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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솔직한 그녀

4년 만에 새 앨범 발표하며 혼혈인 아픔 털어놓은 윤미래

글·송화선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 ■ 장소협찬·카페 space*c(02-512-6779) ■ 의상 & 소품협찬·제시뉴욕 ysb CELJINI ■ 헤어 & 메이크업·김지현 조연희(지·수·파·풍) ■ 스타일리스트·유은영

2007. 05. 18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소녀는 어린 시절 자신의 검은 얼굴을 원망하며 눈물을 쏟곤 했다. 하지만 이제 그는 흑인의 감수성과 한국인의 정서를 가진 가수로 우리 앞에 서 있다. 최근 자신의 핏줄을 고백한 가수 윤미래의 지난 삶을 들었다.

4년 만에 새 앨범 발표하며 혼혈인 아픔 털어놓은 윤미래

“유난히 검었던 어릴 적 내 살색, 사람들은 손가락질해 내 마미(mommy)한테 내 파피(poppy)는 흑인 미군 여기저기 수군대 … 하루에 수십 번도 넘게 난 내 얼굴을 씻어내, 하얀 비누를 내 눈물에 녹여내 까만 피부를 난 속으로 원망해”
-‘검은 행복’ 중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가수 윤미래(26). 90년대 중반 힙합그룹의 리드 보컬로 가요계에 데뷔한 뒤 인기를 모았던 그가 4년여 만에 낸 새 앨범 ‘t3, YOON MIRAE’에는 고단했던 지난 삶이 담겨 있다.
“어머니는 주한미군이던 아버지와 결혼해 미국으로 이주한 뒤 텍사스에서 저를 낳았어요. 저는 그곳에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며 자랐죠. 아버지의 부임지를 따라 유럽 등을 돌아다니다 열 살 때 처음 한국에 왔는데, 한국어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얼굴 까만 아이에게 이곳은 너무 낯설었어요.”
외국인을 거의 본 적 없던 아이들은 윤미래를 ‘깜둥이’라고 놀려댔고, “비행기 표 사줄 테니 네 나라 가서 살라”며 따돌리기도 했다. 외국인 학교에 진학했지만, 그곳에서도 한국 피가 섞인 그는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너는 미국인이냐 한국인이냐, 아니면 흑인이냐 동양인이냐 하고 묻는 사람들이 싫었어요. 저는 엄마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그저 평범한 아이일 뿐인데 집 밖에만 나가면 이상한 사람이 돼 있었죠. 저한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건, 아이에게 ‘엄마가 좋은지 아빠가 좋은지 얼른 대답해봐’라고 묻는 것만큼이나 어이없는 거예요. 전 그런 시선들 사이에서 완전히 지쳐버렸죠.”
그때 윤미래를 지켜준 건 부모의 사랑, 그리고 음악이었다고 한다. 자신이 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상관없이 딸로서 100% 사랑해주는 부모와 아무리 힘겨운 순간일지라도 마음을 위로해주는 음악 덕분에 그는 힘겨운 어린 시절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특히 미군 부대에서 스타 DJ로 이름을 떨칠 만큼 음악을 사랑하던 아버지 토머스 제이 리드씨(51)는 그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음악을 들려주고 지금까지 그를 이끌어준 ‘음악적 스승’이라고 한다. 윤미래는 이번 앨범에 이런 사연을 담아 “세상이 미워질 때마다 두 눈을 꼭 감아 아빠가 선물해준 음악에 내 혼을 담아 볼륨을 타고 높이높이 날아가 … 내 살색은 짙은 갈색 음악은 색깔을 몰라 … 세상이 미울 때 음악이 날 일으켜주네”(‘검은 행복’ 중)라고 노래했다.
“어릴 때를 생각하면 늘 아빠가 엄마한테 혼나던 모습이 떠올라요. 월급을 타면 옷하고 신발 사고, 남는 걸로 다 음반을 사들였거든요(웃음). 그렇게 모은 음반이 3만 장이 넘었어요. 언제나 우리집에서는 그 가운데 한 장이 울려퍼지고 있었죠.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파티를 연 적도 많았는데, 그럴 때면 늘 우리 아빠가 DJ를 했어요. 어릴 때는 다른 집 아빠도 다 우리 아빠 같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우리 아빠가 특별한 사람이더라고요(웃음).”
그의 아버지가 좋아하던 음악은 리듬 앤 블루스(R·B)나 솔 같은 흑인 음악. 그 영향으로 윤미래는 어릴 때부터 마빈 게이, 아레사 프랭클린, 마이클 잭슨 등의 음악을 들으며 자랐고, 탁월한 리듬 감각과 가창력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윤미래는 그의 아버지가 준 가장 큰 선물은 이런 재능보다도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말한다. 그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첫 녹음 때’로 기억하고, ‘가장 소중한 것’은 ‘내 목소리’라고 말할 만큼 음악을 사랑한다. 열세 살 때 가요계에 데뷔해 벌써 10년 넘게 노래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음악은 그의 모든 것이라고.

