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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야구’로 세계를 놀라게 한 김인식 감독

기획·김명희 기자 / 글·박준철‘일간스포츠 야구팀장’ / 사진ㆍ 한화 이글스 제공

입력 2006.04.03 16:22:00

‘야구월드컵’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선전을 거듭하며 온 국민에게 감동을 안겨준 한국 야구 대표팀 뒤에는 김인식 감독이 든든하게 버티고 서 있다. 병마를 극복하고 오뚝이처럼 일어서 사람이 중심이 되는 ‘믿음의 야구’를 펼쳐보인 김인식 감독의 리더십 & 그림자 내조로 유명한 부인 안명혁씨 인터뷰.
‘믿음의 야구’로 세계를 놀라게 한 김인식 감독

사람을 중시하는 김인식 감독의 야구스타일은 일상생활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지난 3월 미국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낳은 최고의 스타는 단연 한국 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김인식 감독(59·한화 이글스). 뇌경색 후유증을 앓는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에 대한 믿음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국 야구팀을 세계 4강의 반열에 올려놓은 그의 철학과 인간미가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는 것.
4강 진출을 확정한 다음 날인 3월17일 부인 안명혁씨(58)와 어렵게 전화통화가 이뤄졌다. 그동안 자신을 일절 드러내지 않는 ‘그림자 내조’로 일관해온 안씨는 기쁜 가운데에서도 김 감독의 건강이 걱정되는 눈치였다. 지난 2004년 뇌경색으로 쓰러져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있는 김 감독은 아직도 걸음걸이가 불편하다.
“좀 전에도 남편과 통화를 했는데 다른 얘기는 안 하고 몸 상태만 물어봤어요. 워낙 내색을 안 하지만 기분 좋은 건 말 안 해도 아는 거고…. 컨디션은 괜찮다고 하는데 그래도 경기가 있을 때마다 세 시간 넘게 서 있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그게 걱정이에요.”
소감을 묻자 안씨는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선수들이 힘을 합해 잘해서 좋은 성적이 가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남편이 항상 하는 얘기도 그런 거예요. 야구는 단체 경기인 만큼 모든 선수가 제 기량을 발휘하면서도 팀워크를 이뤄야 한다는 거죠.”
안씨의 말처럼 김 감독은 모든 선수가 기량을 100% 발휘할 수 있게끔 이끄는 지도자다. 60년 배문중학교 2학년 때 야구공을 손에 쥐면서 야구와 인연을 맺기 시작해 이후 40년 동안 야구를 화두로 여기고 살아온 김인식 감독. WBC를 거치면서 ‘휴먼 야구’라는 새로운 애칭을 얻은 그의 야구 스타일은 그라운드에서뿐만 아니라 운동장 밖에서도 그대로 묻어난다.
95년 가을의 일이다. 프로야구 OB 베어스(현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 축하연에서 김인식 감독이 선수단 앞에서 우승 소감을 밝히고 있었다. “최고 수훈 선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김 감독은 즐비한 스타 선수들을 모두 제쳐놓고 백업 포수의 이름을 호명한 뒤 “OO이, 정말 수고 많았어”라고 칭찬했다. 이 말 덕분에 선수들은 고참과 신인, 주전과 후보 등을 가릴 것 없이 모두 하나가 돼 우승의 기쁨을 나눌 수 있었다.
두산 감독을 맡고 있던 지난 2000년 서울 잠실 근처의 한 식당에서 김 감독은 야구인들과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는 LG에서 계약기간 내 중도 해임된 천보성 감독(현 한양대)도 있었다. 김 감독은 후배인 천 감독에게 “감독은 잘려도 잔여 계약기간 연봉이 나오지만 감독을 믿고 따라온 코치들은 배고프다. 능력이 되는 한 그들을 보살피라”고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이러한 조언은 이후에도 몇 차례 계속됐다.
김 감독은 야인 시절 이를 깨달았다고 한다. 93년 쌍방울과 감독 재계약에 실패한 뒤 2년 동안 야인 생활을 한 그는 자신과 함께 한 코치들을 만날 때마다 처절한 심정이었다고 한다. “재계약을 하지 못한 이유가 여러 가지였지만 스스로만 생각한 것이 아닌가 후회가 됐다. 나를 믿고 따른 코치들이 저런 고생을 하고 있는데….” 김 감독의 따뜻한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소회다.
지난 2003년 시즌 막바지, 김 감독은 두산에 사의를 표했다. 구단이 지금 대표팀 투수코치를 맡고 있는 선동렬 당시 KBO 홍보위원(현 삼성 감독)을 후임 감독으로 점찍어두고 접촉했다는 말이 나온 직후다. 구단주로부터 ‘평생 감독을 맡아달라’는 말을 들은 바도 있고 다시 야인이 되기도 싫었지만 혹 후배가 자신 때문에 망설일까 미리 길을 터준 것이다. 그동안 애써준 구단의 부담도 덜어주면서.

믿음의 야구 펼쳐보이는 김 감독도 손자의 배신(?) 앞에서는 약한 모습
‘믿음의 야구’로 세계를 놀라게 한 김인식 감독

김인식 감독이 가장 사랑한다는 손자와 함께. 손자는 2001년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 이틀전 태어난 복덩이라고.


WBC에서도 사람을 먼저 챙기는 김 감독의 리더십은 여실히 드러났다. 그는 대표팀 선수 명단을 발표한 뒤 일부 언론에서 이종범(기아)이 주장으로 낙점됐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하자 망설임 없이 이를 수용했다.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이종범을 주장으로 해야겠네. 다른 사람을 시키면 동료 간 불화가 생길 수 있지 않겠어.” 그는 팀 융화를 먼저 생각했다. 이종범은 3월16일 일본과의 2라운드 경기에서 8회 2타점 결승타를 날리는 등 맹활약으로 김 감독의 믿음에 화답했다.
김 감독은 선수들 사이에서도 가장 인기가 높은 감독으로 꼽힌다. 모든 선수들을 인간적으로 대하기 때문이다. 코치들에게 “잘난 놈이나 못난 놈이나 인간적으로 대하라”고 늘 강조한다. 김 감독이 약체로 분류된 팀을 이끌고 좋은 성적을 내는 이유다. 개인적으로 힘들 때 대접받은 선수가 팀이 어려울 때 나서서 힘을 보태기 때문이다. 김 감독이 지휘하는 팀에서 유독 ‘재활’에 성공하는 선수가 많이 나오는 것과도 상통한다.
김 감독은 ‘덕장’답게 선·후배가 등을 돌려도 배신감을 느끼지 않는다. 감싸안다 보면 언젠가는 다시 만나 회포를 풀 날이 온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대부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다는 것도 체험으로 안다.
하지만 그런 김 감독이 가족에게서는 배신감(?)을 느낄 때가 있다고 한다. 다름 아닌 다섯 살 난 손자 때문이다. 김 감독은 손자 사랑이 각별하다. 휴대전화 고리에 사진을 달고 다니고 운동장에 있을 때도 손자의 전화는 꼭 받을 정도다. 손자도 할아버지를 유난히 따른다. 그런데 이웃에 사는 아들 내외가 퇴근 후 데리러 오기 전까지다. 김 감독은 “낮에 할아버지 손잡고 백화점에 들러 온갖 아양을 떨며 욕심을 채운 손자가 엄마 아빠가 오면 뒤도 안 돌아보고 자기 집으로 갈 때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여성동아 2006년 4월 5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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