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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사건 추적

청와대 행정관 아내 살해사건 뒷얘기

글·이남희 기자

2006. 04. 04

청와대 행정관이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부부싸움 끝에 열린우리당 대변인실 간부로 근무하는 아내를 목 졸라 숨지게 한 것. 10년 연애끝에 결혼한 이들 부부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현직 청와대 행정관이 부부싸움 끝에 아내를 목 졸라 살해한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던지고 있다.
서울 동대문경찰서는 3월18일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청와대 행정관 이모씨(39·3급)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는 전날인 3월17일 오전 1시30분경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J교회 앞 자신의 카렌스 승용차 안에서 부부싸움을 하던 중 아내를 넥타이로 목 졸라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숨진 아내는 열린우리당 대변인실 부국장 이모씨(35)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 부부는 3월17일 오전 0시59분경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H아파트를 빠져나갔다. 이 모습은 아파트 엘리베이터 CCTV에 잡혔다. 하지만 오전 2시15분경 신발을 신지 않은 남편 이씨가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이 CCTV에 나타나며 그는 유력한 용의선상에 올랐다.
이씨는 3월17일 오전 7시 청와대에 정상출근해 열린우리당 사무처에 전화를 걸어 “아내가 출근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날 오후 2시30분경 참고인 자격으로 경찰에 연행된 이씨가 “부부싸움을 하다가 홧김에 아내를 죽였다”고 자백하며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살해된 부인 이씨는 이날 오전 10시30분경 전농동 J교회 앞 도로에 주차된 카렌스 승용차 안에서 발견됐다. 최초 목격자인 주차단속원 김모씨(59)는 “운전석 의자를 약간 뒤로 젖힌 채 쉬는 자세로 누워 있어서 자는 줄 알았는데 계속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어 신고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 행정관이 부인을 살해한 배경은 무엇인가.
구속영장에 따르면, 3월16일 밤 함께 와인을 마시던 이들 부부는 자정 무렵 남편 이씨에게 한 여성으로부터 휴대전화가 걸려오면서 심한 말다툼을 했다. 술에 취한 부인이 다툼 끝에 집 밖으로 나가자 그는 아내를 설득하기 위해 뒤따라가 승용차에 아내를 태우고 자택 인근의 도로로 드라이브를 나간 것. 길가에 차를 세워놓고 잠시 남편이 담배를 피우러 차 밖으로 나간 사이 부인이 음주 상태에서 운전석으로 자리를 옮기자, 이씨는 운전석 뒷좌석에 올라 이를 제지했다. 이 과정에서 부인이 “죽여버리겠다”고 소리치자 이에 격분한 남편이 갖고 있던 넥타이로 부인을 목 졸라 숨지게 했다는 것.
이씨는 경찰 수사에서 범행 이후 맨발로 돌아온 이유에 대해 “‘내가 사준 신발을 신고 바람을 피우러 다니냐’는 아내의 말이 생각나 벗어버렸다”고 말했다. 경찰은 사건 초기 브리핑 때 이 같은 진술을 공개했다가 “잘못 전달됐다”며 번복해 그의 범행동기에 대한 의구심을 키웠다.
그가 넥타이로 부인의 목을 조른 것을 놓고 처음부터 살해 의도가 있었는지 여부도 논란이 됐다. 그러나 경찰은 “아내의 목을 조르는 데 사용한 넥타이는 이씨가 계획적으로 넣어간 것이 아니라 옷을 걸어둘 때 코트 속에 넣어둔 것으로 보인다”며 사건을 우발적 범행으로 잠정 결론지었다.
경찰 관계자는 “밤에 전화를 걸어온 여성이 이씨와 어떤 관계인지, 무슨 일을 하는 여성인지 전혀 확인한 바 없다”며 그의 사생활에 대해서 일체 함구했다. 그러나 이씨의 여자 문제가 이들 부부의 갈등을 증폭시켰다는 이야기가 정치권에서 조심스럽게 흘러나온다.

최근까지 부인의 세 동생 데리고 살며 뒷바라지할 만큼 처가를 잘 챙겨
아내를 살해한 이씨는 현 정권 출범 때부터 청와대에서 일해온 386 운동권 출신이다. 2002년 대통령선거 당시 비교적 늦게 노무현 후보 캠프에 합류한 그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 국민참여센터 행정관을 거쳐 청와대에 합류했다. 이후 청와대 국민참여수석실, 국정상황실을 거쳐 지난 2월부터 홍보기획비서관실에서 근무했다. 그는 97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민주당 C모 의원의 보좌관으로 출발해 6년간 국회에서 일했다. 이씨의 지인들은 그를 ‘일처리를 꼼꼼히 하는 성실한 인물’로 평가했다. 과묵하면서도 속이 깊어 주변 사람들을 많이 배려했다는 것. 그는 최근까지 부인 이씨의 세 동생을 데리고 살며 뒷바라지할 만큼 처가를 잘 챙겼다고 한다.

숨진 아내 이씨는 열린우리당 대변인실 부국장으로 일했다. 그가 정치권과 인연을 맺은 것은 95년 조순 전 서울시장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에서 활동하면서부터다. 조순 서울시장이 취임하면서 서울시 홍보기획과 별정직 공무원으로 근무하게 된 것. 이후 16대 민주당 L의원의 보좌관으로 국회에 들어갔고, 열린우리당 창당 때 당을 옮겨 줄곧 공보업무를 담당해왔다. 활달하고 밝은 성품의 부인 이씨는 지인들로부터 ‘열린 사람’으로 통했다.
두 사람은 서울 한 대학의 선후배 사이로, 학생운동을 하며 만났다. 85학번인 남편 이씨와 90학번인 부인 이씨는 10년쯤 사귀다가 2003년 11월 결혼식을 올렸다. 금실이 좋았던 이들 부부에게 일어난 비극에 대해 주변 사람들은 비통한 심경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숨진 이씨의 한 직속상관은 “이 부국장은 평소 일을 잘했고, 부부 갈등으로 고민하는 모습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며 이번 사건을 당혹스러워했다.
그러나 다른 지인에 따르면, 숨진 이씨는 최근 “아기를 가지면 (부부 사이가) 나아지지 않겠냐”고 말해왔다고 한다. 또 운동으로 10kg이 넘는 몸무게를 감량한 그가 최근 남편 문제로 고민하면서 폭음을 하기도 했다는 것.
이웃 주민들은 “이들 부부가 지난해 말 두 차례 고성을 지르며 아주 크게 싸운 적이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3월18일 서울 H병원에 마련된 부인 이씨의 영정 앞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명의로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내용의 봉투가 놓여 있었다. 또 빈소에는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이재정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천정배 법무부 장관 등이 보낸 조화 10여 개가 전달됐다. 3월19일 화장된 그의 유해는 고향인 강원도 태백에 뿌려졌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길에 들어선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연신 눈물을 쏟고 줄곧 침묵을 지키며 식사까지 거부했다고 한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던 부부의 서울 휘경동 보금자리는 당분간 주인이 없는 ‘슬픔의 공간’으로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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