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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반가운 얼굴

드라마 ‘보디가드’ 주제가 부른 심신 대마초 파문 후 첫 인터뷰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힘든 때도 있었지만 이젠 사는 재미 만끽하고 있어요”

■ 글·최호열 기자 ■ 사진·홍중식 기자

2003. 08. 29

‘오직 하나뿐인 그대’의 가수 심신이 오랜만에 드라마 ‘보디가드’ 주제가로 팬들 곁에 돌아왔다. 인기 절정의 가수였던 그가 대마관리법 위반혐의로 곤욕을 치르고, 앨범이 연속해서 실패하는 등 시련으로 점철된 지난 8년간의 마음고생과 그 속에서 깨달은 가족사랑을 거침없이 털어놓았다.

드라마 ‘보디가드’ 주제가 부른 심신 대마초 파문 후 첫 인터뷰

90년대 초, 수려한 외모와 함께 터프한 음색,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 매너로 10대 청소년과 20대 여성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가수 심신(36). 당시 그의 인기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스탠드 마이크를 이용해 노래하는 동작이 초등학생들에게까지 유행할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하지만 많은 가수들이 그랬듯이 그 역시 인기 정상에서 대마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되는 등 곡절을 겪으면서 서서히 팬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져갔다.
그가 최근 KBS 주말연속극 ‘보디가드’의 주제가 ‘Cool하게’를 불러 화제가 되고 있다. ‘Cool하게’는 같은 노래를 각기 개성 있는 가수들이 ‘라틴 록’ ‘클럽믹스’ ‘록’ ‘하우스 음악’ 등으로 다양하게 편곡해 불렀는데, 그중에서도 섹시한 남성미가 묻어나는 라틴 록과 거친 목소리가 조화를 이룬 그의 노래가 가장 눈길을 끈 것이다.
그는 첫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훤칠한 키에 군살 하나 없는 몸, 주름 하나 없는 동안의 얼굴은 그의 나이가 30대 중반이라는 사실을 믿어지지 않게 만들었다.
“요즘 산악자전거에 푹 빠져 있어요. 2년 전부터 시작했는데, 요즘 매일 한두 시간씩 산악자전거로 관악산이나 인근 야산에 오르고 있어요. 너무 좋더라고요. 육체적으로 튼튼해지는 것은 물론 스트레스가 확 풀려요. 머리가 맑아지니까 집중력이 생기고요. 산 정상에서 발성연습도 하죠.”
“요즘 사는 재미를 만끽하고 있다”는 그의 얼굴은 정말 밝아 보였다. 그리고 마음의 여유가 느껴졌다. 그는 스스로 “그동안의 좌절과 방황에서 벗어나 마음에 평화를 얻었다”고 했다.

더 나은 음악 하고 싶은 욕심에 두번이나 대마초에 손대
“어려서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해서인지 너무 일찍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맛본 것 같아요. 그래서 정신적으로 방황을 많이 했어요. 가족의 사랑과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시련과 방황을 극복할 수 있었죠.”
그는 “인생은 변하는 날씨와 같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맑았다가 흐려지고,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가도 어느 순간 말끔히 개는 것처럼 오랫동안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고민이 어느 순간 싹 걷히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여행을 많이 했는데, 여행이 음악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여행을 통해 제가 정말 평생 해야 할 것이 음악이란 걸 깨달았으니까요. 이제 제가 스타라는 생각은 완전히 사라졌어요. 데뷔하기 전 그룹사운드를 할 때처럼 순수하게 제가 좋아하는 음악만을 할 뿐이죠.”
이제 그에게서는 화려했던 과거에 대한 집착이나 중압감에 허덕이는 모습을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
“과거엔 제가 바보처럼 살았던 것 같아요. 사회에 대해 편견을 갖고 이유 없는 반항을 했거든요. 슬럼프 땐 피해의식 때문에 사람을 피하거나 외국으로 나가는 등 폐쇄적으로 살았어요. 그런데 올해 초부턴 생각이 바뀌어서 사람들이 좋아졌어요. 요즘은 길을 가다 아는 사람만 만나도 반가워요(웃음). 그러니까 세상이 달라보이더라고요. 어떤 덫에서 풀려난 심정이에요.”

드라마 ‘보디가드’ 주제가 부른 심신 대마초 파문 후 첫 인터뷰

요즘 산악자전거에 푹 빠져 있다는 그는 30대 중반의 나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젊어보였다.


