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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촛불 시위’ 한가운 데서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여중생 추모 콘서트 연 윤도현 밴드

■ 글·이지은 기자(smiley@donga.com) ■ 사진·최문갑 기자, 정경진

2003. 01. 14

윤도현밴드가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여중생을 추모하는 길거리 콘서트 <대한미국(大韓尾國)? - 촛불콘서트>를 열어 화제다. “효순이, 미선이 두 여중생의 억울한 죽음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며 소파(SOFA)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해온 윤도현밴드는 자신들의 전국투어 공연중 “서울 광화문 거리에서 촛불 든 시민들과 만나겠다”고 약속했고 지난해 12월13일 서울 광화문에서 그 약속을 지킨 것.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1천5백여 명의 시민들이 모여 윤도현밴드와 함께 ‘촛불’처럼 뜨거운 추모의 열기를 내뿜었다.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여중생 추모 콘서트 연 윤도현 밴드

대한미국(大韓尾國)? 지난해 12월13일 오후 6시 서울 광화문에서 있었던 윤도현밴드의 <촛불콘서트>는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효순이와 미선이가 숨진 후 대한민국이 아닌 대한미국이라고 조롱하는 말이 인터넷에서 떠돌았어요. 그 말이 참 와닿더라고요. 그런데 미국이 과연 아름답다는 말을 쓸 수 있는 나라인가 싶었죠. 그래서 아무리 강대국이라고 하더라도 양심은 꼬리처럼 미천한 나라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꼬리 미(尾)자를 썼습니다.”
지난해 6월 꽃다운 나이의 두 여중생 신효순, 심미선양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지는 가슴 아픈 사건이 있었음에도 월드컵 열기에 파묻혀 ‘오! 필승 코리아’만 외치고 있었던 자신들의 모습이 부끄럽다는 윤도현밴드. 하지만 이 사건을 접한 후부터 이들은 그 어떤 가수보다도 두 여중생의 죽음을 추모하고 불평등한 소파(SOFA·주한미군지위협정)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그리고 서울 광화문 거리에서 두 여중생의 죽음을 추모하는 단독 콘서트까지 연 것이다. 대한미국(大韓尾國)이라는 콘서트 제목도 윤도현밴드가 직접 지었고 무대, 방송차량, 조명차량 사용료 등 이번 공연에 쓰인 비용 1천7백여만원을 모두 자비로 부담했다.
“전국투어 공연을 하면서 ‘빠른 시일 내에 서울 광화문 거리에서 촛불을 든 여러분들과 만나겠다’는 약속을 했어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촛불시위에 동참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죠. 실은 이튿날인 14일(지난해 12월14일)에 열린 대규모의 추모행사(주권회복의 날, 10만 범국민 평화대행진)에 참가하고 싶었지만 그날은 전국투어 공연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하루 전날인 13일에 게릴라 콘서트 형식으로 추모 공연을 하게 됐습니다.”
콘서트는 추운 날씨 속에서도 1천5백여명이 촛불을 들고 모인 가운데 성황리에 치러졌다. 게스트인 가수 권진원의 공연에 이어 오후 6시반경 무대에 오른 윤도현밴드는 “오늘의 거리 공연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이다. 추운 날씨에도 온 여러분들을 춥지 않게 해주겠다”며 첫 곡으로 ‘아침이슬’을 불렀다. 이날 촛불시위에 참석하기 위해 들렀던 가수 하림이 공연에 동참해 피아노 연주를 도왔다. 노래를 마친 후 윤도현은 “현재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불평등한 소파 개정과 구겨진 자존심 회복”이라며 “사람이 목숨을 잃은 상황에 대해 항의하는 정당한 행동을 가지고 한미관계가 악화되니 어쩌니 한다면 그런 소리는 집어치웠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그러고는 두번째 노래로 미발표곡 ‘눈앞에서’를 불렀다. 이는 윤도현밴드가 지난해 평양에서 공연하러 갔을 때 만든 곡으로 눈앞에 펼쳐진 평양을 보면서 느낀 감격과 통일에 대한 염원을 노래하고 있다.
“효순이와 미선이는 하늘나라로 갔지만 우리에게 큰 선물하고 떠나”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여중생 추모 콘서트 연 윤도현 밴드

윤도현밴드는 추운 날씨에서도 1시간 동안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평양 공연을 갔을 때 묵었던 고려호텔 1302호에서 만든 노래예요. 호텔에서 창문 아래로 평양 거리를 내려다보는데, 제가 평양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믿어지지 않았어요. 그때 느꼈던 그 뭉클한 감격을 바로 그 호텔방에서 노래로 만들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미선이와 효순이의 죽음도 결국 남북이 분단된 현실 때문에 생긴 일이라 할 수 있죠. 이런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무엇보다 먼저 통일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눈앞에서’를 마친 후 윤도현밴드는 박노해의 시에 곡을 붙인 ‘이 땅에 살기 위하여’와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만든 노래 ‘하노이의 별’을 연달아 불렀다. 윤도현은 자신들의 히트곡인 ‘너를 보내고’를 부르기 전 “지금 우리 곁에 있다면 울고 웃고 더 많은 경험들을 했을 효순이와 미선이를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며 “요즘 공연 때마다 효순이와 미선이에게 들려준다는 마음으로 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말해 관객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탈춤’과 ‘애잔한’ 아리랑, 그리고 월드컵 내내 전국에 울려퍼졌던 ‘요란한’ 아리랑을 연이어 불렀다. 앙코르곡으로 히트곡 ‘깨어나’를 불렀는데 ‘불평등한 소파협정 개정해야 한다’ 등의 구절을 새로 넣어 관중을 열광의 도가니로 빠뜨렸고, “우리는 지금 뭘 원하나?”라고 물으며 마이크를 돌리자 시민들은 일제히 “SOFA 개정”이라고 화답하기도 했다. 공연을 마친 후 윤도현은 다음과 같이 소감을 이야기했다.
“너무 추워 손가락과 입이 굳어버려 공연하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하지만 저희는 공연을 하니까 조금이라도 추위를 이길 수 있었는데, 관객들은 정말 고생이 많았을 것 같아요. 추운 날씨에도 저희와 함께해준 시민들이 너무 고마울 뿐이죠. 월드컵 때 서울 시청과 광화문 네거리를 가득 메운 붉은 물결을 보면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 너무 자랑스러웠어요. 하지만 이날 길거리 공연장에 모인 사람들의 결의에 찬 눈동자와 활활 타오르는 촛불을 보면서 느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은 그보다 훨씬 크고 대단한 것이었어요. 효순이와 미선이는 하늘나라로 갔지만 우리에게 큰 선물을 하고 떠났다고 생각합니다.”
이날 공연에는 미국의 대(對)이라크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영상물이 상영돼 눈길을 모았다. 윤도현밴드는 전국투어 공연 때마다 이 영상물을 상영하며 평화를 희망하는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한다. 월드컵 이후로 윤도현밴드 앞에는 ‘국민가수’라는 칭호가 따라다녔다. 이날 윤도현밴드의 특별한 공연에서, 그리고 이들의 공연을 보며 열광하는 수많은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진정한 ‘국민가수’의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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