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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작가의 향기

깊은 산중에서 ‘행복’의 의미 찾으며 새 작품 구상 중인 작가 이외수

기획·송화선 기자 / 글·오진영‘자유기고가’ / 사진·성종윤‘프리랜서’

2008. 02. 22

지난 2006년 강원도 화천군 감성마을에 둥지를 튼 작가 이외수는 산중에 살면서도 끊임없이 세상과 만나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문학 지망생들과 문학을 논하고, 인터넷 세상에서 적극적으로 젊은이들과 소통하며 ‘행복’의 의미를 탐색하는 작품을 구상 중인 이외수를 만났다.

깊은 산중에서 ‘행복’의 의미 찾으며 새 작품 구상 중인 작가 이외수

작가 이외수씨(62)를 만나러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로 향하는 길. 서울을 떠날 때만 해도 멀쩡하게 개어 있던 하늘이 조금씩 잿빛으로 가라앉더니 구불구불한 강원도 산길을 지날 무렵 기어이 눈발을 날리기 시작했다. 재작년 여름께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 이씨가 “일기예보에서 가끔 ‘일부 산간지역에 눈이 내릴 것’이라고 하잖아요. 그때의 ‘일부 산간지역’이 바로 여기입니다”라며 웃던 모습이 떠올랐다. 전날 내린 눈이 채 녹지 않고 쌓여 있는 길 위로 또다시 떨어지는 새 눈을 밟으며 한참을 달린 끝에 이씨의 자택에 닿았다. 그는 해마다 겨울이면 진행하는 문학연수생을 위한 강의 준비로 바쁜 중에도 먼 길을 온 기자 일행을 반갑게 맞아줬다.
“일년에 두 번, 여름과 겨울에 한 달씩 연수생을 받습니다. 4년째 계속하고 있는 일이죠. 매일 과제를 내준 뒤 제가 직접 검토하기 때문에 이맘때는 개인 시간이 거의 안 나요.”
문학 강의는 1주일에 6일 동안 진행되는데, 이씨는 연수생을 개인별로 꼼꼼히 지도하면서도 전혀 수업료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연수생들은 한 달 동안 다목리 감성마을에서 스스로 숙식을 해결하며 오로지 글에만 매진한다고.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아름다움의 추구이며, 예술의 힘은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라는 이씨의 철학을 바탕에 두고 글을 쓰는 젊은이들이 가득한 덕분인지, 조용한 시골 마을에 활기가 넘쳐 보였다.
이씨가 감성마을에 정착한 것은 지난 2006년 초. 그전까지 평지보다 산이 많고, 주민보다 군인의 숫자가 더 많은 ‘일부 산간지역’에 불과하던 이곳은, 이제 1년 열두 달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강원도의 명소가 됐다. 한여름 장마로 계곡을 연결하는 다리가 떠내려가거나 한겨울 폭설이 쌓여 길이 막혔을 때조차 어김없이 누군가 마을을 찾곤 했다고.
“지난해엔 한 달 평균 2백50명이 우리집을 다녀갔더군요. 도시에 살 때보다 만나는 사람이 많아져 오히려 사회활동이 늘었어요(웃음).”

깊은 산중에서 ‘행복’의 의미 찾으며 새 작품 구상 중인 작가 이외수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하며 소설을 쓰는 작가 이외수.


