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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사건 추적

연쇄 성폭행범 ‘발바리’이씨 검거 뒷얘기

‘알고보니 아내와 20대 남매 둔 평범한 가장!’

글·이남희 기자 / 사진ㆍ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06.03.15 13:26:00

8년에 걸쳐 전국을 공포에 떨게 했던 연쇄 성폭행범, ‘발바리’ 이모씨가 지난 1월 말 경찰에 붙잡혔다. 한 가정의 평범한 가장이었던 그가 엽기적인 범죄행각을 벌이기까지 삶의 궤적을 밀착 추적했다.
연쇄 성폭행범 ‘발바리’이씨 검거 뒷얘기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이면 그는 조깅을 하며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 여성들이 혼자 사는 원룸촌은 그가 범죄를 저지르기 쉬운 최적의 장소였다. 우발적으로 처음 여성을 성폭행한 후 범행은 그에게 습관이 돼버렸다. 여성을 위협할 때만큼은 마치 자신이 왕이 된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대전 동부경찰서는 지난 1월20일 8년여 동안 전국을 떠돌며 74차례에 걸쳐 82명의 여성을 성폭행하고 2천4백만원을 빼앗은 혐의(상습 강도강간)로 속칭 발바리 이모씨(46)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에게 피해를 당한 여성은 1백 명이 훨씬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발바리’란 별명은 그가 범행 지역을 가리지 않은데다 검거 직전 동물처럼 날렵한 동작으로 경찰을 따돌려 붙여진 것. 인면수심의 범죄를 벌여온 그가 아내와 두 자녀가 있는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었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이씨는 157cm의 작은 키에 마른 체격을 지닌 소심한 성격의 40대 중년 남성. 주변 사람들에게 그저 ‘조용한 이웃’으로 통하던 그가 연쇄 성폭행의 늪에 빠져든 이유는 무엇인가. 이씨는 경찰 수사에서 “택시기사로 일하던 98년 1월 술 취한 20대 여성 승객이 ‘택시기사가 길도 잘 모르느냐’며 핀잔을 주자 보복할 심정으로 원룸 주택에 따라 들어가 처음 성폭행을 했다”고 범행동기를 밝혔다. 첫 범행이 의외로 쉽게 이뤄지자, 그는 반복적으로 성폭행을 일삼았다. 일말의 거리낌도, 양심의 가책도 없었다.
그의 범죄행각은 대담하고 지능적이었다. 택시 승객과 원룸촌에 홀로 거주하는 여성들을 범죄의 타깃으로 삼았다. 그는 새벽운동을 하며 범행 장소를 물색한 뒤, 출입문이 열려 있는 여성의 집에 주로 침입했다. 가스 배관을 타고 화장실 창문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출입문이 닫혀 있을 때는 가스 검침원이나 우유배달원, 보일러 수리공 행세를 하며 피해자들을 속여 집에 침입했다. 많은 피해자가 “범인에게 악취가 난다”고 증언한 것은, 그가 운동을 마친 직후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그는 ‘상희’라는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피해자의 집에 침입하기 전, “여기 상희네 집 아니냐”며 접근했던 것. 범행을 저지른 후에는 “대전역이 어느 방향이냐”고 피해자에게 물어, 자신이 대전 지리에 밝은 사실을 감췄다. 또 귀금속이나 수표는 건드리지 않고 현금만을 뺏는 등 교묘하게 경찰의 추적을 따돌렸다. 이씨가 치밀하게 위장한 탓에 경찰은 상희라는 이름을 가진 수백 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이는 등 헛수고를 거듭해야 했다.
이씨는 ‘범죄 현장에 있는 모든 여성을 빼놓지 않고 성폭행한다’는 원칙을 지켰다. 2001년에는 여성 7명이 함께 사는 방 2개짜리 집에 들어가 3명을 성폭행하고, 나머지 4명은 추행했다. 밧줄로 한꺼번에 손이 묶인 7명의 여성들은 칼을 들이대는 이씨의 위협에 속수무책이었다. 또한 피해자의 부탁으로 돈을 갖고 현장에 나타난 다른 여성까지 성폭행하기도 했다. 피해를 당하지 않은 여성이 자신을 경찰에 신고할까봐 두려워한 것.
연쇄 성폭행범 ‘발바리’이씨 검거 뒷얘기

1월20일 대전 동부경찰서 이종원 서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발바리’이씨 검거에 관한 공식 브리핑을 하고 있다.


