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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아빠! 힘내세요

3년째 기러기 아빠로 살고 있는 가수 김흥국

“사춘기 아들의 방황 안타까워 유학 보냈지만 올해 아내와 딸은 꼭 데려올 생각이에요”

기획·김명희 기자 / 글·오진영‘자유기고가’ / 사진ㆍ조영철 기자

2006. 02. 10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이미지로 편안한 웃음을 안겨주는 가수 김흥국. 동현·주현 남매와 아내를 호주에 보내고 3년째 기러기 아빠로 살고 있는 그를 만나 가족과 떨어져 홀로 지내는 심경, 월드컵의 해를 맞아 축구 응원단을 구성할 계획 등을 들어보았다.

3년째 기러기 아빠로 살고 있는 가수 김흥국

지난 2003년부인 윤태영씨(42)와 아들 동현(16), 딸 주현이(6)를 호주 시드니로 보내고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고 있는 가수 김흥국(47). 3년째 식구들과 떨어져 혼자 사는 그를 만나 먼저 식사는 잘 챙겨 먹는지부터 물어보았다.
“제가 매일 아침 운동을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전에는 아침밥을 꼭 먹고 다녔어요. 그런데 아이들이랑 집사람 호주 보내고 난 후로는 그냥 물 한 잔으로 때워요.”
그의 아침은 6시 텔레비전 뉴스와 함께 시작한다. 원래 새벽잠이 없는 편인 그는 거의 매일 밤 사람들을 만나 술을 마셔도 아침 6시면 눈을 뜬다고.
“저녁에 라디오 생방송 ‘김흥국, 박미선의 대한민국 특급쇼’를 2시간씩 진행하기 때문에 밤에 뉴스를 못 보니 아침에 분주해도 뉴스를 봐야 해요. 작가가 써주는 대본이 있기는 해도 세상 돌아가는 정보는 알고 방송해야 할 거 아니겠어요.”
김흥국은 ‘호랑나비’의 벼락 히트와 더불어 가수로 출발했지만 이제는 각종 토크쇼의 감초 같은 출연자로, 라디오 진행자로 더욱 친근해진 지 오래다.
“아침 7시에는 축구를 하러 나가요. 오랫동안 연예인 팀에서 뛰었는데 이제는 젊은 친구들에게 넘겨줬고 저는 큰 행사가 있을 때나 같이 뛰죠. 요즘은 강남구 신사 조기축구회에 나가는데 멤버들이 다들 부지런해서 저보다 더 일찍 나오더라고요.”
그는 한 시간 열심히 땀 흘리면 전날 마신 술이 다 땀으로 흘러나와 다시 기운이 난다고 한다. 운동을 더 해야겠다 싶으면 집 앞 둔치에서 또 한바탕 달린다고. 다음 코스는 잠원동에 있는 단골 찜질방. 3년째 사귀어온 찜질방 동료들과 근처의 맛집을 찾아다니며 점심 한 끼를 때운다.
“저도 처음에는 집에서 햇반이니 3분요리니 하는 것들을 해먹어봤어요. 반찬을 해서 가져다주는 분도 있었고요. 그런데 먹고 나서 설거지를 바로 못하고 쌓아놓았더니 집안꼴이 말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세 끼 식사를 다 밖에서 해결합니다. 올해는 이 기러기 아빠 생활을 꼭 접어야 할 텐데…. 으아~”

사춘기 아들의 방황 애처로워 가족 생이별 결심
3년째 기러기 아빠로 살고 있는 가수 김흥국

그는 매일 아침 빠뜨리지 않고 딸 주현이와 국제 통화를 한다고 한다. 주현이는 동현이를 낳고 나서 10년을 기다렸다가 얻은 늦둥이. 그는 “옆에 끼고 살며 재롱을 보고 아빠 사랑도 듬뿍 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어느새 제가 기러기 아빠 대변인처럼 돼버렸어요. ‘기러기 아빠 홀로 세상 뜨다’ 이런 뉴스가 나오면 언론사에서 바로 저한테 전화를 하는 거예요. 하지만 저는 정말이지 아이들을 보내고 싶어서 보낸 게 아니에요. 일찍 유학을 보내서 앞길을 열어주겠다, 뭐 이런 뜻에서 보낸 게 아니란 말이죠.”
그는 아이들을 유학 보낼 수밖에 없었던 씁쓸한 속사정을 들려주었다.
“큰아들 동현이가 태어날 무렵 제가 MBC ‘일요일 일요일밤에’에 패널로 출연했었는데 당시 MC 주병진씨가 ‘아이가 뭐라고 하며 나오던가요?’하고 묻기에 제가 ‘아! 응애예요!’라고 대답한 적이 있어요. 이후 아이 별명이 ‘아! 응애예요’가 돼버렸죠. 저는 그런 에피소드가 아이한테 즐거운 일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번칠이’라는 별명도 굉장한 스트레스였던 것 같고요.”

