에게, 이게 나무예요?” “아니, 아직. 이제 너희들이 물감으로 나무를 완성하는 거야. 그럼, 좋아하는 색깔을 골라볼래?” 아이들이 색색의 물감 몇 개를 골랐다. 팔레트에 물감을 짜는 것은 아직 서툴러 내가 도와줬다. 붓을 적셔 물감에 물을 풀어 넣는 것도 시범을 보여줬다. 적당히 묽어진 물감을 붓에 적셔 완성되지 않은 나무 그림 속 줄기 근처에 떨어뜨리고 물감이 마르기 전에 입으로 바람을 불어 번지게 하는 것이 이 놀이의 포인트. 태욱이가 약간 멀리 떨어져서 입김을 ‘후~ 후~’하고 불었다. “아니, 좀더 가까이 대고 불어야 해.” 물감이 바람에 번져 나가며 비로소 단풍잎 같기도, 플라타너스잎 같기도 한 모양이 됐다.
놀이를 할 때는 물감에 물을 많이 섞어 묽게 만들어야 도화지에 물감을 떨어뜨리기 쉽다. 입으로 불어 잘 번지지 않으면 도화지를 이리저리 흔들어도 물감이 잘 번진다. 물감에 물을 섞어 점점 묽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아이들에게는 신기한 공부가 된다. 물감이 바람에 따라 번지고, 시간이 흐르면 말라서 그림이 되는 과정도 함께 지켜보면 좋을 듯하다.

준·비·재·료 도화지, 크레파스, 팔레트, 물감, 붓, 물, 물통
놀·이·방·법
1 도화지에 크레파스로 나무의 큰 줄기를 그린다.
2 팔레트에 물감을 묽게 푼 뒤 붓에 물감을 묻혀 도화지 큰 줄기에 군데군데 찍는다.
3 찍어 놓은 물감 부분을 입김으로 불어서 물감을 번지게 한 뒤 어느 정도 마르면 다른 색 물감으로 나뭇잎을 그려 완성한다.

면봉으로 물감 찍기 “점을 콩콩 찍어 색을 입혀요~”
알록달록~ 신나는 물감놀이

두 번째 놀이는 처음에 했던 ‘입김으로 그림 그리기’와 비슷한 놀이였다. 도화지에 밑그림을 그린 다음 솜이나 면봉에 물감을 묻혀 그림 위에 콩콩 찍어가면서 색깔을 입히는 것이다. “얘들아, 각자 도화지에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려봐.” 태욱이는 나무와 곤충 그림을, 태연이는 알 수 없는 동그라미 여러 개를 그렸다. “태연이는 뭘 그린 거야?” “음~ 동그라미가 이렇게 있어서…”라며 태연이가 한참 고민을 하자 태욱이가 그림을 들여다보더니 짐짓 아는 체를 했다. “아~ 달걀프라이구나! 이건 노른자고….” “응~ 맞아!” 서로 맞장구를 치며 좋아했다.
아이들에게 면봉을 쥐어주고 물감을 찍어 그림에 색을 입히게 했다. 면봉이 작아 아이들이 색을 채우기가 쉽지 않은 듯 보여 면봉 대신 솜을 뭉쳐줬다. 훨씬 수월한지 아이들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잠시 후 색색의 점이 하나가 돼 아이들의 작품이 완성됐다. “아빠, 이것 벽에 붙여주세요.” “내 것도요….”

준·비·재·료 도화지, 색연필, 팔레트, 물감, 물, 물통, 면봉, 솜
놀·이·방·법
1 도화지에 색연필로 그림을 그린다.
2 팔레트에 물감을 풀어 면봉이나 솜에 물감을 묻힌 뒤 그림 위에 찍어 색을 입힌다.



도장 찍기 “물감 찍어서 쾅!”
알록달록~ 신나는 물감놀이

다음으로 한 놀이는 ‘도장 찍기’. 스펀지를 별이나 하트 모양으로 잘라서 물감을 묻히고 도화지에 찍어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한글을 어느 정도 안다면 한글 자음과 모음으로 이뤄진 퍼즐을 갖고 글자를 만들어볼 수도 있다.
“이번에는 도장을 만들어서 그림을 그릴 거야. 어떤 모양이 좋을까?” “말.” 스펀지를 잘라 말을 만들어 달라니…. “태욱아, 그건 너무 어려운 걸. 하트는 어때?” “좋아요.” 착한 태욱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펀지로 하트와 별, 그리고 꽃봉오리를 만들었다. 물감을 찍는 일은 아이들의 몫. 붓으로 스펀지에 물감을 묻힐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넓적한 접시에 물감을 흥건히 채운 뒤 스펀지를 직접 담그도록 하는 편이 수월하다.
아이들이 편하게 도장을 찍으라고 벽에 커다란 전지를 붙여놓았다. 태욱이와 태연이가 스펀지 하나씩을 들고 벽을 향해 달려갔다. 어느새 아무것도 없던 하얀 벽 위에 태욱이의 따뜻한 심장이 콩닥거리기 시작하고, 태연이의 예쁜 꽃이 피어났다(꽃봉오리 밑으로 물감이 흘러내리니 정말 꽃처럼 보였다). 하늘 위엔 아이들을 밝혀주는 초롱초롱한 별이 떴다.
이번엔 이름 도장 찍기. 이제 겨우 삐뚤빼뚤하게나마 자신의 이름과 유치원 이름 정도를 쓸 수 있게 된 태욱이는 한글퍼즐에서 자신의 이름을 골라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는 바닥에 자음과 모음을 늘어놓으며 이름을 만들었다. “자, 이거 봐. 진~태~욱.” 태욱이는 동생 이름도 쓸 줄 안다(‘연’자 하나만 더 찾으면 되니 다행이다^^). 태욱이가 글자에 물감을 묻혀 하나하나씩 하얀 종이 위에 찍었다. 연필로 이름을 쓰는 것과는 달리 색다른 재미를 느끼는 듯했다. 꼭 스펀지나 한글퍼즐이 아니어도 도장으로 쓸만한 것을 주변에서 찾아봐도 좋다. 무나 당근 같은 것으로 예쁜 모양을 만들어도 좋고, 캔 바닥으로 동그라미를 찍어도 된다.