한창 잘 나가던 그에게 시련이 시작된 것은 95년부터다. 최고 인기가수로서의 중압감과 더 나은 음악을 하고 싶다는 욕심에 대마초에 손을 댔다 구속된 것. 그는 그 위기를 96년 이은혜씨(32)와 결혼, 가정을 꾸리면서 극복해나갔다. 2년 동안 호주에서 음악공부를 하고 돌아온 그는 98년 4번째 앨범을 제작하며 재기를 노렸지만 음반제작사 사정으로 앨범은 세상의 빛조차 보지 못한 채 사장되고 말았다.
“그땐 정말 힘들었어요. 막막하고…. 세상에 대한 원망도 많이 했죠.”
긴 방황 끝에 2001년 다시 5집 앨범을 내며 가요계를 두드렸다. 하지만 한번 실패한 가수가 재기를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그의 앨범은 제작사의 홍보부족까지 겹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두번의 연이은 좌절은 그에게 다시 대마초를 가까이하게 만들었다.
“제가 대마초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을 했었어요. 음악하는 사람이 그걸 많이 하잖아요. 저도 데뷔하기 전에 밴드 활동을 했는데 대마초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저 예술과 대마초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생각을 했죠. 그러다 보니 그런 실수를 다시 하게 된 것 같아요.”
구속에서 풀려난 후 방송활동을 접은 채 소극장 라이브 콘서트를 통해 팬들을 만나고, 비행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희망콘서트를 여는 등 잠시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보는 세상의 시선은 차갑기만 했다. 결국 그는 활동을 접고 가족과 함께 미국 시애틀로 떠났다.
“호주에서도 그랬지만 시애틀에 있으면서 음악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어요. 음악 클럽을 순례하면서 공연문화에 대해 배웠고, 시애틀의 한 교회에 다니면서 교회음악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게 되었어요. 음악이 너무 아름다워서 진한 감동을 받았어요. 그러면서 다시 음악에 대한 열정을 되살릴 수 있었죠.”
그가 시애틀에 갈 때에는 그곳에서 사업을 하며 오랫동안 머물 계획이었다. 그래서 시애틀 다운타운에 4백평 규모로 일본식 철판요리점을 하려고 계약까지 했었다. 그만큼 한국에서의 생활에 염증을 느꼈던 것이다.
“그런데 문득 ‘돈을 버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더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가장 행복할 때는 노래를 할 때잖아요. 그래서 음악을 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결심을 했죠. 사실 스트레스가 한창 쌓일 땐 한국을 떠나 있는 게 편했는데,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풀리니까 다시 한국이 그립더라고요(웃음).”
“다시 한국에서 살다 보면 또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겠냐”고 묻자 “이젠 스트레스를 즐길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며 웃었다.
“전에는 어렸고, 또한 처음 겪는 일들이라 마음에 여유가 없었어요. 스트레스에 상처가 나도 치료를 못하고 아파하기만 했는데 이젠 스스로 치유할 자신이 생겼어요. 그만큼 제가 단단해진 거죠. 시련이 와도 두렵지 않아요. ‘올 테면 와라, 맞서 싸우겠다’는 배짱도 생겼고요.”


그는 요즘 일주일에 2∼3일 정도 경기도 미사리 카페촌에서 노래를 부른다. 크고 화려한 무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무대에 서면 행복감을 느낀다고 했다. 중요한 건 지금 계속 노래를 한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욕심부리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씩 나아갈 생각이에요. 그래서 10년이 지난 뒤 사람들이 ‘저 사람은 정말 노래를 좋아하는구나’ 하는 인정을 받고 싶어요.”
그는 지금 새로운 앨범을 준비중이다. 아름다운 사랑을 주제로 한 발라드 음악들로 앨범을 하나하나 채워나가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올 연말 안에 내고 싶다는 바람이 있을 뿐, 앨범이 언제 팬들과 만나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좀더 완벽한 앨범을 만들고 싶은 그의 욕심 때문이다.
“서두르지 않으려고요. 이번에 부른 ‘Cool하게’뿐 아니라 가을에 방영될 드라마의 주제곡도 녹음을 마쳤어요. 앨범이 나올 때까지 팬들에게 이렇게라도 제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거든요.”
음악과 함께 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이다. 그래서 그는 음악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대부분 아들 동현이(5)와 함께 보낸다.
“동현이랑 노는 시간이 가장 행복해요. 이젠 다섯살이라 말도 통하고, 가장 친한 친구 같아요. 놀고 있으면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고…. 동심으로 사는 게 가장 행복한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들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입가에서 미소가 떠날 줄을 모른다. 자기와 외모만 붕어빵처럼 닮은 것이 아니라 노래를 잘 부르고, 음악에 관심이 많은 것도 자기를 쏙 빼닮았다고 은근히 자식 자랑을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오디오로 달려가 음악을 틀어달라고 하고 드럼과 키보드 등의 악기들과 녹음실로 꾸며진 그의 작은 작업실에서 노는 걸 가장 좋아한다는 걸 보면 역시 피는 못 속이는 것인가 보다.
“음악에 소질이 있는 것 같아요. 갓난아기 때부터 음악을 들려주면 보채지 않고 잘 놀았어요. 두돌이 되기 전부터 동요를 곧잘 불렀으니까요. 무엇보다 제 노래를 좋아해요. 제가 노래를 부르는 비디오를 틀어주면 따라 부르기도 하고(웃음). 물론 동현이가 음악을 할지 안 할지는 더 두고 봐야죠. 아이의 인생이니까 제 욕심보다는 아이의 선택이 더 중요하잖아요. 하지만 음악을 한다면 도와주고 싶어요.”
집에 있을 때는 아들과 함께 야구놀이나 축구놀이, 블록쌓기를 하며 논다는 그의 말에서 아버지로서의 따뜻한 정이 느껴졌다.
“제가 다른 집 남편들보다는 시간이 많은 편이어서 청소 요리 인테리어 같은 집안일을 아내와 같이 해요. 같이 장도 보러 다니고요. 시장에 가면 서로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으로 사려고 툭탁거릴 때도 많죠. 물론 경제권이 아내에게 있어서 항상 아내가 원하는 걸 사지만(웃음).”
그는 요리를 꽤 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스테이크는 일류 레스토랑 요리사에 버금가는 수준이라고 스스로 자랑한다. 스테이크를 굽는 날이면 친구들을 불러 간단한 와인 파티를 즐기기도 한다는 것.
“아내에겐 항상 고마운 마음이에요. 힘들 때 누구보다도 격려하고 용기를 주곤 했으니까요. 아내를 위해서라도 앞으로 좋은 음악을 계속할 겁니다. 팬들에게도 실망시켜드리지 않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어요.”
그의 목소리엔 자신감과 여유가 넘쳐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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