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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책을 펴는 즐거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죽음을 앞두고 삶을 껴안는 법 가르친 노스승의 이야기

기획·김동희 기자 / 글·민지일‘문화에세이스트’ / 사진제공·REX

2007. 04. 13

미국의 한 노교수가 루게릭병을 선고받고 세상을 떠나기 전 14주 동안 제자에게 들려준 인생 강의를 책으로 엮었다. 정신은 맑지만 서서히 전신이 마비돼 죽음에 이르는 고통 속에서 길어낸 삶과 죽음, 사랑에 관한 성찰이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진리는 먼 데,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가까운 주변은 물론 일상에서 마음먹기 따라 언제든지 집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숨을 골라 번잡을 벗고 제 내면으로 진리여행을 떠나면, 심지어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음도 깨달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한 큰스님은 “죽음은 호수요, 삶은 그 호수에 던진 작은 조약돌의 파문과 같다”는 설법을 내놓기도 했다. 잘 죽기 위해 삶이 존재한다는 말도 어쩌면 그와 같은 맥락에서 나왔을 것이다.

참된 도리를 뜻하는 진리는 ‘인간의 삶과 죽음’ 문제와 동떨어진 것일 수 없다. 어떻게 한 생을 살아야 하며 또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야말로 진리의 요체라는 것이다. 미국의 칼럼니스트 미치 앨봄이 쓴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삶과 죽음의 문제를 성찰하고 그에 대한 지혜를 한 차원 높이기에 더없이 좋은 책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노교수가 들려준 인생의 의미
책 내용은 실화다. 미국 브랜다이스대학 사회학자 모리 슈워츠 교수가 루게릭병(ALS)으로 세상을 떠나기 서너 달 전부터 매주 화요일 제자 미치를 만나 인생에 대해 설파한 내용을 책으로 옮겼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노교수가 마지막으로 전한 인생강의록인 셈이다. 95년 3월, 미치는 TV를 보다 20년 전 대학 신입생 때 만난 은사 모리 교수가 루게릭병으로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루게릭병은 다리로부터 시작해 호흡기까지 올라가며 마비되는 희귀병. 몸은 움직이지 못하지만 정신은 또렷해 환자가 천천히 자신이 죽어가는 것을 알 수 있는 특이한 불치병이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모리 교수는 남은 삶을 어떻게 보낼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무기력한 몸속에 갇힌 완벽하게 말짱한 정신으로 무엇을 할 수 있나? 그냥 시름시름 앓다 스러질 것인가? 사람은 누구나 죽으니까… 기왕이면 죽음을 대단히 가치 있는 일로 승화시킬 수는 없을까? 그래, 인간교과서. 천천히 참을성 있게 생명이 사그라지는 나를 연구하게 하자!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게 하고 나와 더불어 죽음을 배우게 해주자! 그는 친척 친지들을 모아 ‘살아 있는 장례식’도 치르고 죽어간다는 것의 의미를 토론하는 모임도 운영했다. 그 내용이 TV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애제자 미치가 찾아왔다. 그리고 화요 강의가 시작됐다.

졸업 후 십수년 만에 만난 제자에게 먼저 교수가 묻는다. “마음을 나눌 사람을 찾았나?” “지역사회를 위해 뭔가 하고 있나?” “마음은 평화로운가?” “최대한 인간답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나?” 얼굴이 빨개진 제자에게 교수가 말한다. “난 죽어가고 있지만 죽어가는 건 그저 슬퍼할 거리에 불과하네. 불행하게 사는 것과는 또 달라.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나보다 불행한 이가 아주 많아. 나는 날 사랑하고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잖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산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는 선생님과 함께할 화요 수업의 주제 리스트를 작성한다. 죽음·두려움·나이가 든다는 것·탐욕·결혼·가족·사회·용서·의미 있는 삶… 강의가 진행되며 모리 교수의 건강은 점점 더 악화된다. 몸의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이 차츰 줄어드는 것이다. “아침이면 아직도 움직일 수 있는 내 몸의 부분들을 만져보고 아직 그걸 잃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하지. 그리고 잃은 것들에 대해, 천천히 내가 죽어가고 있는 것에 대해 슬퍼한다네. 하지만 곧 슬픔을 멈추네. 내 인생에서 여전히 좋은 것들에만 온 정신을 집중하는 거야. 내 몸이 천천히 시들다 흙으로 변하는 걸 보는 건 끔찍하지만 작별인사를 할 시간을 갖게 되니 한편으론 멋진 일이기도 해. 누구나 그렇게 운이 좋은 건 아니거든.”

‘죽음’에 대해 모리는 “어떻게 죽어야 할지 배우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할지도 배울 수 있다”고 설명한다. ‘가족’의 의미는 “그냥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지켜봐주는 누군가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알려주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사람에게 진정으로 만족을 주는 것은 자기가 줄 수 있는 것- 시간을 내주고 관심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해주고 들어주고- 을 타인에게 내줌으로써 얻는 것임을 강조한다. 대학을 나온 후 집과 돈과 차 등 물욕의 포로가 되어 지낸 미치에겐 가슴을 치고 들어오는 강의가 아닐 수 없다.

“서로 사랑하고 사랑의 감정을 기억하는 한, 자네는 계속 살아 있는 거라네”
다리가 마비됐을 무렵 한 인터뷰에서 모리 교수는 천천히 죽어가며 가장 두려운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내 엉덩이를 닦아줘야 한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제는 병이 심해져 간병인이 바로 앞에서 속옷을 벗겨내려 볼일을 보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생기가 빠져나가는 아픔과 함께 자기연민의 감정에 젖어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는 강의만은 쉬지 않는다. “자신을 용서하고 타인을 용서하게. 시간을 끌어서는 안 돼. 누구나 나처럼 용서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야. 누구나 다 그런 행운을 누리는 게 아니라니까.”

수강생이라곤 미치 한 명밖에 없는 모리 교수의 강의는 14주간 계속됐다. 종강을 앞둔 마지막 화요일, 모리 교수는 마지막 수업을 죽음보다 긴 사랑의 영속성으로 갈무리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우리가 가졌던 사랑의 감정을 기억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진짜 우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잊히지 않고 죽을 수 있네. 자네는 계속 살아 있을 수 있어. 자네가 여기 있는 동안 만지고 보듬었던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네.”

모리 교수는 그 화요 강의가 끝난 주 토요일 영원히 눈을 감았다. 그는 집에서 멀지 않은 연못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나무 밑에 묻혔다. 제8주인가 9주째의 수업날 그는 자신의 묘비엔 ‘마지막까지 스승이었던 이’라는 글귀를 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발은 삶에, 그리고 한 발은 죽음에 딛고 서서도 치열하게 강의록을 준비하고 강연했던 모리 교수의 혼은 제자의 논문(책)으로 되살아났다. 세종서적 간, 공경희 옮김.
지은이 미치 앨봄(1958~)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에미상을 수상한 방송인이자 칼럼니스트. 모리 교수와의 만남 이후 여러 자선단체의 이사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단 하루만 더’ 등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소설들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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