소설이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준다고 믿어
이씨가 이처럼 많은 이들을 만나는 건 지금 그가 살고 있는 곳이 화천군이 군 예산을 들여 조성한 ‘문화마을’이기 때문. 그를 위해 자연과 문학이 어우러지는 집필 공간을 선물한 화천군의 뜻에 보답하기 위해 이씨는 여기저기 자신을 필요로 하는 부름에 응하게 됐다고 한다. KBS ‘인간극장’을 통해 감성마을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공개했고, 최근엔 KBS 오락 프로그램 ‘해피선데이-1박2일’ 출연자들의 방문을 허락해 소탈하면서도 문인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모습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씨는 “‘소설가는 소설로만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깊은 산골에서 머리를 길게 기른 채 살고 있지만, 자신은 절대 혼자만의 세계에 파묻힌 도인이 아니라고도 했다. PC통신 시절부터 컴퓨터를 통해 세상과 적극적으로 교류했던 이씨는 요즘도 매일 아침 인터넷으로 신문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그 뒤엔 자신의 홈페이지(http://oisoo.co.kr)에 들어가 회원들이 올린 글을 읽고 댓글을 단다고. 그는 인터넷 세상에서도 최신 유행에 속하는 ‘플레이토크’라는 미니 블로그까지 운영하고 있다.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소설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씨는 “소설의 힘을 의심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나는 소설과 예술의 힘을 믿는다”고 말했다.
“오스카 와일드가 ‘소설은 전봇대와 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누군가에겐 오줌 누기에 좋은 기둥에 불과하지만, 실은 그 위로 지나가는 전깃줄을 통해 어둠을 밝히고 동력을 전하잖아요. 저는 소설이 그렇게 세상을 밝게 만들어주고 사람들의 정신과 내면 세계를 향상시킨다고 믿어요.”

앞으로도 좋은 글 쓰고 싶어 수십 년 피워온 담배 끊어
그래서 이씨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소설을 쓴다. 젊은 시절 작품을 완성할 때까지 스스로를 감금하는 ‘기행’으로 유명했던 그는 최근엔 건강이 나빠진 걸 느끼고 글을 계속 쓰기 위해 수십 년 피워온 담배도 끊었다고 한다.
“감성마을로 이사 오기 전에 살던 춘천 집 인근에서 재개발 공사가 한창 벌어졌는데, 그때 3년쯤 미세먼지에 시달린 뒤 기관지 천식이 생겼어요. 끊임없이 기침을 하면서도 습관적으로 담배를 피우곤 했죠. 그런데 여기 이사 온 뒤 공기가 좋아지고, 하루 여덟 갑 피우던 담배를 네 갑으로 줄였는데도 기침이 줄지 않는 겁니다.”
이씨는 “어느 날 문득 ‘이러다 글을 못 쓰게 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들면서 ‘담배가 글을 못 쓰게 하는 것이라면 물리쳐야 한다. 이것 하나 극복하지 못하면 작가로서 부끄러운 일 아닌가. 그만 피우자’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문학의 힘을 믿으며 집필 활동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그의 작품은 수많은 ‘외수 마니아’를 낳았고, 이씨의 소설은 출판시장 불황이 이어지는 요즘도 꾸준히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젊은 시절 절망과 좌절에 방황하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주로 발표했던 이씨는 “이제는 절망의 산을 넘고 고난의 강을 건너 이르는 행복의 나라에 대한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82년 소설 ‘칼’을 내고 10년간 절필한 적이 있는데, 그때 전 작가로서 제가 제시할 구원을 찾아 헤맸어요. 오랜 방황 끝에 내린 결론은 ‘누구나 자신을 구원할 수 있으며 그 길은 자기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거였죠. 이 메시지를 92년 발표한 ‘벽오금학도’에 담았고요. 그로부터 또 10여 년이 지난 지금 저는 새로운 모색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로서 처음에 절망을 말했고,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구원에 대해서도 제시했으니 이젠 삶의 궁극적인 목표인 ‘행복’에 대해 쓰려는 것이죠.”
요즘 ‘행복’의 의미를 찾으며 “시간의 옆구리를 바느질하는 재미로 살고 있다”는 그는 “다음 작품은 주인공과 함께 진정한 행복이 뭔지 탐색하고 깨달을 수 있는 내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의 지인인 시인 류근은 평생 문학과 예술 속에서 살아온 그에게 ‘격외옹(격식을 버리고 살아가는 노인)’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고 한다. “나는 이 별명이 참 마음에 든다”며 환히 웃는 이씨의 미소 속에서 그가 누리고 있는 진정한 ‘행복’이 보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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