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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이 부부가 사는 법

'개그콘서트'의 ‘세바스찬’ 임혁필·박정애 부부의 알콩달콩 신혼일기

■ 기획·구미화 기자 ■ 글·조희숙 ■ 사진·조영철 기자

2003. 05. 07

까마득한 후배들이 치고 올라올 때도 아내는 늘 그가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무려 7년을 그렇게 기다렸다. 이제 사람들은 ‘임혁필’이라는 이름 세 글자와 더불어 ‘영국의 권위 있는 혈통, 루이 윌리암~스 세바스찬 주니어 3세’까지 줄줄 왼다. 긴 무명생활 끝에 '개그콘서트'의 명물로 자리잡은 ‘세바스찬’ 임혁필의 ‘나의 사랑, 나의 신부.’

'개그콘서트'의 ‘세바스찬’ 임혁필·박정애 부부의 알콩달콩 신혼일기

“영국의 권위 있는 혈통, 루이 윌리암∼스 세바스찬 주니어 3세.” 한 문장에 가까운 ‘풀네임’을 방청객들이 따라 할 때마다 개그맨 임혁필(31)은 터져나올 듯한 웃음을 참으며 뿌듯함을 즐긴다. 관객들이 그의 개그에 호응하고 있다는 것을 그 어느 때보다 확실하게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놀아줘∼”를 연발하는 ‘거지’역할을 했던 그가 최근에는 찰랑대는 금발머리에 단정한 교복, 거기에 하인 알프레도까지 둔 영국의 ‘귀족’으로 변신해 인기몰이중이다.
“인기요? 실감하죠. 예전에는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땅그지다’ ‘세바스찬이다’라고 해도 반가웠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임혁필이다’ 그래요. 시청자들이 제 이름을 아시는 거죠. 어떻게 알았는지 밤마다 저희 집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가는 초등학생들도 있어요.”
연예인이면 한번쯤 해보고 싶어하는 CF도 벌써 다섯 편이나 찍었고, 전에 없던 인터뷰 요청도 잦아졌다. 얼마 전에는 백화점 주차장에서 잃어버린 주차권을 그가 사인한 종이 한장으로 대신하고 ‘무사통과’하는 짜릿함도 경험했다. KBS 다큐멘터리 ‘인간극장‘에 그의 신혼살림이 공개되자 한동안 그의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그는 KBS 공채 13기 출신. 데뷔 7년 만에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이런 남편을 지켜보는 아내 박정애씨(26)는 그저 좋기만 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오빠가 잘됐으니까 당연히 기쁘고 좋죠. 하지만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오빠가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녹화하는 동안 관객의 반응이 별로였던 날은 기가 푹 죽어서 들어오는데 정말 마음이 아파요. 그런 날은 밤 늦게까지 혼자 골똘히 생각하느라 잠도 못 자는 걸요.”
현재 그는 KBS 간판 코미디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정예 멤버로 활약중이다. ‘개그콘서트‘에서 그가 등장하는 코너는 ‘새싹들이다’ ‘무사들의 대화’ ‘봉숭아학당’ 등 3개. 이 중 ‘봉숭아학당’은 옥동자와 노통장, 댄서킴 등 새로운 스타들을 배출한 ‘개그콘서트‘의 대표 코너로 출연자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쟁이 치열하다. 한마디로 ‘입학은 어려워도 퇴학은 한순간에 결정될 수 있는 매우 치열한 코너’.

'개그콘서트'의 ‘세바스찬’ 임혁필·박정애 부부의 알콩달콩 신혼일기

지난해 9월 치른 결혼식 사진. ‘느끼남’ 이승환(아랫줄 왼쪽)이 신부로 변장했다.


