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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이 남자가 사는 법

일민예술상 받은 설치미술가 최정화

“살림살이에 집착하는 아줌마 취향이라 제 별명이 ‘남자 아줌마’예요”

기획·이남희 기자 / 글·박윤희‘자유기고가’ / 사진ㆍ홍중식 기자

2006. 02. 10

국내외에서 전방위로 환경미술 작업을 선보여온 설치미술가, 최정화씨가 제7회 일민예술상을 수상했다. 일상성의 소중함을 예찬하며 ‘고상한 문화에는 시비를 거는’ 그의 독특한 예술세계와 만났다.

일민예술상 받은 설치미술가 최정화

서울 종로구 낙원동 ‘낙원삘’ 5층에 자리한 가슴시각개발연구소. 설치미술가 최정화씨(45)의 상상력이 자라고 있는 이 인큐베이터는 흡사 1970년대 초등학교 앞 문방구와 완구점을 연상케 했다. 선반에 놓인 각종 크기의 울트라맨 장난감과 금색, 은색의 번쩍거리는 로봇, 상체가 잘려나간 살색 여자인형 등 알록달록한 것들이 부조화 속의 조화를 이루며 묘한 생동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일민예술상 수상 결정 소식을 처음 듣고 ‘왜 나한테 상을 주는 거야?’ 싶어 의아했어요. 그래서 주최 측에 ‘왜 저한테 상을 주는 겁니까?’ 하고 물었죠. 그랬더니 사람들에게 최정화가 누군지 알리고 싶어서라고 하더군요.”
1월19일 제7회 일민예술상을 받은 최정화씨. 상은 주인을 제대로 찾아갔는데 정작 주인은 당혹감에서 못 벗어나 있다고 해야 할까. 영화감독 임권택, 연출가 윤호진 등 역대 일민예술상 수상자가 대부분 60~70대의 문화계 원로인 것을 감안할 때 이제 겨우 45세에 불과한 그에게 공로상 성격의 일민예술상이 주어진 건 누가 봐도 파격이었다. 일민예술상 심사위원 전원이 그의 손을 들어준 이유는 그가 지닌 ‘잠재력’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가 아티스트로서 ‘국내외에 다양한 환경미술 작업을 선보이며, 현대생활 속의 시각적 이미지를 차용한 작품들을 통해 미술 영역을 확장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는 것이 결정적인 수상 이유다.

이 밖에도 그는 ‘2005 프로들이 선정한 우리 분야 최고’ 미술부문 ‘올해의 작가’로도 선정된 바 있다.
“어릴 때 ‘삐라’에 담긴 총천연색 그림이 무척 예뻐 보였어요. 하루 종일 삐라 그림을 베끼는 게 취미였죠. 이번에 한 친구가 북한에 다녀오더니 ‘네 작품 북한에 다 있더라’ 그러데요. 저는 ‘알록달록’하고 ‘빠글빠글’, ‘번쩍번쩍’한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느껴요.”
일민예술상 받은 설치미술가 최정화

서울 종로구 인사동 쌈지길 앞에 선 최정화씨.


고상한 예술에 시비걸기가 ‘최정화표’ 예술이라고 할까. 플라스틱 소쿠리, 조화, 낡은 소파 등 일반인들이 ‘촌스럽다’고 폐기처분한 것들이 그의 손을 거치면 기발한 조형물로 부활한다. 지극히 일상적이어서 오히려 전위예술처럼 느껴지는 독창적인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작품에 얽힌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다.
“91년 한 갤러리에서 플라스틱 소쿠리를 낮게 쌓아 만든 작품을 전시했는데, 청소하는 아줌마가 제 작품을 유심히 보시더니 ‘집에서 쓰게 소쿠리 하나만 달라’고 하더군요. 그때 ‘내가 하는 짓이 이런 거구나!’ 싶어 충격을 받았어요. 작품을 보는 데 ‘고상한가, 고상하지 않은가’가 기준이 아닌 ‘쓸모 있다, 없다’가 기준인 거죠. 자신있게 소쿠리 한 개를 빼서 드렸어요.”
그때의 소쿠리 한 개가 그에게는 원효대사의 ‘해골바가지’였나 보다. 이때부터 그는 갤러리에서 만난 청소부 아줌마를 ‘사부’로 모시고 ‘민간인용 예술’을 창조하는 데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예술가들끼리 문 닫고 몰래몰래 짜고 치는 전문가용 예술이 아닌 민간인용 예술을 지향해요. 제가 만든 작품은 아줌마, 아저씨, 꼬마 누구나 신나게 볼 수 있는 것들이죠. 그래서 제 작품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재밌다’ ‘신난다’ ‘웃긴다’예요.”

버려진 살림살이에 열광하는 생활예술가
그의 상상력의 뿌리가 ‘일상성’에 깊숙이 박혀 있다면, 그 뿌리에 씨알 굵은 고구마처럼 주렁주렁 달려 있는 감수성은 ‘여성성’에 맞닿아 있다.