시부모, 자녀와 한집에 살고 있는 부녀자도 범행의 대상이 됐다. 새벽에 가정집에 몰래 잠입한 이씨는 “당신이 여기서 소리를 지르면, 가족에게 망신을 당한다”며 피해여성을 위협했다. 또 피해여성의 남자친구를 묶어놓고, 그 앞에서 무자비하게 성폭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의 범죄행각을 수사하며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고자 범행의 무대를 대전과 충북 청주 지역에서 전북 전주, 경기도 등지까지 넓혔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몇 차례 범죄를 저질렀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경찰이 “유전자(DNA) 감식으로 확인한 것만 70여 건이 넘는다”고 알려주자 “내가 그렇게 많은 성폭행을 했나요” 하며 놀랐다. 이는 자신의 범행일지를 치밀하게 기록했던 연쇄살인범 유영철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면회 온 딸의 두 손을 붙잡고 하염없이 눈물 흘려
연쇄 성폭행범 ‘발바리’이씨 검거 뒷얘기

수배전단에 공개된 이씨의 얼굴.


이렇듯 잔인한 범죄행각을 벌여온 이씨는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어디서부터 그의 삶이 엇나가기 시작한 걸까.
이씨는 1960년 충남 공주에서 5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가정형편이 어려워지자 그는 학교를 중퇴하고 무작정 상경했다. 서울 천호동에서 구두닦이, 롤러스케이트장 종업원, 신문배달을 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경찰의 본격적인 추적이 시작된 지난 1월 초, 그가 서울 천호동에 은신한 이유도 바로 이곳의 지리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는 10대 시절 절도죄를 저질러 소년원 생활을 잠시 했다.
20대 초반 고향에 돌아와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작은 문구점을 열었다. 지금의 아내를 만난 것도 바로 이때다. 90년부터는 3년간 택시회사에서 운전기사로 일한 뒤, 93년 개인택시를 구입했다. 10년 정도 개인택시를 몰다가 자신을 향해 수사망이 좁혀지는 것을 느끼자 2003년 개인택시를 판 뒤 일정한 직업 없이 살아왔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의 가정에 불화는 전혀 없었다. 아내와의 금실도 좋았고, 회사원인 20대 초반의 딸과 대학생인 아들에게도 자상한 아버지였다고. 실업자가 된 뒤에는 택시를 팔아 남은 돈과 딸의 급여로 생계를 유지했다는 것이 경찰의 전언이다.
이씨는 운동을 즐겨 10년간 조기축구회 멤버로도 활동했다. 그러나 내성적인 성격 탓에 회원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고 한다. 운동에 능한 그였지만, 주변에는 친구가 거의 없었다. 경찰이 이씨를 추적하는 데 가장 어려움을 겪은 대목도 이씨와 가까이 지낸 지인이 별로 없는 점이었다고.
술은 잘하지 못하면서도 그는 카드게임 등의 도박과 인터넷 게임을 즐겼다. 이씨가 경찰에 붙잡힌 것도 바로 인터넷 게임 때문이었다. 경찰은 그가 평소 아는 사람의 아이디로 게임을 즐긴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가 게임에 접속한 직후 서울 천호동의 한 PC방에서 그를 검거했다.
이씨를 조사한 한 경찰 관계자는 그가 “결핍된 애정을 충족하려는 보상심리로 범죄를 저지른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 데 서투른 사람이었습니다. 질문에 거의 ‘예’ ‘아니요’라고만 답했으니까요. 그는 어린 시절 형제들의 집을 전전하며 상처를 받았고, 그때부터 애정결핍이 생겼습니다. 남 앞에 자신 있게 나서지 못하던 그가 범행을 저지를 때는 ‘타인에게 자기 마음대로 지시할 수 있다’는 쾌감을 느낀 것 같습니다.”
한 경찰관이 수사 도중 이씨에게 “딸을 키우는 아비로서 성폭행을 저지를 때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는 “(내 딸이 피해를 당한다면) 괴롭겠지요” 하며 고개를 떨궜다고 한다. 이씨의 딸이 면회 와서 “아버지, 힘내시라”고 위로하자, 그는 딸의 두 손을 붙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이씨가 범죄 행각을 계속하는 동안 ‘발바리’는 연쇄 성폭행범을 일컫는 고유명사가 돼버렸다. 비틀린 삶의 행로, 그 끝에 선 이씨는 이제 법의 냉혹한 심판을 기다릴 뿐이다.

여성동아 2006년 3월 5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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