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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지구촌 화제

수수한 차림의 과학자 출신 독일 첫 여성총리 앙겔라 메르켈

기획·강지남 기자 / 글·안윤기‘주간동아 통신원’

2005. 11. 15

독일 첫 여성총리로 선출돼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 목사의 딸로 태어난 그가 공부벌레 동독 소녀에서 독일을 이끄는 통치권자가 되기까지 숨은 이야기 공개.

독일 역사상 ‘최연소 총리’ ‘최초의 동독 출신 총리’ ‘최초의 과학자 출신 총리’ 그리고 ‘최초의 여성 총리’. 지난 10월10일 차기 독일 총리로 선출돼 11월 말부터 독일을 이끌게 된 앙겔라 메르켈(51)은 이같이 화려한 수식어와 함께 세계정치의 무대에 데뷔했다. 다소 촌스러워 보이는 외모, 수수한 옷차림의 이웃집 아주머니 같은 그는 어떤 여성일까?
앙겔라 메르켈은 1954년 7월17일 서독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의 원래 이름은 앙겔라 도로테아 카스너. 어린 앙겔라는 생후 두 달 만에 가족과 함께 동독의 작은 마을 크비초프로 이사했다. 개신교 목사이던 아버지 호르스트 카스너의 첫 임지였기 때문. 앙겔라는 3년 후 또다시 아버지를 따라 동독 베를린의 북쪽 마을 템플린으로 이사해 이곳에서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다.
철모르는 어린 시절의 앙겔라에게도 조국의 분단은 아픔이었다. 당시 서독 주민은 비교적 쉽게 비자를 얻어 동독을 드나들 수 있었지만, 동독 주민의 경우 여행의 자유가 제한돼 있었다. 때문에 여름마다 서독 함부르크에 사는 외할머니가 동독으로 건너오시곤 했는데, 외할머니가 다시 서독으로 돌아갈 때마다 앙겔라는 동서 베를린의 경계로 쓰이던 프리드리히역 건물 입구인 ‘눈물의 궁전’까지 나가 외할머니를 배웅했다고 한다.
앙겔라는 템플린에서 이공계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언어와 수학에 특히 재능이 있던 그는 대입시험에서 1등급을 받아낸 공부벌레였다.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앙겔라는 독일이 통일되던 해인 90년까지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당시 금기시됐던 청바지를 입고 팝음악을 즐겨 듣던 앙겔라는 동독 정부와 공산주의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는 동독 국가안전부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한 일도 있다.
앙겔라는 대학생이던 77년 동료 학생인 울리히 메르켈과 결혼해 앙겔라 메르켈이란 이름을 얻었다. 하지만 앙겔라는 4년 후 이혼했다. 98년 베를린 훔볼트 대학의 화학교수 요아힘 자우어와 재혼했지만 메르켈이란 성을 지금까지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앙겔라는 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당시 동독 정권에 반감을 품고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독의 진보정당인 녹색당이나 사회민주당(이하 사민당)에 둥지를 틀었지만 앙겔라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들 정당에서 흔히 동료를 일컬을 때 사용하던 ‘동지’란 호칭이 그의 귀에 거슬렸다고 한다. 앙겔라는 대신 동독의 민주화 운동단체였던 ‘민주변혁’에 가입했는데, 이 단체는 얼마 가지 않아 현재 그가 소속된 정당인 기독교민주연합(이하 기민련)에 편입됐다.
90년 겨울 통일독일연방의회 구성을 위한 총선에서 앙겔라 메르켈은 기민련 후보로 자신의 연고지인 템플린의 인근 도시 뤼겐에서 출마해 당선됨으로써 본격적으로 정치에 발을 담그게 됐다. 이후 메르켈은 헬무트 콜 당시 총리에게 발탁되어 화려한 정치인생을 시작했다. 91년 여성청소년부 장관, 94년 환경부 장관을 연이어 맡았고 98년에는 기민련 최초의 여성 사무총장으로 지명됐다. 이 시절 메르켈의 별명은 ‘콜의 소녀’.
불법 정치자금 스캔들이 터져 기민련이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을 때 메르켈은 차세대 정치지도자로 부상하게 된다. 추락하는 당의 이미지를 곧추세우기 위한 방편으로 메르켈이 기민련 최초의 여성 사무총장으로 발탁된 것. 메르켈은 헬무트 콜이 검은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게 되자 처음에는 그를 변호하다 치명적인 비리의 증거가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하자 태도를 바꾸어 자신의 ‘정치적 아버지’나 다름없는 콜에 대하여 ‘탯줄 끊기’ 작업을 시도했다. 콜의 기민련 당수직 사퇴와 정계 은퇴를 주장하고 나선 것.
이는 당내에서 일종의 배신 행위로 여겨졌고 이 일을 계기로 정적들이 급속도로 늘어났지만 메르켈의 요구대로 콜은 당수직에서 물러났다. 콜의 뒤를 이어 당수가 된 볼프강 쇼이블레도 비리 문제로 낙마하자 2000년 4월 앙겔라 메르켈은 급기야 정치 입문 10년 만에 기민련 당수의 자리까지 오른다.
메르켈의 비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 9월 치러진 총선 결과 기민련과 사민당이 엇비슷한 의석수를 차지하게 되면서 두 당이 ‘대연정’ 협상에 돌입한 것. 협상이 진행된 3주 동안 독일 국민들은 사민당 당수이자 현 총리인 슈뢰더가 계속 총리직을 유지할지, 아니면 메르켈에게 총리 자리가 넘어갈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마침내 승리의 여신은 여론의 힘을 등에 업은 앙겔라 메르켈에게 미소를 보냈다.

