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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남다른 삶

‘책 읽는 버스’몰고 산골마을 찾아다니는 김수연 목사

“좋은 책이 좋은 세상 만든다고 믿기에 아이들에게 책 읽는 습관 길러주고 싶습니다”

기획·이남희 기자 / 글·오진영‘자유기고가’ / 사진ㆍ김형우 기자

2006. 02. 08

“예수 믿으라”는 말 대신 “책 읽으라”고 외치는 목사가 있다. 올해로 19년째 산간벽지 작은 마을에 책을 보내고 도서관을 만들어 주고 있는 김수연 목사의 책사랑, 인간사랑.

‘책 읽는 버스’몰고 산골마을 찾아다니는 김수연 목사

천지에 하얗게 덮인 눈이 녹으려면 아직 한참이 남은 한겨울의 강원도. 영동고속도로를 달려 김수연 목사(60)를 만나러 간 날,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수림대 마을회관에서는 동네 사람들의 삼겹살 잔치가 한창이었다.
지글지글 고기 익는 냄새가 풍기고 살짝 낮술을 걸쳐 목소리가 한 톤씩 올라간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가득하다. 그곳에서 기자를 반갑게 맞아준 김 목사는 어서 먹기부터 하라며 두툼한 삼겹살 한 점을 앞으로 밀어준다.
“돼지를 잡았어요. 얼린 고기가 아니고 바로 잡은 거라 아주 맛있어요. 여기 이 ‘신선주’는 청학동에서 보내온 건데 마셔봐요. 내가 20년 전 KBS 기자로 근무할 당시 취재갔을 때 만난 인연으로 지금도 보내주시는 거라오.”
김수연 목사는 이곳 봉평에서 수시로 ‘먹자 파티’를 여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어제는 자장면 열 그릇과 탕수육 ‘대짜’ 두 접시를 중국집 철가방에 담아 직접 들고 옆 마을을 찾아갔다. 술을 따라 권하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눠 먹자며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이유는 단 하나, 책을 읽히기 위해서다. 마을회관 앞마당에 서 있는 ‘책 읽는 버스’ 안에는 엄마 아빠를 따라와 일찌감치 식사를 마친 아이들이 진작부터 자리 잡고 앉아 책읽기에 빠져 있었다.
“‘책 읽어라, 책 읽어라’ 말만 하고 돌아다녀서 되는 일이 아니거든요. 사람들 마음의 문을 먼저 열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술도 받아주고 먹을 것 들고 다니는 겁니다.”

19년간 작은 도서관 50여 곳에 20만 권의 책 보내
그는 180cm의 키에 몸무게는 100kg이 넘는 거구다. 이탈리아 작가 지오반니노 과레스키의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에 나오는 인간미 넘치는 신부, 돈 카밀로를 연상시키는 듬직한 체구를 지녔다. 그는 거기에 어울리는 괄괄하고 커다란 목청으로 “예수 믿어 천당 가라”는 설교 대신 “책 읽어 좋은 세상 만들자”는 주장을 펴고 다닌다.
지난 87년부터 산간벽지에 책을 사 보내기 시작했으니 올해로 19년째다. 김 목사 혼자 자기 주머니를 털어 해오던 일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사단법인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모임도 만들었다.
지난 한 해만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에서 ‘문화 혜택이 취약하고 독서환경이 열악한 지역’에 세운 마을 도서관이 전국에 걸쳐 모두 7개다. 도서관 한 곳에 평균 3천 권 정도의 책을 보냈으니 1년이면 2만 권을 기증하는 셈이다.
“이 일 하면서 정말 제 돈 쓰고 하는 일이냐, 제대로 된 새 책 사다 주는 거 맞느냐는 등 별별 이야기를 다 들었습니다.”
받는 사람들도 항상 반가워하지만은 않았다. 도서관을 건립하기 위해 필요한 책을 주겠다고 찾아갔다가 “우리, 책 안 사요” 소리를 듣기도 했고 “그냥 돈으로 주면 안되겠냐”는 말도 들었다. “책을 지원할 테니 폐교를 마을 도서관으로 운영해보라”고 제안하면 “일거리 하나 늘었네”라며 달갑지 않은 표정을 짓는 공무원, 교사들도 있었다.
그에게는 젊은 시절 모아놓은 돈이 좀 있었다. 대학 재학 시절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주식에 투자했다가 크게 불리는 등 이재에 밝은 덕분이었다. 지금 들으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지만, 방송기자였을 당시에는 자가용 끌고 출입처에 다닌다고 주위에서 질투 어린 시선을 받기도 했다.
그 돈으로 계속 주식에 투자하고 집 사고 땅 사면서 재산을 늘릴 수도 있었으련만, 그는 책을 사 보내는 데 돈을 쏟아 부었다. 아무리 모아놓은 돈이 많다고 해도 곶감 빼먹듯 쓰기만 하니 바닥이 드러날 만도 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당시에는 집을 담보로 대출받아 책을 사 보냈다. 지난 2000년부터 비로소 후원자도 생기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부터 운영비를 지원받기도 했지만, 그는 지금도 각종 강연회 등에 참가하며 직접 번 돈으로 책을 사 보낸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책 읽는 버스’몰고 산골마을 찾아다니는 김수연 목사