일민예술상 받은 설치미술가 최정화

최정화씨가 조경한 서울 종로구 인사동 쌈지길 잡초정원.<br>▶2005 베니스 비엔날레 출품작.

일민예술상 받은 설치미술가 최정화

“사람들이 저한테 ‘여성성이 있다’고 하는데 취향이 너무 아줌마 같아서 그런가 봐요. 오죽하면 제 별명이 ‘남자 아줌마’겠어요? 저는 한마디로 ‘아줌마 예찬론자’예요. 일일이 말할 필요도 없이 아줌마들 정말 대단한 존재잖아요. 특히 아줌마들의 강인함이 좋아요. 아줌마들은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잖아요. 반대로 전 남자들을 별로 안 좋아해요.”
그는 특히 버려진 살림살이에 열광하는 실속파 남자 아줌마다.
“제가 삼청동에 사는데 길거리에 70년대 가전제품, 선풍기, 소파 같은 살림살이가 간혹 버려져 있어요. 그런 것 그냥 못 지나치죠. 죄다 주어다 집에 갖다 놔요. 아름다워서, 왠지 버리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일상의 소품을 다르게 보는 눈, 하찮은 것에 대한 애정은 어머니 백길정씨(68)를 보면서 일찌감치 길러졌다.
“제 작업의 원형은 엄마예요. 중년 여성의 감수성으로 본 세상이라고 할까요. 어린 시절, 엄마가 집 한쪽 구석에 장식해놓은 플라스틱 꽃이나 양주병을 베끼고 흉내내다가 색다른 느낌을 갖게 됐죠.”
본격적으로 붓을 잡는 계기는 엉뚱한 일에서 비롯됐다. 고등학교 2학년 수학시간. 수학이 죽도록 싫어서 시험지에 공식을 적는 대신 시험 감독하는 선생님의 얼굴을 만화주인공 ‘아톰’ 비슷하게 그려냈다. 딱 걸린 순간, 그의 눈앞에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시험 감독관은 바로 수학 선생님이자 담임이었던 것. 그는 교실에서 교무실로 질질 끌려가는 동안 무지막지하게 맞았다고 한다. 그런데 교무실에서 그의 시험지를 넘겨다본 미술교사가 “너, 미대 가라!”고 권했고, 시인이 꿈이었던 문학청년은 그때부터 미술실기실에서 살기 시작했다. 이런 인연으로 홍익대 서양화과에 진학한 그는 86년 중앙미술대전 장려상, 87년 중앙미술대전 대상을 연거푸 수상했다.
그런데 졸업 후 그는 화가가 아니라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됐다. 평면이 아닌 공간을 기획하고 주무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디자이너나 설치미술가란 말로 그의 행보를 다 설명할 수는 없다. 그는 전방위 예술가다. 93년 뉴욕 퀸스미술관 ‘태평양을 넘어서’ 전시를 시작으로 2001년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참가해서 국내보다 국외에 이름이 더 알려져 있다. 일본 중학교 미술 교과서에는 그의 작품 ‘과일나무’가 소개돼 있다. 그런가 하면 영화에도 손을 뻗쳐 영화 ‘복수는 나의 것’ (박찬욱 감독)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장선우 감독)의 미술감독 자리도 거쳤다. 이 밖에 한옥 리노베이션, 아파트 하우징, 국내외 각종 환경미술 프로젝트도 그의 손을 거친 것이 많다.
일민예술상 받은 설치미술가 최정화

금색, 은색으로 번쩍이는 로봇, 상체가 잘린 여자인형 등이 있는 최정화씨의 작업실은 1970년대 초등학교 앞 문방구를 연상시킨다.


“어떤 사람이 아주 큰 서랍 한 개를 가지고 있다면 저는 아주 작은 서랍 여러 개를 가지고 있는 거죠. 조각보처럼 무늬는 여러 가지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한 장이에요.”
그가 1년에 6개월 이상을 외국에 체류하며 각종 미술기획전에 뛰어드는 까닭에 국내에서 그의 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아쉬운 대로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나가 보면 신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쌈지길을 둘러싼 나무 조경과 상점 지붕 위에 펼쳐진 잡초정원이 그의 작품이다. 이 밖에도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인사동 일대를 뒤지다 보면 그가 만든 조형물과 건축물이 툭툭 튀어나온다. 게다가 오는 3월에는 그가 직접 기획하고 설계도면까지 그린 ‘쌈지시장’을 열어 재래시장의 진수를 보여줄 예정이다.
“올해 계획요? ‘나무를 심자’로 정했어요. 반드시 비싼 조경이 아니더라도, 잡초라도 심는 작은 실천을 하자는 것이죠.”
자칭 생활예술가, 취미예술가라고 이름 붙인 최정화씨. 올해에도 그의 ‘와글와글’ ‘빠글빠글’한 에너지가 모든 아줌마, 아저씨, 어린이들의 겨드랑이를 살살 간지럽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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