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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다큐멘터리 ‘사랑’ 송웅달 PD가 들려준 ‘사랑과 섹스가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

■ 글·구미화 기자 ■ 사진·정경택 기자

2005. 03. 31

결코 꺼지지 않을 것처럼 뜨겁게 불타올랐다가 어느 순간 차갑게 식어버리는 ‘사랑’의 정체에 대해 누구나 한번쯤 의문을 가졌을 법하다. 또한 사랑의 절정으로 표현되는 섹스는 우리 몸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또 남녀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궁금한 부분이다. KBS ‘생로병사의 비밀’ 100회 특집에서 다양한 과학적 실험과 국내외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낸 송웅달 PD를 만나보았다.

화제의 다큐멘터리 ‘사랑’ 송웅달 PD가 들려준 ‘사랑과 섹스가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

KBS ‘생로병사의 비밀’ 100회 특집으로 제작된 감성 과학 다큐멘터리 3부작 ‘사랑’이 지난 3월15일 첫 방송 후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흔히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것 같다’ ‘뭔가에 홀린 것 같다’ 등으로 표현되는 사랑에 빠진 상태를 최첨단 의학 장비로 해부한 것이다.
‘사랑’ 제작팀은 지난해 봄, 가톨릭의대 정신과 채정호 교수팀과 함께 연애를 시작한 지 1백일 전후 된 20대 초반 남녀 5쌍의 뇌를 fMRI(기능성자기공명영상장치)로 촬영했다. 촬영을 하면서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연인의 사진과 단순히 친구 관계인 이성의 사진을 차례로 보여줬는데 전자의 경우에만 대뇌 깊숙한 곳에서 본능을 관장하는 ‘미상핵’이 활성화됐다. 미상핵은 흥분과 쾌감을 일으키는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의 분비가 많은 곳으로 도파민 수치가 높아지면 행복감을 느끼게 되고, 눈이 반짝이고, 얼굴이 홍조를 띠면서 자주 미소를 짓게 된다. ‘사랑하면 예뻐진다’는 말이 괜한 속설이 아닌 것이다.
제작진은 “처음 본 순간 뒤에서 후광이 비쳤다”며 사랑에 푹 빠져 있던 연인들의 뇌를 6개월 뒤에도 촬영했다. 그동안 외국 연구진에 의해 연애 초기 연인들의 뇌를 촬영한 적은 있으나 6개월에 걸쳐 사랑의 변화를 추적한 것은 세계 최초라고 한다. 실험 결과 미상핵은 전혀 반응하지 않고, 대신 6개월 전엔 미미했던 대뇌 피질이 눈에 띄게 활성화되어 있었다. 대뇌 피질은 이성적 판단을 관장하는 부위로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6개월 사이 이성적으로 변했음이 확인된 것이다. ‘사랑’ 제작팀은 연인들이 키스할 때의 심장박동수도 측정했는데 1백일 전후의 열정적인 상태에서 키스를 할 때는 심장이 1분에 1백 회 이상 뛰었으나 6개월이 지나 연애 기간이 3백일 전후가 됐을 때는 심장박동수가 절반 가까이로 줄어 있었다.
화제의 다큐멘터리 ‘사랑’ 송웅달 PD가 들려준 ‘사랑과 섹스가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