김수연 목사는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기증받은 ‘책 읽는 버스’를 몰고 강원도 지역을 순회하며 책읽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책과 아편은 죽을 때까지 가는 습관입니다. 인이 박힌다고 하잖아요. 저는 아이들에게 책 읽는 습관을 심어주고 싶습니다.”
도시에 비해 문화적 환경이 척박하고 각종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곳을 돌아다니며 ‘미래의 독서중독증 환자’를 키워내는 게 그의 꿈이라고 한다.
“‘좋은 책 좋은 삶 좋은 세상, 책이 있으면 책을 읽는다’는 게 우리 독서운동의 취지입니다. 책 속의 지식과 기독교 윤리가 만나 선을 지향하는 삶이야말로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행복하고 풍요로운 인생 아니겠습니까? 독서운동이라고 하면 흔히들 진부하게 생각하지만 삶의 가장 깊은 기반을 다지는 중요한 일입니다.”

불의의 사고로 둘째 아들 잃고 신학대학에 진학
방송기자에서 목사로, 책 전도사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전 그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 있었다.
84년 12월19일은 그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일곱 살 난 둘째 아들이 혼자 집에 있던 아파트에서 불이 났다. 큰아들은 학교에, 아내는 교회에 가고 아무도 없는 사이, 둘째 아이가 배가 고파 라면을 끓여 먹으려고 가스불을 켰다가 난 사고였다. 그는 취재현장에 있다가 전화를 받고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아버지의 품에 안긴 아들은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내에게는 교회에 그토록 매달린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아들이 죽기 6년 전인 78년, 그의 장인과 장모가 조카사위에게 피살당한 것이다.
한창 예쁜 짓을 하며 품에 안기던 일곱 살짜리 아들을 잃은 비통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아이를 돌보지 않고 교회에만 나가 있던 아내에 대한 원망 때문에 그는 더욱 힘들었다. 결국 두 사람은 이혼했고, 그에게는 술에 취해 괴로움을 곱씹다 목 놓아 우는 날들이 이어졌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교회를 원망하던 제가 결국은 목사가 됐고 헤어진 아내도 전도사가 됐으니까요. 가끔 아들 일로 통화할 때면 서로 ‘전도사님’ ‘목사님’이라고 부릅니다.”
‘무슨 죄가 커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나’ 하는 자책으로 어두운 방황의 날들을 보낼 때, 개척교회 목사가 된 친척 동생을 만났다. 동생은 허름한 공장 건물에 교회를 차려놓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저렇게도 사는데 나는 무엇이냐’는 질문이 생기면서 돕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일요일 새벽마다 그곳을 찾아 더러운 계단과 화장실을 청소하던 어느 날, 그에게 깨달음을 가져다준 이른바 ‘똥물 사건’이 일어났다.
‘책 읽는 버스’몰고 산골마을 찾아다니는 김수연 목사

어린이들에게 좋은 독서 습관을 길러주는 일을 김 목사는 첫손에 꼽는다.


