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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역경을 딛고

유방암 극복하고 재기 무대 오르는 피아니스트 서혜경 감동 투병기

기획·김명희 기자 / 글·오진영‘자유기고가’ / 사진·조영철 기자

2008. 01. 23

피아니스트 서혜경에게 지난 한 해는 유방암이라는 고비와 맞서 싸운 힘겨운 시기였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피아니스트로서의 삶 또한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그를 만나 힘겨웠던 투병기와 이후 달라진 삶의 자세에 대해 들었다.

유방암 극복하고 재기 무대 오르는 피아니스트 서혜경 감동 투병기

서혜경씨(48)는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린 1세대 한국인 피아니스트다. 지난 80년 부조니 콩쿠르에서 동양인 최초로 우승했고 83년 뮌헨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 88년 카네기홀이 선정한 ‘올해의 세계 3대 피아니스트’로 선정됐다.
이렇듯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서씨지만 지난 한 해 그는 40년 연주 인생에서 가장 큰 고비를 맞았다. 피아니스트로서 가장 원숙한 시기에 복병처럼 찾아온 유방암이 그에게서 생명처럼 소중한 음악을 영영 빼앗아갈 뻔했던 것이다.
1년여의 힘겨웠던 투병생활을 이겨내고 1월 재기 무대를 앞두고 있는 서씨를 만난 날, 약속시간인 오후 1시에 나타난 그는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해야 해 지금 밥을 먹어야겠으니 양해해달라”며 도시락을 꺼냈다. 도시락에는 잘게 썬 김치와 섞은 현미밥 한 덩이가 들어 있었다.
“두 달 동안 하루 세 번씩 현미밥 140g을 먹으면서 체중을 8kg 줄였어요. 몸속 지방 성분이 다시 암세포를 재발시킬 가능성이 있다고해서 앞으로 2kg을 더 감량하려고 해요.”
서씨가 유방암 진단을 받은 것은 지난 2006년 10월 초. 직장(경희대 음대)에서 실시하는 정기 건강검진 후 조직검사를 해보라는 통지를 받고 대학병원에 갔다가 알게 됐다고.
“아프지도 않았고 아무 증상이 없었어요. 월경할 때 가슴이 붓는 것처럼 약간 붓는 정도였는데….”
유방암이라는 진단을 듣고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하는 그에게 병원 측은 ‘어서 입원날짜 잡고 수술을 받으라’고 재촉했다. 당장 며칠 후 이미 티켓이 매진된 일본 공연을 앞두고 있었고, 독일과 영국에서 녹음 스케줄이 잡혀 있던 상태였다. 그는 일단 예정된 연주회를 모두 마친 뒤 유방암 전문의로 유명하다는 의사를 수소문해 다섯 명이나 만났다.
“의사마다 다들 심각하다고 빨리 수술을 하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제가 ‘그럼 피아노는요?’라고 물으면 목숨이 달려 있는데 무슨 피아노냐고 하셨죠.”
오른쪽 가슴에 생긴 암세포가 이미 겨드랑이 림프샘까지 번져 다른 곳으로 전이될 수 있는 상태였다. 절제수술로 치료가 가능하지만 피아니스트로서의 생명은 위협당하는 상황이었다. 가슴을 포함해 겨드랑이의 림프샘, 어깨의 근육과 신경까지 다 절제하면 다시는 오른손으로 피아노를 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수술 후 33차례 방사선 치료 받으며 심각한 우울증 겪어
유방암 극복하고 재기 무대 오르는 피아니스트 서혜경 감동 투병기