‘사랑’ 제작진이 만난 미국 코넬대학의 신시아 하잔 교수는 “사랑에 빠진 5천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연애를 시작한 지 3백일 전후로 열정의 강도가 급격히 약해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약해지지 않고, 낮은 수준에서 오르락내리락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열정이 계속해서 식을 경우에는 결국 이별에 이르게 된다고. 하잔 교수는 열정의 감정이 지속되는 기간을 평균 9백일 정도로 보았다. ‘사랑’ 제작진과 함께 연인들의 뇌를 촬영한 가톨릭의대 채정호 교수는 “시간이 흐르면 열정이 줄 뿐 사랑이 식는 것은 아니다”라며 “많은 연인들이 열정을 사랑으로 착각하는데 열정은 사랑의 일부분일 뿐”이라고 말했다.
인류에게 ‘사랑’은 영원한 연구 대상이다. 사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조차 보이지 않고, 종잡을 수 없는 사랑의 실체에 대해 끊임없이 의구심을 갖는다. 3월15일부터 세 차례에 걸쳐 방영된 다큐멘터리 ‘사랑’은 사람이 사랑을 할 때 몸에 나타나는 변화를 의학적 실험을 통해 관찰하고, 오랫동안 사랑에 대해 연구해온 학자들을 취재해 사랑의 실체를 파헤쳤다. 연출을 맡은 송웅달 PD(34)는 “과학을 통해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A부터 Z까지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을 논리적·과학적으로 명쾌하게 보여주기 위한 프로그램은 아니다”라며 “사랑에 대한 찬사이자 독려”라고 말했다. 그는 자칫 사랑이 과학으로 토막 나는 것을 막기 위해 사랑에 빠진 커플들, 오랫동안 함께 생활한 부부들의 생생한 증언을 아기자기한 영상과 함께 담았다.
“열정적인 초기의 사랑만을 진짜 사랑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랑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첫 만남부터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의 긴 여정이라고 생각해요. 그 긴 여정을 세 편으로 나눠 첫 번째는 정말 폭풍 같은 열정으로 사랑에 빠지고, 두 번째는 열정의 연장선상에서 성적인 완성을 갈망하고, 세 번째는 오랜 세월 속에서 열정이 어느 순간 깊은 애정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담았어요.”

화제의 다큐멘터리 ‘사랑’ 송웅달 PD가 들려준 ‘사랑과 섹스가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

“정해진 한 명의 파트너와 꾸준히 사랑하면 젊어지고 오래 살 수 있어요”


‘생로병사의 비밀’ 첫 회를 만들었던 송웅달 PD는 2003년 2월, 흔히 듣는 ‘사랑하면 예뻐진다’는 말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보려고 2주간 자료 조사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단기간에 복잡 미묘한 사랑의 감정을 과학적으로 파헤치는 데 무리가 있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매혹적인 주제를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그해 가을 2004년 특집 프로그램 기획안으로 다시 한 번 ‘사랑’에 도전해 좋은 평가를 받았고, 그해 겨울엔 방송위원회 프로그램 기획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송 PD는 “당시에는 ‘생로병사의 비밀’ 연장선상에서 첨단과학이 밝혀놓은 사랑을 연령대별로 3부작으로 만들어 보여주겠다는 것뿐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주제에 흥미를 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렇게 누구나 다 한마디씩 거들 수 있는 주제이기에 다루기가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더군다나 촬영감독을 제외하고 송웅달 PD를 비롯한 모든 스태프가 미혼이어서 섹스를 깊숙이 다룬 2편과 오래도록 애정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3편을 제작할 때 난감한 점이 많았다고.
‘사랑’ 제작진은 기획 단계부터 총 1년 6개월간의 제작기간 동안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 1백일 전후의 커플부터 74년 동안 해로한 부부까지 다양한 연령의 1백14쌍을 만나 인터뷰하고, 2개월여 동안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을 돌며 해외 취재를 했다.
3월15일 방송된 제 1편 ‘900일간의 폭풍-사랑하면 예뻐진다’에 이어 3월22일 방송된 제2편 ‘SEX 37.2°-사랑하면 건강해진다’는 여러 실험을 통해 남녀의 섹스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먼저 한 여성의 배란기와 비배란기의 얼굴 사진을 촬영해 배란기에 동공이 확대되고, 얼굴선이 고와지고, 피부색이 밝아지는 등 미묘한 변화를 통해 이성에게 임신 가능성을 알린다는 것을 확인했다. 37.2℃는 임신이 가장 잘 되는 배란기 체온을 가리킨다.
이와 함께 섹스가 건강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줬다. 섹스를 하면 호흡이 네 배 정도 빨라져 많은 공기가 몸 안으로 들어와 폐 운동이 활발해지고, 혈액 순환이 원활해지면서 피부가 달아올라 피부 건강에도 좋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 미국의 심리학자 고든 갤럽 박사는 최근 남성의 정액에 들어 있는 프로스타글라딘 등의 물질이 자궁을 건강하게 하고 우울증을 덜어준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이 밖에도 섹스가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밝혀낸 논문들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꾸준히 발표되어 왔다.
‘사랑’ 제작진은 그중 섹스와 면역력의 상관관계를 밝혀낸 미국의 브레넌 박사의 연구를 국내에서 직접 실험해보았다. 서울 백병원 우종민 교수팀과 함께 성관계 횟수가 주 1~2회인 부부 12쌍과 한 달에 한 번 미만으로 성관계를 맺는 부부 12쌍의 부부생활 만족도를 들어보고, 면역 글로불린 A의 양과 노화방지 호르몬 수치, 스트레스 대처 능력을 비교해본 것. 그 결과 일주일에 1~2회 정기적으로 섹스를 하는 부부 그룹의 만족도와 면역력, 스트레스 대처 능력, 노화방지 호르몬의 양이 비교 그룹보다 두 배가량 높게 나타났다.
송웅달 PD는 “보다 더 왕성한 성생활을 하는 부부들을 섭외하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다”며 “그러나 몇 년 전 미국 대학생 커플을 대상으로 한 브레넌 박사의 실험 결과를 보면 일주일에 3~4회 이상 섹스를 하는 그룹의 면역력이 일주일에 한 번도 안 하는 그룹의 면역력과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과도한 성관계는 오히려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

