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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특별한 자녀 교육법

‘영어 실력, 감수성 쑥~ 키운 교육법’

영어 동화 3권 번역하고 창작동화 펴낸 16세 소녀 작가 박연양 부모가 공개한

■ 기획·구미화 기자 ■ 글·장옥경‘자유기고가’ ■ 사진·정경택 기자

2005. 02. 11

여중생이 동화책을 펴내 화제다. 직접 그림까지 그려 넣어 동화책을 완성한 박연양은 재작년 영어 동화책을 3권이나 번역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소녀 작가 박연양과, 딸이 유년기를 자연에서 보내도록 산골마을로 이사했던 부모를 만나 남다른 교육법에 대해 들어봤다.

‘영어 실력, 감수성 쑥~ 키운 교육법’

지난 1월 중순, 광주광역시에서 만난 박연양(16)은 훤칠한 키와 뽀얀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풋풋함이 물씬 풍기는 이 소녀가 최근 ‘거꾸로 오시오 로꾸거’라는 제목의 동화책을 펴내고 어엿한 동화 작가가 됐다. 그에게 먼저 ‘거꾸로 오시오 로꾸거’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물었다.
“엉뚱한 생각을 잘 하는 열한 살짜리 여누라는 아이가 아빠의 작업실에서 발견한 ‘이상한 나라 이야기’란 책을 읽게 돼요. 그 후 모든 것이 이 세상과는 반대인 ‘거꾸로 나라’에 호기심이 생겨 열기구를 타고 그곳으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죠.”
수줍어하면서도 또박또박 대답한 박연양은 “주인공 여누는 남동생 연우를 모델로 했다”고 덧붙였다. 남동생 연우는 자신을 모델로 한 동화책에서 주인공이 이상한 말을 하고, 무엇이든 이로 깨무는 것을 좋아해 ‘공포의 송곳니’로 불리며,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고를 칠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묘사된 것을 보고 처음엔 “난 이렇지 않다”며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은 누나의 책을 외울 정도로 좋아한다고.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4년간 시골마을에 살며 감수성 키워
‘거꾸로 오시오 로꾸거’는 박연양이 초등학교 6학년 때 석 달 만에 쓴 것이라고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던 그는 엉뚱한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이 재밌어 틈나는 대로 글을 썼는데 이번에 책으로 출판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고.
박연양이 책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중2 때 이미 ‘해적들의 아기보기 대작전’ ‘스위티 메이와 못 말리는 악당들’ ‘책 읽기가 정말 싫어’ 등 어린이 영어책 3권을 번역한 것.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말부터 1년 반 동안 뉴질랜드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3권의 번역서를 펴냈다.
박연양이 초등학교를 마치기 전 뉴질랜드로 유학을 떠나고, 중학교 때 번역서와 동화책을 출간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건 부모 박영대씨(45)와 정인순씨(45)의 교육 영향이 크다.
‘우리 집 주변의 까치들은 여러 쌍인데 이들은 동네 사람들의 얼굴을 안다. 까치가 요란스럽게 우는 날은 필시 낯선 이들이 마을에 들어왔다는 신호다. … 쥐들은 호기심이 많다. 집안 구석구석을 쏘다니며 탐정처럼 냄새를 맡고 다닌다. 때로 호기심은 무모하고 위험한 것이다. 무슨 일이든 끝까지 알아내야 직성이 풀리니 그 집요한 기세에 대책이 없다. 우리 집에 사는 생쥐들도 그랬다. 뒤주 속을 제 집처럼 드나들며 세간을 점검하려 든다.’
동양화가인 아빠 박씨가 쓴 그림 산문집 ‘새들이 날아간 자국’에 나오는 이 구절들은 박연양이 자란 ‘특별한’ 환경을 묘사하고 있다. 기자의 ‘특별한’이란 표현에 대해 아빠 박씨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소박한 것”이라고 고쳐서 말했다. 아빠 박씨는 “어렸을 때부터 연이에게 공부하라고 강요하거나, 영어 영재나 한글 영재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며 다만 “책을 통해서 세계를 간접 경험하는 것은 언제든 할 수 있지만 자연과 어울리는 것은 유년기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아이들을 자연 속에 풀어놓았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남매를 키울 때 두 가지에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자연에서 자라게 하자는 것이 첫 번째였습니다.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는 전남 곡성 출신이고 저는 완도 출신이에요. ‘깡촌’이라 할 수 있는 산골짜기와 섬에서 자랐는데 어릴 적 환경이 평생 동안 정서적으로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자연을 벗하며 자라게 해주고 싶었지요.”

‘영어 실력, 감수성 쑥~ 키운 교육법’

박연양이 뉴질랜드 유학 당시 썼던 노트. 글을 줄맞춰 또박또박 쓰기 보다는 원하는 그림을 그려넣는 등 창의적으로 정리한 것이 눈에 띈다.


