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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ceo

그래서 일이 즐거운 임오식 회장

여성들은 따뜻하게, 아이들은 배부르게

editor 김지은

2017. 12. 28

임오그룹은 이름은 낯설지만 ‘잘 안 깨지는 그릇’ 코렐, 세계적인 모피회사 진도 등을 운영해 여성들과 함께 성장해온 기업이다. 남대문의 작은 가게로 시작해 자수성가의 아이콘이 된 임오식 회장에게 2017년은 그 어느해보다 다사다난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자선경매에서 진도 모피를 들고 나와 직접 경매를 진행해 뜨거운 호응을 받은 임오식 회장(가운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자선경매에서 진도 모피를 들고 나와 직접 경매를 진행해 뜨거운 호응을 받은 임오식 회장(가운데).

지난해 12월 11일 저녁, 쉐라톤서울 디큐브시티 호텔에서 열린 2017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서울후원회 송년의 밤. 자선 경매형식으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 가장 높은 가격을 기록한 것은 진도모피의 코트였다. 재단의 오랜 후원자였던 임오식 회장은 회사에서부터 직접 코트를 들고 나와 경매를 진행할 만큼 열정적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업무차 대구를 다녀오던 임오식 회장의 손에 누군가 쥐어준 전단지, 무심코 지나칠 수 있었던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홍보물 한 장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가 후원하던 초등학교 1학년 꼬마는 이제 어엿한 대학생이 되었다. 한 명이던 후원 아동도 다섯 명으로 늘었다. 국내 아동들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등 제3세계 아이들을 후원하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거래처를 통해 알게 된 장애인 학교 명화원 등에도 20년 가까이 후원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 긴 세월 아이들과 주고받은 편지며 추억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차곡차곡 스크랩북에 저장되어 있다. 그의 이름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후원자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초록우산 명예의 전당에도 등재되어 있다. 

“돕는 게 아니라 나누는 거예요. 사실은 제가 학교를 제대로 못나왔거든요. 집안 형편이 워낙 어렵다 보니 초등학교 6학년 때, 졸업을 몇 달 앞두고 월사금을 마저 못 내서 졸업장을 못 받았어요. 그러고선 어린 나이에 돈을 벌어보겠다고 혼자 객지에 나와서 하루 한 끼 먹으면서 일을 했죠. 그때 서부역 개천가의 판자촌에 수제비 파는 집이 있었는데, 희멀건 국물에 수제비 3~4개 띄우고 감자 몇 조각 넣어서 주면, 그걸로 하루를 버텼어요. 그렇게 힘겹게 자랐으니 어려운 형편에 공부하겠다고 하는 아이들을 보면 남 일 같지가 않더라고요. 예전에는 후원하는 아이들과 직접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이것저것 많이 했는데 요즘엔 사회적으로 괜한 선입견 같은 게 생길까 봐 그런 것까진 잘 못 하고, 이렇게 좋은 행사 있을 때마다 참여하고 그러죠.” 

또래의 대부분이 자리에서 물러나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고 있을 시기지만 그에겐 아직도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다. 그중 하나가 그의 이름으로 된 복지재단을 설립하는 것이다. 많이 배우지 못하고, 많이 가지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그 절실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다. 

“제가 현재 오너로 있다고 해서 회사가 제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회사는 직원들의 것이고, 그들의 터전이니 제가 함부로 손댈 수 없지요. 그런 만큼 복지재단은 오롯이 제 개인 재산으로만 설립될 것입니다. 자식들에겐 이미 먹고살 만큼 물려줬고, 지금부터는 각자가 할 노릇이라 생각합니다.” 



그에게 2017년은 여러 의미에서 뼈아픈 시간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충격과 박탈감을 가져다준 사건은 코렐의 본사인 월드키친의 재계약 불가 통보였다. 30년 넘게 공식 수입원으로 자리를 지켜왔던 코렐의 판권을 하루아침에 넘겨줘야할 처지에 놓이게 된 그는 자식을 잃은 것처럼 안타깝고 슬픈심정이라고 했다.