화제의 다큐멘터리 ‘사랑’ 송웅달 PD가 들려준 ‘사랑과 섹스가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

송 PD에 따르면 영국 에든버러의 데이비드 위트 박사도 비슷한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또래보다 10년 더 젊어 보이는 유럽인 3천여 명의 특징을 조사한 결과 가장 큰 공통점이 규칙적인 운동이고, 두 번째가 정기적인 성생활이었던 것.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한 명의 파트너와의 안정적인 관계에 기반한 성생활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왕성한 성생활이 젊음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해서 파트너를 바꿔가며 섹스를 많이 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해요. 섹스는 뇌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새로운 파트너와 섹스를 할 경우 순간의 강렬함은 있겠지만 안정감이 덜해서 긴장을 하게 되고, 스트레스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조연출을 맡은 박수현 PD(31)는 “제작 과정에서 만난 30~40대 부부 여러 쌍과의 인터뷰를 통해 ‘섹스가 부부생활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섹스가 없는 부부생활은 생각하기 힘들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생생한 목소리로 들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10년 넘게 결혼생활을 한 부부도 막상 서로의 성감대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경우가 드물었다고. 섹스의 중요성은 인식하면서도 서로의 성적 만족도를 높이는 데는 별 관심이 없었다는 것. 역시 미혼인 박 PD는 “행복한 부부생활은 서로에 대한 헌신과 노력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말했다.
연애 초기에는 흥분이나 쾌감을 일으키는 도파민이 분비되지만 연인 관계가 발전해서 성관계를 맺고 오르가슴에 이르면 뇌에서 옥시토신이 다량 분비된다. 미국의 뇌 전문가 프라이어 박사는 옥시토신을 사랑을 유지하는 ‘사랑의 호르몬’이라고 부른다. 사랑의 열정이 다소 사그라진 뒤에도 옥시토신이 상대에 대한 친밀감을 높여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기 때문. 송웅달 PD는 “성관계를 가질 정도의 남녀관계에서는 포옹을 하거나 손을 잡는 등 가벼운 애정표현으로도 옥시토신이 분비된다”며 “결혼생활에서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들 때 배우자의 손을 잡아주고, 포옹해주고,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는 것이 매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긍정적인 언어와 부정적인 언어의 비율 5대 1로 대화해야 갈등 일으키지 않아
그는 또 부부간의 대화가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믿고 대화하라.’ 부부간에 대화가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만 잘 안 돼요. 대화를 하되 감정을 폭발시켜서는 안 되거든요. 감정이 폭발할 것 같다 싶으면 차라리 대화를 피하는 게 낫대요.”
송 PD는 3부작 다큐멘터리 ‘사랑’의 마지막 편인 제3편 ‘사랑의 방정식 5대 1-사랑하면 오래 산다’에서 대화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그는 열정적인 사랑에 빠졌던 남녀가 갈등을 빚는 원인이 남녀의 근본적인 차이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갈등을 줄이고 애정관계를 오래도록 유지해나갈 수 있는 비법을 소개했는데 그 중심에 대화법이 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저자이자 부부상담 전문가인 존 그레이는 송 PD에게 “남자는 주로 문제해결을 위해 언어를 사용하지만 여자는 주로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대화 도중 오해가 생기기 쉽다”며 “따라서 서로 상대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 남녀관계에서 생기는 갈등 해법의 첫 걸음”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행복한 부부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남녀의 차이를 인식한 대화법이 중요하다는 것.
10년 동안 7백여 쌍의 부부를 관찰한 미국의 부부갈등 전문가 존 고트만 박사 역시 파경에 이르지 않고 사랑을 유지하는 부부의 비밀이 대화법에 있음을 발견했다. 그들의 대화 내용을 분석한 결과 긍정적인 언어와 부정적인 언어의 비율이 공통적으로 5대 1로 나타난 것. 반면 이 비율이 1대 1에 가까운 부부들은 갈등을 일으키고 이혼으로까지 치닫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빈정거림이나 비난 등 부정적인 발언을 한 번 했을 경우 다섯 번의 위로와 칭찬의 말로 보상해야 한다는 얘기다.

