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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책을 펴는 즐거움

황무지를 숲으로 바꾼 양치기의 이야기 ‘나무를 심은 사람’

기획·김동희 / 글·민지일‘문화 에세이스트’ / 그림·프레데릭 바크 || ■ 그림제공·두레아이들

2006. 02. 15

남프랑스 고원지대의 한 양치기가 수십 년간 홀로 황무지에 나무를 심어 새로운 삼림을 만들어낸 이야기. 단 한 사람에 의해 자연과 사람들의 삶이 변화하는 경이로운 과정을 담담하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황무지를 숲으로 바꾼 양치기의 이야기 ‘나무를 심은 사람’

1989년 10월1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일원에 진도 7.1의 강진이 내습했다. 월드시리즈 3차전 야구경기를 보러 갔던 4만 관중은 스탠드가 붕 떴다 내려앉는 공포에 하얗게 질렸다. 고속도로, 고가도로와 베이 브리지가 무너졌고 건물 가옥 2만 채가 부서졌다. 사망자는 62명에 그쳤으나 4천명이 부상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피해복구였다.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여진이 다시 휩쓸지는 않을지, 약탈은 없을지 불안과 공포가 시내를 짓눌렀다.
이때 한 지역방송이 라디오와 TV를 통해 특집 프로를 내보냈다. 거창한 게 아니었다. 라디오에선 1953년에 출판된 책 한 권을 읽어주었다. TV에선 그 책을 바탕으로 만든 30분짜리 애니메이션 비디오를 방영했다. 그뿐이었다. 그러나 그걸 보고 들은 시민들은 엄청난 위안과 다시 일어서자는 용기를 얻었다. 그 책은 미국인이 쓴 것도 아니었다. 프랑스의 자연찬미 작가가 쓴 짧은 실화소설이었다. ‘나무를 심은 사람’이 바로 그 책이다.

시련에 처한 사람들에게 다시 시작할 용기를 주는 감동적인 이야기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한 인간이 참으로 보기 드문 인격을 갖고 있는지 발견하려면 여러 해 동안 그를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을 가져야 한다.’ 소설 첫머리에 이처럼 직설적으로 인격을 강조한 건 주인공의 인격에 대한 작가의 더할 수 없는 애정이요, 존경의 표현일 터다. 그러나 바로 다음 문장에서도 ‘그의 행동이 온갖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있고, 행동을 이끌어나가는 생각이 더없이 고결하며…’ 식으로 지상 최고의 성인군자를 칭송하듯 주인공을 소개해나가면 웬만한 독자는 “그래, 알 만해”라며 책장을 덮어버릴지 모른다.
작가인들 왜 그걸 모르겠는가. 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주인공에 대한 찬미 송가(頌歌)를 책의 첫 두 문장에 고집했다. 적어도 그 정도의 대우를 해주지 않으면 안 될 인격을 만났다는, 그런 그를 소개한다는 자부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렇다. 이 책은 첫머리만 읽고 덮는다면 덮는 사람만 손해다. 감히 말하자면 끝까지 읽은 뒤 다시 처음부터 몇 번을 더 읽어도 그때마다 새롭게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마력과 무게, 메시지를 이 책은 지녔다.
감이 빠른 독자들은 서두를 길게 끄는 데서 느꼈겠지만 ‘나무를 심은 사람’의 내용은 의외로 간단하다. 남프랑스의 고원지대 프로방스에 엘제아르 부피에라는 고독한 양치기가 살았다. 그는 수십 년간 매일 홀로 황무지에 나무를 심어 새로운 삼림을 만들어냈다. 황무지에선 자연뿐 아니라 인간도 마르고 황폐하며 이악스러웠지만 숲이 우거져 물이 흐르자 사람들에겐 행복과 희망, 평화가 되찾아왔다. 1910년부터 근 40년, 처음엔 맨땅에 하루 1백 개씩 도토리를 심는 방법으로 부피에는 숲을 창조(!)했다. 그러나 그는 그걸 내세우거나 자랑하지 않았다. 가지려 하지도 않았다. 아니, 누구의 것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자연과 세상을 변화시킨 ‘한 사람’의 고결한 영혼
이런 줄거리에다 작가는 적절하게 세상사의 면모를 대비시켰다. 이기주의, 경쟁, 욕심 등 사람들의 품성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인간과 자연에 어떤 주름을 남겼는지, 인간성은 자연변화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담담하게 서술했다. 작가는 그것들을 실재적 행동이나 대화보다 작중 화자(話者)의 짧고 명료한 설명으로 제시하면서 대신 주인공의 행동을 눈에 선하게 그림으로써 더없이 맑고 숭고하며 고독한 영혼의 모습을 우리에게 각인시킨다. 단 한 사람에 의해 자연이, 그리고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짧은 책 한 권에서 따라가본다는 것도 경이롭다.

(황무지에선) ‘모든 가정이 날씨가 혹독한 곳에 촘촘히 모여 살면서 닫힌 세계 속의 이기심만을 키워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놓고 경쟁했다. 숯을 파는 것을 놓고, 교회의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미덕(美德)을 놓고, 악덕(惡德)을 놓고, 선과 악이 뒤엉클어진 것들을 놓고 끊임없이 경쟁했다. 바람도 쉬지 않고 신경을 자극했다. 자살이, 그리고 거의 언제나 죽음으로 몰고 가는 정신병이 전염병처럼 번졌다.’

(엘제아르 부피에는) ‘산등성 황량한 땅에 쇠막대기를 박고 구멍을 만들어 도토리를 넣고 다시 구멍을 덮었다. 그는 떡갈나무를 심고 있었다. 그곳이 그의 땅인지 나는 물었다. 그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그 땅이 누구 것인지 알고 있는 것일까? 그는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아주 정성스럽게 1백 개의 도토리를 심었다. 3년 전부터 그는 이런 식으로 고독하게 나무를 심어왔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10만 개의 도토리를 심었다. 10만 개의 씨에서 2만 그루의 싹이 나왔다.’



황무지를 숲으로 바꾼 양치기의 이야기 ‘나무를 심은 사람’

(황무지가 숲으로 변한 뒤)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주해와 젊음과 활력과 모험정신을 가져다주었다. 건강한 남자와 여자들, 그리고 소리 내어 웃을 줄 알며 시골에서 벌어지는 축제의 맛을 즐길 줄 아는 소년 소녀들을 길에서 만날 수 있었다. 기쁨 속에 살아가게 된 뒤로는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모습이 변한 옛 주민과 이주민의 수가 1만명이 넘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이 누리는 행복의 빚을 부피에에게 지고 있었다.’
두레 펴냄, 김경온 옮김.
글쓴이

장 지오노(1895~1970)는 소설의 무대인 프로방스 소도시 마노스크에서 태어나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살고 또 그런 글을 쓰다 그곳에서 죽었다. 그는 ‘나무를 심은 사람’을 “말 그대로 사람들이 나무를 사랑하게 하기 위해, 나무를 심는 것을 사랑하게 하기 위해 썼다”고 말했다. 그런 자신의 뜻을 알리기 위해 미국에서 이 책이 출판되었을 때 인세를 한푼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린이

프레데릭 바크(1924~)는 프랑스 출신의 캐나다 애니메이터. ‘나무를 심은 사람’의 애니메이션 작업을 위해 5년 6개월 동안 2만 장에 이르는 원화를 거의 혼자 그려 편집했다. 많은 작업량과 작업 재료의 독성으로 인해 한쪽 눈을 실명했다고 한다. ‘나무를 심은 사람’으로 87년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고, ‘위대한 강의 흐름’이라는 애니메이션으로 93년 안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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