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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방한 인터뷰

아일랜드를 ‘영국보다 잘 사는 나라’로 만든 매컬리스 대통령의 성공 비결

■ 기획·송화선 기자 ■ 글·최우석‘조선일보 기자’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조선일보 제공

2005. 05. 10

아일랜드는 지난 97년 메리 매컬리스 대통령 취임 이후 사상 최고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유럽의 선두 국가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해 7년 임기가 끝났지만 야당이 경쟁 후보를 내지 못해 무투표로 대통령에 재선됐을 만큼 국민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메리 매컬리스 대통령. 최근 방한한 그가 자신의 가슴 아픈 가족사와 성공 비결을 털어놓으며 한국 여성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아일랜드를 ‘영국보다 잘 사는 나라’로 만든 매컬리스 대통령의 성공 비결

매컬리스 대통령은 다른 사람과 함께 성공하는 방법을 찾는 긍정적인 성격이 성공의 비결이었다고 말한다.


지난 3월21일 4박5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아일랜드의 메리 매컬리스 대통령(53)은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의 고향은 기독교도와 가톨릭 교도 간 종교 갈등으로 폭력이 난무하는 북아일랜드. 매컬리스 대통령은 어린 시절 소수계인 가톨릭 교도라는 이유로 온 가족이 고향인 벨파스트 시에서 쫓겨나는 아픔을 겪었다. 또한 한밤중에 기독교계의 총격을 받기도 했고,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매컬리스 대통령은 열악한 환경을 탓하지 않았다. 그는 북아일랜드의 명문 퀸즈대 법대를 졸업했고, 74년 변호사가 됐다. 인권운동가로 활동하며 75년 더블린 트리니티대학 법학과 교수로 임용된 그는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79년 ‘인생 체험’을 위해 방송기자로 변신,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할 만큼 인기를 끌었고, 선거 패배 후 87년 퀸즈대로 돌아간 뒤 퀸즈대 최초로 여성 부총장에 오를 만큼 행정 능력을 인정받았다. 마침내 97년, 58.7%의 압도적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한 편의 소설만큼이나 극적인 인생 드라마다.
하지만 정작 매컬리스 대통령은 “9남매 중 장녀였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동생들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공부하다보니 한꺼번에 대여섯 가지 일을 하는 데 익숙했다”며 자신의 성공을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오히려 “남을 탓하는 것은 인간의 사고력을 마비시킨다”면서 “고향에서 쫓겨났지만 우리 집안 누구도 보복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때부터 다른 사람과 함께 ‘윈-윈’ 할 수 있는 방법이 뭔지 찾는 버릇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처음으로 한 일은 살림집인 관저를 공개한 일이었다고 한다. 토요일마다 대통령 관저를 공개하는데 늘 구경 오는 시민들로 북새통이 된다고. 또한 그는 대통령 웹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모든 일정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매컬리스 대통령은 “누구든 대통령을 필요로 하면 찾아간다”고 말했다. 그의 이 같은 개방 정책은 그에게 반대표를 던진 사람까지 그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효과를 낳았고, 그는 지금 아일랜드에서 ‘국민의 대통령’으로 불린다. 그는 지난해 7년 임기를 마치고 재선에 출마할 계획이었는데 그의 인기가 너무 높자 야당이 아예 후보를 내지 않아 무투표 당선되었다.
그는 거침없는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이런 면모를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남편인 마틴 매컬리스와 연애하던 시절인 1970년, 마틴이 축구 시합에 나섰는데, 상대팀 선수가 마틴에게 반칙을 가했지만 심판이 외면했다고 한다. 매컬리스 대통령은 즉시 들고 있던 우산을 흔들며 축구장으로 뛰어가 심판에게 강력히 항의했고, 이 사건 때문에 그는 경기가 끝난뒤 남편의 축구팀 선수들에 의해 ‘이번 경기의 최우수선수’로 추대되는 ‘영예(?)’를 안았다.
“마틴은 창피하다고 얼굴을 못 들었지요. 하지만 그 심판은 정말 말도 안 되는 판정을 내렸습니다. 그걸 참을 수는 없었어요.”
매컬리스 대통령 부부는 아일랜드에서 소문난 잉꼬부부. 치과의사인 남편 마틴 매컬리스 박사와의 사이에 3남매를 둔 그는 17세 때부터 남편과 사귀었다고 털어놓았다. 올해로 결혼 29주년을 맞은 그에게 행복한 결혼생활의 비결을 물었더니 “특별한 비결은 없다”면서 “서로 이해해주는 게 최고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일랜드를 ‘영국보다 잘 사는 나라’로 만든 매컬리스 대통령의 성공 비결

아일랜드의 메리 매컬리스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과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인기가 이처럼 매력적인 성격에서만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의 인기는 “아일랜드 역사상 나라가 이렇게 번영해본 적이 없다”는 말이 나올 만큼 급성장하고 있는 아일랜드 경제에서 비롯된다.
아일랜드는 60년대부터 교육에 집중 투자, 고급 두뇌를 대량 양성했다. 그러나 80년대엔 고급 두뇌들이 일자리가 없어 해외로 빠져나가는 두뇌 유출 현상이 벌어졌다.
“우리는 교육만 잘 시켜놓으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는데 그건 큰 착각이었습니다.”
그래서 매컬리스 대통령은 과감히 경제를 개방하고, 법인세를 낮춰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였다. 그 덕에 지금 아일랜드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 달러가 넘는, 영국보다 잘사는 나라가 됐다. 영국의 식민지로 핍박받던 나라가 이제는 영국에 투자하는 지위로 올라선 것이다.
매컬리스 대통령은 “과거 아일랜드는 독립을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았고 외세로부터 아일랜드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걸 닫아 걸었지만, 그건 결과적으로 우리를 보호하는 게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그가 이번에 방한한 것도 세계적인 정보통신(IT)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의 장점을 배우기 위한 것.
종교 갈등이 심한 지역에서 자란 탓에 그는 어려서부터 인권과 기회 균등에 눈을 떴다. 후손들에게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정치인의 몫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우리가 계속 싸우면 우리는 기회만 낭비할 뿐입니다. 남들은 번영하는데 우리는 가난에 찌드는 것이죠. 화해와 용서는 새로운 미래를 여는 데 반드시 필요한 절차입니다.”
그는 “과거와 화해하는 것은 미래를 바꾸고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그의 이같은 생각은 북아일랜드의 평화 정착에도 기여해 98년 이후 양측 간 평화협정이 체결됐고, 무력 분쟁이 사라지고 있다.
매컬리스 대통령은 여성 평등에 대해서도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그는 “21세기에는 여성들이 억눌렸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는 여성시대가 활짝 열릴 것”이라고 말하면서 “여성의 문제해결 능력이 세상만사에 제대로 반영되면, 21세기는 아주 다른 세상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다음의 말로 인터뷰를 끝맺었다.
“세상은 지금까지 남자라는 하나의 날개로 날아왔지만 이제는 남자와 여자라는 두 개의 날개로 날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조만간 여성 대통령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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