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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궁금했습니다.

10년 만에 가요계 컴백한 조정현

“사업하며 큰돈 벌기도 했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 누를 수 없었어요”

■ 글·이지은 기자(smiley@donga.com) ■ 사진·박해윤 기자

2003. 04. 08

10년 만에 가요계 컴백한 가수조정현89년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로 데뷔한 후 수려한 외모와 감미로운 목소리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가수 조정현이 4집 음반 '세상에서…, 조정현'을 발표하며 10년 만에 가요계에 컴백한다. 이번 음반을 준비하면서 미국 이민 계획까지 접었다는 그는 방송과 라이브 무대에서 팬들과 자주 만날 각오라고 한다. 지나간 시간의 무게만큼 중후함과 성숙함을 더하고 돌아온 그를 만났다.

10년 만에 가요계 컴백한 조정현

두번째 만남이었다. 2001년 여름 박정운, 김민우, 박준하 등과 함께 한 조인트 콘서트를 앞두고 인터뷰를 한 후 다시 만난 조정현(37)은 2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더욱 생기발랄해져 있었다. 10년 만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새 음반을 발표한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그는 기자에게 음반에 담긴 곡들을 일일이 들려주고 노래에 대해 설명하면서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89년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로 데뷔한 후 수려한 외모와 감미로운 목소리로 10대 소녀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조정현. 그는 ‘슬픈 바다’ ‘비애’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90년대 초 최고의 발라드 가수로 떠올랐다. 하지만 93년 3집 음반을 발표한 후 한동안 가요계를 떠나 있었다. 그리고 10년 만에 4집 음반 ‘세상에서…, 조정현‘을 발표하며 가수로서 제 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2000년쯤 한국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미국 이민을 떠나려고 했어요. 그러던 중 한 콘서트 기획사에서 박정운, 박준하, 김민우 등 90년대 초 인기를 끌었던 발라드 가수들과 함께 공연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았죠. 그게 바로 2001년 여름에 있었던 ‘회귀‘라는 공연이었어요. 공연 홍보차 KBS ‘이소라의 프로포즈‘에 나가 노래를 불렀는데, 우연히 음반기획자인 창환이형(김창환)이 방송을 봤다고 하더군요. 그리고는 ‘조정현, 저 친구 목소리는 이렇게 썩히기 아깝다’고 생각했대요.”
김건모, 신승훈, 클론 등의 음반을 제작한 유명 프로듀서이자 매니지먼트사 대표이기도 한 김창환은 방송에서 그의 노래를 들은 후 조정현에게 음반 제작을 제의했고 곧바로 그를 자신의 회사로 영입했다. 그리고 김창환의 진두지휘 하에 그는 꼬박 2년 동안 4집 음반을 제작했다. 3월말 발매될 이번 음반에는 타이틀곡 ‘그대에게’를 비롯한 10곡의 신곡과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 ‘슬픈 바다’ 등 4곡의 옛 히트곡을 수록했는데, 발라드뿐 아니라 R&B, 보사노바, 라틴 등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했다고 한다.
“저의 1집이 80만장 정도 나갔다고 해요. 하지만 그때는 공식적으로 음반 집계를 하지 않았을 때니까 실제로는 1백만장 넘게 나가지 않았을까 싶어요. 당시 최고의 발라드 가수였던 변진섭보다 제 음반이 더 많이 나갔다고 하거든요(웃음). 이젠 그 시절은 잊으려고 해요. 무엇보다도 지금 저의 4집 음반이 1집 이상으로 주옥 같은 노래들을 많이 담고 있다고 자부하거든요.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제가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성숙한 만큼 제 음악도 성숙해졌다고 생각해요.”

10년 만에 가요계 컴백한 조정현

조정현은 그동안 모은 돈으로 서울 동부이촌동에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을 냈다.


