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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스포트라이트

'노란 손수건'으로 브라운관 복귀한 추상미

“서른한살의 화사한 봄, 이젠 강박관념 버리고 삶을 즐기고 싶다”

■글·이영래 기자(laely@donga.com) ■ 사진·조영철 기자 ■ 의상·홍미화|액세서리·코제트 블루마린|코디네이터·김희진 ■헤어·정명심|메이크업·우현증 ■ 장소협찬·SARI(02-345-5952)

2003. 04. 04

94년 연극 무대를 통해 데뷔한 후 연극, 뮤지컬, 영화, 드라마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방면에서 활약해온 배우 추상미가 최근 3년 만에 브라운관으로 돌아왔다. 얼마전 한 네티즌 설문조사에서 가장 지적인 배우 1위로 뽑히기도 했던 추상미의 숨은 미력 탐구.

'노란 손수건'으로 브라운관 복귀한 추상미

처음부터 성숙한 여인으로 태어난 소녀 같은 그로테스크한 눈빛
추상미는 도회적이다. 서른한살, 이미 여인으로 성숙할 대로 성숙한 나이건만 그는 보기 좋게 발그레한 볼과 카메라에 담기 어려울 정도인 커다란 눈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그런 앳된 소녀적인 디테일들이 추상미라는 이름 앞에 오면 도회적이 되고, 성숙한 여인의 이미지가 되고, 차갑게 번뜩이는 금속성의 느낌이 돼버리고 만다. 하얀 피부 때문일까, 고양이를 닮은 듯한 눈매 때문일까, 처음부터 성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태어난 소녀 같은 그의 그로테스크한 느낌은 어디서 비롯되는지 쉽게 가늠되지 않는다. 다만 ‘느낌이 참 특이한 여자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드라마에서 도회적인 역을 많이 맡아서 사람들이 그렇게 봐요. 영화나 연극에선 안 그런 경우도 많은데…. 사실 전 털털한 편이거든요. 도회적이지 않은 역할도 하고 싶은데 그럴 기회가 잘 안 와요.”
인터뷰 장소에 나타난 그는 검은 가죽 재킷에 갈색으로 살짝 물들인 듯한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그래, 저 느낌이 추상미야’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는 카메라 앞에 전혀 다른 의상을 입고 나타났다. 화보촬영 섭외를 하며 ‘의상은 추상미다운 느낌이었으면 좋겠다’라고만 주문했다. ‘추상미다운’이라는 말 속에 담은 함의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면 애써 부인하고 싶었는지, 그가 준비한 컬렉션은 예상을 깨는 것들이었다. 인도 의상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한 천연 소재의 옷들. 그는 리넨의 다소 푸석거리고 거친 느낌을 좋아하는 듯했다.
“일상 생활에서 이런 옷을 입기는 좀 그렇죠. 하지만 이런 느낌의 옷들이 좋아요. 자연스럽고 자연친화적이고….”
그의 이같은 말을 “여행을 좋아해요. 시골 같은 데 가서 풀냄새 맡으면 아예 미쳐버리죠(웃음)”라는 고백 뒤에 붙이면 추상미라는 배우는 전혀 색다른 이미지로 다가온다.
더욱이 “이 옷엔 스타킹을 신으면 안되거든요”라며 주저없이 맨발을 드러내고, “어머, 창밖에서 다 나만 쳐다보고 있어, 창피해” 하며 아무렇지 않게 웃고 농담하고 거침없이 행동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추상미는 도회적이다’라는 선입관은 조금씩 균열을 일으킨다. 그러다 그가 카페 인테리어 소품인 아프리카 목마에 올라탔을 때(여배우로서의 품위를 지켜야 하므로 그런 포즈는 삼가는 게 좋다고 만류했건만) 그런 선입견은 완전히 깨져버리고 말았다.
“예전엔 제가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렸어요. 추상적이고 고상한 목표였다고 할까요? 그러다보니 대중에게서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제가 뭔가를 해도 사람들은 제 의도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금씩 조금씩 거기에 맞춰가려고 노력해왔어요. 이제 그냥 자연스러운 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한 설문조사에서 지적인 배우 1위로 선정됐을 때도 그는 “친구들의 시선이 민망해 한참 웃었다”고 했다. 그의 털털한 모습은 추상미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었다.