화제의 다큐멘터리 ‘사랑’ 송웅달 PD가 들려준 ‘사랑과 섹스가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

한 명의 파트너와의 안정적인 관계에 기반한 정기적인 성생활은 면역력을 높이고, 젊음을 유지하게 한다.


송 PD는 또 부부관계와 수명의 연관성을 조사했는데, 74년간 해로하고 있는 김진원(100)·최영손씨(96) 부부는 평생을 함께 해준 배우자의 헌신과 사랑을 장수의 비결로 꼽았다고 한다. 실제 한국인의 수명을 연구하는 삼육대학 사회복지학과 천성수 교수에 따르면 아내가 있는 남성은 이혼자나 미혼자보다 평균 10년, 사별한 사람보다 17년을 더 산다. 또한 남편이 있는 여성은 이혼자보다는 8년, 미혼자보다는 10년, 사별한 사람보다는 25년을 더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배우자를 잃을 경우, 면역력이 약해져 각종 질병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는 영국의 스트레스 전문가 케리 쿠퍼의 주장이 이러한 통계를 뒷받침한다. 송 PD는 노부부의 증언과 통계 자료에 기초해 최근 남편을 잃은 한 여성의 면역력을 조사했는데 사별하기 전보다 50% 이상 떨어진 것을 확인했다.
송 PD는 “지금까지 내가 체험해본 사랑은 긴 여정 중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는데 ‘사랑’을 제작하며 많은 남녀의 사랑을 만나보면서 사랑의 힘이 애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사랑을 잘하면 뇌를 무한히 발달시킬 수 있고, 뇌가 활성화되면 몸도 건강해지고, 젊어지고, 예뻐지고, 오래 살 수 있죠. 제가 경험해본 건 9백일간에 불과하고,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그 열정적인 순간을 아름답게 그리지만 긴 시간 경험하게 되는, 기쁨과 갈등을 함께 겪고 난 뒤 서서히 찾아오는 오랜 사랑이 주는 건강과 행복이 훨씬 크다는 것을 이번 취재를 통해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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