3년째 기러기 아빠로 살고 있는 가수 김흥국

동현이는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 아빠와의 외출을 꺼렸다고 한다.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눈치였고 특히 “아빠 사인 받아달라’는 소리를 싫어했다고.
“아이에게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학교에서 내 이름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연예인인 나 때문에 아이가 상처를 받은 것 같아 미안하고 가슴이 아팠죠. 그래서 할 수 없이 시드니로 보낸 거예요.”
그는 처음에는 아들이 6개월, 1년 정도 지나면 이제 그만 한국에 돌아가겠다고 항복하겠지, 기대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호주가 워낙 아이들, 여자들 살기 좋은 곳이라서 그런지 아이 입에서는 아직까지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이 안 나오고 있다고.
“이제 아들도 곧 고등학생이 되니 혼자 기숙사에 넣어도 될 것 같아요. 올해는 나머지 식구들은 들어오라고 할 생각이죠. 그런데 아이 엄마는 아이 혼자 놔둘 수 없다고 마음을 못 정하고 있어요. 으아~ 참 복잡합니다.”

다시 찾아온 월드컵의 해, 올해도 한국 응원 함성 드높일 것
그는 올해 꼭 식구들을 데려와서 안정을 찾고 싶은 이유가 있다고 한다. 다시 찾아온 월드컵의 해, 2006년. 축구 응원단 조직 등 하고 싶은 일이 많다는 것.
“4년 전의 그 기쁨과 열광! 지금 생각해도 가슴 벅차지 않나요? 히딩크 감독과 우리 대표 선수들도 잘 해줬지만 4천만 국민이 한마음으로 응원한 결과 아니겠어요.”
그가 처음 태극기 들고 꽹과리 들고 해외로 축구 응원을 나갔던 건 1989년, 바로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예선전이었다. 어려서부터 축구를 좋아했던 그는 한때 가슴에 태극 마크를 달고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밥을 굶어가며 축구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그의 아버지는 축구부가 있는 화계 초등학교로 전학을 보내주기까지 했다고. 그러나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꿈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접어야 했다. 영영 끊겼다고 생각한 축구와의 인연이 다시 이어진 건 86년 멕시코 월드컵 때. 무명 그룹사운드의 멤버로 일하면서 어렵게 조달한 경비로 국가대표 선수들을 격려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 계기가 됐다.
“아버지가 주신 이름, 흥할 흥(興), 나라 국(國), 나라를 흥하게 하라고 주신 이름인데 태극기 흔들며 열심히 응원하는 것이 나라를 위한 일이라는 신념으로 20년입니다.”
3년째 기러기 아빠로 살고 있는 가수 김흥국

김흥국은 올해는 꼭 가족을 한국으로 불러들여 안정을 찾고 싶다고 한다.


바로 그런 마음으로 살았기에 김흥국은 반짝 스타로 끝나지 않고 지금까지 긴 세월을 인기 있는 방송인으로 사랑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연예인은 대중들에게 예쁘게 보여야 해요. 꾸미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줘야 가능한 일이죠. 그리고 방송으로 밥을 먹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사회를 위한 일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저로서는 축구 응원에 힘을 열심히 보태는 거였고 자부심도 커요.”
요즘 그가 꾸미고 있는 일은 ‘4050세대의 축구 응원붐 조성’을 목표로 하는 ‘대한민국 축구사랑모임’ 결성. 지난 월드컵 이래 4년간 추진해왔고 지난 1월 말에 현판식을 가졌다. 회원들을 모아 독일 월드컵으로 날아가 교민들과 공동 응원단을 구성하고 친선 축구시합도 열 계획이다. 또 최근에는 축구와 관련된 자신의 경험담을 담은 ‘김흥국의 우끼는 어록’을 출판하기도 했다.
“벌써부터 축구를 좋아하는 연예인 친구들이 같이 가고 싶다고 난리예요. 아드보카트 감독이 잘하고 있으니 이번에도 온 국민의 염원을 담아 16강, 8강을 목표로 다시 한 번 한국 축구의 영광 이뤄봐야죠. 안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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