“음악 사랑하는 마음과 재능 물려준 흑인 아버지는 내 음악적 스승”
4년 만에 새 앨범 발표하며 혼혈인 아픔 털어놓은 윤미래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흑인의 감수성과 우리 정서를 가진 가수 윤미래.


“데뷔가 굉장히 빨랐죠? 열세 살 때 아는 오빠가 오디션을 본다기에 따라갔다가 우연히 가수가 됐어요. 카페에서 기획사 담당자와 오빠가 얘기를 나누는 걸 지켜보는 게 지루해 마침 흘러나오고 있던 노래를 흥얼흥얼 따라 불렀는데, 기획사 사람이 ‘목소리가 좋다’며 ‘가수할 생각 없느냐’고 하더라고요. 아마 토니 브랙스턴의 음악이었던 것 같은데, 그게 제 오디션 곡이 된 거예요(웃음).”
그는 “그분이 ‘당장 하자는 건 아니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같이 하자는 것’이라고 하기에 별 생각 없이 ‘좋다’고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왔다”며 “아빠는 ‘학교라도 졸업한 뒤 하라’고 말리셨지만 내가 ‘어차피 음악을 할 거라면 지금 하고 싶다’고 우겼다”고 말했다. 그때만 해도 그렇게 어린 나이에 활동하는 가수가 없었던 탓에 윤미래의 프로필에 나이는 열아홉이 됐고, 아버지가 흑인이라는 사실도 숨겨졌다고 한다. 이런 ‘거짓말’은 어린 그에게 큰 상처가 됐다.
“그때 이후로 전 6년 동안 열아홉 살로 살았어요. 이번에 앨범을 내면서 제 나이를 스물 여섯이라고 밝혔더니, 누군가 ‘저 아줌마가 스물여섯 살이래. 나이를 속이네’ 하는 댓글을 달았더라고요. 그냥 웃음만 났죠. 시작을 그렇게 했기 때문에 저 자신을 솔직히 드러낼 수 없다는 게 늘 힘들었어요.”
윤미래가 이번 앨범에서 “열세 살은 열아홉 난 거짓말을 해야 해 내 얼굴엔 하얀 화장 가면을 써달래 엄마 핏줄은 OK 하지만 아빠는 안 돼 매년 내 나인 열아홉 멈춘 시간에 감옥에 갇힌 나는 내 안에 기대 너무나도 참혹한 하루하루를 보내며”(‘검은 행복’ 중)라고 노래한 것은 음악을 통해 자신을 솔직히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그는 그동안에도 2002년 발표한 ‘원더우먼’이라는 노래에 ‘난 반 먹통 Korean 혈통’이라는 가사를 넣는 등 자신의 본모습을 보이기 위해 애썼다. 이번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뿐이라고.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검은 행복’에는 아버지 리드씨가 래퍼로 참여해 의미를 더했다.
“내 삶과 내가 음악을 사랑하게 된 이유를 담은 노래니까 아빠랑 함께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직접 아버지에게 랩을 부탁했다는 윤미래는 “아빠가 처음에는 ‘그 정도는 한 번에 할 것’이라고 자신만만해하더니 막상 녹음실에 들어가서는 벌벌 떨더라. 하지만 완성된 노래가 마음에 드시는지 요새는 앨범에서 그 곡만 반복해서 들으신다. 다음 앨범에는 엄마 목소리를 넣어야 할 모양”이라며 활짝 웃었다. 환한 미소에서 부모에 대한 깊은 사랑이 전해졌다.
윤미래는 지난 4년여 동안 전 소속사와의 법정 분쟁 때문에 음악활동을 하지 못하며 힘든 시절을 보냈다. 그동안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이 “부모님이 나 때문에 걱정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었다고 말하는 그는 “고생 끝에 새 앨범을 낸 만큼 이제는 공연과 방송활동을 열심히 하며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다”고 말했다.
“여섯 살 때 미국에서 엄마랑 같이 차를 타고 지나가다 굉장히 예쁜 집을 본 적이 있어요. 분홍색 벽돌로 지어진 아주 크고 화려한 집이었는데 그걸 보고 엄마한테 ‘엄마, 내가 나중에 크면 저런 집 사줄게’ 했던 게 아직도 기억나요. 그때부터 늘 제 꿈은 엄마한테 집을 사드리는 거였어요. 좋은 가수가 돼서 엄마한테 아름다운 집을 선물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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