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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오랜만의 외출

작가 성석제가 들려주는 ‘나의 삶, 나의 문학이야기’

글·구가인 기자 / 사진·박해윤 기자

2006. 11. 24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등으로 잘 알려진 작가 성석제씨가 어머니 독자들과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작가는 이 자리에서 문학소년이던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당시 인상 깊게 읽었던 추천도서, 집필 습관, 아버지를 닮아 책을 좋아하는 자녀 이야기 등을 들려줬다.

작가 성석제가 들려주는 ‘나의 삶, 나의 문학이야기’

남도에 와서일까. 절기상으로는 가을이 분명한데도 선선하기보다는 따뜻한, 사람에 따라서는 덥다고 할 수도 있는 날씨였다. “덥네요(웃음).” 지난 10월14일 전남 목포농협조합 강당에서 작가 성석제씨(46)의 강연회가 열렸다. 오후 2시 강연을 위해 그날 오전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작가에게 목포의 날씨는 다소 덥게 느껴지는 듯했다. 글에서는 구성지고 맛깔나는 입담을 자랑하는 그이지만 “강연을 하는 자리에서는 늘 덥다”며 쑥스러운 미소와 함께 ‘말하기’에 대한 부담감을 표시한다.
“대학 1학년 여름 제주도에 가는 배를 타기 위해 목포에 온 뒤 27년 만에 다시 왔습니다. 제주도에 가기 전 목포항에서부터 한 여대의 4학년 여대생들과 옥신각신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 때문인지 제게 목포는 아리땁고 성숙했던 여대생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에 더해 목포항에서 먹은 우동이 인상적이었는데, 우동에 해산물을 많이 넣어줄 만큼 인심 좋은 동네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작가는 “아마 그때 그 여대생들이 이날 강당에 모인 중년여성들의 나이대가 됐을 것 같다”며 강연의 문을 열었다. 이날 강연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위원장 민병욱)에서 주최하는 ‘어머니 독서문화학교’ 참여자들을 위해 마련된 것. 주최 측에서 제시한 주제는 ‘재밌는 문학, 맛있는 책읽기’였다. 그러나 작가는 “책, 특히 소설은 본래 재미를 위해 읽는 것이기 때문에 억지로 읽으라고 해봤자 소용없다”고 말한 뒤, ‘책읽기가 유일한 재미’였던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일곱 살 때 아홉 살 위인 형이 글을 깨치라고 사다준 만화책이 인생의 첫 번째 책이었고, 눈이 침침하신 할아버지를 위해 당시로서는 성인소설에 가까운 ‘연산군’ 같은 책을 소리 내 읽었다는 그는 어린 시절부터 ‘책벌레’였다고 한다.
“제가 경북 상주 출신인데 당시 시골에 텔레비전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는 일은 책읽기밖에 없었어요. 제게 책은 그저 재미를 위해 읽는 거였죠. 주로 무협지를 많이 읽었는데 중2 때까지 읍내 책방에 있는 책은 거의 다 읽었어요. 책이 인격을 성숙시키는지는 사실 모르겠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전 일찍 세상사에 도통했어야 하는데 그건 아니거든요. 다만 책은 한 소년이 수년 동안 벼룩이 날뛰는 캄캄한 골방에서 탐독을 하게 할 만큼 재미있는 거였습니다.”
문학적인 자양분이 될 수 있다고 할 만큼 양질의 책을 읽은 것은 중3 시절 서울로 전학 온 후였다고 한다. ‘바둑반에 들어가려다 잘못해서 들어간 독서반’에서 한국 고전문학 전집과 세계 고전문학 전집을 접하게 되면서부터였다고. 이 시기에 처음 연암 박지원의 소설을 읽게 됐다는 작가는 “박지원의 소설을 읽은 뒤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가장 존경하고 좋아하는 작가로 박지원을 꼽는다고.
“처음 박지원 소설을 읽고 한국에도 무협지가 있구나 생각했어요(웃음). 그런데 이 소설은 무협지의 재미뿐 아니라 진지함도 있다는 것 때문에 더 놀랐죠. 박지원 소설은 지금도 고전으로 꼽히지만, 박지원이 살던 당시에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책이 나오면 한양의 종이값이 오르고 필사하는 사람의 팔이 빠질 정도로요. ‘열하일기’나 ‘허생전’ 같은 박지원의 소설은 가장 먼저 추천해드리고 싶은 책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있다면 홍명희 선생이 쓰신 ‘임꺽정’이에요. 한자어가 아닌 우리말이 많아서 처음엔 읽기가 좀 어렵겠지만 나중엔 중독돼서 손에서 떼기 힘들 정도가 됩니다. 아마, 이분이 살아계셨다면 노벨문학상을 받지 않았을까 싶어요.”