93년 3집 음반이 실패한 후 가요계를 떠난 조정현은 수많은 ‘외도’를 했다. 그는 친구들과 서울 압구정동에 작은 카페를 내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그의 카페는 제법 번창했고 돈도 꽤 많이 벌었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했던 그는 사업을 해서 모은 돈으로 95년 다시 가요계를 노크했다. 하지만 가수가 아닌 신인가수의 매니저로서였다. 새벽부터 신인가수의 음반 한장을 들고 방송국에 들락거렸지만 방송에 노래 한번 내보내기가 쉽지 않았다.
“노래를 그렇게 했다면 가수로서 훨씬 성공했을 거라고 생각했을 만큼 참 열심히 했어요.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거대 매니지먼트사와는 게임이 되지 않더라고요. 1년 정도 고생하다가 결국 포기했죠. 제가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매니저들의 고충을 잘 알아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제 매니저와 코디들에게 잘해주려고 노력하죠.”
매니저를 그만둔 후 그는 외국의 가구와 의류를 수입해 파는 무역업을 시작했으나 97년 IMF를 맞아 회사가 부도나는 아픔을 겪었다. 사업 실패 후 6개월 동안 방황하던 그에게 둘째형이 자신이 하던 레스토랑 사업을 도와주지 않겠냐고 제의해왔다.
“저로서는 너무도 고마운 제안이었죠. 정말 쫄딱 망해 돈이 한푼도 없었거든요(웃음). 그런데 막상 형님이 하는 레스토랑에서 일하다 보니 이런 일반 음식점보다는 야외와 실내에 테이블이 있는 유럽식 호프집을 하면 더 이익을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당시 야간 영업 규제가 곧 풀린다는 것을 알았거든요. 그래서 형님과 상의한 후에 서울 청담동에 ‘고구려’라는 호프집을 냈는데, 정말 ‘대박’이었어요.”
이렇게 다른 일을 하면서도 항상 음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는 조정현. 그는 90년대 말 미사리 카페촌에서 꽤 오랫동안 라이브 공연도 했다. 노래하고 싶은 열정을 작은 무대에서나마 풀고 싶었기 때문.
“처음 미사리 카페촌에서 노래한다고 하니까 주변 사람들이 저를 불쌍하다는 눈으로 쳐다보더군요. 뭐, 약간은 참담하고 제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죠. 당시 제가 하던 사업이 꽤 잘됐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도 돈 때문에 카페 무대에 서는 걸로 아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하지만 그때 무대에 서면서 충분히 노래 연습을 했기 때문에 지금 별무리 없이 새 음반을 녹음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호프집을 운영하면서 미사리 카페촌에서 노래를 부르다 보니 돈을 꽤 모을 수 있었다는 그는 원래 그동안 벌었던 돈을 모아 미국 이민을 떠나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새 음반을 내기로 결정한 후 대신 올해 초 청담동의 한정식집과 동부이촌동에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을 냈다. 한정식집의 경우 아는 형과 공동으로 투자한 것이지만 커피전문점은 온전히 그가 번 돈으로만 낸 것. 그런데 커피전문점의 명의를 그가 아닌 부인 앞으로 했고, 가게 관리도 부인이 다 한다. “커피를 뽑을 줄도 모른다”며 너스레를 떨던 조정현은 온갖 우여곡절을 겪었던 10여년 동안 그의 곁을 묵묵히 지켜준 부인이 너무도 고맙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인기 절정이던 91년 결혼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의 아빠
그는 91년 한창 가수로 활동하던 시기에 오랜 연인이었던 동갑내기 이서주씨와 결혼했다. 지금이라면 당당하게 결혼 사실을 밝혔겠지만 그때의 상황은 전혀 달랐다. 그와 같은 청춘스타에게는 결혼은 곧 인기 추락을 의미했다.
“결혼 생활을 몰래 할 때는 가수로서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들 영탁이가 태어났는데도 아빠로서 당당히 서지 못할 때는 정말 마음이 아프더군요. 병원에 몰래 와서 아이를 처음 봤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이의 아빠가 아닌 삼촌이라고 말해야 했죠.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내와 아이에게 참 미안해요. 아무 말 없이 저를 이해해준 아내가 너무 고맙고요. 주변 사람들이 그래요. 제가 참 장가를 잘 갔다고.”
미 영주권자이며 오랜 세월 미국에서 산 부인은 성격이 참 호탕하고 개방적이라고 한다. 그가 미국 이민 계획을 접고 가수로서 다시 시작하겠다고 말했을 때도 부인이 자신보다 더 기뻐했고 그에게 “정말 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일을 하라”며 독려해줬다고 한다.
“아내는 정말 속이 깊고 넓은 사람이에요. 사업이 왕창 망했을 때는 정말 밥먹기도 힘들 정도로 어려웠는데 아내는 조금도 저를 나무라지 않고 항상 제게 힘을 줬어요. 여유가 생긴 후부터는 주로 여행을 다니면서 부부애를 쌓았죠. 여행은 주로 아내가 가고 싶어하는 곳으로 떠나요. 또 부부 동반 모임도 주로 아내의 친구들과 가져요. 항상 노래를 부르라고 하지만 전혀 부담스럽지는 않죠. 왜냐하면 제가 먼저 마이크를 잡고 놓지 않는 편이거든요(웃음).”

