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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아이와 함께 보는 명화 ②

삶의 잔혹한 단면 엿보게 하는 ‘도살된 소’

2007. 02. 13

삶의 잔혹한 단면 엿보게 하는 ‘도살된 소’

렘브란트, 도살된 소, 1655, 나무에 유채, 94×69cm, 파리 루브르박물관


예술가들은 아름다운 대상만을 그림으로 남기지는 않습니다. 흉측하거나 역겨운 대상도 그림으로 그립니다. 추한 것이라고 피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요. 인생의 진실이 담겨 있다면 추한 것도 좋은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렘브란트의 ‘도살된 소’는 끔찍한 소재를 통해 우리의 삶의 조건을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입니다. 인간은 동물과 식물 모두를 먹습니다. 균형 잡힌 영양을 얻기 위해서는 어느 한 가지에 치우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동물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어떤 순간에도 살아남으려고 애를 씁니다. 이런 동물을 잡아먹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그들에게 공포와 고통을 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필요에 의해 우리는 그들을 잔인하게 도살합니다. 이렇게 다른 동물을 죽일 권리가 과연 인간에게 있는 걸까요? 채식주의자들 가운데는 인간이 동물을 죽일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부처님도 인간에게 함부로 살상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렘브란트의 ‘도살된 소’는 거꾸로 매달린 소의 주검을 통해 인간의 이기심과 잔인함을 상기시키는 그림입니다. 약자에 대한 렘브란트의 동정심이 절절히 느껴지네요. 어쩌면 인간의 운명 또한 이 소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릅니다.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 애를 쓰고 노력해도 결국은 인간 역시 한줌 흙으로 변합니다.
우리를 위해 죽은 동물에 대해 진정한 동정심을 가질 때만이 우리도 신으로부터 진정한 동정을 받게 되지 않을까요? 렘브란트의 ‘도살된 소’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가면 렘브란트의 집이 지금도 여전히 잘 보존돼 있습니다. 이 집은 1911년, 렘브란트의 판화들을 전시하는 국립미술관으로 지정돼 당시의 모습 그대로 가구 등을 꾸며 놓고 있습니다. 1656년 파산한 렘브란트의 재산 상황을 당시 감정인이 방 하나하나 그대로 기록해둔 덕에 이같은 복원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이주헌씨는… 일반인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서양 미술을 알기 쉽게 풀어쓰는 칼럼니스트. 신문 기자와 미술잡지 편집장을 지냈다. 현재 경기도 파주 헤이리 문화 마을에서 아내와 함께 4남매를 키우며 집필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최근 반 고흐가 머물렀던 오베르 지방, 엑상프로방스의 세잔 아틀리에, 예술마을 생 폴 드 방스, 8년간의 공사를 마치고 재개관한 오랑주리미술관 등 프랑스 지역 미술여행을 다녀왔다. 러시아 미술관 탐방기 ‘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 미술’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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