“앙겔라는 학창시절 ‘CDU’라고 불렸어요. 기민련(Christlich-Demokratische Union)이 아니라 키스 받지 못한 사람 클럽(Club der Ungek웧sten)이란 뜻이었어요.”
학창시절의 메르켈을 회상하는 친구들은 그에 대해 “싸늘할 정도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목표로 삼은 일은 반드시 이뤄내는 성격이었다”고 회상했다.

헤어스타일 바꾸면서 촌스러운 여성에서 세련된 지도자로 이미지 변신
메르켈은 과학자 출신답게 정확하고 성실한 성격이다. 말투도 간결하다. 이번 선거 유세기간에 메르켈은 슈뢰더와 맞붙은 토론회에서 “총리, 거짓말하시는군요” “약속했지요? 그런데 그 약속을 어겼습니다”라는 간결하고 강한 어조로 경기침체와 실업자 양산을 낳은 슈뢰더의 실정을 비판했다.
두 번 결혼했으나 아이가 없는 메르켈은 “아기를 안고 키스하는 제스처를 취하면 이미지가 훨씬 나아질 것”이라는 측근들의 조언을 거절했다. 대신 헤어스타일을 바꿈으로써 다소 촌스럽고 딱딱한 이미지에서 세련되면서도 카리스마를 내뿜는 이미지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슈퍼모델 클라우디아 시퍼의 헤어디자이너였던 우도 발츠의 손끝을 통해 오랜 세월 고수해온 메르켈의 단발머리가 부드러운 커트 머리로 바뀐 것. 독일 여성잡지들은 메르켈의 새로운 헤어스타일에 대해 “신데렐라가 탄생했다”며 칭찬 일색이었다.
독일 국민은 메르켈에게 이웃집 아줌마 같은 친근감을 느낀다. 평소 수수한 옷차림으로 다니는 메르켈은 일년 중 단 한 차례, 남편의 팔짱을 끼고 ‘바이로이트 바그너 페스티벌’에 참석할 때만 한껏 멋을 낸다. 사회 저명인사가 아니면 입장권조차 구하기 어렵다는 이 축제에 매년 모습을 드러내지만, 독일 국민은 그에게 접근하기 어려운 사회적 격차보다는 소박하고 평범한 동독 출신 여성의 성공한 인생을 뿌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정치 입문 15년 만에 국가 최고의 자리에까지 오른 앙겔라 메르켈. 독일은 현재 그와 함께 새로운 역사를 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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