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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엄마는 국회의원

국회의원 김선미 싱글 맘으로 살아가는 이야기

“주중엔 아이들과 떨어져 살다 주말에 ‘연애하듯’ 만나요”

글·강지남 기자 / 사진·김형우 기자

2005. 10. 05

김선미 열린우리당 의원은 스무 살 아들과 열한 살 딸을 둔 ‘싱글 맘’ 국회의원이다. 2002년 고 심규섭 의원이 갑작스럽게 사망한 후 아버지 잃은 슬픔에 목메던 아이들은 어느새 아버지 뒤를 이어 국회로 진출한 엄마를 배려해줄 정도로 훌쩍 자랐다. 싱글 맘 김선미 의원의 애틋한 모정 & 살아가는 이야기.

국회의원 김선미 싱글 맘으로 살아가는 이야기

주말이면 서울 영등포구 양화동에 자리한 선유도공원은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놀러온 아이들로 북적인다. 하지만 초등학교 4학년인 재은이(11)는 엄마 직장이 공원과 지척인 여의도지만 최근에야 엄마 손을 잡고 공원에 놀러와 수생식물도 구경하고 풀밭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재은이 엄마는 2002년 갑자기 세상을 떠난 남편(고 심규섭 의원)의 뒤를 이어 17대 국회의원이 된 김선미 의원(44). 이들 모녀는 벌써 1년 넘게 엄마는 국회 앞 오피스텔에서, 재은이는 고향이자 엄마의 지역구인 경기도 안성의 이모 댁에서 ‘이산가족’으로 떨어져 지내고 있다. 이날은 사실 인터뷰와 사진 촬영을 위해 공원을 찾았지만 모녀는 진짜 소풍을 나온 듯 설렌 표정이었다.
“국회 근처에 이렇게 예쁜 공원이 있는 줄 몰랐네. 재은아, 그동안 이런 곳에 데리고 오지 못해서 미안해. 다음에는 김밥이랑 돗자리 싸 갖고 놀러오자.”
김선미 의원은 스스로를 ‘빵점 엄마’라고 평한다. 지난해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아들 재하(20)와 딸 재은이를 위해 따뜻한 밥상 한번 차려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주중에는 서울에서 의정활동을 벌이고 금요일 오후 안성으로 내려가 주말을 보낸다. 하지만 주말 내내 지역구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에 참석하다 보면 아이들과 단출하게 외식 한번 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현재 대입 재수를 하는 아들은 엄마에게 ‘수험생 뒷바라지’를 기대할 형편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아예 경기도의 한 기숙학원에 들어갔다. 바쁜 스케줄 때문에 아이들과의 약속은 ‘부도수표’가 되기 일쑤. 얼마 전에는 아들의 몸이 좋지 않아 서울의 한 병원에 데려가기로 했는데 그만 아침 9시부터 당에서 긴급회의를 소집하는 바람에 아들 혼자 병원에 보내고 말았다고 한다.
“요즘 재은이가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크는 중이거든요. 여성 속옷을 챙겨줘야 할 때다 싶어서 친구에게 조언을 얻어 초등학생 여자아이들이 입는다는 스포츠 브래지어 두 장을 사다줬어요. 그런데 작은 거예요. 언니한테 ‘하나밖에 없는 딸내미 사이즈도 모른다’며 얼마나 타박을 들었는지 몰라요.”

부쩍 자란 딸아이 신체 치수도 몰라
국회의원 김선미 싱글 맘으로 살아가는 이야기

남편 심규섭 의원이 간단한 수술을 받다가 사망한 것은 2002년 1월. 그 후 김선미 의원은 2002년 보궐선거에 나갔다가 떨어졌고, 2004년 남편의 지역구였던 안성에서 출마해 17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화제를 모았다. 평범한 주부에서 국회의원으로의 화려한 변신이었다.
하지만 김선미 의원은 남편이 사망했을 당시 “아무도 없는 깜깜한 땅 위에서 아이 둘을 데리고 서 있는 기분이었다”고 회상한다. 남편을 잃은 슬픔을 가누기도 힘들었거니와 아이들과 먹고 살 길이 막막했기 때문. 더욱이 자신이 알지 못하는 각종 부채가 여기저기서 밀려오자 김 의원은 남편의 재산상속을 포기하고 ‘제로’ 상태에서 아이들과 함께 인생을 꾸려나가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17대 총선에서 당선됐을 때 남편의 못다 한 꿈을 이룰 수 있게 돼 기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앞으로 4년 동안 안정적인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더 반가웠어요. 제가 약사 자격증이 있긴 하지만 약국을 차릴 형편이 못 됐거든요.”
상을 치르고 보궐선거에 출마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엄마를 둔 탓에 재은이는 한글도 깨치지 못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해 받아쓰기에서 40~50점을 받아와 엄마를 울렸다. 하지만 지금은 공부를 꽤 잘한다고 한다. 얼마 전 교내 수학경시대회에서는 은상을 받기도 했다고. 재은이는 요즘 미술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 김선미 의원은 이 점이 무척이나 기쁘다고 한다. 어릴 적 꿈이 화가가 되는 것이었고 지금도 가끔 그림을 그릴 정도로 김 의원 자신도 미술에 애정이 많기 때문이다. 아들 재하는 의대 진학을 목표로 열심히 대입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국회의원 김선미 싱글 맘으로 살아가는 이야기