'노란 손수건'으로 브라운관 복귀한 추상미

드라마 '노란 손수건'에서 추상미는 또 한번 당차고 도도한 이미지로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결혼은 많은 지혜와 생활의 기술 필요한 것, 아직은 두렵기만 해요”
“저기 있는 샹들리에가 너무 예뻐요. 저기서 한장 찍고 싶어요.”
그는 옷을 갈아입고 나오다 계단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를 발견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그는 촬영 내내 ‘이런 소파는 어디서 살 수 있을까’ ‘이런 벽면은 너무 예쁘다’며 곳곳을 주의깊게 돌아보며 관심을 표했다.
“저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경계가 명확한 편이에요. 좋아하는 것들을 보면 눈이 번쩍 뜨여요. 좋아하는 걸 말로 표현하기는 그런데, 물건 같은 건 이렇게 앤티크한 것들이 좋아요.”
좋고 싫음이 명확하다는 말 끝에 은근슬쩍 ‘남자’라는 말을 밀어넣어 봤다. 그에게 사랑이란, 또 결혼이란 어떤 의미일까?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다 결혼 이야기만 물어보시더라고요(웃음). 결혼에 대해 특별히 생각하고 있지는 않아요. 전 아무래도 철이 늦게 드는 타입인 것 같아요. 쉽게 자신이 안 생기더라고요. 더 성숙해지고 여유가 많이 생겼을 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전 결혼생활을 하려면 많은 지혜, 생활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많이 주저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남들이 쉽게 결혼 결정 내리는 걸 보면 신기해요.”
때론 고독하지만 한없이 안락한 독신생활의 편안함에 길들여진 그 또래의 모든 남녀가 자연스레 갖는 결혼에 대한 두려움. 그 또한 예외는 아닌 듯싶었다.
촬영 전날인 3월14일은 화이트 데이였다. “사탕을 받았냐?”고 묻자 그는 웃음을 터뜨리며 “‘노란 손수건‘ 촬영 스태프들에게 받았다”고 대답했다. 특별히 사귀는 남자가 지금은 없다고 했다. 한때 그는 헤어진 남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했었다. 이제 과거를 돌아보는 일에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은 듯, 그는 그에 대해 더는 말하지 않았다.
“얼마전에 문화예술계에 계신 어떤 분을 만난 적이 있어요. 그 분은 결혼할 사람을 찾는 중이셨거든요. 그런데 이상형에 대한 생각이 굉장히 확실했어요. 그분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제 이상형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어요. 전 여행도 좋아하고, 산이나 강 그런 자연 풍경들을 좋아하거든요. 그런 걸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더 좋겠고….”
드라마 ‘노란 손수건‘에서 그는 리조트 사장 민주 역으로 분했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의 비서가 계모로 들어오면서 독립심 강한 소녀로 자라난 여자. 화려한 외모에 솔직하고 열정적인 성격으로 자신이 원하는 남자라면 다른 여자가 있더라도 개의치 않고 쟁취하는 모습이지만 실제 그의 성격은 전혀 다르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얼굴만 빨개질 정도로 소심하고 낯을 가리는 편이에요. 하지만 정말로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나타나면 제가 먼저 말하지는 못하고, 대신 그쪽에서 먼저 고백하게끔 고도의 전략(?)을 써야 하겠죠.”
그는 올여름쯤 집에서 독립할 생각이라고 했다. 어머니와 특별한 불화가 있어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제 홀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노란 손수건'으로 브라운관 복귀한 추상미

앤티크한 소품, 느닷없는 여행, 그리고 풋풋한 시골 풀냄새…. 그가 사랑하는 것들은 그렇게 일상에서 살짝 떨어져 있는 것들이다.


“조화롭고 여유로운 삶이 이제 나의 유일한 바람이에요”
그는 94년 연극으로 데뷔했다. 연극에 입문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아버지 고 추송웅씨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 홍익대 불문과를 졸업한 그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 등 다수의 연극과 뮤지컬에 출연했고, 이후 여러 편의 TV 드라마에 출연했다. 영화로 영역을 넓히며 그는 ‘꽃잎‘ ‘접속‘ ‘퇴마록‘ ‘생활의 발견‘ ‘세이 예스‘ 등에도 출연했다.
그리고 KBS 드라마 ‘노란 손수건‘으로 브라운관에 돌아오기 전 영화 ‘미소‘를 찍었다. ‘미소‘는 영화 ‘꽃섬‘의 송일곤 감독이 상대 남자 배역으로 나와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 그는 이 영화에서 시력을 점점 잃어가는 시련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배우는 사진작가 소정 역을 맡았다.
“영화 속에서 사진작가 역을 맡다보니 자연스레 사진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전문적인 사진 장비를 다루는 장면이 많았거든요. 덕분에 요즘엔 사진에 빠졌어요. 암실 작업까지 배웠는걸요(웃음).”
영화 ‘미소‘ 촬영이 끝나고 그는 무려 드라마, 연극, 영화 3개 장르를 오가는 벅찬 일정에 갇히고 말았다. 2월에 크랭크인 한 영화 ‘파괴‘, 그리고 역시 2월부터 방영된 KBS 일일드라마 ‘노란 손수건‘, 거기다 그 이전부터 예정됐던 연극 ‘프루프‘까지. 그나마 연극 ‘프루프‘가 그와 더블 캐스팅된 여배우에게 사정이 생겨 미뤄지면서 잠시 숨을 고를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영화는 이제 촬영이 거의 끝났어요. 러프 필름을 봤는데, 화면이 인상적이에요. 이번 영화도 상업성은 떨어질 거예요. 하지만 촬영 스태프가 폴란드 분들이라서 그런지 우리나라 영화 같지 않은 독특한 화면이 나왔어요. 관객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지만 역할에 대한 매력이 강한 작품이었어요. 타협을 거부하는 지독한 열정의 행위 예술가로 나오거든요.”
영화 ‘파괴‘는 김영하의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원작으로 해, 자살 사이트에 접속한 6명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의 전수일 감독이 연출을 맡아 최근 촬영을 거의 다 마쳤다.
그가 출연한 영화 중 최고와 최악을 뽑는 한 네티즌 설문조사에서 최고로는 ‘생활의 발견‘이, 최악으로는 ‘세이 예스‘가 뽑혔다. 자신이 출연한 영화에 대해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 지 물었다.
“영화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장르 영화냐, 작품 영화냐는 것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고…. ‘퇴마록‘이 흥행에 성공했지만 사람들이 작품영화라고는 하지 않잖아요. 제겐 다 소중한 작품들이에요.”
일에 대한 열정은 점점 더 커져가지만 좋은 배우가 돼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는 이제 벗어났다고 했다. 지금 그가 진정 원하는 것은 삶과 일을 모두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조화롭고 여유로운 삶. 서른한살 추상미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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