“유방암 수술은 무조건 넉넉히 잘라내는 거래요. 재발 가능성을 막기 위해 ‘무조건 넉넉히’가 원칙이라는 거죠.”
수술 후 피아노를 두 번 다시 못 치게 된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그의 마음을 아무도 몰라줬다. ‘무조건 넉넉히’만 외치는 의사들에게 절망한 그는 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체의학 치료를 받으며 예정대로 스케줄을 진행하겠다고 하자 식구들이 펄쩍 뛰며 말렸다.
“아버지가 제 매니저한테 전화해서 혜경이 데리고 독일 가는 날에는 살인죄로 고발당할 줄 알라고 하셨대요. 큰 남동생과 올케도 ‘제정신이냐’며 저를 만류했고요.”
그러던 중 만난 의사가 서울대학병원의 노동영 교수였다. 피아니스트 서혜경의 오랜 팬이라는 노 교수는 피아노를 계속 치고 싶다는 그의 간절함을 이해해줬다. 수술실에서 늘 서씨의 음반을 즐겨 듣는다는 노 교수는 피아니스트에게 필요한 신경과 근육조직을 남기는 정밀수술을 제안하며 처음으로 희망을 줬다.
“노 교수님은 저에게 피아노 없는 삶은 죽음과 마찬가지라는 걸 이해해 주셨어요. 제 마음을 알아주니 이 분에게 맡기면 되겠다는 믿음이 생기더군요.”
수술 부위를 최대한 줄이고자 지난 2월부터 항암치료를 먼저 시작했다. 항암제는 잘못 맞으면 살이 썩어버릴 정도로 독한 약이었다. 그 독하고 무서운 약도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는 시도해봐야 알 뿐 결과를 보장할 수 없다고 했다. 3월에는 미국에 있는 딸(16)과 아들(12)을 만나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유언까지 남겼다.
“딸은 계속 미국에 있겠다고 하기에 그러라고 했고 아들은 엄마가 있는 한국에 오고 싶다고 해서 데려와 올케한테 돌봐달라고 부탁했어요.”
8회의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머리카락이 다 빠졌고, 이렇게 정말 죽고 마는 건가 하는 무섭고 외로운 심정이었다고 한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냐고 하늘을 원망하는 마음뿐이었어요. 이제야말로 내가 피아노에서 원하는 소리를 마음대로 끌어낼 수 있게 됐는데, 피아니스트로서 가장 원숙기에 이른 내 인생 최고의 시기인데 이런 병마가 닥치다니요.”
항암치료를 여덟 번 받고 난 후 찍은 소노그램(초음파를 이용한 진단용 측정 장치)에서는 암세포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 수술을 안 해도 되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봤지만 수술은 받아야 한다고 했다. 마침내 4월20일 수술대에 올랐다.
“두 시간 만에 깨어났더니 노 교수님이 수술이 잘됐다고 말씀하시는데 꼭 연주를 성공적으로 막 마치고 난 연주자처럼 발그레하게 혈색이 도는 얼굴이셨어요.”
피아니스트로서 사용하는 신경을 행여 건드릴세라 디스크나 뇌수술에 이용하는 신경자극기(신경을 건드리면 경고를 보내는 장치)를 동원한 수술이었다. 사진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막상 열어보니 겨드랑이 밑 림프샘 3개에 암이 자라 있어 모두 절제했다고 한다. 침대에 누워 수술실에서 나오면서 서씨는 손가락부터 움직여봤다고.

유방암 극복하고 재기 무대 오르는 피아니스트 서혜경 감동 투병기

“수술 후 일주일은 지나야 팔을 번쩍 들어올릴 수 있을 거라고 들었지만 저는 수술 받은 그날 저녁부터 팔을 들어올려 봤어요.”
병원에서는 일주일 입원해 있으라고 했지만 사흘 만에 퇴원해 집으로 돌아온 서씨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예전과 다름없는 음색의 피아노 소리가 손끝에서 울려나오는 걸 확인한 뒤 비로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5월부터는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서씨는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최대치 한계”라는 33회의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 심각한 우울증을 겪었다고 한다.
“방사선 치료라는 게 한마디로 사람을 삶아 태우는 거예요. 살이 다 시커멓게 탔는데도 매일 가서 또 태워야 하니 제정신으로 견디기 힘들더라고요.”
다행히 두 자녀가 방학을 맞아 엄마 곁에 있어줘서 한결 든든하고 위로가 됐다고 한다.
“항상 정신없이 바쁘고 씩씩했던 엄마가 매일 집에서 울고 있으니 아이들이 어쩔 줄 몰라 하더라고요. 매일 같이 병원에 동행해주며 저에게 큰 힘이 돼줬답니다.”
1년에 30~40차례 무대에 서고 경희대와 뉴욕 맨해튼음악원을 오가며 학생들을 가르치느라 자녀들과 보낼 시간이 거의 없던 그는 처음으로 아들이 수영학원 갈 때 같이 버스 타고 가고 끝나면 다시 미술학원 데려가며 일상의 행복을 맛보았다고 했다. 방사선 치료를 받는 동안, 여태 시간이 없어서 하지 못했던 운전면허 시험도 봤다.
“전신마취를 하고 나면 기억력이 감퇴한다는 이야기를 들어 걱정됐거든요. 피아니스트가 악보를 못 외우면 그것도 큰일이잖아요.”
면허시험 점수 90점이 나오기에 ‘아직은 내 머리가 괜찮구나’라고 안심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의 고마움 새삼 깨닫게 됐어요”
서씨는 오는 1월22일, 1년여 만에 무대에 오른다. KBS 교향악단과 함께하는 2008년 신년음악회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과 3번을 연주할 예정이다.
“지금도 부모님과 형제들은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건강이 우선이라고 걱정하지만 저는 예술가로서 새로운 한계를 넘는 과정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
피아노를 향한 그의 열정에는 변함이 없지만 유방암을 겪기 이전과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고 한다.
“예전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삶의 모든 것들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에 감사하게 됐어요. 앞만 보며 달려가던 급행열차 같았던 인생이 완행열차로 변했다고 할까요. 시골 간이역에 내려 하늘의 구름을 보고 지나가는 길 옆 이름 모를 풀꽃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는 자신이 “일등이 아니면 안 되고 계획대로 원하는 것을 성취해야만 하는” 완벽주의자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최선을 다할 뿐, 일등에 대한 욕심에 시달리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고.
“완벽하고 원숙한 연주를 할 수 있을 때까지 녹음을 미뤄왔는데 이제는 그런 게 다 후회가 돼요. 건강이 허락한다면 가능한 한 많은 녹음을 하고 싶어요. 리스트와 쇼팽, 라흐마니노프의 전곡 녹음도 하고 싶고…. 이제는 암을 극복한 최고의 피아니스트라는 전설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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