이런 생각에 박연양이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에 경기도 안성 금광면으로 이사를 했다고 한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이고, 버스가 하루에 4대밖에 다니지 않는 작은 시골마을에 오래된 ‘ㄷ’자형 한옥을 구입해 살림을 꾸렸다고. 박연양이 다닌 초등학교는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었고, 전교생이 60여 명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엄마 정씨가 이 학교에 교사로 자원해 매일 아침 엄마와 남매가 손을 잡고 학교로 향했다고. 통학 길에는 실개천이 흐르고,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고 한다.
“그때 제가 집에서 그림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어요. 수업이 일찍 끝나도 엄마가 퇴근할 때까지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죠. 아내가 5시쯤에나 일을 마치니까 연이와 연우는 그때까지 친구들과 어울려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실컷 놀았어요. 이런 생활을 4년 반 가량 했지요.”
박연양은 반 친구들과 냇가에서 다슬기를 잡고 헤엄도 쳤다. 남자 아이들과 어울려 공을 차기도 했다. 애기똥풀 진액으로 돌멩이에 그림을 그리고, 눈 오는 날이면 언덕에서 비닐포대를 깔고 미끄럼을 타고 놀았다. 박연양의 부모는 “그 시절 두 아이 손톱을 깎아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땅을 파고 노는 날이 많다보니 손톱이 닳아 깎을 게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하루 종일 신나게 놀고 나면 남매는 밤 9시가 되기 무섭게 세상 모르고 곯아떨어졌다고 한다.
박연양 부모의 또 다른 교육 원칙은 ‘정기적으로 도서관 찾기’였다.
“집에서 안성 시립도서관까지 승용차로 10분 거리였어요. 온 가족의 주말 나들이 장소를 도서관으로 정했죠. 연이는 도서관에 다닌 지 딱 1년 만에 어린이 도서를 다 읽고 성인 열람실로 왔어요.”
주말마다 도서관으로 나들이하고 주제 정해 이야기 나눈 뒤 글 쓰는 연습 해
도서관에서 다 못 읽은 책은 대출을 해서 주중에 읽었다고 한다. 아빠 박씨는 “집 주변에 다른 오락 시설이 없다보니 아이들이 자연과 어우러져 친구들과 놀다 지치면 집에서 조용히 책을 읽곤 했다”고 말했다. 박연양의 집에는 없는 게 또 한 가지 있다. 바로 텔레비전이다. 엄마 정씨는 “처음 이사를 와서 텔레비전을 켜니까 안테나가 안 맞아서인지 방송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며 “유선이나 케이블을 설치해야 하는데 번거롭고 꼭 TV를 봐야 할 이유도 없어 그냥 TV 없이 살아보기로 했다”고 한다. 텔레비전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가족끼리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오후 5시쯤 집에 오면 아빠는 작업을 멈추고 저희와 함께 놀아주셨어요. 저녁을 먹고 나면 골짜기 끝에 있는 소나무나 마을 어귀의 빈집 등을 목표로 정해놓고 아빠와 산책을 했어요. 고추밭 가장자리의 키 큰 억새와 이야기를 나누고, 산발한 넝쿨들을 즈려밟고, 논두렁이나 개울을 만나면 껑충껑충 뛰고, 후닥닥 시합을 하듯 내달리기도 하고요….”
광주교대 미술교육과 교수로 임용된 아빠를 따라 지난해 초부터 광주에서 살고 있는 박연양은 그 시절이 눈에 선한 듯했다. 하루를 마감하며 아빠와 주고받은 대화는 남매에게 소중한 추억을 남기고, 지식을 갈무리하고 지혜를 키우는 시간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박연양에겐 아이들과 뛰어놀고 아빠와 산책을 하며 보고 들은 모든 것이 좋은 글감이 됐다. 아빠 박씨는 박연양이 글쓰기에 관심을 보이자 소질을 살릴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영어 실력, 감수성 쑥~ 키운 교육법’

오는 3월 외국어고등학교에 입학하는 박연양은 앞으로 사진과 디자인을 공부해보고 싶다고 한다.