작가 성석제가 들려주는 ‘나의 삶, 나의 문학이야기’

지난 10월 전남 목포에서 열린 ‘어머니 독서문화학교’ 개최 강연에 참석한 성석제씨.


중학교 때까지 또래 중에서 손꼽힐 만큼 많은 책을 읽은 작가지만, 고등학교 진학 후 대학에 들어갈 때까진 별달리 읽은 소설이 없다고 한다.
“학생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안타까워하시는데 사실 그보다는 예나 지금이나 ‘못 읽는다’는 표현이 정확한 거 같아요. 시험의 압력 때문에 책 읽을 여유가 없는 거죠. 책은 억지로 읽으라고 해서 읽는 게 아니에요. 책이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생각이 들면 읽지 말래도 읽을 겁니다.”

집에 책이 많아서인지 그만 읽으라고 말해야 할 정도로 책읽기를 즐기는 아이들
강연자와 참석자가 질문을 주고받는 시간이 따로 주어졌던 이번 강연에서는 작가의 개인사에 대한 질문이 주로 나왔다. 한 참석자가 법대(연세대 79학번)를 졸업한 그에게 작가의 길에 들어선 계기에 대해 질문하자 “사회계열로 입학했고 1학년 때 너무 놀았던 탓에 당연히 1지망으로 지원한 법학과에 떨어질 줄 알았는데 그해에만 모든 지원자를 받아줬다”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답변한 작가는 “현상을 수렴해 정의(定義)해놓은 법문을 해석하는 학문이 법학이기 때문에 소설을 쓰는 데도 도움이 됐다”는 부연설명도 덧붙였다.
특이한 것은 작가의 아들 이야기. 집안 분위기 때문인지 고등학교 2학년과 중학교 2학년인 딸과 아들 모두 “책을 지나칠 정도로 좋아한다”고 한다.
“제가 책을 쓰는 사람이다보니 자존심 때문에라도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말하진 않아요. 그런데 저희 아이들, 특히 둘째인 아들 녀석은 늘 책을 손에 들고 삽니다. 심지어는 밥 먹을 때조차 식탁까지 책을 들고 와서 제가 책을 그만 읽으라고 잔소리할 정도죠. 아마도 집에 책이 많다보니 자연스레 책이 주는 재미를 깨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날 강연에서 성석제씨는 자신의 집필 습관에 대해서도 공개했다. 그는 한 편의 글을 쓰기 전까지 몸을 혹사시키는 타입이라고 한다.
“소설을 쓰기 전에 아무 생각 없이 술을 퍼마시거나 산에 올라가서 이제 ‘소설 쓰는 일만 남았다’는 생각이 날 정도로 몸을 괴롭혀 힘들게 합니다. 그렇게 몸을 만든 뒤, 한 일주일 정도 지나면 원고가 나오죠. 그럼 다시 덮어놓고 소설에 대해 잊기 위해 술을 마시고 산에 올라가며 몸을 혹사 시킵니다. 그 뒤 또 몸이 만들어지면 원고를 교정하죠. 이와 같은 행위를 한 번 더 한 뒤 마감이 임박해지면 교정해서 출판사에 넘깁니다. 그러면 편집자가 원고를 수정해서 넘겨주고, 그걸 제가 다시 보게 되죠. 이런 과정을 거치면 총 7번 정도 원고를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책을 낼 경우엔 이미 나온 원고를 같은 방식으로 교정하고 또다시 교정해야 합니다. 이러다보면 나중엔 자신의 원고를 외울 지경에 이르게 되죠.”
그러나 책이 이렇듯 공들여 나온 데 비해 우리 출판시장은 상황이 좋지 않은 편이다. 작가 역시 책의 입지가 좁아져가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어려운 출판 상황에서도 지금처럼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젊은 작가들이 많이 나왔던 때가 없어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출중한 작가가 있는지조차 몰라서 아쉬울 때가 많습니다. 어쨌든 책을 통해 지식을 넓히고 재미를 얻었으며 교육받은 이들이, 다음 세대에게 우리가 얻은 이익을 물려줄 수 없다면 안타까울 듯합니다. 미안한 얘기지만 (아이들을) 조금은 괴롭혀서라도 다음 세대에게 독서의 재미를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웃음).”
올해 글을 쓰면서 유난히 몸을 많이 혹사시켰다는 작가 성석제씨는 11월 그동안 나왔던 중단편을 모은 새 단행본과 지난 2000년 나온 ‘순정’ 개정판을 출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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