그가 막 청소를 마치고 나서는데 한 젊은이가 화장실에 들어가 지저분하게 볼일을 보고는 물을 내리지도 않고 나가버렸다. 다시 청소를 해야 할 판이라 성질이 났다. 홧김에 물을 확 뿌리는 바람에 똥물이 옷에까지 튀고 말았다. 간신히 세탁소를 찾아 옷을 맡기고 처량한 생각에 술집을 찾아가 앉아있는데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무엇이 가슴 밑에서 치받쳐 올라왔다. 자신이 성질만 안 부렸어도 똥물을 뒤집어쓰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결국 모든 불행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었다는 깨달음은 끝이 보이지 않던 방황의 터널에서 마주친 ‘한 줄기 빛’과도 같았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고 여겼던 교회를 찾아가기로 했다. 삶이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괴로움을 극복하는 길은, 그가 삶을 끌어안고 사랑하는 길밖에 없었다. 용서와 구원의 말씀을 전파하는 목회자가 되고자 86년 신학대학에도 진학했다. KBS 보도국 문화부 차장으로 근무하며 종교 관련 기사를 담당했던 그는 기독교 교회의 부정적 측면을 잘 알고 있었다. ‘양을 수탈하는 목사’가 아니라 ‘양을 인도하는 목사’가 되기로 했다. 그는 기자 생활을 하면서 89년부터 본격적으로 목회 활동을 시작했다.
우둔하고 앞뒤 분간 못하는 양을 이끌고 가야 하기에 한 목자는 너무 많은 양떼를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한 목회자가 인도하는 신자는 스무 가족 이내여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가 목회를 맡고 있는 서울의 한길교회는 ‘성전 건축’ ‘교회 부흥’을 기도 제목으로 뽑는 일이 결코 없는 자그마한 교회다.

책 읽고 기뻐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가장 큰 보람을 느껴
‘책 읽는 버스’몰고 산골마을 찾아다니는 김수연 목사

2년 전 김 목사는 맑은 물줄기가 흐르는 금당계곡이 있는 강원도 봉평으로 이사했다.


그는 96년에 방송국에서 퇴직한 후 본격적으로 책을 싣고 산간벽지를 돌아다니며 틈틈이 살 곳을 찾아다니다 2년 전 지금 살고 있는 강원도 봉평으로 이사했다. 그가 정착한 수림대 마을은 20여 가구가 살아가는 조용한 산촌.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금당산과 맑은 물줄기가 흐르는 금당계곡이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 주민이 된 이래 김 목사는 책읽기 운동은 물론이고, 유기농 농사와 펜션 사업 등 ‘서울 사람들의 웰빙증후군을 이용해 돈을 버는’ 아이디어를 부지런히 제공하고 있다. 어느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만큼 주민들 사정을 모조리 파악한 지도 오래다.
지난해 말에는 묵묵히 혼자 힘으로 작은 도서관 만들기 운동을 펼쳐오던 그에게 힘이 되는 기쁜 선물도 생겼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그에게 ‘책 읽는 버스’를 기증한 것. 도서관 차량으로 개조한 34인승 버스에 책 2천여 권을 비치했다. 그는 이 버스를 타고 강원도 지역을 순회하며 새해를 힘차게 출발했다.
“기업하는 젊은 사람들이 책읽기 운동의 중요성을 알아줬다는 게 무엇보다 기쁩니다. 나이도 들고 돈도 다 떨어지고 힘이 없던 차였는데 이렇게 고마운 격려가 없습니다. 앞으로 시골장터나 마을축제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찾아 ‘책 읽는 버스’를 소개하고 책읽기 캠페인을 벌일 겁니다.”
지난 20년간 그가 벌여온 책읽기 운동의 규모에 비하면 미미한 일에 불과한 버스 한 대 기증. 그것에 그는 한껏 ‘업’ 되어 신이 나 있다.
“책을 싣고 찾아가면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어요. 책에 목말라하던 아이들이 반가워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 큰 보람은 없습니다.”
김수연 목사의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에는 도서관을 만들어줘 고맙다는 아이들의 감사 편지가 끊이지 않는다.
“우리 동네는 작은 시골마을이라 도서관도 서점도 없어서 도서관에서 책을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는 초등학교 3학년 현정이,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지만 읽을 만한 책이 별로 없었는데 좋은 책을 이렇게 많이 보내주신 목사님께 감사한다”는 초등학교 5학년 연선이….
그 아이들에게서 그는 미처 책 읽는 즐거움을 누려보기도 전에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아들의 모습을 본다. 환하게 웃으며 책 선물을 반기는 아이들, 책 버스와 마을 도서관에서 책 세상에 한껏 빠져 즐거운 공상의 세계로 마음껏 날아가는 아이들은 뼈아픈 상실을 통해 더욱 소중하게 만난 그의 아들딸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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