선유도공원을 찾은 김선미 의원과 딸 재은양.


“보궐선거에서 떨어진 뒤 사흘 만에 다시 거리로 나가 주민들을 만났어요. 선거에서 한번 떨어졌다고 해서 남편의 못 다 이룬 꿈을 대신 이루겠다는 생각을 접을 수 없었거든요. 그때 아들이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해요. 돈 많이 벌어서 정치하는 엄마를 후원하겠다고요.”
김선미 의원은 아이들을 옆에서 일일이 챙겨주지 못하면서 자녀 교육관이 바뀌었다고 한다. 집에서 살림을 했을 때는 ‘남들 다 하는데 우리 아이만 안 하면 불안하다’는 마음에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사교육을 시켰지만, 아이들을 돌보지 못하면서 오히려 심리적인 여유가 생겼다고.
“엄마 잔소리가 없으니까 아이들이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자발적으로 챙겨서 하더라고요.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아이는 부모가 키우는 게 아니라 스스로 크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들은 자상한 남자, 딸은 당당한 여자로 크길 바래
주중엔 떨어져 지내다 보니 김선미 의원은 아이들과 ‘연애하듯’ 산다. 딸 재은이는 엄마가 일요일 저녁 서울로 올라갈 때마다 엄마 가방에 몰래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물건을 선물로 집어넣곤 한다. 가끔씩은 ‘엄마 힘들죠? 힘내요. 사랑해’라고 쓴 편지와 함께. 한번은 엄마에게 주먹 크기의 사자인형이 달린 휴대전화 줄을 선물했는데, 휴대전화를 넣어두는 정장바지 주머니가 너무 불룩해져서 김 의원은 사자인형은 떼고 줄만 휴대전화에 달고 다니고 있다. 김 의원은 아들이 한 달에 한 번 기숙학원에서 휴가 나올 때마다 차로 데려오고 데려다준다. 오고가는 길에 나누는 차 속 대화로 그리움의 갈증을 푼다고.
“여의도 오피스텔에는 싱글침대 하나만 있거든요. 재은이는 가끔 오피스텔에서 자게 되면 자기가 방바닥에서 자겠다고 해요. 자기는 굴러떨어질까봐 그런다고 하지만, 피곤한 엄마를 배려하는 거죠. 그 마음이 예쁘고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쓰러워요. 또래 여자아이들은 엄마한테 칭얼거리기도 하고 뭔가를 해달라고 조르기도 할 텐데 재은이는 전혀 그런 면이 없거든요.”
국회의원 김선미 싱글 맘으로 살아가는 이야기

지난 7월 제주도의 한 해수욕장에서 찍은 가족사진.


지난 7월 말 김선미 의원은 아이들을 데리고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5년 전 네 가족이 함께 가족여행을 떠났던 제주도는 남편, 아빠와의 마지막 여행지이자 남은 세 가족이 함께 떠난 첫 번째 여행지가 된 셈이다. 김선미 의원은 “이제는 우리 가족 세 사람 모두 단단해진 것 같다”며 “아들은 자상한 남자로, 딸은 당당한 여자로 자라길 바란다”고 말했다.
“재은이가 어린 나이에 아빠를 잃고 엄마 보살핌을 받지 못해서 내성적이고 소심하게 자란 게 가장 맘 아파요. 자기 직업을 가진 당당한 여자로 자랐으면 해요. 아들은 여자를 잘 이해하고 배려하는 멋진 남자가 되었으면 하고요.”
김선미 의원의 별명은 ‘안성 며느리’ 혹은 ‘아줌마 국회의원’이다. 그는 이제는 ‘남편 뒤를 이어 국회의원이 된 여성’이 아니라 한 명의 여성 정치인으로 성장하고 싶다고 말한다. 한부모 가정에 쏟아지는 사회적 편견을 없애는 것도 정치인으로서, 한부모 가정의 가장으로서 반드시 이뤄내고 싶은 일이다.
“이제 남편은 저와 제 아이들의 마음속에 묻어놓고 힘들 때마다 그리울 때마다 찾아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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