10년 만에 가요계 컴백한 조정현

부인 이서주씨와 아들 영탁이는 그에게 힘을 주는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다


권위적인 가장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는 그는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 영탁이와도 친구처럼 지낸다. 우연히 인터뷰 장소에 잠시 들른 아들과 ‘하이 파이브’를 하며 대화를 나누는 그의 모습은 마치 아빠가 아닌 형처럼 보였다.
“영탁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저는 친구처럼 편안하고 좋은 아빠가 되고 악역은 아내가 맡기로 했어요. 아이의 작은 잘못은 일일이 엄마가 고쳐주고 아빠인 저는 항상 아이를 사랑으로 감싸주고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만 따끔하게 혼내기로 한 거죠. 그러다 보니 아이는 엄마보다 제가 더 편한가 봐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엄마가 아닌 아빠를 먼저 찾아서 아내에게 조금은 미안하죠.”
아들 영탁이는 다소 키가 작고 마른 편인 조정현과 달리 키가 크고 덩치도 좋다. “실제로 아들과 나의 몸무게 차이가 10kg도 나지 않는다”며 방그레 웃는 그는 “영탁이가 자신과 성악과를 졸업한 아내를 닮아 목소리가 좋고 노래도 아주 잘한다”고 연신 자랑했다. 그는 아이가 가수가 되겠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밀어줄 계획이라고.
“제가 보기에는 발라드 가수가 딱인데, 영탁이는 힙합이나 댄스 가수가 되고 싶다고 해요. 제일 좋아하는 가수도 싸이고요. 한번은 아이를 직접 저희 소속사에 데리고 가 본격적인 가수 수업을 시켜볼까 했는데, 아직 아이가 쑥스러워하더군요. 그런데 아이 때문이라도 이번 음반이 잘되어야 하는데 걱정이에요. 공교롭게도 아이의 담임 선생님이 예전에 저의 열광적인 팬이었다고 해요(웃음). 아이의 학교 온라인 게시판에 제 사진까지 올려놓았을 정도죠. 아이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요.”
오락 프로그램 출연 위해 ‘개인기’도 연습 중
그는 각종 방송과 라이브 무대에 출연하면서 팬들과 자주 만나겠다고 한다. 그에게는 지금까지 팬클럽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골수 팬들이 꽤 많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프리챌에 팬클럽 홈페이지(home.freechal.com/erranger)를 만들어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이들의 존재는 그에게 큰 힘이 된다.
“지금까지 1년에 한두 번씩은 꾸준히 팬들과 만나왔어요. 이제 이 친구들은 팬이라는 느낌보다 그저 친한 동생들 같죠. ‘결혼식이나 아이 돌잔치에 초대했는데 왜 오지 않았느냐’며 삐치는 친구들도 있는걸요.”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예전의 조정현이 아닌 지금의 조정현을 좋아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각오다. 가요 프로그램은 물론 다양한 오락 프로그램에도 출연할 거라는 그는 ‘개인기’ 연습도 하고 있다며 밝게 웃었다. 또 그는 “성시경, 에즈원, 빅마마, 애쉬 등 노래를 잘하는 후배 가수들이 많아져 너무 흐뭇하다”며 “그들과 함께 무대에 설 생각을 하니 지금부터 마음이 설렌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의 매니저가 “만약 형이 가요 프로그램에 나오면 어린 가수들이 형과 함께 대기실을 쓰려고 하지 않을걸요”라며 장난을 쳤다.
“저는 후배들이 참 좋은데 후배들은 제가 어려운가 봐요. 제가 다니는 헬스 클럽에 조성모도 다니는데, 한참 선배인 제가 어려워서 조성모가 한동안 저를 피해 다녔다고 해요(웃음). 탁재훈도 방송국에서 만났는데 멀리서부터 90도 각도로 제게 인사를 했죠. 탁재훈 매니저가 그렇게 인사하는 걸 본 적이 없다고 말했을 정도예요. 이런 후배들을 보면 제가 나이가 들긴 했구나 싶어요. 하지만 저도 만만치 않게 오지랖이 넓거든요. 방송 활동을 시작하면 어린 후배들과도 친해질 수 있도록 제가 먼저 손을 내밀 거예요.”
조정현은 예전과 같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스타가 될 욕심은 전혀 없다고 한다. 그저 그를 좋아하며 기다려준 20~30대 팬들에게 자신의 새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요즘 유행에 전혀 뒤처지지 않는 세련미에 성숙함이 더해진 음악으로 돌아온 그의 존재는 우리 가요계의 촉촉한 단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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