“세바스찬은 집사람의 아이디어예요. ‘거지’ 역할을 할 때 매번 무대 위에 떨어진 음식을 주어 먹다보니 집사람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날인가 ‘창피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싫으면 왕자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더라고요. 거기에서 힌트를 얻어 ‘세바스찬’을 생각해낸 거죠.”
무명 개그맨 시절에도 아내는 늘 ‘가장 재미있는 개그맨은 남편 임혁필’이라며 치켜세우곤 했다. 밤새 짜낸 개그를 선보일 때마다 아내의 대답은 언제나 “너무 재미있어요!”였다. 아내가 재미있다고 한 것이 설사 방송국에서 번번이 퇴짜를 맞더라도 그러한 아내의 믿음과 격려는 그가 지금껏 버텨올 수 있었던 활력소가 됐다.
“그저 빈말이 아니라 정말 오빠의 개그가 재미있어서 웃었던 거예요. 그런데 제가 매번 재미있다고 하니까 요즘은 제 말을 믿을 수가 없대요.”
그는 오래 전부터 시간이 날 때면 개그에 필요한 소품을 직접 구입하기 위해 동대문에 가곤 했다. 결혼 후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전에는 세탁소에 맡겨 수선하던 소품들을 이제는 아내가 재봉틀로 척척 해준다는 점. 세바스찬의 ‘귀족적인’ 의상도 모두 동대문 단골집에서 구입한 옷을 아내 박씨가 꼼꼼한 손재주로 화려하고 고급스럽게 변신시킨 것이다.
“금발 가발은 동대문 단골 가발가게에서 샀어요. 반바지는 집사람이 학생 교복으로 만들었고요. 어지간한 소품들은 대부분 집사람 손으로 해결해요.”
데뷔 전 그가 미술을 전공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그는 청주대학교 서양화과 출신으로 96년, 개그맨이 되기 전까지 화가의 꿈을 키워온 미술학도였다. 한때 일간지에 실리는 4컷짜리 만화를 그리기도 했던 그의 취미는 만화 보기. 그래서 그가 만들어낸 유행어는 만화 대사에서 따온 것이 많다. 세바스찬의 트레이드마크, ‘나가 있어!’ ‘천한 것들’은 만화 ‘캔디캔디‘에서 이라이저가 즐겨 쓰던 대사다.
그는 비싼 물감을 감당할 여력이 없어 화가의 꿈을 접고 개그맨을 선택했다. 하지만 특출 난 개인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입담이 화려하지도 못한 그가 설 수 있는 자리는 많지 않았다. 한때 월수입 30만원으로 생활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형편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몇년 전, 방송 섭외도 없고 돈도 없을 때였어요. 후배 두명이 지방공연에 함께 가자고 하더라고요. 배역은 크지 않았지만 후배들 마음이 고마워 바람도 쐴 겸 따라갔어요. 그런데 공연이 끝나고, 후배들이 각자 받은 출연료에서 얼마씩 떼주는데 순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비참하더라고요.”
개그맨으로 미래가 보이지 않아 개그를 포기할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때 그를 잡아줬던 이들이 바로 동기생들이다. 특히 ‘갈갈이’ 박준형은 그와 힘든 무명시기를 같이했던 단짝친구.
3년 전부터 그는 박준형과 함께 대학로 소극장에서 매일 밤 ‘개그콘서트‘를 무대 위에 올리며 차분하게 실력을 다졌다. 평소 무대와 카메라 공포증이 있었던 그는 소극장 무대 경험을 통해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KBS ‘개그콘서트‘에서 박준형과 함께 했던 ‘그렇습니다’로 뒤늦게 빛을 보기 시작했다.
“예전에 컴퓨터로 점을 본 적이 있어요. 그때 제 인생은 ‘박씨’가 도움을 줄 운명이라고 나왔어요. 신기하게 집사람도 박씨, 준형이도 박씨예요. 그리고 남들은 모두 안된다고 할 때 유일하게 ‘너는 꼭 된다’며 용기를 줬던 동료 개그맨 박성호도 박씨죠. 그 말이 틀리진 않은 것 같아요.”

'개그콘서트'의 ‘세바스찬’ 임혁필·박정애 부부의 알콩달콩 신혼일기

화가를 꿈꿨던 임혁필은 만화보기가 취미다.


신혼 6개월째인 두 사람은 같은 과 선후배로 만나 5년이라는 긴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한 캠퍼스 커플. 그는 개그맨이 된 뒤 복학한 학교에서 박씨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지금은 그의 개그가 최고라고 이야기하는 열성팬이 된 아내지만 첫번째 프러포즈 때는 보기 좋게 딱지를 놓았다.
“그때 오빠는 집도 서울이고, 개그맨 활동을 하느라 학교에 고작 한달에 두세 번 나왔어요. 그런 사람하고 어떻게 연애를 해요. 5년을 사귀었지만 저희는 그 흔한 여행 한번 같이 못 갔어요.”
마침내 지난해 9월,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다. 그는 프러포즈할 때 선물했던 실반지로 예물을 대신했다. 그리고 아내에게는 꼭 필요한 가구만 준비하고, 나머지 혼수는 일절 하지 말라고 했다.
“제가 가장 가난할 때 집사람한테 프러포즈를 했어요.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히게 할 자신은 없지만 열심히 사는 모습 보여주겠다고 했더니 울더라고요. 아내는 항상 제 편이 되어주는데 따로 무슨 혼수가 더 필요하겠어요.”
남편에게 꼬박꼬박 높임말을 쓰는 아내는 연애기간 동안에는 한번도 다툰 적이 없는데 결혼한 뒤로 부부싸움을 하기 시작했다며 속상해한다. 하지만 남편의 뽀뽀 한번이면 사르르 풀어진다고. 남편에게 슬쩍 아내 자랑을 해보라고 권하니 털털하고 착한 성격에 훌륭한 요리솜씨 운운하며 자랑이 이어진다.
“가끔 소극장으로 음식을 싸오는데 양이 좀 적다는 게 유일한 흠이죠. 소극장 식구들이 여럿이라 예쁘게 만든 것보다 양 많은 게 최고거든요.”
현재 20평형대 빌라에 살고 있지만 곧 31평 아파트로 이사할 계획이라는 두 사람은 2세 계획을 잠시 뒤로 미뤘다. 그동안 연애다운 연애를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 둘만의 신혼생활을 좀더 즐기고 싶기 때문이다.
3년 넘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대학로 소극장에서 실력을 다지고 있는 개그맨 임혁필. 그리고 그의 뒤에서 함박웃음으로 힘을 실어주는 든든한 아내 박정애. 두 사람의 풋풋한 사랑이 ‘세바스찬’ 이후의 또 다른 명물을 만들어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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