준·비·재·료 스펀지, 가위, 접시, 물감, 물, 물통, 한글퍼즐, 도화지
놀·이·방·법
1 스펀지를 잘라 하트, 꽃, 별 등 원하는 모양을 만든다.
2 접시에 물감을 풀고 스펀지나 한글퍼즐에 적셔 도화지에 꾹 찍는다.

손바닥 그림 그리기 “손도장, 발도장 찍어요~”
알록달록~ 신나는 물감놀이

마지막으로 ‘손바닥 그림 그리기’ 놀이를 했다. 앞서 도장 찍기 놀이를 할 때 썼던 물감 담긴 접시를 그대로 사용하면 된다. 스펀지와 한글퍼즐이 아닌, 아이들의 손과 발을 이용한 원초적인 도장이다. 놀이 방법을 설명해줬지만 태욱이는 손에 물감을 묻히는 것이 생소했는지 조심스러워했다. 손을 잡아 끌어 접시에 푹 담갔다. 물감이 뚝뚝 떨어지는 손을 들고는 어색하고 신기한 듯 도장 찍기에 들어갔다. 물감이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크레파스로 칠하니 저마다 색다른 모양이 완성됐다.
이번에는 발바닥도 등장! 벽으로 다가간 태욱이가 태권도를 하듯 발을 번쩍 들어 ‘쿵’하고 보기 좋게 발자국 도장을 찍었다. “히히, 내 발이다.” 태욱이가 벽을 가리키며 깔깔거린다. 아이들의 걸음걸음 뒤로 앙증맞은 발자국들이 생겨났다. 뒤를 돌아보던 아이들이 다시 한 번 웃음을 참지 못한다. 낯선 놀이가 재미있는지 놀이 내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준·비·재·료 접시, 물감, 도화지, 물, 물통, 크레파스
놀·이·방·법
1 접시에 원하는 색의 물감을 풀고 손바닥에 물감을 묻힌다.
2 도화지 곳곳에 손바닥을 찍고 물감이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크레파스로 손바닥 주위를 칠해 여러 가지 그림을 완성한다.

놀이를 마치고…

이번에 시도해본 물감놀이는 이전과 달리 주의사항이 거의 없다. 다칠 수 있는 도구를 이용하는 것도 아니고, 몸을 크게 쓰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놀이를 하는 내내 나도 마음 편히 즐길 수 있었다. 억지로 주의사항을 짜내보자면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도록 벽과 바닥에 전지를 붙이라는 것. 바닥이나 벽에 물감이 묻을까 노심초사하지 않고 “맘껏 저질러봐라” 하는 자세로 놀아줄 수 있다. 손에 물감이 묻으면 서로의 얼굴에 물감 자국 만들기 놀이를 하고, 얼굴에 물감이 묻으면 소리를 지르며 인디언 놀이를 하고, 발에 물감이 묻으면 바닥에 찍으며 공룡 발자국 놀이를 해도 재미있다. 물감이 묻어서 더러워진 옷에는 아예 물감을 더 묻혀서 화려한 패션쇼 무대를 만들어도 좋다. 빨래와 청소를 하는 것이 좀 번거롭기는 하지만 가끔씩은 아이들이 마음껏 자신의 상상력을 펼칠 수 있도록 온몸으로 물감놀이를 하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도 좋을 듯하다.
알록달록~ 신나는 물감놀이
‘여성동아’ 김명희 기자와 남편 진성훈씨는…


태욱(6)·태연(5) 두 남매를 키우고 있는 결혼 7년차 부부. 맞벌이를 하다보니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 틈날 때마다 놀아주며 사랑을 듬뿍 쏟고 있다. 진성훈씨는 한국일보 기자로 아이들과 놀아주기 위해 좋아하던 술자리도 반으로 줄인 가정적인 아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소심한 태욱이를 위해 1년 전부터 ‘아빠와 함께하는 놀이’에 도전했다.

태욱이·태연이는…

가끔 아옹다옹 싸우기도 하지만 똘똘 뭉쳐 서로를 챙기며 애정 표현을 하는 닭살 남매. 또래에 비해 부끄러움을 잘 타던 태욱이는 아빠와 함께하는 놀이를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고 씩씩한 개구쟁이로 변신 중이다. 동생 태연이는 오빠가 하는 일은 모두 따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왈가닥 공주. 애교만점 말투와 천진난만한 미소로 어디서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다.

알록달록~ 신나는 물감놀이
현득규씨는…

유아놀이 연구가 겸 유아동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유아지도사. 한국유아놀이체육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성신여자대학교 평생교육원과 국민대학교 사회교육원에서 유아체육지도사 과정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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