“일기 쓴 것을 봤는데 제법 글 솜씨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주제가 있는 에세이를 써보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먼저 연이에게 그날 있었던 일 중 한 가지를 골라 주제를 정하고 줄거리를 짜보라고 했어요. 그런 다음 저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과정에서 군더더기들을 가지치기해주었죠.”
박연양은 이렇게 30여 분 동안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글쓰기가 한결 수월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박연양이 동생 연우에 대해 쓴 글이 제법 재미있자 아빠는 딸에게 기승전결 체계를 갖춘 좀 더 긴 글을 써서 동화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고. 이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거꾸로 오시오 로꾸거’다.
박연양은 이에 앞서 3권의 영어 동화책을 우리말로 번역했다. 초등학교 6학년 말에 동생과 함께 뉴질랜드에서 1년 반 동안 지낸 것이 영어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데 큰 몫을 한 건 사실이지만 박연양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엄마 정씨와 함께 꾸준하게 영어 공부를 하며 기초를 다졌다.
“어느 부모나 아이들 영어 교육에 대한 부담을 갖고 있잖아요. 언제 해도 해야 할 공부라면 조금 일찍 시작하자고 생각했죠. 연이가 2학년이 됐을 때 어린이 영어책 ‘I Can Read’ 시리즈를 사다 줬어요. 하루에 30분씩 영어 테이프를 듣고 책을 따라 읽으며 서서히 단계를 높여갔죠.”
딸의 영어 공부를 위해 엄마 정씨도 오래 전 손에서 놓았던 영어책을 다시 잡았다고 한다. 단순한 리듬에 영어 가사를 넣어 부르는 교재를 이용하는 등 엄마와 남매는 밤마다 재미있게 영어 공부를 했다고.
“그림책을 보면 보통 그림에 먼저 시선이 가고, 그 다음에 글자를 보게 되잖아요. 그런데 연이는 글자에 관심이 많았어요. 차츰 글 읽는 속도가 붙더니 얼마 안 돼 혼자서 ‘해리포터’ 시리즈를 읽더라고요.”
정씨는 부지런히 서울을 오르내리며 딸에게 영어로 된 책을 사다 줬다고 한다. 그 결과 박연양이 4년여 동안 읽은 영어책이 1백여 권에 이른다고. 엄마 정씨는 “처음엔 내 영어 실력이 더 좋았는데 어느 순간 역전이 됐다”며 웃었다.
4년간 1백여 권의 영어책 읽고 뉴질랜드에서 1년간 유학
“연이가 6학년이 됐을 때 유학 보낼 생각을 했어요. 아무래도 시골 생활에는 한계가 있잖아요. 그렇다고 갑자기 도시에 있는 중학교에 보내는 건 무리다 싶어서 시골과 도시 문화의 절충점을 찾았죠.”
정씨는 영어 교육도 염두에 두었지만 아이의 시야를 넓히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며 인터넷 등을 이용해 유학 보낼 곳을 탐색했다고 한다. 그 결과 자연환경이 좋고 학비도 저렴한데다 생활방식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뉴질랜드로 결정했다고.
“두 아이를 각각 다른 집에 홈스테이를 시켰는데 한국인이 아닌 원어민의 집에 맡겼어요. 한국인과 함께 살면 아이들이 편하긴 하겠지만 영어 실력이 늘지 않을 것 같아서요.”
정씨가 방학 때마다 뉴질랜드로 건너가 아이들을 돌보긴 했지만 초등학교 6학년과 3학년 남매를 유학 보내며 각각 다른 집에서 지내게 했다는 건 부모로서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을 듯싶다. 하지만 아빠 박씨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자립심이 강해서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연이는 어렸을 때 혼자 있는 경우가 많았어요. 연우는 3년 정도 식구들과 떨어져 외가에서 지냈고요. 아이들을 방치해서는 안 되지만 적당히 혼자 지내는 버릇을 들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이만 두고 나갈 때면 쪽지를 썼어요. 밥은 어디에 있고, 간식은 어디에 있으며, 옷은 또 어디에 있는지 글로 남겼죠. 색종이는 어디에 있고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는 어디에 있는지도 알려줬어요. 또 엄마가 일찍 들어올 거라거나 엄마 아빠가 모두 늦을 거라는 것을 미리 알려서 아이를 안심시켰죠.”

‘영어 실력, 감수성 쑥~ 키운 교육법’

박연양은 아빠가 남긴 쪽지를 읽고 하루 종일 방안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 했다고 한다. 색종이를 가지고 놀다 심심하면 책을 보고, 책 보는 게 싫증나면 디즈니 영어 비디오를 보고, 컴퓨터를 하고…. 혼자서도 재미있게 지낼 줄 알게 된 박연양은 뉴질랜드에 가서도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낼 수 있었다고 한다.
박연양은 엄마와 영어 공부를 할 때 듣기와 말하기, 읽기는 했지만 쓰기 훈련은 하지 않은 채 뉴질랜드에 갔다고 한다. 그런데도 1백 권이 넘는 영어책을 읽은 박연양은 뉴질랜드에서 학교 수업을 따라가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뉴질랜드 생활이 즐거웠지만 너무 오래 머물면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할까 염려한 부모는 아이들을 1년 반 만에 귀국시켰다.
뉴질랜드에서 돌아온 박연양이 영어 동화책을 번역하게 된 것은 아빠 박씨가 2002년에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그림 백가지’라는 책을 냈는데 같은 출판사에서 박연양의 영어 실력을 전해 듣고 동화책 번역을 맡긴 덕분. 박연양은 “동화책이라 단어가 비교적 쉬워서 사전을 찾지 않고도 독해를 할 수 있었지만 우리말로 영어의 뉘앙스를 살리는 것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부모의 자연주의 교육법과 독서에 바탕한 영어 교육법으로 글쓰기와 영어 실력을 쌓은 박연양은 최근 안양외고에 합격했다. 3월 입학을 앞두고 조만간 학교 부근으로 이사를 할 예정이라는데, 지금까지 경험했던 것과 또 다른 분야인 사진과 디자인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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