진도모피 이끌지만, 소매 해진 옷에 작은 난로로 사무실 난방

테이블웨어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임오식 회장.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으로부터 받은 감사패. (왼쪽부터)

테이블웨어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임오식 회장.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으로부터 받은 감사패. (왼쪽부터)

임 회장과 코렐의 인연은 197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코렐은 ‘잘 안 깨지는 그릇’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혼수 품목 1순위였다. 사업 초기 2.3m2 남짓 작은 가게를 운영하며 미군 부대를 통해 코렐 제품을 판매하던 그는1980년대 중반, 당시 코렐의 사업자였던 코닝사와 계약을 맺고 정식 수입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로도 줄곧 코렐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홈쇼핑 개국 이래 코렐의 상품 관리를 잘하여 크게 성공을 거두면서 ‘코렐의 제 2전성기’라 불러도 좋을 정도였다. 하지만 2017년 6월, 월드키친의 새로운 주인이 코렐의 경영권을 인수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본사에서 직영으로 한국 판매를 하겠다고 나선 것. 일순간에 사업권을 잃게 된 것보다 더 가슴 아픈 일은 불투명해진 직원들의 고용 승계 상황이다. IMF 외환 위기를 비롯해 숱한 위기의 순간을 거치면서 단 한 명의 직원도 해고한 적이 없었던 임 회장에겐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코렐은 임오그룹이 30여 년간 라이선스를 갖고 키웠습니다. 원래 서양식 테이블웨어를 임오에서 명칭까지 정하고 직접 판매해왔으며, 물류에 엄청난 돈을 투자했습니다. 현재 인수가 불투명한 재고만도 5백억 원어치에 달합니다. 임직원들의 수도 1백 명이나 되고요.” 

국내 기업이 키워놓은 라이선스 상품의 판권을 해외 본사가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가져가버리는 사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적극 중재에 나서거나 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황은 아니지만 그는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며 매무새를 바로 잡았다. 현재 그가 운영하는 계열사는 코렐이 속해 있는 ㈜임오와 ㈜임오산업 외에도 냉동·냉장물류창고 보관 업체인 ㈜임오냉동, 모피 전문 패션 기업 ㈜진도,테이블웨어 전문 업체 ㈜화인센스 등 여섯 개에 달한다. 그는 1년 3백65일 중 설날과 추석 당일을 제외하곤 하루도 쉬지 않고, 직원들보다 일찍 출근해 늦게 퇴근하며 회사를 일궜다. 지금도 직원들과 점심 식사를 함께 하며 어울린다. 

럭셔리의 상징인 진도모피를 세계적 모피 기업으로 키웠지만 손뜨개 조끼가 그의 방한복이었다. 온갖 서류와 물품이 쌓여 창고를 방불케하는 임회장의 사무실은 작은 난로 하나로 난방을 한듯 한기가 감돌았다. 

“제겐 우리 직원들이 자산입니다. 돈요? 저는 지금도 옷이 해질 때까지 입는 사람입니다. 골프도 못 치고, 술 ·담배도 할 줄모르는 제가 죽을 때 싸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니면서 무슨 그렇게 큰돈이 필요하겠어요. 하지만 우리 식구와 직원들, 이 사람들이 살아갈 터전을 잃을 수도 있는데 제가 어떻게 가만히 있을수가 있겠습니까.” 

그는 사업에 대한 자신감도 드러냈다. 

“끝이란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코렐을 본사에서 잘 인수해준다면 저는 저대로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2009년 모두가 외면하던 진도모피를 인수해 안정화시켰던 저력을 다시 보여줄 때라고 봅니다. 독일의 가이타이너, 프랑스의 듀랄렉스와 루미낙 등 새롭게 전개하는 다양한 해외 테이블웨어 브랜드들이 있는 만큼 임오를 패션과 주방 그리고 화장품에 이르는, 여성들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품목들을 전개해나가는 그룹으로 성장시킬 계획입니다.” 

다행인 것은, 그가 지금껏 사업을 하면서 맺은 인연과 신뢰가 결코 헛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한번 거래를 트면 끝까지 함께가려는 동지애, 한번 채용을 하면 끝까지 식구로 생각하고 안고 가려는 자세. 그의 그런 경영 철학은 그가 준비하는 새로운 그림들에도 변치 않는 모토가 되고 있다.

director 김명희 기자 
photographer 지호영 기자 
designer 박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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