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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나눔의 삶

해외 오지 찾아다니며 봉사활동 하는 의사 백무현

기획·김명희 기자 / 글·백경선‘자유기고가’ / 사진·조영철 기자

2007. 12. 24

지난 99년부터 캄보디아·우즈베키스탄 등 의료의 손길이 잘 미치지 않는 곳을 찾아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는 성형외과 전문의 백무현씨. 자신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운이 좋은사람’이라고 말하는 그를 만났다.

해외 오지 찾아다니며 봉사활동 하는 의사 백무현

“백범 김구 선생의 ‘회고록’을 보면 ‘어떤 일을 생각하는 것은 쉽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것은 어렵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것은 그 실행을 지속시키는 것’이라는 글귀가 나와요. 봉사야말로 생각하는 것보다 실행이 어렵고, 계속하기는 더 어려운 일이죠.”
성형외과 전문의 백무현씨(47·101 성형외과 원장)는 지난 99년부터 해외 의료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성형외과 전문의인 그는 흔히 ‘언청이’라고 불리는 구순구개열 환자들의 수술을 맡고 있다. 또한 그는 2002년부터 국내 거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과 학대받은 아동들을 위한 의료 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의사가 되려고 마음먹었을 때부터 봉사에 대한 꿈을 막연하게 갖고 있었어요. 제게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것을 놓치지 않았을 뿐, 특별한 일을 한 것은 아니에요(웃음).”
그에게 봉사의 기회가 처음 찾아온 것은 지난 99년. 당시 그는 중앙대병원에 재직하면서 병원 내 크리스천 모임 ‘신우회’ 회장직을 맡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한 선교사가 모임에 찾아와 캄보디아의 열악한 의료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의료봉사를 부탁했다고. 그는 ‘일단 한번 가보자’는 생각으로 그해 12월 레지던트 1명과 간호사 2명을 이끌고 처음으로 캄보디아 땅을 밟았다고 한다.
“캄보디아에 처음 갔을 땐 가슴이 답답했어요. 환경이 너무 열악하더라고요. 총 들고 찾아와서 돈 달라고 위협하는 사람도 있었죠.”
2000년 개인병원을 개업하면서 자신의 의지대로 시간을 조절할 수 있게 되자 그는 이듬해부터는 캄보디아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지역으로까지 봉사의 손길을 넓혔다고 한다. 그 뒤로 1년에 2번씩 정기적으로 전반기(여름)에는 중앙아시아로, 후반기(겨울)에는 캄보디아로 해외 의료 봉사활동을 떠난다고.
“보통 11월 말에서 12월 초 후반기 봉사활동을 떠나요. 그때 캄보디아는 우기가 지난 후라 일하기 쉽기 때문이죠. 한 번 가면 보통 일주일씩 머무르면서 3~4명의 의사가 70여 건 정도의 수술을 합니다. 지난해 7월 우즈베키스탄에 갔을 땐 1백40여 건의 수술을 해야 했죠. 그렇다 보니 쉴 틈도 없고 몸은 녹초가 되지만, 한 번의 수술로 인생이 바뀌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저까지 행복해져요.”
요즘 해외봉사를 나갈 때는 백씨와 2~3명의 전문의가 함께 나가는데, 그들은 모두 그의 후배 또는 제자라고 한다. 누구나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는 그는 따라서 그 마음을 실천할 수 있도록 주변에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한데 자신이 계기가 돼 주변 사람들이 봉사를 시작하게 되는 것 역시 또 하나의 기쁨이라고 이야기한다. 전문의 외에도 레지던트 1명과 간호사 3명, 국제기아대책기구 간사 1명도 함께 가는데 그를 제외하고 팀의 구성원은 매번 바뀐다고. 경비는 전문의들이 나누어서 모두 감당하되, 레지던트나 간호사들에게도 일부를 내게 한다는 그는 봉사란 자기 것, 즉 자기 시간이나 돈을 들여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해외 오지 찾아다니며 봉사활동 하는 의사 백무현

지난 99년부터 9년째 무료 해외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의사 백무현씨.


가족들은 봉사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묻자 그는 “아주 좋아한다”며 웃었다. 그는 아내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고 있는데 특히 대학생인 큰아들은 대학 졸업 후 봉사단체에서 일하고 싶어한다고.
“3년 전 우즈베키스탄에 갈 때 처음으로 아내와 함께 갔는데, 그 후로 아내도 늘 같이 가고 싶어해요. 현재 군복무중인 둘째도 고등학교 다닐 때 한 번 데리고 갔고요. 나눔이 얼마나 보람되고 행복한 일인지 느끼게 해주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모두 한 번으로 끝이에요. 가족과 함께 가면 아무래도 일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아내가 같이 가자고 해도 들어주지 못하고 있어요.”

도움 절실하게 필요한 곳 보면 마음이 끌려
그의 도움은 모두 ‘약자’를 향해 있다. 그중에서도 외국인을 주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대답한다. 단지 “도움이 더 절실하게 필요한 곳에 도움을 주는 것뿐”이라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의료 혜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겠죠. 하지만 국내의 경우엔 많은 봉사단체에서 도움을 주고 있고, 무엇보다 의료보험 같은 의료 복지제도가 잘돼 있잖아요. 그에 비해 중앙아시아 지역이나 캄보디아 같은 경우엔 의료 혜택을 거의 받을 수 없어요. 그래서 간단한 수술로 제거될 수 있는 혹조차도 치료받지 못하고 평생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그리고 캄보디아의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화 30~50달러의 월급을 받고 있는데 언청이 수술을 위해 필요한 비용은 3백 달러 정도예요. 그러니 현실적으로 수술을 받기가 매우 힘들죠.”
또한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 노동자들의 경우 산재보험이나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다치더라도 병원비를 감당키 어렵다고 한다.
“봉사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쪽에서 도움이 필요한 쪽으로, 재물·기술·지식이 있는 쪽에서 없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하는 것이죠.”
그는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봉사할 수 있는 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기뻐할 때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는 것. 그리고 그 행복이 다시 봉사활동에 대한 의지를 북돋워준다고 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봉사활동에 대해 생각해보고, 한 번쯤은 해보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지속하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거기에는 ‘의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백 원장 자신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는 분명 특별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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